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미용재벌-82화 (82/200)
  • 82화. 나는 자연인이지(3)

    “뭐야? 설마?”

    “도……도망쳐!”

    꾸에에에엑.

    멧돼지가 돌진해 왔다.

    “갈라지자 빨리.”

    “아, 몰라!”

    “종소리 반경 내에 있어!”

    멧돼지는 하나, 사람은 둘이니. 우선 한 명이라도 살고 봐야겠다. 나는 멧돼지를 내 쪽으로 오게끔 유도했다. 노랑머리는 앞뒤 안 가리고 냅다 달렸다. 다행히 내 쪽으로 달려오는 멧돼지!

    딸랑딸랑.

    종소리는 여전히 울리고, 멧돼지는 지치지 않고 나를 향해 돌진했다.

    “으악.”

    나는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지만, 겨우 추스르고 달렸다. 발목에 약간 무리가 온 것 같지만,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았다.

    ‘절벽! 절벽으로 가면 이 놈을 죽일 수 있어!’

    나는 산의 위쪽에 위치했던 절벽으로 가기 위해, 위쪽으로 향했다.

    두두두두.

    멧돼지도 나를 따라 노선을 변경하며 쫓아왔다.

    멧돼지와 나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딸랑딸랑.

    종소리도 좀 전보다 더 선명하게 울리고 있다. 가까운 거리에 종이 많이 있다는 반증이다.

    ‘좀만 더! 좀만 더!’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달렸다. 발목의 통증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딸랑, 딩딩딩딩.

    ‘딩딩딩딩 후 왼쪽!’

    드디어 절벽! 나는 왼쪽으로 훅 빠졌다!

    멧돼지는 그대로 내달리다 절벽으로 떨어졌다.

    팟!

    꾸에에엑, 꾸에에엑.

    멧돼지가 절벽으로 떨어지며 소리를 질렀다. 멧돼지의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온 산속으로 울려 퍼졌다.

    그때였다.

    딸랑딸랑. 두두두두.

    또다시 멧돼지가 온 것인가? 나는 이제 더 버틸 힘이 없는데, 분명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시#, 이대로 죽는 건가.”

    나는 이제 말할 힘도 없어서 체념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 무기도 없이 멧돼지 하나를 잡았으니, 죽기 전에 뭔가는 하나 하고 죽는구나 하면서 눈을 감았다.

    딸랑딸랑. 두두두두.

    “멧돼지 잡았구나?”

    사람이다! 나는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양구씨가 야구방망이를 들고서 쫓아 나온 것이다.

    “멧돼지 어딨어? 잡아서 먹어야지.”

    양구씨는 순전히 멧돼지를 잡아먹을 생각에 집에서 뛰쳐나온 것이다. 후에 안 일이지만 양구씨는 귀가 상당히 발전되어서, 엄마가 일부러 종을 설치했다고 한다.

    “저 밑으로 떨어졌어.”

    나는 절벽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양구씨는 절벽을 쳐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꾸에에엑.

    희미하지만, 멧돼지의 우는 소리가 조금씩 들리고 있었다.

    “에이, 아깝다. 돼지고기 맛난데.”

    양구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오던 길을 가려고 했다. 내가 다친 것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로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양구씨! 다음에 돼지고가 엄청 사올 테니 나 좀 하루 밤만 재워줘요. 나랑 같이 온 애도 좀 찾아주고.”

    “진짜? 오, 돼지고기 맛나다 정말.”

    양구씨는 나를 들쳐 업고 집으로 향했다. 나 정도를 업고 가는 일은 양구씨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나를 집에 데려다 놓고 노랑머리를 찾아 나선 양구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랑머리도 찾아내었다.

    “으악, 고마워. 양구씨 진짜 고마워.”

    노랑머리는 워낙 소란스러워서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노랑머리는 산속에 홀로 버려진 잠시 동안, 뱀에 둘러싸여 있는 상상을 했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 때문에 느낀 공포감은, 그 어느 공포영화보다 무서웠다고 했다. 양구씨를 보자마자 눈물을 찔끔거렸다는데,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우겼다.

    두 사람이 다시 양구씨의 집에 모였다. 밥을 얻어먹고 겨우 몸을 추스린 후, 그제야 안정을 찾고 마당에 나왔다. 겨울, 산속에서 같이 하늘을 바라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를 보자마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뭐냐 이게. 웃기다 정말.”

    “배부르고 등따수니 웃긴 거죠. 난 진짜 공포영화를 찍었다고요.”

    “하하. 니가 오늘 겪은 일은 평생토록 못 잊겠다.”

    “형님도, 멧돼지 잡은 거는 평생 한번 있을까말까 한 일이죠.”

    “하, 그러게. 양구 어머니 아니었으면 난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양구씨가 나와서 마당에 놓인 아궁이에 종이 쪼가리들을 털어 넣었다. 종이는 집에서 쓰다 버린 것들이고, 그 안에는 영수증 같은 것도 있었다. 양구씨가 아궁이에 불을 막 붙이고 있었다. 영수증? 나는 그걸 보고는 안에 있는 종이를 끄집어내었다.

    “잠깐만, 잠깐만!”

    “왜왜? 위험하다고!”

    “불붙었다!”

    불이 막 붙어서 타는 와중이라 뜨거운데도 무모하게 손을 집어넣어 종이를 꺼냈다. 두 사람이 놀라서 나를 보았다. 나는 영수증 중 하나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병원 영수증이잖아.”

    “어? 맞네.”

    “불 잘 붙는다. 그거 이리 줘.”

    양구씨가 나가 든 종이를 빼앗으려고 하자 나가 안에 있는 병원의 이름을 재빨리 읽어 보았다.

    “의정부 의정병원이네, 자자 이제 태워도 된다.”

    “불 잘 붙는다. 고구마 넣어서 먹어야 한다.”

    양구씨는 나가 들고 있던 영수증 더미를 빼앗아 다시 불을 붙이고는 거기에 고구마를 넣었다. 나와 노랑머리는 잠시나마 캠핑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캠핑 온 것 같네.”

    “아우 네네 긍정적이신 우리 박 쌤.”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가고, 오늘의 스트레스도 같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세상이 전부 숨죽이고 있는데, 장작만 오롯이 소리 지르고 있는 느낌.

    “잘 타네.”

    “오늘 고생 많았다.”

    “쌤도 큰일 했죠. 하하.”

    우리와 양구씨가 그렇게 불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잉.

    그러자 종소리가 숲 전체에서 작게 울려 퍼졌다.

    딸랑딸랑. 또르르르.

    바람이 숲에 있는 나무를 전부 훑어가자, 종도 그에 대답하듯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 소리가 숲에 울려 퍼지며, 한 곡의 음악처럼 아름답게 들려왔다. 그러자 양구씨가 그에 답하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뜻밖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양구씨. 그가 노래하자, 숲속에서도 연주를 계속하였다.

    “이래서 숲에 사나보네.”

    “조용히 해, 노래 듣자.”

    두 사람은 어느새 양구씨의 목소리에 취해 있었다. 힘들었던 날이 위로받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도 먹지 않고 내려왔다.

    * * * * *

    양구씨의 어머니를 찾는 일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병원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데다가, 양구씨의 집에서 본 그 여자가 병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마침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는 양구씨의 어머니와 아주 친한 듯 보였다.

    “다음에는 퇴원할 수 있겠어요.”

    “그럼 그때 다시 이야기 하죠.”

    그 여자는 양구씨의 어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돌아갔다. 두 사람을 산에서 몰아내기 위해서 계약서를 가져 온 모양인데 뜻대로 되지 않은 듯 했다. 양구씨의 어머니는 그녀가 간 뒤에도 계속 고개를 갸웃하며 혼란스러운 듯 보였다.

    나는 그녀가 간 것을 확인하고 병실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이은희씨?”

    “누구세요?”

    은희씨는 나에게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으니 두려운 까닭이었다.

    “양구씨랑 만나고 왔습니다. 어머님께 급히 전달할 이야기기 있어서요.”

    “아 우리 양구를 보고 왔다고요?”

    은희는 양구씨를 만나고 왔다는 말에 경계를 약간 풀었다. 나는 은희씨에게 산속에 찾아간 이유와 그때 있었던 일들, 이곳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차근차근히 설명하였다. 그녀는 약간 망설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정말 그랬어요? 좋은 사람이던데.”

    “좋은 사람들이 마약도 만들고 그러나요?”

    “아…….”

    은희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 잠시 동안 고민하였다. 그동안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 마음에 걸린 까닭이었다.

    “직접 신고를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조만간 경찰과 같이 갈 때, 협조를 해 달라는 이야기죠. 그건 한참 뒤에나 일어날 일이구요.”

    은희씨는 좀 더 망설인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양구씨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제가 참을 수 없으니까요.”

    나는 양구씨 같이 착한 사람이 망가지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은희씨는 그런 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 듯 협조하기로 약속 하였다.

    “저, 이거 받아주시겠어요?”

    은희씨가 뱀술과 야관문주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걸 밀었다.

    “아유, 저는 괜찮습니다. 충분한걸요.”

    나중에 들었는데, 은희씨의 뱀술과 야관문주가 어마어마한 효능을 가졌다고 한다. 사실 내게는 필요 없다.

    * * * * *

    “아 으으, 온몸이 아프네.”

    나는 일하는 내내 아파서 몸을 배배 꼬았다. 멧돼지와 사투를 벌이며 발도 삐끗하고, 온 몸에 힘을 주었던 까닭이었다.

    사실 오늘 나와서 일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겨우겨우 일을 마쳐갈 무렵, 한 원장이 다가와서 말을 시켰다.

    “니 오데 아프나? 어제 지리산 가서 뭔 일 있었나?”

    “아, 네 무리 했네요 하하.”

    “몸 안 좋으믄 걍 가라. 한의원에라도 가서 침 좀 맞고 오믄 괘않든데 아는 한의원 읍나?”

    “아, 아는 사람은 있죠.”

    내가 아는 한의사는 김소연 한의사다. 요새 많이 유명해지신 탓에 만나러 가도 만나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예약을 한번 해봐야겠네요.”

    나는 내일 당장 한의원에 찾아가 보기로 하고, 원장님께 늦게 온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몸 상태로는 지금 가야 맞지만 손님 머리를 하다말고 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니 파스라도 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야야, 그란데 그거 아나? 은서 있다 아이가? 갸가 그만 두었다카데.”

    “네? 왜요?”

    “모르지 내는. 암튼 갸가 거 있는 거이 매번 신경 쓰였는데 잘 되었지 뭐.”

    “아, 네.”

    나는 일을 마치는 대로 은서의 집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누구 때문에 이렇게 개고생을 하는데, 혼자 사라지게 놔둘 수는 없다.

    노랑머리는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집으로 가버렸다. 굉장히 피곤한 기색이라서 같이 가자고 할 수도 없었다.

    * * * * *

    나는 혹시 몰라서 조 원장의 미용실에 갔지만, 예상대로 은서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원장의 말대로 그만 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은서의 집으로 찾아갔다.

    은서의 집에 간 나는 그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집엔 불이 켜져 있었다.

    “왜 보자고 했어?”

    은서는 내가 나오라고 하자 귀찮다면서 아주 빨리 나왔다. 은서도 내게 있던 악감정을 털어낸 듯 했다.

    “왜 그만 둔거야?”

    나는 은서를 보자마자 물었다. 구차하게 돌려서 이야기 하느니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게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은서는 나의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 듯 짧게 대답했다.

    “몸이 아파서.”

    은서의 몰골을 보니, 얼굴은 허옇게 질려 있었고,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빗지도 않은 듯 헝클어져 있었고, 옷도 겨우 입은 듯 단추마저 순서대로 끼워져 있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누워서 굴러다닌 몰골이었다.

    “그러게 왜 몸을 함부로.”

    “야! 너 내가 이렇게 된 게 다 니 탓인 거는 모르냐? 니만 가만히 있었어도 난 이 꼴은 되지 않았을 거라고!”

    맞는 말이다. 내가 신고했기에 망가진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죄 값을 받지 않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거기다 자신의 죄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은 옳지 않은 판단이다.

    “내 탓이 아니고! 니가 잘못한 탓이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뭐야? 넌 누구야?”

    그는 다름 아닌 문신조폭 이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