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폭우 속으로(4)
“꿈에 나왔어, 내 꿈에.”
나는 가 기자의 말에 격분한 나머지, 가 기자의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는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가 기자는 나에게 멱살을 맡긴 채, 할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정성스럽게 기침을 해댔다.
뒤에 있던 변호사가 긴장하며 주시하고 있었다.
“콜록콜록.”
“그니까 꿈에 나왔다는 핑계로 그 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말이잖아 지금?”
가 기자는 나의 손을 뿌리치고는 비열한 표정을 정성스럽게 지어가며 말했다.
“내가 이런 네놈이 뭐가 이뻐서, 그런 기사를 써줬을 거라고 생각하나?”
“넌 관심 받고 싶은 놈이니까!”
“그래, 그건 맞는 말이야. 하지만 부족해.”
가 기자는 여유로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얼굴 한대 맞은 것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혼자 열 받아서 씩씩대며 가 기자를 노려보았다. 여차하면 몇 대 더 때려줄 심산이었다.
“넌 개자식이니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
나는 더욱 열이 받아서 또다시 가 기자를 패려고 주먹을 들었다. 가 기자는 몸을 뒤로 빼며 나머지 말을 이어서 하였다.
“안다영이 내 꿈에 나와서 날 쫓아다녔어. 오빠 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다고!”
나는 다영이 정말 그렇게 한 걸까? 하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내가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데도, 그때마다 계속해서 내 꿈에 와서 오빠를 살려달라고 했어. 그래서 내가 그럼 비디오 사건 말해도 되냐고 했더니 하래. 그래서 그렇게 기사를 낸 거야. 내가 안다영 때문에 피곤해서 박카스 한 박스를 먹었다니까?”
“거짓말 하지 마!”
“내 이야기는 지금부터야. 그래서 기사를 낸 뒤에 편하게 자려고 누웠지. 그런데 안다영이 또 꿈에 나오는 거야.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전해달래.”
“그런 얄팍한 스토리로 날 설득하려고 하지 마. 넌 고소를 먹여줘야겠어. 변호사님 이 새끼 고소.”
내가 변호사에게 다가가는데, 가 기자가 나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자기 제사상에는 짜빠구리를 올려달라던데?”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짜빠구리는 다영과 설아, 매니저만 아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가 기자가 알았을까? 정말 다영이 꿈에 나온 것이 아닌가? 그녀가 진짜 나를 돕기 위해 가 기자를 찾아갔을 거라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 때문에 죽은 그녀가 나를 돕는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준수씨! 괜찮아요?”
“잠시만요…. 어흑,”
“그래, 기자는 거짓말을 하진 않아. 과장할 뿐이지.”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가 기자에게 다가갔다.
“다영이가 또 뭐라고 하던가요? 잘 지낸데요?”
짜빠구리는 회귀자가 아니면 절대 모르는 단어이다. 그걸 이야기한 이상 가 기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원래 있어야 하는 곳보다 더 좋은 곳에 있대. 자살자들은 가지 못하는 데라고 하던데 뭔 소리야?”
“어흑흑, 다영이가 맞나? 정말 맞나?”
“그래서 고맙데. 그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하던데?”
다영은 원래 자살을 할 운명이었는데, 나를 만나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다영은 고마운 것이다.
“그리고 말이야, 원래 그런 비디오는 무조건적으로 유통하는 거거든. 다영씨가 죽었어도 그런 건 그냥 미래까지 쭉 유통되는 건데, 나씨가 아주 없애버렸잖아? 지인으로서 그거 말고 더 잘할 수 있을까? 그거 말고 더 나은 방법이 있냔 말이지.”
맞는 말이다. 원래 다영의 비디오는 다영이 사망하고도 쭉 유통되고 있었다. 가족도 친지도 없는 천애 고아인 다영을 위해서 그 누구도 싸워주지 않은 채 2021년까지도 유통되는 그 처절한 비디오를 내가 없애버린 것이다.
“그니까 준수씬 미안해할 필요가 없어. 적어도 다영씨에겐 말이야.”
“네, 네. 그럴게요. 고맙습니다. 가 기자님.”
“고마울 건 없어. 내 손에 비디오가 들어오면 언제든지 유통할거거든. 난 천성이 그런 놈이라 감사 따위 필요 없어.”
가 기자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쿨하게 뒤돌아섰다. 가 기자의 뒷모습을 보던 나는, 곧 세상에 나올 그 정치인에게 제대로 당할 가기자의 미래를 떠올리고는 급하게 그를 붙잡았다.
“그 비디오 속 남자 말이에요.”
가 기자는 가다말고 서서 다 안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 오늘부로 잘렸어. 그 새끼 보통 새끼가 아니더라구.”
“아, 죄송합니다.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미안하면 제보나 좀 해주고 그럼 되겠네. 나 작은 신문사 차리거든. 높은 사람이 갈구니 아무도 날 안 써줘서 말이지.”
“아, 넵넵. 알겠습니다!”
가 기자는 피식 웃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꼭 한번은 그를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근본은 여전히 나쁘기에 두 번은 하지 않을 것이다.
“김설아씨가 이 근방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이야기가 끝날 무렵,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김설아였다.
* * * * *
조용한 카페에 들어서자 김설아가 보였다. 그녀는 며칠 동안 잠을 한숨도 못잔 듯 초췌한 모습이었다.
“준수씨.”
나만큼이나 힘들고 고단했을 김설아. 단 며칠 만에 비쩍 말라있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왜 이렇게 말랐어요?”
“난 괜찮아요. 준수씨가 고생하셨죠.”
내게 애써 웃어 보이는 김설아.
다영의 장례식은 노랑머리가 마무리 하 있는 중이었다. 다행이다.
그런데, 김설아가 갑자기 눈물을 터트렸다. 물이 쏟아지듯 갑작스러운 눈물이 넘쳐흘렀다.
“나… 대신 죽었어요. 다영씨가……, 어흑흑.”
고통스럽게 울고 있는 김설아를 보자, 내 마음도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살며시 다가가서 김설아를 안아주었다.
“아니에요. 그건 아니에요.”
“어떻게 이 미안함을 갚을 수 있을까요. 죽은 사람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요. 흑흑.”
“내가, 내가 뭐든 해줄게요. 다영씨 비디오도 유통하지 못하게 이미 막았고, 또 뭔가를 해줄 수 있을 겁니다. 납골당이라도 좋은 곳으로 마련해줄테니,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아요.”
“돈은 제가 보태도록 할게요. 그니까 꼭 좋은 자리에 모셔줘요. 죽어서라도 행복할 수 있게.”
“네. 걱정 말아요.”
나는 그녀가 눈물을 멈출 때까지 꼭 안아주었다.
김설아는 눈물을 다 흘리고 난 뒤, 내 품에 안긴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나 살려줘서.”
그녀의 말에,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 그녀를 살렸으니 그걸로 된 거다. 이제 다영씨를 잘 보내주자. 죽어서라도 행복하도록.
따르르릉, 따르르릉.
카페를 나서는데, 전화가 울려댔다.
“여보세요.”
(나야, 여기 오신 손님이 널 좀 보길 원하시는데, 올 수 있겠니?)
“누군데요?”
(응, 그 드라마 작가님이셔.)
나를 살인범으로 만든 작가가 찾아왔다는 소리에 짜증이 확 밀려왔다. 안 그래도 그 여자를 고소하려고 하던 차라, 더욱 거부감이 생겨서 전화를 받기도 싫었다.
“나중에 오시라고 해주세요.”
나는 이사장에게 조차 냉정하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작가가 1년을 기다려준다고 해도 나의 분이 안 풀릴 것 같았다.
* * * * *
“아이고, 저 어린것이.”
다영의 사진이 너무 예뻐서,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어서, 그녀의 장례가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너무 꽃같은 나이에, 너무 꽃같이 예쁜 여자가 한줌의 재로 변하려 한다.
화르르륵.
화장터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다영의 시체가 그 뜨거운 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차마 그걸 다 보지 못하고 눈길을 돌렸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그녀가 웃으며 다가올 것 같았다.
찰칵, 찰칵.
정말 어이없는 일은 그런 광경마저도 기자들이 찍고 있는 것이었다. 과거 유명 연예인들이 사망했을 당시에 TV에서 그 모습이 방송되는 걸 봤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당사자가 되어서 그 광경을 보려고 하니, 너무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빠졌다. 저들은 남의 죽음마저도 돈벌이로 생각하는 듯 열심히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노랑머리가 내 옆에 서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도 다영씨를 참 좋아했었지.
“주인공 데뷔도 못해보고, 그냥 죽었잖아요. 그렇게 열심히 연기했는데, 그 모습이 티비에 한 번도 못나오고 그냥 없어질 거잖아요. 어휴 너무 불쌍해서 못 보겠어.”
“아… 그렇겠네. 찍은 거라도 나오면 좋으련만….”
“그러니까요…. 너무 안타깝고 그러네.”
나는 다영의 사진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다영의 사진은 마침 드라마 주인공의 분장을 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어쩌면 정말 그게 가장 큰 소원이었을 건데, 그걸 이루지 못하고 죽은 것이 너무 아쉬운 순간이었다.
* * * * *
뚜벅, 뚜벅.
늦은 밤, 아직도 그 작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나는, 이사장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왜 밥도 안 먹고 기다리는 거야? 고집은, 쳇.”
‘벌컥.’
“아, 사장님.”
내가 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이사장이 문을 벌컥 열고 나를 잡았다. 이사장도 애가 탔었던 모양이었다.
“잘 치르고 온 거지? 난 여기 상황이 신경 쓰여서 못 갔다네.”
“네, 잘 하고 왔어요. 사장님도 식사 안하셨어요?”
“난 뭐, 이제 한잔하러 가면 되지만 말이야….”
이사장은 그 말을 하며 뒤에 있는 작가를 쳐다보았다. 작가는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도 한참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듯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안쓰러울 정도로 초췌한 작가를 보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녀도 어쩌면 피해자일지도 모르는데, 괴로운 건 피차 마찬가지 일 텐데, 너무 몰아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작가님, 식사라도 하고 계시지.”
작가는 나를 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어서였다.
“미안합니다. 박준수씨. 그 인간이 갑자기 그런 말을 해서 제가 실수를 범했네요.”
나는 그 인간이라는 말을 듣고 짚이는 사람이 있었지만, 일단 모르는 일이니 작가에게 물어보았다.
“그 인간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 그날 지인이라는 사람이 박준수씨가 다영씨를 죽인 거라고 하더군요. 전 진짜 그 인간말만 듣고 화가 너무 나서 그만….”
“혹시 그 인간이 파마머리에 얼굴 까만 사람인가요?”
“네, 맞아요. 그 라면 뒤집어쓴 그놈이 그렇게 말해가지고, 난 그걸 믿었을 뿐이라고요.”
나는 열 받은 얼굴로 이사장을 쳐다보았고, 이사장도 화가 나서 나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말을 하였다.
“유 사장 그 새끼가?”
나는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유 사장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곧 나의 고함소리가 복도에서 울려 퍼졌다. 그의 마음을 아는 이사장은 그걸 들으며 한숨을 쉬었고, 작가는 약간 놀라긴 했지만, 그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몇 번 더 고함을 지르고는, 다시 사무실에 들어와서 작가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저도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제가 사실 무고죄로 고소를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작가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고소까지는 생각지도 못한 듯 보였다.
“고소요…? 어후.”
“그걸 안하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만.”
작가는 궁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