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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21화 (21/200)
  • 21화. 매직약을 독점하라(1)

    오디션을 준비 중인 그녀는 다름 아닌 해리였다. 수백 번의 오디션을 봤다고 하더니, 이 곳에도 오디션을 보러 왔네.

    해리는 사실 노래에는 소질이 없다. 그렇다고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다. 연기는 좀 한다. 연기만 딱 놓고 봤을 때는 여우주연상 감이다. 그래서 내가 그녀를 좋아했었지.

    “어디 맘에 드는 애 있어? 자네 안목이 워낙 좋잖아.”

    “아직 잘 모르겠네요.”

    아직 잘 모른다고 하면서, 내 눈은 오직 해리를 향해 있었다. 이사장은 그중 가장 비주얼이 약한 해리에게 내 눈이 향하자, 이상하다는 듯 갸웃거렸다.

    “설마 저 여자애 마음에 들어서 보는 건 아니지?”

    “네, 그럼요. 저도 눈이 있는데.”

    내가 직접 성형시키고, 직접 홍보하고, 직접 연기 교육까지 시켰던 해리에게 눈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그녀에게 내 시간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기생충 같은 여자다. 내 인생을 갉아먹는 여자. 그런 여자에게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나는 해리가 오디션을 망치는 것을 확인하고, 그곳을 나섰다. 이제 그녀를 다시 보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해리가 나를 보고 말았다. 이곳의 보스와 같이 앉아있는 나를 눈여겨보고 있던 것이다. 그게 그녀가 살아 온 방식이니까.

    그리고 다음날, 그녀가 우리 미용실에 왔다. 손님으로.

    “원장도 아니고 스텝이었어?”

    해리가 나를 보고 한 첫마디다. 다신 보고 싶지 않은데…….

    “네, 무슨 일이시죠?”

    “그 기획사 사장님이랑 친하다면서요?”

    “그냥 아는 사이입니다. 왜 그러시죠?”

    “나 좀 거기 꽂아달라고 왔죠. 아저씨가 그 사장님 브레인이라면서요?”

    참으로 뻔뻔한 여자다. 하긴, 그런 당돌함이 그녀의 매력이기도 했지.

    “쪽집게 같이 맞춘다고 하던데요? 히트곡 같은 거나 뜰 가수라던가?”

    나는 그녀의 말에 더 대꾸하지 않고 피해 다녔다. 나에 대해 많아도 조사해 온 모양이었다. 그날부터 그녀는 매일 나를 찾아와서 괴롭혔다. 그런 기세로 배역들을 따내곤 했었지. 하지만 그렇게 따낸 배역은 매번 얄미운 역할 뿐이라서 제대로 뜰 수 없었다. 한번은 너무 얄미운 연기를 찰떡같이 해내서 동네 식당에도 못 갈 정도였다. 2021년도야 그런 미운 역할을 해도 사랑 받지만, 그때는 몰매를 맞고 그랬다.

    “아니, 시다바리나 하면서 왜 날 무시하는데? 당신이 뭔데 날 무시하냐고?”

    시다바리……, 미용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배려심 없는 성격은 타고난 여자다. 계속해서 무시하자니, 내가 죽을 지경이었다. 내가 어떻게 히트곡과 히트 드라마를 아는지를 알려주고 보내야 편해질 것이다. 그러려면 내가 직접 안다고 하면 안 되겠지. 맨날 저 여자를 만나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까. 저 여자에게 조언을 해 줄 점쟁이를 포섭해야겠어.

    “내일, 알려줄게요. 내가 가는 점집이 있거든요.”

    “진작 그럴 것이지. 흥.”

    해리는 내 확답을 듣고 돌아갔다.

    나는 강남에서 가장 비싸고 유명하다는 점집을 찾아갔다. 비싼 곳을 알려주어야 자주 안 갈 테니, 내가 고달플 일도 덜 할 것이다.

    그 점쟁이는 내가 부탁한대로 해리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아 물론 앞으로 뜰 가수와 드라마, 영화 등을 먼저 나열해서 그녀에게 환심을 사라는 말도 전해주었다.

    점쟁이는 해리에게 몇 년 동안 돈을 왕창 벌어서 성형수술을 하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2002년이 되어서 야한 옷을 입고서 거리에 응원을 나가라는 말도 해 주었다. 그때는 그 전략으로 스타가 된 사람이 많으니까. 그걸 해리가 가장 먼저 한다면 승산이 있다. 그 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팅이 되어 있어야 하고.

    해리는 처음에는 그냥 그랬는데, 그가 말한 히트곡과 가수, 드라마, 영화 등이 줄줄이 히트하자 그의 말대로 하였다. 그날 이후부터는 내게 찾아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약발이 십년을 넘기지는 못할 것이다. 언젠가는 그녀를 또 볼 가능성이 아주 많다. 애석하게도.

    * * * * *

    “너 그냥 취직하라고 했지!”

    “대학은 어쩌고?”

    집에 막 들어가려는데, 아버지와 준희가 싸우는 소리가 났다. 안 그래도 요새 예민해진 아버지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저대로 싸우게 두면 안 될 일이다. 막아야 한다.

    “아버지! 그만 하세요.”

    “너 잘 왔다. 니가 혼자 우리 다 먹여 살리고 있는데, 저것이 대학을 간다고 하잖아. 그것도 법대를 말이다.”

    준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법대를 가야 한다. 그게 회귀한 오빠로서 해 줄 미션 같은 거다. 내가 준희를 지켜야 한다.

    “가게 하세요. 제가 학비 다 댈 수 있어요.”

    “뭐? 너 아직 미용사도 아니라면서? 무슨 수로 그걸 감당하려고?”

    “제가 다 감당할 수 있어요. 교육의 기회가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닙니다, 아버지. 준희 인생에 처음 온 기회일 수도 있어요. 대학이요.”

    준희는 첫 단추부터 잘 끼우지 못해서 인생을 망쳤었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주어야 한다.

    “오빠.”

    “제가 책임질게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니 덕에 파산하지 않은 건 내 인정하지만, 괜찮겠어?”

    “네, 제가 해결한다니까요?”

    “그래, 그럼 뭐 그러던지.”

    아버지는 내 말을 듣고 힘없이 돌아섰다. 부도를 맞고 난 뒤에, 부쩍 자주 보여주는 등. 오늘따라 그 등이 너무도 힘없이 보였다.

    “고마워, 오빠.”

    “아니야. 넌 걱정 말고 공부만 해.”

    “근데, 아버지는 맨날 집에만 있어? 맨날 집에만 있어서 공부하기가 힘들어.”

    “어, 그렇겠네. 그럼 독서실 갈래?”

    “아니, 아버지도 일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 집에만 있으셔서 좀 불쌍해.”

    “아…….”

    아버지가 집에만 계셔서 힘들 거란 건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맨날 바쁘게 일만 하셔서 쉬시는 것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엄마한테도 혼나고 그래. 오빠가 뭔가 하게 해드려.”

    “그래, 알았어.”

    아버지에게 뭔가를 하게 해 드리려면 자본금이 필요한데, 지금 현재로서는 돈의 여유가 없다. 판교집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하니, 큰돈을 버는 건 무리다. 이사장이나 한 원장에게 빌려달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고,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고민을 하면서 거실에 나갔다. 거실에서는 아버지가 TV를 보면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잔을 하나 더 들고서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요새 적적하시죠?”

    “뭘, 망한 놈이 적적해야지.”

    “그런 게 어딨어요. 한 번 망한 게 뭐 대수라고.”

    “허허,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아버지 뭐 하고싶으신 거 있으세요?”

    “있으면, 돈은 있고?”

    아버지는 내 말이 반가운 듯 물었다. 돈만 있으면 하고 싶은 게 있으신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오랜만에 약간의 미소를 보이자, 내 마음도 흔들렸다.

    “구해드리면 성공하실 수 있으세요?”

    “허허, 녀석. 한번 망한 게 뭐 대수라고 그러냐?”

    “하하, 그럼 제가 손을 좀 써보겠습니다.”

    “정말이냐?”

    “네, 대신 무슨 사업인지를 알려주시겠어요?”

    무슨 사업인지 알아야 말리던지 하게 해주던지 알 수 있다. 시대가 돌아가는 상황을 아니까 그런 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어, 그게 피자집을 해보고 싶어.”

    피자집은 차리기만 하면 웬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다. 그때는 피자집이 워낙 적었으니까. 하지만 레시피가 있어야 하는데?

    “네? 아버지가 요리를 하신다구요?”

    “어, 그 망할 여편네 있잖냐. 근영엄만가 뭔가 도둑.”

    “아, 네 그 아줌마가 피자를 잘 만들었죠.”

    “그 여자 피자 비법을 적어놨더라고, 너희 엄마가.”

    “오, 그랬죠. 헌데 망했잖아요. 그대로 했다가.”

    어머니가 근영 엄마를 졸라서 피자 레시피를 몇 개 적어두었다가 따라 만든 적이 있었다. 그때 피자를 굽는 기계까지 샀었다. 용감하게도. 하지만 엄마의 피자는 완벽하게 망해버렸고, 그때 산 기계는 아직까지 애물단지로 남아있다.

    “그랬지. 그래서 내가 해봤거든, 저번에 니가 맛있다고 한 그 피자 말이야. 그게 내가 만든 거야.”

    “네? 정말이에요?”

    얼마 전에 피자집에서 사왔다던 그 피자가 아버지의 작품이라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맛있었으니까.

    “어, 적적해서 한번 해봤지. 근영 엄마가 우리집에서 만들 때 좀 봤거든.”

    “세상에, 정말 소질 있으신데요?”

    “근데, 엄마는 모른다.”

    “네, 당분간 비밀이요.”

    그렇게 대화를 막 나누고 있는데, TV에서 낯익은 사람이 나왔다. 바로 김주원이었다.

    나는 김주원이 끼고 있는 반지를 보고서, 누구한테 돈을 꿔야하는지 깨달았다.

    * * * * *

    “김주원 회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나는 김주원의 회사 로비에 가서 당당하게 그를 소환했다. 하지만 누구도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약속 하셨어요? 함부로 만나실 수 없습니다.”

    “약속은 안했는데요, 이거 그분의 반지 같아서 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나는 내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회귀의 반지를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직원은 내 반지를 보고 회장님의 반지와 같다는 것을 눈치 채고 얼른 회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똑같은 반지를 끼고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직원은 통화를 마치고 나를 안내했다.

    “회장실로 모셔오랍니다.”

    나는 직원을 쫓아서 회장실의 문턱을 넘었다. 회귀의 반지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다.

    “자네도 설마?”

    김주원은 내 반지를 보며 놀란 듯 말했다. 반지는 김주원이 낀 반지와 내가 낀 반지 두 개였다.

    “네, 저도 회귀를 하였습니다.”

    “아, 그래. 그런데 여긴 왜 온 거지? 반지 자랑하러 온 건 아닐 테고 말이야.”

    “미래를 알려드리려고 왔죠.”

    “미래는 나도 잘 알아.”

    “더 미래요. 회장님이 쓰러지는 미래 말이죠.”

    “뭐? 내가 쓰러진다고?”

    “네, 1998년 이후는 모르시잖아요. 그 미래를 팔러 왔습니다.”

    “하하, 그래 좋아. 하지만 나는 그걸 사진 않아.”

    “그럼, 회장님이 쓰러지시는 데도요?”

    “그래, 하지만 돈을 빌려 줄 수는 있어. 이자 없이 원금을 상환하는 조건이야.”

    역시 김주원은 돈을 너무 사랑한다. 덕분에 식물인간이 되는데도 말이다.

    “네, 좋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많은 돈을 빌려주셔야 하겠네요.”

    “그래, 대신 나도 니 능력을 봐야겠다. 너, 미용사라고 했지?”

    “네, 미용으로 재벌이 되기 위해 회귀하였습니다.”

    “하하, 그렇구만. 그럼 그 능력부터 봐야겠어. 내 돈을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인지 말이야.”

    “좋습니다. 어떻게 증명할까요?”

    “독점 계약을 해. 미용 관련으로.”

    “독점 계약요? 글쎄 지금 당장 기업을 차릴 건 아닌데 무슨 계약을 하라는 건지요?”

    “그럼 사업 파트너부터 구해. 그 사람에게 독점 계약을 따내게 하면 되겠네.”

    “아, 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김주원의 돈을 받아내려면, 독점 계약을 따내야 한다. 지금 미용계에 새로 나올 약은 바로 매직약이다. 안 그래도 매직약이 들어오면 그걸 가지고 돈을 더 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걸 독점한다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 이건 기회다.

    “당장, 일본으로 가야겠어.”

    매직약은 일본에서 먼저 만들어지니, 수입을 독점하려면 일본부터 가야 한다. 좋아, 매직약 독점 계약을 해야겠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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