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매직약을 독점하라(2)
“사업 파트너는 누가 좋을까?”
미용 관련 사업을 하려면 미용 재료상과 같이 가야 한다. 미용실과 미용 관련 회사의 중간 유통을 하는 것이 재료상인데, 그들을 포섭해야 제품을 팔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이 파트너가 되는 것이 좋다.
나는 미용실 바로 앞에 있는 김 실장의 재료상을 바라보았다. 김 실장은 사람은 착한데 사업적인 머리가 없다. 같이 사업을 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그의 재료상도 요즘 잘 안 되는 중이다. 그런 사람과 사업을 하는 것은 어쩌면 위험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야야, 이번에 유 사장이랑 완전히 거래 트기로 했다. 그 사람이 유행을 쫌 잘 아는 것 같아서 말이다.”
유 사장은 이번에 새로 거래하게 된 재료상인데, 한 원장님이 그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그의 얼굴을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사업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인 것은 풍문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그와 같이 사업을 진행 시킨다면, 성공할 확률이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유 사장님은 언제 오세요? 저는 못 봐서.”
“응, 아마 주차장에 와 있을 기다.”
“아, 네!”
나는 유 사장을 만나러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 * * * *
주차장에 뛰어간 나는 승철이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남자를 발견했다. 어? 헌데 그의 인상이 어딘가 익숙하다. 어디서 봤지?
“어, 왔어? 인사하세요. 제가 말한 친구 준수요.”
“오 한 원장님을 들었다 놨다 한다는 그 친구가 자네여?
“네, 안녕하세요.”
말투, 말투도 익숙하다. 근데 매치되는 얼굴이 없다. 대체 누구지? 이 사람과 사업을 진행해도 될까? 수많은 궁금증 속에 유 사장과의 첫 대면이 끝났다.
“자, 오늘 저녁에 회식 어떻습니까?”
“오 좋죠, 삼겹살 파티 함 가는 거죠?”
유 사장은 미용실 사람들을 전부 데리고 회식을 시켜준다고 약속했다. 그 시절 재료상은 미용실에 재료를 대주면서 그들의 회식을 시켜주는 걸로 로비를 하곤 했다.
[스타일 헤어]는 규모도 크지만 손님 회전율이 좋고, 유명 연예인들이 자주 오기 때문에 스타일을 만드는 재료의 유행도 선도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존의 재료상들도 [스타일 헤어] 식구들의 회식을 자주 시켜주곤 했다.
“세팅펌 대박을 위하여!”
“세팅펌 만세!”
1997년부터 일본과의 교류가 늘어나고, 일본의 문화가 대한민국에 파고들었다. 그에 맞춰서 일본의 유행 아이템과 패션 등이 물밀듯이 들어왔고, 헤어스타일도 한국을 강타했다. 그 선두주자가 바로 세팅펌이었다.
“세팅펌이 일반펌과 너무 다르고 어려워요.”
“난 저번에 세팅펌하다가 손님 얼굴에 떨어트려가지고 난리가 났다니까요.”
셋팅펌은 일반펌과 달라서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그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약간의 실수가 있으면 일반펌보다 더 이상하게 나오기도 하는 게 바로 셋팅펌이었다. 미용사들은 셋팅펌으로 정말 예쁜 스타일을 완성하기도, 엉망인 스타일을 만들기도 하는 일들을 많이 경험했다.
그동안 [스타일 헤어]에 유 사장을 대신해서 오던 실장이 있었는데, 유 사장이 특별히 자기가 관리하겠다고 나섰고, 그 나서게 된 날짜가 바로 이맘때였던 것이다.
세팅펌이 널리 유행하게 된 것은, 한 원장님의 공이 컸다. 한 원장님이 직접 나서서 세팅펌 세미나를 개최하며 전국 순회를 하고 난 뒤에 전국적인 유행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제 잔 한잔 받으세요.”
내가 유 사장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그는 흔쾌히 웃으며 술잔을 받았다.
“이야 이거 준수씨도 우리 승철이처럼 잘생기셨구만. 둘이 나가면 연예인이라고 해도 되겠어라.”
“아, 과찬이세요. 하하.”
“우리 평수 형님은 너무 칭찬을 잘하셔요.”
“평수?”
나는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평수, 유평수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려, 내 이름이 유평수여. 워낙 특이해서 한번 들으면 안 까먹드라고.”
재료상 유평수는 재준이도 학을 뗀 사람이다. 사업 수완도 좋고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재준이와 갈라서며 재준의 사업에 엄청난 손해를 끼친 사람이 바로 유평수인 것이다. 근데, 얼굴이 다르다? 설마 성형을 한 건가?
“얼굴이.”
나도 모르게 마음속 말을 해 버렸다.
그러자 유평수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자신의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듯.
“나가 조만간 코를 수술하려고 한당께? 우찌 알았는가? 내가 얼굴에 쪼매 불만이 있어불지.”
“아니…, 제가 아는 사람이랑 이름이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나는 유평수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 마음에 걸려서 급히 사과했다. 그에게 찍히면 여러 가지로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내가 아는 유평수는 그런 놈이니까.
아무튼 사업 파트너로 유평수와 함께 하는 것은 물 건너 간 듯 보였다. 그와 사업을 하게 되면 내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는 그런 놈이니까.
“뭘 죄송하고 그러는가? 어서 먹어.”
그런데, 그 삼겹살집에 김 실장이 들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김 실장은 안에 가득 차있는 [스타일 헤어] 사람들을 보고 반색하다가, 그 옆에 있는 유 사장을 보고서 다시 돌아섰다. 자신의 고객을 빼앗긴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보자니 속이 상한 듯 했다.
“김 실장님! 잠시만요.”
나는 김 실장이 안쓰럽게 느껴져서 그를 부르며 쫓아갔다.
“어, 준수씨 오랜만이네.”
“왜 왔다가 그냥 가세요. 볼일 있으셔서 온 거 아니세요?”
"아니 주차장에 한 원장님 차가 있어서.”
김 실장은 술에 취해 벌건 얼굴을 하고서 멋쩍게 웃었다. 좋은 분인데,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었네.
사실 김 실장은 오늘날의 [스타일 헤어]가 있게 한 디딤돌 역할을 했었다. 한 원장님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김 실장님의 재료상과도 거래를 끊지 않고 있었다.
일본개방 이후, 김 실장님은 일본 재료와의 거래에 한발 늦게 뛰어들었고, 그 때문에 유 사장에게 밀렸다.
“김 실장님 저랑 한잔 더 하시겠어요?”
“회식 중 아니에요?”
“별로 중요한 회식 아니에요.”
김 실장은 나의 말에 가슴이 찡해졌다. 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유 사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중요한 자리가 아니라고 말하니 그게 그저 좋았다. 나 하나만은 유 사장보다 자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 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
“그럼 준수씨는 내가 소고기 사준다!”
“와,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말하고 나올게요.”
나는 밝게 웃어 보이고는, 삼겹살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 * * * *
김 실장은 아직까지 큰 타격을 입진 않았지만 조금씩 운영이 힘들어지는 눈치였다. 재료상이라는 게 미용실과의 공생이 중요하고, 그 조화에는 좋은 제품의 빠른 조달에 있었다. 지금까지는 좋은 제품을 조달하고 있었는데 아주 잠깐 삐끗하자 그 공생관계는 금방 어그러지고 말았다.
“요새 많이 힘드시죠?”
“뭐 유행에 민감한 게 이쪽 바닥인데, 미리 캐치하지 못한 건 내 잘못 아니겠어?”
“그렇긴 하죠.”
“근데 말이야, 유행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앞으로 무슨 제품이 나와서 유행할지 먼저 알았더라면 인생이 좀 더 편해질 수 있을까?”
김 실장은 간절한 얼굴로 말을 하였다. 누군가가 그 유행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었다면 정말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먼저 알았다면 그걸 조달하실 수는 있으시고요?”
“글쎄, 미리 알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적어도 망하지는 않을 자신이 있는데?”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올인 할 의향도 있으신가요?”
나는 김 실장이 도와준다면, 그에게 앞으로 일어날 모든 유행 헤어 제품을 미리 알려줄 수 있었다. 회귀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김 실장은 내가 대체 무슨 의미로 저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누가 그걸 미리 알 수 있을까? 설마 자네가?”
“네. 제가 미리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저랑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그래, 자네라면 믿을 수 있어. 이사장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내 들었어. 선구안이 있다고 하더군.”
김 실장은 이미 나를 믿고 있었다. 한 원장이 내 이야기를 자주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에 가셔야 해요. 현재 미용실의 모든 유행은 일본을 거쳐서 오니까요.”
“하하, 그건 나도 알고 있는 것이지.”
“곧 있으면 일본에서 획기적인 제품이 나올 겁니다. 그 제품이 어느 회사에서 나오는지 잘은 모르지만 대기업에서 먼저 출시 될 겁니다. 그걸 독점해야 일이 수월해 집니다.”
김 실장은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나오자, 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획기적인 제품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알면 난국에서 벗어날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느 정도로 획기적인 것인지 미리 알 수는 없는 거고?”
“어느 정도냐면 흑인 머리 아시죠?”
“어 알지 그 엄청난 곱슬머리 알지.”
“그걸 쫙 피는 약이 개발 중에 있어요.”
“뭐야? 그게 정말이야?”
흑인 곱슬머리는 그야말로 최고의 곱슬머리를 뜻한다. 그 머리를 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현존하는 기술로는 절대 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걸 핀다는 말을 들은 김 실장은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그게 대체 어디에 있는데? 일본 어디를 가면 구할 수 있느냐고?”
“그걸 김 실장님이 알아내셔야죠.”
“하, 그게 나도 일본 직거래는 아직 어려워서 말이야. 아는 데가 있기는 한데, 거기는 너무 회사가 작아. 그런데서 그런 엄청난 거를 만들 리가 없을 텐데.”
“아, 그렇군요. 그럼 어쩌지.”
나는 알고 있음에도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정말 유 사장 아니면 대책이 없는 건지, 지금이라도 가서 손이 발이 되도록 아부를 떨어야 하는 건지, 하는 갈등에 속이 타들어갔다.
“일단 내가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물어볼게.”
“아는 사람 누구요? 재료상이요? 아니 그건 안돼요. 국내에서는 김 실장님 말고는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된다구요.”
“아, 그래 그럼 일단 일본에 한번 가봐야겠구만.”
“네, 저도 여권을 만들어 놓긴 했는데.”
김 실장과 손을 잡기로 한 이상 물러날 데가 없었다. 이 시점에서 유 사장에게 그 정보를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그게 온전히 나의 몫으로 돌아올 리도 없거니와. 독점 계약은 물 건너 갈 것이다.
* * * * *
"나한테 넘 소홀한 거 아니야? 내 머리를 좀 봐 개털이라고!”
김여사는 미용실에 오자마자 내게 머리를 들이밀며 투덜댔다.
“에이 그건 여사님이 날 배신하고 다른데서 머리를 하셔서 그렇잖아요.”
“일본에 다녀왔지. 요새 거기 화장품 사서 나르느라고 정신이 없다니까.”
“와, 일본에 자주 가세요?”
“응. 일본 시세이#라고 알지? 거기 간부 하나가 나랑 아는 사이거든, 아 맞다, 요즘에 뭔 곱슬머리 제품을 만든다고 내 머리를 실험용으로 쓰게 해달라고 어찌나 조르는지.”
나는 김여사의 말에 깜짝 놀라며 멈춰 섰다. 일본에서 매직약과 기계를 개발하고 있는 바로 그 회사의 간부가 김여사와 아는 사이라는 말이 아닌가? 나는 다급했지만 조심스럽게 김여사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저, 여사님. 잠시 다른데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어머, 데이트 좋지.”
나는 김성순 여사를 데리고 김 실장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김여사는 사정 이야기를 듣자마자 흔쾌히 수긍하며 소리쳤다.
“그럼 당장 일본에 가자고!”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