85화. 미국에서 날아 온 망나니(2)
그녀는 바로 왕수정이었다. 그녀는 촬영 일정이 있어서 먼저 결혼식장을 나가는 중이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어머낫. 호호호호.”
왕수정은 나를 보자마자 웃기 시작했다. 평소 나의 이미지와 180도 다른 까닭에, 더 웃긴 모양이었다.
“에잇, 놀릴 거면 가라고! 택시 잡아야 하니까.”
“이 차 타고가요. 옷 사러 가는 거죠?”
“네, 그렇죠.”
“오빠 괜찮지?”
“어, 그래.”
매니저는 내가 달갑지 않았지만,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자 표정까지 바뀌었다. 약간의 비웃음 같은 거였다. 나는 그걸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스르륵 턱,
부릉.
나를 태운 차가 출발하고, 근처에 있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식이 끝나기 전에 가야 하거든요. 몰골이 이래서 택시도 안 잡히는 건가.”
“그 몰골로 옷을 사러 갈수나 있겠어요? 사이즈 말해 봐요.”
왕수정은 매니저를 시켜서 나의 옷을 사오게 했다. 매니저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이 나의 옷을 사러갔다. 매니저가 나간 사이에 왕수정이 나를 쓰윽 보더니 이상한 말을 하였다.
“준수씨는 날 안 좋아해요?”
“네? 제가 그런 말을 했나요?”
“아니 그런 것 같아서요.”
왕수정은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평소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던 그녀는 내가 냉정한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그녀의 얼굴만 봐서는 딱히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그만큼 미인이니까.
“난 박준수씨 좋아하는데.”
왕수정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장난하지 마세요.”
“정말이에요.”
왕수정은 그 큰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왕수정이 갑자기 깔깔대며 웃었다.
“됐어, 농담이라고요.”
“그죠?”
나는 그제야 멈췄던 숨을 몰아쉬었다. 좀 전까지는 얼굴까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내가 안심하는 모습을 보이자 자존심이 상한 왕수정. 나를 당장 차에서 내리게 하고 싶었지만, 결혼식에 가야 한다고 해서 참았다.
나는 이 기회에 왕수정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왕수정씨는 저 같은 놈도 안 어울리고, 매니저 같이 유부남이랑은 더 안 어울려요. 본인이 얼마나 이쁘고 잘난 사람인데, 매니저 같은 사람과는 그만 만나시고 좀 더 잘난 분과 사귀세요.
나는 최대한 담백한 어조로 말했다. 혹시나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착각을 하지 않게 말이다.
왕수정은 내 말뜻을 이해했지만, 그 말을 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했다. 내가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가 궁금했다.
“박준수씨보다 좋은 남자 있으면 소개 시켜줘요.”
왕수정은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고 있었다. 그때, 매니저가 문을 열어 제꼈다.
스으윽, 탁.
“뭐하는 거야?”
왕수정은 당황하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뭘 해? 아니야.”
왕수정의 말에 분위기가 더 이상해지고, 당황한 나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뭘 하다뇨? 대화만 했는데요?”
나의 말도 이상하게 들리는 건 마찬가지다. 매니저는 나를 차에서 끌어내렸다.
“가시죠, 옷 사왔으니까 가라고!”
“오빠. 너무 그러지 말고.”
“아니, 이 사람이 정말.”
“조용히 하고 나가 새꺄!”
나는 매니저가 그렇게 나오자 그를 더 골려주기 위해 도발을 하였다.
“모르시는 것 같아서 알려드리는데요. 저는 왕수정씨보다 훨씬 예쁜 여자랑 결혼할 거거든요?!”
스으윽, 탁.
나는 매니저가 말을 하기도 전에 문을 탁 닫아버렸다. 매니저는 화가 난 나머지 문을 두드렸다.
꽝꽝꽝.
“야, 박준수!”
나는 이럴 시간도 없고, 더 대화하기도 싫어서 얼른 택시를 잡았다. 매니저가 차에서 나왔지만, 나는 이미 가고 난 뒤였다.
* * * * *
택시에서 옷을 갈아입은 나는,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갔다.
두두두두.
양구씨가 달린 속도만큼 달려간 나는, 식이 끝나기 전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어우 씨, 헉헉헉헉.”
“옷 갈아입고 왔네요?”
“헉헉, 그래 이게 뭔 고생인지.”
“쟨 나사가 빠진 애 같아요.”
노랑머리가 조셉을 보며 말했다.
“니가 그런 말을 하니까 웃기다. 너도 전에 저랬어.”
“내가? 내가 언제요? 저 정도는 아니지.”
“하하하하, 그래 아니지 아니야.”
나는 노랑머리가 정말 많이도 변했구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회귀하고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그를 변화시킨 것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순간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가족 촬영을 마친 후, 미용실 식구들을 따로 불러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유달리 많은 미용실 사람들 덕분에 촬영하는 횟수도 많았고, 시간도 길어졌다. 그렇게 사진을 찍던 중 내가 잠시 정신을 팔린 사이에 한 원장의 아들이 사라졌다.
“조셉, 어디 갔어?”
“조셉? 방금 전까지 저기 있었는데?”
“아우, 이 새…….”
나는 한 원장이 바로 코앞에 있는지라, 더 말을 하지 못하고 뛰어갔다. 마침 촬영도 거의 끝마친 상태였다.
“야야, 오데가노?”
“조셉 찾으러요.”
“야야, 갸 이태원 간다켔다.”
“네.”
나는 뒤도 보지 않고 달려갔다.
“야야, 자 뭐 저렇게 바쁘노.”
“그러게요. 너어무 바빠.”
* * * * *
이태원은 낮임에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곳에서 조셉을 찾는 것은 (월리를 찾아라)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딱히 다른 방도도 없고, 조셉은 휴대폰도 없기 때문에, 그냥 발품을 팔아서 찾는 수밖에 없었다.
“어유,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지 이게.”
나는 이태원 입구에서부터 구석구석까지 쭉 훑어 나갔다. 그러는 동안 밤이 되어 있었다.
“대체 어디 간 거야! 이 돌아이 조셉이가!”
배가 고파서 더 조셉을 찾지 못할 것 같은 무렵, 한 술집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게 주인은 한 남자를 가게에서 쫓아내고 있었는데, 그가 다름 아닌 조셉이었다.
“돈 없으면 꺼져! 당장 신고하기 전에.”
조셉이 쫓겨나오는 것을 본 나는, 주인이 조셉을 막 때리려는 걸 막아섰다.
“뭐하는 겁니까?”
“와썹!”
나는 주인의 손에 카드를 쥐어 주었다.
“이걸로 계산하시고 당장 사과하시죠?”
“아, 네네. 죄송합니다.”
주인은 조셉에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하고는, 카드를 들고 들어갔다. 나는 조셉을 일으키며 옷을 털어주었다.
“술을 먹으려면 돈을 가지고 갔어야지. 안 그래?”
“돈은 있는데, 누가 훔쳐갔어. 아까 나랑 술 같이 먹던 걸이 내 돈 들고 갔어.”
“어유, 미치겠다. 정말.”
“유! 너무 좋은 사람.”
조셉은 그렇게 말하고는 픽 쓰러졌다. 술이 너무 과한지 그대로 잠이 든 것이다. 나는 조셉을 끌고 겨우 집으로 데려갔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고, 나는 조셉을 깨웠지만, 그는 일어나지 않고 잠만 잤다.
“조셉, 나 할 말이 있어서 그런데, 일어나봐.”
조셉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출근을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조셉을 재워놓고 나갔다. 저녁이 되면 그에게 미국에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지금은 제정신이 아니니 그냥 두었다.
“나 일하고 올 테니까 기다려. 절대 아무데도 가지 말고, 이거 카드인데 가지고 나가서 밥 사먹고, 나갈 때 문 꼭 잠그고, 알았냐고?”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는 집을 나섰다.
내가 나가는 것을 확인한 조셉이 슬금슬금 일어났다. 눈앞에 카드가 있는 것을 본 조셉은 피식 웃으며 카드를 덥석 잡아들었다.
* * * * *
“그래서 개 손에 카드를 쥐어줬다구요?”
“원장님이 준 돈 다 훔쳐갔데. 밥은 먹어야지.”
“밥만 먹을 놈이 아닌 것 같으니깐 그러죠!”
“먹어봐야 술이나 먹고 그렇겠지.”
“많이 먹을 것 같다니까요? 서울에 오면 친구들 다 불러서 지가 다 쏘고 다닌다고 그랬다고요. 원장님이.”
“뭐, 그래봤자지. 나 돈 많아. 하하.”
농담도 잠시였다. 집에 간 나는, 집이 잠기지 않은 것을 알고 경악했다.
“뭐야? 문이 왜 열려있어?”
다행히 도둑은 들지 않아서, 없어진 것은 없었다. 카드 하나만 없어졌을 뿐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카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카드를 어디서 사용한지 알아야 조셉이 있는 곳을 알아낼 수 있었기에, 확인 차 전화를 건 것이다. 나는 직원과 전화를 하다 말고 소리를 질렀다.
“얼마라고요?”
“어제 오늘 합쳐서 150만원 사용하셨네요.”
직원은 카드를 마지막으로 쓴 곳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당장 그 곳으로 찾아갔다.
“150이라니 미친 거야?”
* * * * *
조셉이 간 곳은 다름 아닌 클럽이었다.
나는 길에서 방황하고 있는 조셉을 발견하고 그의 등을 냅다 쳤다. 조셉은 갑자기 등짝을 맞고 신경질을 냈다.
“왓?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너 카드를 왜 그렇게 많이 써?”
“아우! 잔소리하면 나 갈 거야.”
“너 카드 계속 쓰려면 내 말을 들어. 너 미국에 좀만 더 있다가 가야 해.”
“아우! 나 자유롭게 살려고 아메리카 간 거야. 날 구속하려고 하지 말아줘.”
“구속이 아니고, 너 여기에 좀만 더 있다가 가라고. 한국에 좀만 더 있다가.”
“아우! 미국이 이제 내 집이야. 한국은 여행 온 거고.”
“니가 그러니까 그런…….”
나는 더 말을 하지 못하고 멈췄다. 그를 미국에 가지 못하게 하는 일이 한 원장을 결혼시키는 일보다 더 어려울 줄은 몰랐다. 조셉은 이미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다른, 그런 사람을 설득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드 쓰게 해 준 것은 고마운데, 내 인생에 간섭은 하지 말아줘.”
나는 이대로 그를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치사한 방법이라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카드 쓰지 마. 내꺼니까.”
“왓?! 정말 이러기야?”
“내 카드 쓰려면.”
지금 잔소리를 더 한다고 조셉이 들어먹을 것 같지도 않고, 듣는다고 해도 역효과가 날 것임을 깨달은 나.
어떻게 말해야 조셉이 말을 들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자 조셉이 그새를 못 참고 가려고 했다.
“치사해. 나 갈 거야.”
“조셉, 사람 말은 끝까지 좀 들어줘.”
“뭐? 뭔데 그래?”
미국에 가지 말라고 또 말했다가는 금방이라도 도망칠 것 같고, 그렇다고 그를 그냥 미국에 보낼 수는 없다. 거기다 카드를 쓰지 말라고 했다가는 나의 말을 절대 듣지 않을 것이다.
“카드는 니 맘대로 쓰고 대신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뭔데? 잔소리 하려면 집어치워.”
“잔소리는 아니야.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고, 일단 들어준다고 약속해.”
“그래 오케이. 리브 미 얼론!”
나는 그렇게 어려운 부탁을 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조셉은 정신없이 돈을 쓰고 다녔다. 카드 한도가 800인데 그걸 다 써서 한도 초과가 나올 정도로 말이다.
나는 그를 하루라도 붙잡아두기 위해서 돈을 쓰는 것을 그냥 두었다. 한 원장이 어차피 주긴 할 거지만, 한도 초과가 나올 때는 화가 좀 나기도 했다. 그래도 한국에 좀 더 머물고 가는 것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었다.
“자, 이거 조셉이가 쓴 돈 받아라.”
“아, 다 안 주셔도 되는데요.”
“한국에서 미국에서보다 돈을 더 써서 내가 화딱지가 났다 아이가. 그래서 그냥 보내삤다. 니한테 안부 전해 달라 카드라.”
“네?! 조셉을 보냈다고요?”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