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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44화 (44/200)

44화. 폭우 속으로(1)

마침 노랑머리가 나와 가 기자를 보고 뛰어왔다.

“박 쌤. 내가, 내가 팰게요. 기다려!”

“왜? 이번에 뭔 동영상으로 나를 도와주려고? 때려봐? 어서!”

나는 화가 나서 핏대가 서고, 주먹에서는 힘줄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꾹 눌러 참고 멱살을 놓았다. 가 기자는 또 정성스럽게 기침을 해댔다.

“켁켁, 담에 또 놀러올게.”

그러자 노랑머리가 뛰어와서 가 기자의 멱살을 쥐었다. 여차하면 그냥 때릴 것 같아보였기에 노랑머리를 붙잡으며 말렸다.

“됐어. 그냥 보내.”

“내가 쪼금만 패고 빵에 가면 됩니다. 아니, 그럴 거면 엄청 패고 가면 되겠네. 그치 이 기자 새끼야?”

가 기자는 때릴 테면 때리라는 듯 들이댔다.

노랑머리가 다시 가기자의 멱살을 쥐려하는 걸 겨우 뜯어말렸다. 굳이 우리의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노랑머리가 잠시 멱살을 놓자마자, 얼른 그를 차로 밀어 넣었다.

“그만 가쇼, 충분히 도발했으니까 그만 가라고.”

“다음에 또 놀러 올 테니 그때 봅시다. 흐흐.”

가 기자가 정성스럽게 비웃으며 차에 타려는데, 내가 가지자의 차문을 붙잡았다. 가 기자가 왜?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기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가끔씩 주인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차가 있어. 내가 보기엔 이차가 그런 것 같네? 조심하라고 가 기자.”

가 기자는 나의 말에 잠시 움찔하였지만, 또 정성스럽게 비웃으며 차문을 닫고 유유히 사라졌다. 노랑머리가 궁금한 듯 다가와서 물었다.

“뭐라고 했어요?”

“어, 조심하라고 했지.”

“겁먹은 것 같던데?”

“겁먹어야 할 거야. 저 새끼 조만간 뒤질 거거든.” 비디오 속 남자는, 오 의원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거물급의 정치인으로 성장할 사람이었다. 그 남자는 자신을 헤치는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가 기자가 자신의 비디오를 유포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를 죽이거나, 최소한 망하게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서 그 비디오를 그냥 넘겨주었던 것이다. 죽기 전 마지막 진수성찬이라고 해야 하나?

* * * * *

얼마 뒤, 이사장님이 나를 호출하였다. 급히 부탁할 일이 있다면서.

“여, 박준수 디자이너님 오셨어요?”

이사장이 내게 디자이너 어쩌고 하는 것이 영 쑥쓰러웠기에, 어색한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아유, 디자이너님이라뇨. 이상하게.”

“디자이너는 디자이너지.”

“하하, 네. 근데 뭐 때문에 부르셨어요?”

“응, 출장 미용을 부탁하려고.”

“아, 그건 정선생님이나 다솜이가 자주 다녔잖아요.”

“그건 니가 디자이너가 아닐때라 그런거고.”

이사장은 내가 헤어를 맡을 실력이 충분히 되는데도, 그걸 맡아서 하지 않아서 나름 불만이었다. 이제 정식으로 디자이너가 되었으니 내게 시킬 일이 더 늘어난 셈이다.

“무슨 출장입니까? 드라마? 영화? 아님 인기가요?”

“CF.”

“아, 그럼 하루 만에 끝나겠네요?”

“아니, 일출 배경을 꼭 찍어야 해서 1박2일이야. 찍고 내려오면 되긴 하지만, 산이 험해서 밤에 내려오는 게 힘들거든.”

“네, 누가 찍는데요?”

1박2일,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면 어색할 것이다.

“김설아씨.”

“네에?”

이사장의 입에서 김설아가 나오자마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이사장도 내가 은근히 좋아하자 재밌다는 얼굴이었다.

“니가 사랑하는 김설아씨가 1박2일이나 산속에 가 있는데, 너 가만히 있을 거야? 니가 지켜줘야지.”

“아니, 사랑이라뇨? 아니에요. 그냥 팬이죠.”

“아무튼 니가 가는 걸로 생각할게.”

“네. 제가 당연히 가야죠.”

“근데.”

“근데, 뭐요?”

“아니야 아무것도.”

이사장은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 그 말이 무엇인지 알고는 기가 차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 줄 알았더라면 거기 가지 않았을 것이다.

“8월 5일에 강화도에서 찍으니까 그날 스케줄 비워두고.”

“네.”

그날 그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였을까? 아니, 내가 가지 않고 다른 사람이 갔더라면 좀 더 나았을까?

그렇게 운명의 8월 6일이 다가왔다.

* * * * *

멀리서 김설아의 모습이 보였다. 픽업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조차 정말 사랑스러웠다.

“어서 타요. 설아씨.”

“안녕하세요! 오늘 1일 매니저 이시라면서요? 매니저 겸 헤어디자이너님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자, 출발합니다.”

부르르릉.

차가 출발했다. 날씨는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 딱히 비가 오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탄 차는 강화도로 향했다. 차에서 신문을 펼쳐 보던 설아가, 신문 한 구석을 보여주었다.

“내일 비가 좀 온다는데 괜찮을까요?”

“기상청 말대로 되는 거 봤어요? 걱정 마요.”

“기상청 소풍날 비 온다고 하던데요? 호호.”

“기상청 사람들이 소풍가기 싫어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네? 호호, 그럴싸한데요?”

설아씨를 옆에 태우고 가는 게 이토록 행복한 건지 몰랐다. 가는 길에 계속해서 조잘대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니, 너무 사랑스러워서 급 키스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설레는 동안, 금세 촬영장에 도착하였다.

촬영장은 듣던 대로 아주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했다. 카메라를 그냥 갖다 대도 모두 예술 같은 사진이 찍힐 정도로.

“와, 너무 예쁘네요.”

“그렇네요.”

우리가 한참 경치를 둘러보고 있는데, 그 곳에 다영이와 매니저가 도착했다. 다영은 나를 보자마자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여기 헤어 담당으로 오셨어요?”

“어?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설아 언니랑 같이 CF 찍으러 왔어요. 메인은 설아언니고 저는 서브에요.”

“아…….”

더 할 말이 없다. 이사장이 내게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가 참는 것을 대수롭게 여긴 것이 화근이었다.

“저기가 숙소입니다. 참 예쁘죠?”

다영과 함께 온 매니저가 말했다.

산 바로 아래, 계곡이 옆으로 흐르고 있는 곳에 자리한 펜션은 매우 아름답게 지어졌다. 하지만 그 속은 그렇게 튼튼하지가 못했다. 물론 그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은 덕에 촬영도 상쾌하게 끝이 났다. 이제 새벽의 경치만 촬영하면 끝이 날 것이다.

“이 자리에 해가 딱 뜨는 그 순간만 찍으면 되니까, 가서 쉬세요. 우리는 새벽에 바로 철수할 테니, 푹 주무시고 오시면 되겠네요.”

조감독이 말을 마치고, 촬영팀도 각자의 숙소로 들어갔다.

“우리도 가서 쉬죠.”

“네, 그러죠.”

“우리 넷 다 같은 숙소죠?”

안다영이 큰소리로 말했다.

“네, 그렇네요.”

김설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숙소로 향했다.

안다영과 그녀의 매니저는 차에 둔 음식 등을 꺼내고, 뒤늦게 확인한 내가 달려갔다.

“아유, 많이도 싸오셨네요.”

“말도마세요. 안다영씨가 박 선생님 드린다고 음식을 바리바리.”

다영은 오늘 소풍을 온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긴, 나와 밥을 먹은 적도 없으니까.

“흠흠, 먹고 너무 맛있다고 기절하시면 곤란하다구요.”

“아유, 이걸 혼자 다 하셨어요?”

다영이 싼 도시락은 꽤나 무겁게 보였다. 아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만들었을 것이다.

“마음을 담아서 만들었죠.”

다영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만, 희망고문은 하지 말아야 한다.

“다 같이 먹으면 마음을 나누는 거네요. 하하.”

“쳇.”

다영은 내 말에 기분이 나쁜지 투덜거리며 숙소로 들어갔다.

“진짜 너무하시네요, 형.”

“때로는 딱 잘라주지 않은 게 더 나쁠 수 있어.”

“글킨 하지만…….”

“근데, 자꾸 쉰내가 나는데 나만 느끼냐?”

“쉰내요? 킁킁, 어 정말?”

음식을 들고 들어가다, 길바닥에 박스를 내려놓고 열어보았다.

박스를 열자마자 쉰네가 코를 찔렀다.

“으악, 이거 쉬었네?”

“그러게! 어쩌냐?”

“으, 우리 먹을 거 이거뿐인데….”

여름이라, 아이스박스에 담았던 음식임에도 쉬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냐? 스텝들한테라도 가봐야지.”

“네, 금방 갔다 올게요!”

매니저는 난감한 얼굴을 하고서 스텝들 숙소로 뛰어갔다.

* * * * *

매니저가 가져 온 것은 짜파게티와 너구리, 소고기 한 근 뿐이었다.

“이것밖에 못 구했어요. 다들 드시고 계셔서…….”

매니저가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

“그거라도 먹어야죠. 고생하셨어요.”

김설아는 크게 동요하지 않고 라면을 받아 들었다.

그러자 안다영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최근 다이어트를 시작했기 때문에, 라면이 달갑지 않았다.

“나 다이어트 중이잖아. 라면 먹으면 살 더 찔 거 같아.”

“왜? 보기 좋은데요.”

딱 봐도 김설아가 날씬하다.

안다영도 날씬하지만 TV에서 조금 부어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때 TV는 오목해서 더 부어보이곤 했다. 마른 김설아가 그런 말을 하자, 안다영은 기분이 상해서 쏘아 붙였다.

“김설아씨는 말랐잖아요! 아우 진짜 짜증나!”

“아니 난…….”

뜻밖의 반응을 본 김설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영의 적개심이 나에 대한 마음에서 나왔다는 걸 그녀가 알 턱이 없겠지.

내가 뭐라고 하려는데 매니저가 나서서 말했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김설아가 1급이고 다영은 2급이니, 김설아가 먼저이다.

“아니, 다영씨 예민하게 왜 그래?”

이 상황에서 나는 다영을 달래주는 게 맞다. 다이어트 하는 여자는 거의 다 예민하니까.

“라면은 국물만 안 먹으면, 크게 살찌지 않아요. 내가 소고기 넣고 짜파게티, 아니 짜빠구리 끓여줄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짜빠구리?”

“그건 뭐야?”

“첨 들어보는데요?”

짜빠구리는 알다시피 영화(기생충)에서 나온 레시피다. 마침맞게 재료가 다 있으니, 레시피를 알고 있는 내가 조리하면 우리 다 먹을 수 있다. 여배우들은 국물만 피하면 내일 촬영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

“오늘은 내가 요리사입니다!”

“어머, 기대되네요.”

“꺅, 직접 해주신다고요?”

“네, 먹다 기절해도 모릅니다? 하하.”

“난 맛없으면 안 먹을 건데?”

나는 기대 반, 우려 반이 섞인 눈길을 받으며 조리에 들어갔다.

알다시피 소고기가 들어간 짜빠구리는 맛있다. 다들 맛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외쳤다.

“와, 신기한 맛이다!”

“어쩜, 준수 오빠는 못하는 게 없으세요?”

“맛있네. 이건 인정.”

네 사람은 좀 전의 투닥거림은 잊고 사이좋게 저녁을 먹었다. 내일 벌어질 일은 까마득하게 모른 채 아침까지 잠이 들었다.

* * * * *

우르르릉…, 쾅쾅!

아침, 비를 알리는 번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번개가 치고 난 뒤 곧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1998년 8월 6일은 강화도에 역대급 비가 쏟아진 날이었다.

쏴아악, 쏴아악.

비가 잠시의 틈도 없이 쏟아지고, 그제야 눈을 뜬 나와 일행은, 창밖의 풍경을 보고 경악하고야 말았다. 창밖에는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뭐야? 비가 너무 많이 오잖아.”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 여기 고립된 지역이잖아!”

펜션은 산 하나를 넘어서 온 것이어서 인근에 다른 사람이 살지 않아 보였다. 근방에 있는 다리 하나를 건너야 가정집이 있다.

“어머, 어떡해! 하늘이 뚫린 것 같아.”

“촬영팀은 괜찮은가?”

나는 얼른 나가서 밖을 살폈다.

촬영팀은 이미 철수하고 난 뒤였다.

짐을 꾸리려고 얼른 들어가려다가 산을 봤는데…….

큰일이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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