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해서 미용재벌
1화. 회귀의 반지(1)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해리와 재준이 눈앞에서 뒹굴고 있다. 눈앞에 벌어진 상황임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나의 애인이고, 재준은 내 동창이니까.
“어, 여긴 왜 왔어?”
“온다고 전화 좀 하지.”
둘의 눈빛에는 어떤 죄책감도 없었다. 나만 혼자 흥분하였을 뿐이었다.
“너 나랑 결혼하기로 했잖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재준씨도 이혼하기로 했어. 기왕 결혼 할 거면 재벌이랑 해야지. 둘 다 어차피 이혼남이잖아?”
해리는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재준은 둘이 대화를 하는 것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지 다른 쪽으로 향했다.
“내가 너 때문에 회귀까지 했는데, 어떻게 내게 이러냐?”
“회귀? 무슨 말이지 그게?”
해리는 회귀라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럴 테지만.
재준은 나의 말을 듣고 눈을 반짝였다.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널 살리려고 회귀를 했고, 널 탑스타로 만드느라고 내가 안 한 일이 없어!”
“무슨 말이냐고, 그게?”
그걸 설명한다고 한들 니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시작부터 말이 안되는 일인데 설명이나 할 수 있을까?
* * * * *
2021년, 해리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을 하였다.
나는 우리 가게 앞집에 살며 가끔씩 미용실에 샴푸를 하러 들러주던 해리를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자살을 하였다. 비통함은 물론이고, 너무 억울했다. 고백이나 한번 해볼 걸…… 눈물이, 슬픔이 내 이성을 넘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웬 남자가 다가와서 물었다.
“돌아가고 싶은 건가?”
“네?”
남자는 철로 된 검은색 반지를 내밀며 말했다. 반지를 자세히 보니 철도 아니고 백금도 아니고 무슨 재질로 된 건지도 모를 정도로 이상했다. 도대체 그런 걸 가지고 뭘 하라는 거지? 나는 남자의 저의가 궁금해서 쳐다보았다.
“이걸 받고 손에 끼우면, 당신이 가고 싶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남자는 딱 봐도 잘 차려입었다. 명품 옷에 구두도 좋은 구두, 얼굴도 매우 평안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사기꾼이라고 하기엔 너무 부티가 났다.
나는 홀린 듯 반지를 받아 들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네, 다만 자신의 나이만큼만 회귀할 수 있습니다. 나이보다 적게 회귀하면, 한 번 더 회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전은 하고 싶지 않네요.”
믿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반지를 끼워보는 수밖에 없었다. 얼떨떨한 얼굴로 반지를 끼우려는데, 남자가 내 손을 붙잡았다.
“이거 받고 회귀하면 다른 사람에게 줘야 합니다. 언제까지인 줄은 모르겠지만, 주지 않으면 본인에게 화가 미친다고 하네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그렇게 나는 해리 하나를 살리기 위해 회귀를 선택했고, 그녀가 탑스타가 되게 하려고 재준을 찾아가서 강남의 미용실에 취직했다. 그때 나이가 38세니 늦은 감이 있지만, 향후 유행할 스타일을 많이 알 수 있어서 택한 행동이었다.
미용실에서 돈을 벌고 주식투자로 돈을 불린 뒤, 해리를 찾아간 나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말했다.
“성형수술 시켜줄 테니, 나랑 세 번만 만납시다.”
“어머, 정말요?”
그녀의 얼굴부터 바꾸어주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소원이었을 정도로 그녀를 깊이 사랑했다. 해리도 성형만 하면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나의 제안을 단번에 받아들였다. 하지만 성공적인 성형에도 운은 따라주지 않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나만 믿어요. 내가 반드시 탑스타로 만들어 줄 테니까.”
나는 드라마 덕후이기 때문에, 성공할 드라마를 알고 있었고, 어떤 배역을 해야 뜨는지 알았다. 그래서 그녀를 위해 직접 발로 뛰며 뜨는 드라마에 열심히 명함을 내밀었다. 덕분에 해리가 탑스타가 된 것이다. 내 회귀는 온전히 그녀만을 위해 쓰였는데, 그런 그녀가 배신한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 당신이 좋아서 한 거잖아. 당신의 수고를 알아달라는 건가?”
해리는 회귀고 뭐고 전혀 상관하지 않고 소리쳤다. 머리가 좋지 않으니, 회귀를 이해할 수도 없겠지. 애초부터 희생이 아까운 여자였다.
“하, 그래. 내가 잘못했네. 널 살리는 게 아니었어. 널 위해 사는 게 아니었어!”
“그래, 지금부터 당신을 위해 살아.”
해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떠들어댔다.
그동안의 내 노력이 전부 짓밟히는 기분이었다.
재준은 그저 회귀 어쩌고 떠들며 울부짖는 내가 신기할 뿐이었다.
“회귀라니, 제정신인가?”
* * * * *
어느 포장마차, 그 사이 소주 두 병이 비워져 있었다.
으아악!
나는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미 여러 번 소리 지른 탓에 주변 사람들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줌마 소주 하나 더요.”
“네.”
탁.
아줌마가 소주와 함께 오돌뼈 안주를 놓았다.
“안주 좀 먹어가며 드셔. 이게 이래봬도 이민구 레시피로 만든 거라구.”
“누구요?”
“이민구 몰라? 국민 셰프 이민구!”
아줌마는 포장마차 한켠에 걸려있는 이민구의 광고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이민구를 보고, 그가 얼마 전에 자신의 회귀 반지를 받아 간 것을 기억해 내었다.
“저, 저 사람 자살한다더니!”
“누가 자살을 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사는데?”
불과 두 달 전, 자살을 할 거라고 했던 이민구가 지금 백종원 같은 국민 셰프가 되어 있는것!
“하, 나도 나를 위해 회귀할걸. 나도 나를 위해서 살걸!”
퍽, 쨍그랑
나는 화가 나서 주먹으로 탁자를 쳤다. 아줌마가 뛰어나와 나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짝
“뭐하는 거야? 경찰 부를까?”
나는 얼른 돈을 꺼내 아줌마에게 주며 말했다.
“저 이민구 어디가면 만날 수 있어요? 좀 알려 주세요 네?”
진심으로 간절했다. 누구라도 날 도와주고 싶었을 것이다.
“방송국 가봐. SBC에 자주 나오던데.”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뛰어갔다. 소주 두 병의 취기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 * * * *
“한번만 만나게 해주세요.”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민구 셰프님이 얼마나 바쁜데요.”
“내가 반지를 준 사람이라고 하면 만나 줄 겁니다. 말만 전해달라니까요?”
나의 간절한 얼굴을 본 경비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간절하고 불쌍한 표정이 전보다 더해졌다. 처음 본 사람을 도와주고 싶게끔.
“말만 전해드리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해댔다. 다시 회귀를 할 수 있다면 장기라도 꺼내줄 수 있었다.
경비가 방송국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민구가 달려 나왔다. 그는 당장 절이라도 할 기세로 다가와서 나를 얼싸안았다.
“아이고, 진작 찾아오시죠! 제가 은혜를 갚아야지요.”
“정말 제대로 성공하셨군요.”
“네, 이게 다 그쪽 덕분입니다.”
이민구는 나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과거의 우울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반지를 저에게 주시지요 이제.”
“아, 그게 이미 주었어요. 말씀하시지 그럼 갖고 있었을 텐데.”
이민구는 2002년으로 회귀하여 2008년에 강상구에게 주었다고 했다.
“강상구? 그 축구영웅 강상구요?”
강상구는 2002년 4강의 주역이 되어, 전 국민의 축구영웅이 된 사나이였다. 그도 회귀를 했다니, 황당하고 또 비참했다. 자신이 회귀를 얼마나 쓸데없이 사용했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당연한 일이다.
“저도 엄청 놀랐어요. 초등학교 기간 제 교사에서 짤렸다고 학교에 불지른다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럼 그 사람이 갖고 있을까요?”
“저한테는 없으니, 그 사람에게 있을 확률이 높죠.”
“그렇겠죠? 그럼 지금 만나볼 수 있을까요?”
“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연락이 와서 대포 한 잔 했습니다. 제가 연락 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제가 감사하죠.”
이민구는 그 길로 나를 데리고 가서 온갖 요리들을 해주었다. 꼭 음식을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모습을 본 나는 꼭 회귀해서 성공할 거라고 다짐했다. 기왕이면 미용 재벌이 되어서 재준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것이다.
이민구는 회귀하기 전에 땅투기와 주식 정보를 미리 알아보고 가라고 조언하였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더 면밀하게 조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 *
“와, 선배님이시네요!”
강상구는 나를 보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영웅다운 면모였다.
이런 양반이 초등학교에 불지르려고 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이야기 들으셨겠지만, 제가 불까지 지르려고 했습니다. 그만큼 힘들 때 회귀를 했어요.”
“네, 그렇군요.”
나는 상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상구의 손에 반지가 없기 때문에, 불안해서였다.
“아이고 제가 너무 떠들었네요. 회귀 반지를 찾고 계시다구요?”
“네, 그거 갖고 계신가요?”
상구는 갑자기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불안하다.
“벌써 주었죠. 2003년인가 오아영씨한테 주었습니다.”
“오아영요? 탤런트 오아영?”
“네, 그 분 맞아요.”
오아영이라면 해리의 드라마 촬영장에서 본적이 있었다. 그 양반도 회귀를 했다니! 천재인 줄 알았는데?
나는 당장 오아영을 찾아갔다.
“어머, 어떻게 알았을까?”
“강상구씨에게 들었습니다.”
“아, 그분.”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반지 갖고 계신가요?.”
오아영은 나의 말을 듣고 깔깔대며 웃었다.
“그걸 오래 갖고 있으면 죽는다면서? 내가 그걸, 갖고 있을 리가 없지.”
“아, 죽는 건 아니고요.”
“난 그걸 가지고 1987년으로 갔어요. 10년 갖고 있는데 사고가 나더군요. 죽을 뻔 했지. 그리고 바로 주었어요. 1998년에 김주원에게.”
“김주원? 그게 누군데요?”
“그 있잖아요. 가성그룹 회장 김주원.”
“네?”
가성그룹은 대한민국 기업 탑 10에 드는 대단한 그룹이다. 한때는 기업 1위를 달성한 기업이다. 현재는 회장님이 쓰러져서 순위가 밀렸다고는 해도 여전히 건재하게 버티고 있었다.
“근데 회귀의 반지가 아직도 이 시대에 남아있을까요?”
“그렇지 않나요?”
“아니, 내가 1998년에 회귀의 반지를 주었다니까? 그럼 김주원도 회귀를 했을 거고, 아마 20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갔을 거 아니에요?”
“아, 그럼?”
“지금쯤 조선시대에 가 있을 것 같지 않아요?”
“하, 그……그렇겠군요.”
반지는 지금도 계속해서 회귀를 하고 있을 것이고, 그 시기는 현재와는 맞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반지를 준 사람도 먼 미래에서 회귀를 했을 것이고, 내가 반지를 주고 난 뒤부터 쭉 시대가 내려갔으니, 지금쯤은 정말 조선 시대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결국 모든 것이 끝났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김주원에게 가 봐요. 그 양반 욕심이 과한 양반이라 어쩌면 그걸 갖고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그 모양이 된 걸지도 모르니까.”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나가면서 당장 휴대폰을 들고서 검색을 시작했다. 김주원에 대한 건, 검색만 해도 수십 만 가지의 정보가 뜨니까. 그렇게 김주원에 대한 사진을 보던 중, 한 사진을 보고 소리쳤다.
“반지다!”
회귀의 반지가 김주원의 손에 끼워져 있었다. 그것도 쓰러지기 바로 직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로 코마 상태에 있는 김주원의 손에 반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 그를 만나야 한다. 헌데……
“그 사람을 어떻게 만나야 하지?”
김주원을 만나는 게, 어렵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