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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42화 (42/200)

42화. 디자이너 승급 테스트(2)

여자 손님은 머리숱이 한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많은데, 층을 내달라고 하고 있었다.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머리가 완벽한 생머리인 것이다. 생머리는 층을 내면 가위자국이 어마어마하게 남는다. 그래서 그런 숱을 많이 치게 되는데, 아무리 쳐내도 가위 자국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커트의 최고 난이도라고 하겠다.

“아, 진짜 어렵네요.”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다솜이는 내게 연신 미안해했다. 다솜이도 사실 이 손님의 머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어쩔 수 없죠. 열심히 하는 수밖에요.”

이런 손님은 그냥 정성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 머리카락 한올한올을 정성스럽게 잘라주어야 그나마 뻗치지 않는다.

“웬만하면 통과 될 거예요. 손님도 자기 머리가 어렵다는 걸 알고 계시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하하 걱정 마세요.”

나는 미안해하는 다솜이에게 애써 웃어주고는 커트를 하러 갔다. 실제로 보니까 더 공포감이 몰려왔다. 30년 동안 미용을 하면서 본 손님 중, 탑10에 드는 모발이었다.

사각사각.

이건 정말 편법이 통하지 않는 머리다. 나는 두시간 동안 정성스럽게 머리카락을 잘랐다. 순간순간 가위밥이 나긴 했지만, 나름 잘 잘려지고 있었다. 손님도 자신의 모발 상태를 알기에 클레임을 걸지 않았다. 다행히 여자 커트 테스트도 끝났다. 하지만, 늘 변수는 존재하는 법이다.

“이건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요? 시간대비라는 것도 있으니까 말이죠.”

“워낙 고난도다 아이가?”

남 선생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열심히 커트를 했지만, 완벽하지 못한 것은 인정한다. 변명을 하면 내게 더 불리해질 것이다. 그러려고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니.

“인정합니다. 완벽하진 않았어요.”

“시간이 좀만 빨랐어도 괜찮았는데.”

다솜이가 내 편을 들었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럼 커트 재교육 합니까?”

“그럴 필요는 없지. 니가 잘랐어도 저만큼은 못한다 아이가? 내가 다 봤는데?”

한 원장의 말에 남 선생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나보다 실력이 좋은 건 아니니까.

“원장님!”

“아무튼 그냥 패스해도 된다 아이가? 뭘 또 해야 직성이 풀리겠노?”

“그럼 다음 테스트를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로 하죠?”

정 선생이 중재를 하고 나섰다.

“그래, 다음 테스트를 완벽하게 몬하믄, 여자커트 재교육 하는 걸로 하자.”

“네, 뭐. 그러시죠.”

그렇게 다음 테스트인 염색에 모든 것이 걸리게 되었다.

* * * * *

남선생은 내게 빅엿을 먹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빅엿이 나타났다. 그것은 2021년에도 그 전에도 늘 염색의 골칫거리인 블랙빼기였다.

그 시절 블루블랙이 전국적으로 유행했는데, 그 뒤로 바로 자연 갈색이 유행을 탔다. 그 과정에서 블랙 염색을 한 사람의 머리가 자연갈색으로 나오지 않고 얼룩이 진다는 것이 밝혀진다. 모든 미용사들이 블랙 머리를 자연스럽게 빼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2021년도에도 블랙빼기는 어려운 숙제이다. 그걸 알고서 내게 그런 손님을 데리고 온 것.

“이분 다섯달 전에 블루블랙을 하셨는데, 자연스러운 갈색을 원하셔요.”

“아, 네.”

블루블랙을 한 머리는 탈색약을 발라도 빨갛게 나오곤 했다. 그 머리를 자연갈색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다섯 달이면, 탈색 많이 하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알아요. 그냥 해주세요.”

긴 머리의 블루블랙 모발은 탈색만 세 시간은 걸린다. 지금 갖고 있는 탈색약은 2021년도의 제품보다 더 안 좋기 때문에, 세 시간을 넘길 수도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머리가 녹을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그렇다니까요?”

남 선생의 선물은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 탈색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탈색은 세 번이나 진행되었고, 머릿결은 거의 녹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리 공지를 하지 않았다면 손님에게 따귀를 맞을 지경이었다. 손님도 내 노력을 알았기에 참고 기다려주었고 겨우 색을 맞출 수 있었다. 사실 그 시절 누구도 블랙빼기를 완벽하게 하지 못했는데, 내가 거의 완벽에 가깝게 빼낸 것이다.

“완벽한 자연 갈색이 나왔다 아이가?”

한 원장도 박수를 쳐 주었다. 머릿결이 처참할 지경이긴 했지만, 컬러만큼은 완벽했던 것.

남 선생도 머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할건 해야 하겠지.

“컬러는 괜찮네요. 근데 너무 상한 거 아닌가?”

“그건 어쩔 수 없다 아이가?”

“그걸 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요? 남 선생?”

정 선생의 일침에 남 선생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나의 테스트가 완전히 끝났다. 나는 [스타일 헤어]의 역사상 가장 빠르게 디자이너가 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 * * * *

엄정희의 소개로 사진을 보낸 곳은 대한민국 최고의 잡지사라 불리는 [히트]였다. 그곳에서 나의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직접 [스타일 헤어]로 나와 주었다.

“안녕하세요. 히트에서 나온 가진석 기자라고 합니다. 박준수씨 맞으시죠?”

기자를 어디서 본 것 같았지만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웃으며 악수를 청하였다. 기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일반인치고는 외모가 출중하시네요. 여기 가수들 많이 오는 걸로 아는데, 막 엮이고 그런 일 없으세요?”

“아뇨. 그럴리가요?

처음 보자마자 그따위의 질문을 던지는 기자에게 불쾌감을 느꼈다. 그리고는 다시 그 기자를 찬찬히 살펴보는데, 어딘가 익숙한 얼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이 인터뷰를 끝으로 이 잡지사랑 끝나거든요. 부디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좋겠네요.”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 기자는 말과는 달리 나에게 형식적인 질문을 해댔다. 나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떠들었고, 가기자도 그 말을 전부 다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있는데, 미용실에 전화가 왔다.

“준수쌤, 다영씨인데요?”

다영이라는 말을 들은 가 기자는 기자의 촉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사실 가 기자는 이 인터뷰를 끝내고 다른 신문사로 가기로 약속이 된 상태다. 신문사에 들어가면 으레 여러 부서를 이동하기도 하고 그러지만, 가 기자는 연예 전문 부서로 가기로 애초부터 약속이 된 상태였다.

이 인터뷰만 대충 마치고 빨리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질 조짐이 보이는 중이다. 가 기자는 나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다.

“아, 오지 말라고 해. 내가 간다고 해. 저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천천히 다녀오세요.”

나는 가 기자가 따라올까 무서워서 손살 같이 달려 나갔다. 다영이는 우리 미용실에 드나들며 내게 어필하는 중이었다. 물론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다영이는 내게 너무 다정하게 굴었기에 누가 보면 연인 사이로 보이곤 했다. 가 기자가 그걸 본다면 오해하기 좋기 때문에 그게 싫어서 나간 것이다. 다영을 서둘러서 보냈지만, 가 기자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찰칵.

한 컷이지만 분명 두 사람의 모습이 정확하게 찍힌 사진, 만족스러운 얼굴로 사진기를 바라보는 가 기자.

가 기자는 다영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조만간 방송이 될 일일연속극 주인공이자 텐프로에서 일하다가 발탁된 탤런트인 것은 미리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신문사 들어가자마자 대박치게 생겼네.”

가 기자는 기분 나쁜 표정을 정성스럽게 지으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노랑머리가 포착하였다.

노랑머리는 가 기자가 보고 있었던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 있던 나와 다영은 이미 가고 없었다.

“분명 저자식이 사진을 찍었는데,”

노랑머리는 가 기자를 쫓아갔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고, 돌아이는 돌아이를 알아보는 법이다. 노랑머리의 레이더망에 가 기자가 들어온 이상, 그를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저 거기 기자양반?”

가 기자는 가다말고 뒤를 돌아봤다. 노랑머리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듯 쳐다보고 있자 경계하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역시나 돌아이는 돌아이를 알아보았다.

“뭡니까? 나 바쁜데요?”

“사진 뭐 찍은 겁니까?”

가 기자는 본능적으로 사진기를 숨겼다. 왠지 빼앗기면 다 부술 것 같아서였다.

노랑머리는 가 기자가 분명 뭔가를 찍었다고 판단하고, 달려들었다.

“사진기 좀 내놔 봐요.”

“왜, 왜 남의 걸 달라 해요? 이거 비싼 겁니다!”

“비싼 거니까 구경 좀 하자구요. 네?”

가 기자는 사진기를 품에 꼭 껴안고 도망치려 했지만, 노랑머리가 좀 더 빨랐다. 노랑머리는 가기자의 목에 헤드락을 걸고, 품에 있는 사진기를 빼앗으려 했고, 가 기자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두 사람,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싸움이 격해지더니, 급기야 가기자의 코에서 코피가 터지고 말았다.

“으악, 코피 나잖아.”

가 기자는 코를 부여잡은 와중에도 사진기를 꼭 붙잡고 있었다. 노랑머리는 약해진 가 기자에게 불도저처럼 달려들었다.

“다른 쪽 코도 터트려주기 전에 내놔!”

“아니,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나는 밑에서 올라왔다가, 뜻밖의 사태에 많이 놀라서 잠시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코피가 터진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두 사람을 말리고 나섰다.

“이게 대체 뭐하는 거야?”

내가 달려들어 뜯어말리자 겨우 떨어진 두 사람.

가 기자는 그때다 싶어서 도망쳤다. 노랑머리가 따라가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저 새끼가 사진 찍었다고요. 형님이랑 안다영씨 사진을요!”

“뭐? 아씨 큰일 났다.”

나는 가 기자를 쫓아갔다. 가 기자는 코에 휴지를 잔뜩 말아 넣고는, 노랑머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징징대고 있었다. 가 기자의 손가락질 끝은 노랑머리뿐만 아니라 나를 향해도 뻗어 있었다.

“저 미친놈이 날 .”

한 원장은 갑자기 벌어진 사건에 놀라서 쩔쩔매며 가 기자 앞에 서있었다. 한 원장은 안 그래도 불량스러운 노랑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참에 자를 생각을 하고는 노랑머리를 불렀다.

노랑머리는 어차피 잘릴 거 가 기자를 반쯤 죽여 놓고 가려고 주먹을 단단히 쥐었다. 이대로 두면 노랑머리는 원장님에 의해 잘릴 것이다.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기에 내가 나섰다.

“제가 때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아니, 아니잖아 저 뒤에 놈이!”

“뭐? 참말이가?”

가 기자가 방심하는 사이에, 내가 가기자의 옆에 있는 사진기를 빼앗아 노랑머리에게 넘겼다. 가 기자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하며 맥없이 사진기를 빼앗기고 말았다. 분노에 찬 가 기자는 미친놈처럼 소리 질렀다.

“야 이 새끼야!! 그거 이리 내!”

나는 당당하게 나아가서 가기자의 멱살을 쥐었다.

“이 사람이 나랑, 내가 담당한 연기자의 사진을 무단으로 찍어서 그랬습니다. 왜 허락받지 않고 남의 사진을 찍습니까?”

“내,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요? 무식하게 사람이나 패고.”

가 기자는 시치미를 떼며 큰소리를 쳤다. 나는 그의 뻔뻔함에 학을 떼었다. 노랑머리도 그런 가 기자를 보며 혀를 찼다.

“쯧쯧, 뻔뻔한 새끼.”

나는 사진기를 들어서 한 원장에게 건넸다.

“여기에 그 사진이 찍혔을 겁니다. 사진 인화해서 보면 알겠네요. 그죠?”

“아니, 왜 남의 사진을 맘대로 인화합니까!”

“그니까, 여기 만약 사진이 없다면 내가 치료비는 물론이고 보상을 해줄게요. 그니까 당장 인화 하라고!”

나는 가 기자의 울대를 쳐버리고 싶은 심정을 겨우 눌러 참았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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