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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31화 (31/200)
  • 31화. 동영상을 제거하라

    “왜 놀라요? 이름이 이상한가?”

    “아, 아니요. 이름이 이뻐서요.”

    “어머, 그렇죠? 호호.”

    안다영은 내게 더욱 밀착하며, 술을 따라주었다. 내가 굳이 그녀를 이사장에게 소개하지 않아도, 그녀는 조만간 연예계에 안착하게 된다. 나중에 비디오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그녀도 나름 잘 나갔었다. 인기도 제법 있었고, 연기도 곧잘 했으니까.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와 엮일 필요는 없다. 내게도, 이사장에게도 좋지 않을게 뻔하다.

    “저는 그런 힘이 없어요. 제 소개가 아니더라도 좋은 기획사 만나게 되실 겁니다.”

    “어머, 뭘 튕기고 그러세요? 저도 명함 많이 받아서 괜찮거든요.”

    안다영은 내 말에 기분이 상한지 입술을 씰룩거렸다.

    나는 되도록 다른 말을 하지 않으려고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저들이 한참 흥이 오른 시점에 취한 것을 핑계로 먼저 들어갔다.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 * * *

    “준수씨, 손님 오셨어요.”

    아직 신규 손님을 받을 수 없기에 스텝처럼 지내던 중, 지명 손님이 찾아왔다. 내가 인턴이 된 것은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터라 누구인지 궁금해 하며 돌아보았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예요.”

    손님은 다름 아닌 안다영이었다. 내가 가고 난 뒤에 한 원장을 구워삶아서 명함을 받아냈다고 했는데, 이렇게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쩐 일이세요?”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안다영을 쳐다보았다. 손님으로 온 것이겠지만, 의도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안다영은 내가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걸 알았지만, 막상 내 표정을 보니 기분이 상했다. 그렇다고 지금 갈 수도 없는 일, 웃으며 다가오는 수밖에.

    “머리하러 왔죠. 예쁘게 해주실 거죠?”

    “네, 그래야죠.”

    머리는 당연히 잘 해주어야지. 다른 건 해주지 못하겠지만.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안다영은 저쪽에 있는 한 원장에게 씽긋 웃어보이고는 내 앞의 의자에 앉았다. 아마도 한 원장에게는 미리 언질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이사장에게 소개를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머리라도 아주 예쁘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안다영도 내 솜씨에 만족하고 있었다.

    “조금만 계시면 중화 해드릴게요.”

    “네.”

    안다영의 머리 와인딩을 마치고 나서는데, 미용실에 들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김설아와 이사장이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오다니.

    “이사장님! 설아씨!”

    타이밍은 안 좋지만 너무 좋은 두 사람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안다영은 그런 내 표정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나 머리 좀 자르고 가려고.”

    “이사장님 저 아직 초짜인거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왔지! 나를 연습삼으라고!”

    “하하, 망쳐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흠, 무섭긴 하지만 믿어봐야겠어.”

    “제 머리도 부탁드려요. 이번에 드라마 들어가잖아요.”

    “아이고, 설아씨는 원장님이 해주실 건데요.”

    “아니, 준수씨가 해주세요. 잘하시잖아요.”

    “그건 곤란해요.”

    김설아의 머리를 해주는 것은 별거 아니지만, 그녀를 볼 때마다 떨릴 것 같아서 마다한 것이었다. 괜히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을 키울 필요는 없으니까.

    그때, 한 원장이 웃으면서 다가왔다. 이사장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는 눈치였다.

    “니 남자커트도 곧잘 한다 아이가? 그래서 오시라고 했는데?”

    “원장님이 오시라고 했다구요? 아유 하필.”

    한 원장은 이사장을 안다영의 바로 옆자리에 앉혔다. 의도적이었다.

    “얼른 자리에 앉으시고. 설아씨는 내가 해드릴까예?”

    “아뇨, 저도 준수씨가 해주셨으면 해요.”

    “아니, 왜 그러세요, 설아씨.”

    안다영은 내가 설아를 마다하는 것을 보고 이상했다. 자기는 그냥 해주고 저 여자는 대체 왜 안 해준다는 걸까? 게다가 설아를 보면서 얼굴이 너무 벌개져 있는 것을 보자 질투심까지 생겼다. 내가 김설아를 좋아하는 것을 알아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한 원장은 이사장에게 안다영을 소개해 주었다. 이 모든 게 한 원장이 꾸민 일이 분명했다. 이사장을 부르고, 안다영을 부른 것이 한 원장이니까.

    “야가 연예인 지망생이라 카데예. 좀 보이소.”

    “어머, 안녕하세요.”

    “아, 그러세요? 반갑네요.”

    이렇게 내 의도와는 다르게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다. 이사장은 안다영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안다영과 이사장은 계약을 하게 된다. 애석하게도….

    “그럼, 내 머리도 해주시는 거죠?”

    김설아는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자기 머리를 해달라고 졸라댔다.

    “안된다니까요.”

    “그럼 내가 과외 해줄게요. 저번에 동생 과외 부탁하셨잖아요?”

    “아, 그건…….”

    저번에 여동생이 독일어 때문에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사람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었다. 김설아가 그걸 가지고 나를 회유하고 들었다.

    “안 해주면 나도 안 해줄 거예요. 내가 독일어 과외 해준 애들 다 성적 올랐다고 말 안했나?”

    김설아가 귀엽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의 미소 앞에서 다른 변명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넘어갈 수밖에.

    “아, 망쳐도 책임 안집니다?”

    “저 분 보니 아주 괜찮은데요? 잘하시면서 그래요.”

    김설아가 안다영의 머리를 보며 말했다. 안다영의 머리는 아주 예쁘게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휴, 알겠어요. 해드리죠.”

    나는 하는 수 없이 김설아의 머리를 해주기 위해 가위를 들었다. 김설아는 이번 드라마에 단발을 하였었다. 당대에 두 스타의 단발머리가 유행했었다. 하나는 김설아 스타일, 하나는 엄정희 스타일.

    그 김설아 머리는 눈을 감고도 자를 수 있었다. 그게 어려운 것이 아니지. 미친 듯이 나대는 내 심장이 문제였다. 청심환이라도 사먹고 와야 하나 싶을 만큼 말이다.

    안다영은 그때부터 쭉 김설아를 경쟁상대로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였고, 같은 남자를 좋아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 * * * *

    얼마 뒤, 안다영과 이사장은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제 그녀를 말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비디오를 찾아내서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사장도 같이 망할 것이다. 그걸 막아야 했다.

    그녀가 소속사 건물에 오는 시간 즈음에, 우연을 가장해서 찾아갔다.

    “안다영씨! 여기 계시네요.”

    “어머, 준수씨 머리 너어무 마음에 들어요.”

    “네, 다행입니다.”

    “이사장님 보러 오셨어요?”

    “네, 안계신가요?”

    “네, 오늘 퇴근하신 것 같은데요?”

    “아, 네 알겠습니다. 저녁식사 하셨어요?”

    일단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야 한다. 김설아가 보면 안 되니까.

    “어머, 사주시게요?”

    “네. 뭐 좋아하세요? 사드릴게요.”

    안다영은 좋아라하며 쫓아 나왔다. 나는 소속사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후에 안 일인데, 안다영이 내가 밥을 산 것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김설아에게 들리도록 일부러 말이다.

    안다영과 조용한 곳으로 간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 기억으로는 그녀가 일하던 장소에서 찍힌 비디오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최근까지 몸담았던 곳이 틀림없었다. 그 비디오를 찍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했다.

    “혹시 비디오 찍을 줄 아는 사람 있을까요?”

    다영은 비디오라는 말에 움찔했지만,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왜요?”

    룸사롱 직원 중에 캠코더를 갖고 있는 사람이 비디오를 찍었을 것이다. 그를 찾아내면 비디오의 위치를 알 수 있다.

    “미용 관련해서 뭐 좀 찍으려고 해요. 혹시 있어요?”

    “있긴 한데…, 거기 직원이거든요. 거기 다시 안 가려고 나왔는데.”

    “아, 그럼 소개만 시켜주시겠어요? 제가 직접 만나볼게요.”

    “그게 목적이었구나?”

    “아, 이사장님에게 물어보려 했거든요.”

    “뭐 덕분에 맛있는 거 얻어먹으니까. 제가 직접 연락해볼게요.”

    “감사해요. 최대한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안다영은 당장 이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 *

    "캠코더를 빌려달라고요?"

    이군은 캠코더 때문에 집에까지 찾아온 것이,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필요해서 그런데 좀 빌려주시죠. 물건은 집에 있죠?”

    “아, 네. 그렇긴 한데, 찍기 어려운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미용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거기다 남자 미용사가 흔하지 않아서 그걸 멋지게 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군은 나를 얕잡아보고 있었다.

    “해봐야 아는 거죠?”

    이군의 집은 생각보다 더 복잡했다. 집 구석구석에는 비디오테이프가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고, 책장에는 책보다 비디오테이프가 더 많았다. 아마 영화 학도를 꿈꾸는 사람인 듯 했다.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캠코더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폈다. 이군은 구석에 놓인 캠코더를 들고 와서 내밀었다.

    “이거에요. 생긴 건 이래도 화질은 꽤 좋거든요.”

    “아, 이거군요.”

    나는 캠코더를 살펴보며 그 안에 든 테이프를 꺼내어 보았다. 테이프는 다 돌아가지 않은 듯 했다. 테이프의 크기나 특징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그런 모양의 테이프가 모여 있는 곳이 어딘지 살폈다. 가장 구석자리에 그런 모양의 테이프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괜찮네요. 찍은 영상 좀 볼 수 있을까요?”

    “여기 있어요. 이걸로 찍은 건 여기 있는 게 답니다.”

    이군은 구석 자리에 있는 테이프 중 하나를 내게 건넸다.

    나는 그걸 받아 들고 틀어 보며 구석 자리에 있는 테이프의 겉에 쓰인 메모를 꼼꼼하게 살폈다.

    “영상은 좋네요.”

    나는 영상을 보는둥마는둥 하며 앞에 있는 테이프를 살피다가, 오형식 의원의 성을 뜻하는 OH를 찾았다. 그거 말고 다른 테이프에는 오형식 의원이 떠오르는 제목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군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캠코더에 있는 테이프를 꺼내어 그 곳에 OH라고 쓰고는 진짜 OH 테이프를 가져왔다.

    나는 다영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기 싫었다. 그래서 대충 그 위에 다른 것을 찍어서 덮었다.

    그 속에는 또 다른 영상이 촬영되어 있었다. 그 영상은 훗날 다 죽어가는 나에게 동아줄이 되어줄 영상이었다.

    * * * * *

    “상호씨, 이쪽으로 좀 오시죠.”

    상호, 즉 노랑머리는 미용실에서 일하게 된 뒤 너끈하게 테스트를 통과하였다. 100만원 미션까지 무리 없이 통과한 후, 내 옆에서 보조를 하게 되었다.

    “네, 박 선생님.”

    “아직 선생이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네네.”

    나는 그가 내 옆에 있는 것이 께름직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내칠 수는 없었다. 유 사장이 꽂아준 것만 빼고는 그렇게 거슬릴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를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샴푸를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한다.

    “이제 매일 제가 샴푸를 해드릴 테니 머리를 세팅하고 오지 마세요.”

    “제 머리를요? 괜찮은데 저는.”

    “샴푸 하면서, 샴푸를 알려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아, 네네.”

    나는 그를 샴푸해 주면서 정말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왕년에 샴푸의 요정이었으니까.

    “와, 정말 잘 알려주시네요.”

    “잘만 따라와 주시면, 더 많이 알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샴푸를 하던 중, 그가 왠지 낯설지 않았다.

    “근데, 우리 정말 어디서 본적 없어요?”

    “글쎄요?”

    노랑머리는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

    그 이후로, 나는 진심을 다해서 그에게 샴푸를 가르쳐 주었다. 아무래도 내 첫 스텝이니까.

    그리고 얼마 뒤, 집 열쇠를 잃어버린 나는 열쇠를 맞추러 미용실 근처의 열쇠 수리집으로 향했다.

    아저씨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물었다.

    “근데, 그때 열쇠를 복사해간 사람 말이에요. 도둑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 노랑머리 말이에요. 도둑이라고 하셔놓고 왜 같이 다니시죠?”

    노랑머리라고? 상호씨가?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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