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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72화 (72/200)

72화. 올 것이 왔다(1)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한 원장은 내가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바랬지만, 덜컥 긍정의 의사를 표현하자 온몸의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의지한 탓이었다.

“그게 참말이었네? 그렇네?”

“네, 그게 맞긴 하지만, 당장 뭘 어쩌겠다는 건 아니에요.”

나는 한 원장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하였다. 사업을 진행하는데, 한 원장이 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뭘 어쩌겠노? 니 나이 인자 서른도 안 되었고, 결혼도 안했고, 가게도 없다 아이가? 뭔가를 좀 배우고 찬찬히 쫌 해라. 니 보면 뭔가에 쫓기는 느낌이 많이 든다 아이가?”

한 원장의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내가 뭔가에 쫓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그러고 있으니까.

“그니까요. 아직 뭔가 하려는 건 아닙니다. 밥 먹으려고 숟가락 하나 산 셈이거든요.”

“숟가락 있음 밥 한술 뜨고 싶고, 밥 묵으믄 반찬도 묵고 싶고, 반찬 묵다보면 국도 묵고 싶은 거이 인간이다. 니 맘대로 살아지면 그기 신이지 인간이가?”

맞는 말, 정말 맞는 말이다. 나는 한 원장이 무슨 말을 해도 다 이해하고, 또 맞는 소리만 하는 분이기에 딱히 반박하고 싶지 않다.

“네, 맞는 말씀이세요. 저도 압니다.”

“그래, 뭐 글타는 말이지 니가 잘 된다카믄 말릴 생각 읍다. 알재?”

거짓말이다. 한 원장은 내가 떠날까봐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나 덕분에 더 많은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무엇을 하려고 하면 나의 조언을 듣고 나서 결정하곤 했다. 그런 내가 없다면, 천하의 한 원장도 자신이 없었다. 좀 더 쉽게 가는 법을 안 사람에게, 가시밭길로 가라고 하는 거니까.

“천천히 해라. 니 아직 한창이다. 좀 더 배우고 하믄 더 잘될기다.”

“네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한 원장은 내 말에 안심을 하고는, 다른 데로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니 승철이 아 봤나? 아가 참말로 귀엽드만.”

“아, 태어났을 때 한번 보긴 했어요.”

둘이 나 때문에 싸우고, 유전자 검사까지 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까지 치가 떨린다. 선정이는, 나랑 살 때는 애 안 낳겠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승철이랑 사니 애만 잘 낳고 산다. 연분은 정말 따로 있는가보다.

“둘이 천생연분인 것 같더라. 잘 어울려.”

내 아내였던 선정이가 나를 속이고 승철을 만나려고 애를 썼던 것이 생각나서 쓴웃음이 났다. 그녀는 잘 살고 있는 친구들을 죽었다고 속여 가며, 죽어라고 승철을 만나러 갔다. 나중에 내가 진실을 알았을 때, 둘은 이미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진짜 천생연분이죠.”

그렇게 말하다가 옛날, 아니 회귀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선정이가 승철이네 원장의 아들이 죽었다며 거길 가야한다고 난리를 쳤던 일이었다.

선정이는 승철과 만나기 위해서 승철이가 일했던 미용실. 즉, 지금의 한 원장이 있는 [스타일 헤어]에 자주 놀러갔었다. 가서 미용 기술을 배워 온다고 해놓고 승철이와 노닥거린 거였다. 그런데 그 원장의 아들이 죽었다고 하며, 그 장례식장에 가야 한다고 난리를 쳤던 것이다. 그 말인즉슨, 한 원장의 아들이 조만간 죽는다는 뜻이다.

그 아들이 죽은 이유가 희한해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미국 유학을 보냈던 아들이 갱스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 한 원장의 아들이 미국에서 유학중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아내가 죽고, 아들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죽자살자 돈을 벌어왔던 한 원장의 지난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그 일이 조만간 벌어질 것이라는 말이 아닌가? 그걸 안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거렸다. 1999년이 지나고, 2003년 즈음 우리가 이혼했으니, 그 전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나 지난 것일까? 아들이 사망한 시점을 알아야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일단 한 원장의 아들에 대한 것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장님, 아드님은 언제 미국에서 돌아오나요?”

“엥? 그건 와 갑자기 묻노?”

“아드님 오시면 그때 미용실 차리려구요.”

나는 애교 섞인 미소를 보여주며 웃었다. 한 원장은 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그간의 화가 풀리는 듯 따라 웃었다.

“2001년에 온다. 니 그람 그때까진 진짜 내 옆에 있을 기가?”

“네, 그래야죠.”

나는 일단 한 원장을 안심시키고 생각에 잠겼다. 아들이 2001년에 온다면 사고는 2000년에 일어날 일이다. 그 안에 아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 그래서 2001년까지 아들을 미국에 못 가게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 * * * *

쉬는 날, 이사장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송애교의 cf건으로, 의견을 나누던 중이었다.

“허의원이 첫 회부터 대박 났어요.”

왕수정의 출세작인 허의원이 어느새 방송을 타고 있었다. 그 드라마는 후에 리메이크까지 될 정도로 아주 잘 된 명작이었다. 그 드라마에 나온 거의 모든 이들이 뜰 정도로 사랑을 받은 작품인데, 첫 회부터 시청률이 아주 잘 나왔다.

“우리 수정이가 연기를 아주 잘해, 앞으로 쭉 잘될 연기자야.”

“네.”

이사장은 나 덕분에 2년만 계약하게 된 것을 분해하고 있던 시기라서, 좀 퉁명스럽게 말을 하였다. 나는 이사장이 어떤 말을 해야 기분이 좋을지 몰라 고민하고 있는데, 왕수정이 어찌 알았는지 그 곳에 찾아왔다. 왕수정은 벌써부터 스타병에 걸려서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들어왔다.

“여기서 뭐하세요? 나만 빼놓고.”

“어 그래 수정씨 어서 와요. 밥 안 먹었지?”

“맛있겠다. 여기 유명한데에요?”

“수정씨가 더 유명하지.”

이사장과 왕수정은 죽이 척척 맞았다. 나는 그 앞에서 아무 말 없이 밥만 먹을 뿐이었다.

“박준수씨는 인사도 안하나봐? 저기요 안녕?”

“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왕수정은 오늘 스케줄이 빡빡한데도, 굳이 이곳까지 왔다. 본인은 이사장이 불러서 가는 거라고 애써 포장했지만, 사실 그곳에 내가 있기 때문에 온 것이다.

“여긴 왜 오셨어요? 바쁘실 텐데.”

나는 왕수정과는 절대 엮이지 않으려고 더욱 냉담하게 말하였다. 왕수정은 내가 너무 냉정하자, 오기가 생겨서 더 말을 걸었다.

“밥 먹으러 왔지? 왜요? 나갈까?”

나는 왕수정을 무뚝뚝하게 쳐다보았다. 질문을 하지 말고 가라는 듯 또렷하게 왕수정을 쳐다보자, 왕수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이사장이 나의 밥그릇을 옆으로 쭉 밀며, 왕수정을 그 자리에 앉혔다.

“가긴 어딜 가? 여기 앉아요.”

“사장님, 이러면 우리 대화를 제대로 못하잖아요. 눈치도 없나.”

그러자 이사장이 참다못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너 이 자식! 왕수정씨한테 예의 있게 행동해!”

이사장이 갑자기 화를 내자, 나는 물론 왕수정도 놀란 눈치였다. 왕수정은 놀란 나머지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딸꾹, 딸꾹.

“괜찮아요? 물 좀 마시세요.”

“네, 괜찮아요.”

나는 좀 심했다는 생각에 미안해하며, 왕수정에게 찬물을 따라서 건넸다. 왕수정은 물을 좀 마시고 진정하였다.

이사장은 나에게 하려다가 참았던 말을 하기로 마음먹고 입을 열었다.

“너 사업한다면서? 미용실도 차리고?”

“아, 네. 그냥 준비를 하긴 하는데 아직은…….”

이사장은 나를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왕수정은 내가 사업을 할 정도의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를 다시 보았다.

“아무리 돈이 좀 있다 해도, 사업은 조심해야 해. 너같이 어린 애들은 더더욱 그렇고.”

“아직은 그냥 사업자만 내고 있으려고요. 급하게 할 생각 안하고요.”

이사장은 입을 열려다 참고, 다시 열려다 참고를 반복하다 입을 열었다.

“니가 미용실을 새로 차린다고 해도, 우리 애들은 못 보낸다. 한 원장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저번에 우리 애들 보내는 걸 계약서로 작성했어. 한 원장이 정 선생한테 애들 다 뺏긴 것 때문에 예민해져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아, 그렇군요. 괜찮습니다. 몇 년 더 있으려구요. 원장님 밑에서 좀만 더 배우고 차릴 테니 걱정 마세요.”

“그래, 그게 좋지 아무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네.”

원 나이와 회귀 전 나이를 합하면 60이 넘는데, 어리진 않지만, 일단 이사장의 비위를 맞추는 게 급선무였다. 왕수정이 사건에 휘말리기 전까지는 무조건 맞추어야 한다.

“사장님 조언대로 할 테니까 너무 노여워 마시고요.”

나는 이사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왕수정의 숟가락을 꺼내주고 물컵을 채워 주었다. 왕수정은 내가 자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걸 깨닫지 못하고 나의 친절에 고마워할 뿐이었다.

나는 한 원장의 아들 사건과, 이사장의 계약 사건으로 인해 사업 건은 조금 미뤄야겠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재준이 걸리긴 하지만, 그의 동선을 이미 다 알고 있으니 괜찮다.

* * * * *

“사업을 뒤로 미루자고요?”

나와, 대머리 이사, 조씨, 은미가 카페에서 만났다. 나는 그들을 보자마자 사업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하였다.

“네. 당분간 사업에 전념할 시간도 없구요. 나이도 너무 어린 것 같고.”

그러자 은미가 나의 말을 막고 나섰다. 사실 은미도 아주 어린 나이지만 사업을 하는 거니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는 탓이었다.

“난 나이는 상관없다고 보는데요?”

“그쪽은 그렇고, 저는 상관있고요.”

나의 말에 할 말을 잃은 은미.

대머리 이사는 잔뜩 소심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럼 난 얼마나 더 백수로 지내야 하무니까.”

“그렇게 오래는 아니고요. 아 그 가발 붙이는 일은 시작 할 겁니다. 그 일은 우리 광명사 김 사장님이 곧 오신다고 했으니까.”

나의 말에 맞게, 김 실장이 카페로 들어섰다.

딸랑딸랑.

카페 문에 달린 종이 울리고, 김 실장에 이어 노랑머리도 같이 카페로 들어섰다.

“저기 오시네요. 김 실장, 아니 김 사장님 어서 오세요.”

“여기 다 모여 계시네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머리 이사님.”

“아, 그 김영주씨 아니무니까? 와 사장님 되셨나무. 신수가 훤하시네.”

대머리 이사는 말하다가 말고 머리에 쓴 모자를 벗었다. 갑자기 주변이 환해지고, 그걸 본 김 실장과 노랑머리가 눈을 찌푸렸다.

“난 머리가 훤한데.”

“와, 머리가 다 어디로 갔어요?”

대머리 이사의 민머리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김 실장. 노랑머리는 그게 웃긴지 피식 웃었다.

그러자 노랑머리를 노려보는 은미, 잠시였지만 눈빛이 아주 매서웠다.

“저 친구는 제 심복인데, 아주 믿을 만한 친구입니다. 제 오른팔이죠.”

“안녕하시무니까. 앞으로 잘 부탁.”

대머리 이사가 노랑머리에게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미는데, 은미가 그 손을 잡아챘다. 그러더니 노랑머리를 노려보았다.

“왜 이 사람이 당신의 오른팔이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왜 하필이면 이 사람이 당신의 오른팔이 되었냐는 말입니다. 그 수많은 스타일 헤어 직원 중에서 왜 이 사람이?”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요?”

김 실장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하며 둘을 화해시키려고 나섰다. 그러자 은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노랑머리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이 사람이 전과자 인건 알고 있습니까?”

은미의 말에 사람들이 전부 놀란 얼굴로 노랑머리를 쳐다보았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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