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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46화 (46/200)
  • 46화. 폭우 속으로(3)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에요?”

    노랑머리가 수갑을 흔들며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나도 당황한 감정을 숨길수가 없었다.

    경찰은 노랑머리를 뿌리치며 나를 끌고 갔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저기 뭔가 잘못아신게 아닌가요? 제가 왜 사람을 죽여요? 내가 왜?”

    “증인이 있어요. 당신이 안다영을 밀치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다구요.”

    “네? 누가요?”

    나는 그때,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실 그때의 일은 전부 블랙아웃이 된 것처럼 제대로 기억나질 않았다.

    “일단 가시죠.”

    “장례는요?”

    “자신이 죽인 사람의 상주로 있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이봐요. 아니라니까요?”

    “이보세요. 쌤은 그럴 사람이 아니거든요!”

    경찰은 나를 끌고서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다들 무슨 폭탄을 맞은 사람처럼 멍하게 구경하였다. 마침 이사장과 한 원장이 오지 않아서 누구도 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노랑머리 한명만이 애타는 얼굴로 따라나섰다.

    “장례는 일단 제가 해볼 테니까 조사 마치고 얼른 오세요. 걱정 말고!”

    “고마워. 금방 올 거야.”

    내가 연행되는 것을 기자들이 놓칠리가 없었다. 기자들은 나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대기 시작했다. 그때는 인권 같은 것이 지켜지질 않았었기에 나의 모습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안다영,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하다.]

    다영의 기사를 본 사람들은 전부 나를 욕하기 시작했다. 나는 졸지에 국민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 * * * *

    “아니에요. 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증인이 있는 이상 너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이 모든 일은 안다영의 드라마작가가 꾸민 일이었다, 그녀는 직접 그 사건현장에 찾아갔고 또 다른 증인인 남자를 만났다. 그는 작가가 집요하게 물어보자 그녀의 의도대로 대답을 해주었고, 그게 증거가 되어서, 나를 살해 혐의로 넣게 된 것이다.

    거기다 안다영이 남자친구에게 살해되었다는 기사가 나면 드라마가 자연스럽게 지연되며, 후에는 시청률까지 오를 것이다. 작가나 피디 차원에서는 이런 전개가 여러모로 좋게 느껴졌고, 그래서 내가 잡혀 간 것이다.

    살인죄를 인정받게 되면 나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 그걸 노린 것이었다.

    나는 졸지에 살인범으로 잡혀가서 고문에 가까운 취조를 당하였다. 범인으로 정해놓고 물어보는 취조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자백을 하면 정상참작을 해줄 거야. 자백을 안 하면 넌 잠을 잘 생각도 하지 말아야겠지?”

    똑똑.

    취조실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자신의 명함을 내밀며 나의 옆에 섰다.

    “저는 한 원장님이 보내서 온 남변호사라고 합니다. 박준수씨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강압에 의한 취조는 사절합니다.”

    나는 이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나오려고 했다.

    “그럼 저희 의뢰인과 잠시 면담 좀 해도 되겠습니까?”

    “아, 네. 그러시죠. 그런다고 뭔 수가 생기겠어요? 증인이 있는데.”

    “나가주시죠?”

    “알았다고요.”

    끼이익.

    형사가 문을 열고 나가자, 변호사는 녹음버튼부터 껐다. 취조실에서 하는 말은 전부 유리 너머의 사람들에게 들리기 때문에 그것부터 차단해야 했다. 다년간 변호사를 해 온 실력 있는 사람이라 도입부터 달랐다.

    “확실한 증인이 있어서 불리하긴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 있게 두지 않을 거니까 걱정 마세요.”

    “그 증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김설아는 당연히 아닐 테고, 설마 매니저인가?

    “그 마을에 사는 주민이랍니다. 사건 현장을 멀리서 봤다고 하는데, 멀리서 본 사람이 무슨 표정을 봤네 마네 어쩌고, 그 작가의 유도심문에 제대로 당했나 봐요. 자기 때문에 누군가가 살인범이 되는 것도 모르고 말이죠.”

    “다행이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 지인이 증인이 아닌 게요.”

    “아 그분들이 지인이신가요? 그럼 잘 되었네요. 그분들이 증인을 서주시면 금방 해결되겠어요. 일부러 손을 놓으신 건 아니시잖아요?”

    나는 순간 망설였다. 김설아를 살리기 위해 다영을 잡은 손에 힘을 뺀 건 사실이니까.

    “모르겠습니다. 손을 놓은 건 사실이거든요.”

    “아니, 이 사람이 어쩌시려고 그런 말을?”

    나의 말에 놀란 변호사가 주변을 살폈다. 유리창 너머로 이걸 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변호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단 묵비권을 행사하시고, 제가 증인들 만나볼 테니까 그때까지는 조용히 계세요.”

    “강요하지는 말아요. 설아씨는 아무 책임이 없으니까.”

    변호사는 혀를 끌끌 차고는 취조실을 나갔다. 나는 다영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감옥살이를 그냥 하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이 일을 딱히 피하고 싶지 않았다.

    * * * * *

    [박준수는 안다영을 너무 사랑해서 그녀의 **비디오를 없애버린 남자였다.]

    다음날 5대 스포츠 신문중 하나에 이런 기사가 독점으로 났다. 그 기자는 다름 아닌 가 기자였다. 가 기자는 나와 있던 이야기를 전부 기사로 내보냈다. 신문의 다음페이지까지 가 기자가 낸 기사로 도배되어 있었다.

    내가 안다영을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진과 [그때 없앴던 걸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상 없어지지 않았다.] 안다영과 차에서 포옹하는 사진, 그리고 둘이 대화하던 내용까지 전부 기사로 작성되었다. 기사의 골자는 그렇게까지 사랑한 여자를 죽일 남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순전히 가 기자의 생각만으로 만들어진 기획기사였다.

    “이거 봤어요? 당신이 세기의 로맨티스트라고 다들 난리네요. 이 기자 아는 사람입니까?”

    형사가 신문을 들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나는 기사 속 기자가 가 기자임을 알고 매우 놀랐다. 왜 저런 기사를 냈는지 나조차 궁금할 정도였다.

    “아는 사람이긴 한데, 착한 사람은 아닌데요? 특히 다영씨를 무너지게 하려고 기사를 쓰려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당신의 옹호기사를 내다니, 그게 이상하네요?”

    “사실상 옹호기사도 아니에요. 우린 사귄 것도 아니고, 다영씨 비디오가 있다는 사실을 헤드라인으로 걸었어요! 이 새끼가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거잖아요!”

    “워워, 진정해요. 이 기사 덕분에 당신은 살아난 거니까요.”

    나는 기사를 한줄 한줄 곱씹어 읽다가, 화가 난 나머지 신문을 박박 찢어버렸다.

    “비디오라니 대체 그 이야기를 왜 꺼내서! 이 개자식이 진짜!!”

    나는 흥분한 나머지 길길이 날뛰며 머리털을 잡아 뜯었다. 그야말로 광분한 상태였다.

    똑똑.

    취조실 문을 열고 변호사가 들어왔다. 변호사는 나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간밤에 좋은 소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김설아씨와 매니저가 증언을 해주신다고 왔습니다. 이제 집에 가실 수 있겠네요.”

    “하……, 고맙긴 하지만… 그건.”

    내가 좋지 않은 표정을 짓자, 변호사가 달려와서 나의 입을 막았다. 형사는 둘이 하는 것을 눈여겨 지켜보고 있었다.

    “뭐하는 거죠?”

    “묵비권 행사 중입니다.”

    “그놈의 묵비권 쳇.”

    변호사는 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김설아씨가 이따가 잠시 만나자고 하십니다.”

    “아, 네.”

    그러자 변호사가 또 놀라며 나의 입을 막았다. 변호사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있었고,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형사도 눈에 불을 켜고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그니까 형사님이 좋은 조건으로 취조를 해주셨냐는 거죠, 제가 한 말은 하하.”

    변호사는 말을 돌려가며 형사의 시선을 피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증언도 소용없을 뻔한 것이다.

    ‘찰칵, 찰칵’

    경찰서를 나서는데,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기자들이 나의 기사를 쓰려고 몰러든 것이었다.

    “당신을 고소한 사람이 안다영씨가 출연한 드라마작가라는 말이 있는데 아시나요?”

    “두 사람이 애인이라는 것이 사실인가요?”

    나는, 우리가 애인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 이야기하지 않으면, 사실이 될 것 같아서 어쩔 수없이 그들 앞에 섰다.

    “안다영씨와 저는 애인사이가 아닙니다. 그냥 좋은 오빠동생 사이였습니다.”

    그러다 한 기자가 큰소리로 물었다.

    “비디오! 직접 보신 겁니까?”

    나는 그 말에 발끈하며 그 기자를 노려보았다. 나의 분노 섞인 말투가 그대로 기자에게 꽂혔다.

    “비디오 관련기사 전부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할겁니다. 고소당하고 싶지 않으시면 적당히 좀 하세요!”

    그러자, 남 변호사가 나를 커버하며 말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나의 변호사였던 양 당당한 남변호사의 모습은 기자들 기를 죽이기에 충분했다.

    “네 제가 담당 변호사입니다. 명예훼손으로 전부 쇠고랑 채울 수 있으니 조심들 하십시오.”

    변호사는 고소장을 남발할 생각에 신이 난 듯 보였다. 그게 다 돈으로 돌아올테니 말이다.

    나는 가다가 멈춰서서 기자들 얼굴을 전부 쓰윽 훑어보며, 가기자의 얼굴을 찾아 보았다. 웬일인지 그 많은 기자들 사이에서 가기자의 얼굴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나는 일단 가 기자의 얼굴을 보고, 왜 그랬는지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변호사님, ##일보 아시죠? 거기 좀 같이 가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아, 네 알죠. 가시죠.”

    나는 가 기자가 근무하고 있는 ##일보로 향했다.

    * * * * *

    여의도, 1998년임을 감안하면 너무도 현대적인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 곳에, 가 기자가 근무하는 ##일보 본사의 건물이 있었다.

    내가 그 곳의 입구로 들어서자, 가 기자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뛰어나와 나를 맞이하였다.

    “어서오세요, 세기의 로맨티스트!”

    “변호사님은 조금만 여기 계세요.”

    “네, 그러죠.”

    나는 가 기자를 보자마자 인상을 구기며 다가갔다. 가 기자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여유로운 얼굴을 하며 나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뒤에는 남 변호사가 재미있는 구경을 하듯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대체, 당신 무슨 꿍꿍이로 그런 기사를 낸 거지?”

    “왜 화난 얼굴을 하고 있지? 당신을 구해준 나인데? 꽃다발이라도 사들고 왔어야지.”

    “이 새끼가 진짜!”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가기자의 멱살을 잡았다. 가 기자는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짜증났지만, 침착하게 멱살을 풀고 옷매무새를 다시 만졌다. “고마워 라고 먼저 말하고 나서 다른 걸 따지는 게 예의야. 내덕에 풀려난 건 사실이잖아!”

    “그래 이 새끼야. 고마워 미치겠다. 하지만 비디오를 깐 건 니가 잘못한 거잖아!”

    나는 또다시 가 기자를 팰 듯 다가갔다. 가 기자는 약간 겁을 먹은 듯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특유의 정성스럽게 비웃는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수없음이 더해졌다고나 할까?

    “그건 허락을 받고 낸 기사야.”

    “누가? 대체 누가 허락을 했단 말이야?!”

    “안다영이! 안다영이 허락했지!”

    “뭐?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나는 당장이라도 가 기자를 죽일 것 같은 기세로 소리쳤다.

    “말 그대로야. 안다영이 그걸 써도 좋다고 했다니까?”

    “죽은 애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당신 미쳤어?”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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