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8화
제218편 교황의 개
“거…… 거지마…….”
진짠데.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나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부정하는 팔렌을 보며 나는 가볍게 혀를 찼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진짜.”
“거지마…….”
진짜라는 나의 확언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부정하는 팔렌.
그런 팔렌의 모습에 나는 혀를 한번 가볍게 차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믿든 말든 네 자유야. 하지만, 사실이야.”
“…….”
“천족과 인간의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들의 사이에서 태어난 반천족인 너와 네 여동생.”
“그…… 그거으 어지!(그것을 어찌!)”
이제야 좀 믿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나의 입에서 자신의 과거사가 나와서일까?
나의 말에 팔렌이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팔렌의 눈빛.
지진이 난 듯 요동치는 그의 눈빛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미하일의 축복을 받은 것인지, 태어나자마자 제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성력을 보유했던 네 여동생. 하루라도 빨리 그 힘을 제어하여 모든 생명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했었던 마음 착한 네 여동생.”
“…….”
“그런 네 여동생은 흡정마공을 익힌 그레고리우스에게는 아주 맛있는 먹잇감이지.”
“지…… 지라 하지마…….”
거 참.
사실을 알려주는데 말이 심하네.
나를 향해 욕설을 내뱉는 팔렌을 보며 나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여동생 애나. 그녀는 가지고 있던 모든 신성력을 그레고리우스에게 빼앗기고 말라 죽었다.”
“으아아아아!!!”
와…… 존X 놀랐다.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미친 사람처럼 괴성을 지르며 발작을 일으키는 팔렌.
쾅! 쾅!
“으아아!!”
이제는 아예 머리통을 바닥에 찧으며 자해를 하는 팔렌의 모습에 나는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크허허헝!”
바닥에 이마를 세게 처박고 그대로 대성통곡을 하는 팔렌.
그런 팔렌을 보며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60년간 은인인 줄 알고 충성을 바쳤는데, 원수였다.
자신의 동생을 죽인 원수.
그것을 단번에 알게 되었는데 어찌 괴롭지 않을까?
물론, 팔렌은 수많은 죄를 저지른 악질 중의 악질이다.
저자가 그레고리우스를 도왔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수천, 수만 명일 것이다.
그렇기에 저런 괴로움은 당해도 싸다.
하지만, 역시 나도 사람인지라 보기는 좋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울던 팔렌은 천천히 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저…… 저마이니가(정말입니까.)”
조금은 진정된 듯 낮은 목소리로 나를 향해 묻는 팔렌.
나는 그런 팔렌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흔들리지도, 떨리지도 않는 굳건한 눈빛이었다.
그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
나의 끄덕임에 탄식을 내뱉은 팔렌.
그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하…….”
다시 나를 바라보며 나를 불렀다.
“뭐.”
그런 녀석의 물음에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한 나.
팔렌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즈으 푸소에 즈드그 이스니다.”
“네 품속에 지도가 있다고?”
와…… 알아차리는 나도 대단하다.
아무튼, 갑작스레 지도라는 단어를 꺼내는 녀석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르그르으스으 츠으흐 브므스이 그그에 이스느다.”
“그레고리우스의 추악한 본모습이 그곳에 있다고?”
-너 천재냐?-
물론, 난 대륙의 천재다.
크산느의 농담에 살짝 미소를 지은 나는 걸음을 옮겨 팔렌의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러고는 사각으로 접힌 종이를 꺼내 들었다.
교황이 기거하고 있는 거대한 교회.
그곳의 지도였다.
“이 엑스자가 그 장소인가?”
지도에 적힌 빨간색의 엑스자.
그것을 손으로 짚으며 내가 묻자 팔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즈으 시츠느 드므드으그 드즈즈스스으.”
“그래, 네 시체는 동물들에게 던져줄게. 너는 죄인이니까.”
“가사흐느다.”
팔렌의 말을 해석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팔렌이 나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콰앙!
바닥에 머리를 강하게 내려치며 그대로 자결했다.
“…….”
터진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팔센.
나는 이제는 죽어버린 팔렌의 시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우웅!
그 순간이었다.
죽은 팔렌의 시체에서 새하얀 빛이 나온 것이 말이다.
화악!
그 빛이 순식간에 나를 덮쳤고 너무나도 밝은 빛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나의 아이들을 구원해주기를 바란다.-
“!!!”
그때, 나의 귀로 들려오는 자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까?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며 두 눈을 떴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밝은 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방안의 풍경에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들었다.
처음 듣는 사내의 목소리를 말이다.
마치 어머니처럼 따뜻한 사내의 목소리에 나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나는…… 성녀인 루멘보다 먼저 미하일의 목소리를 들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 * *
“스승님은 어디 갔습니까, 칼론 경?”
상석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주변을 구경하던 아이작.
그는 이내 요한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케한의 뒤에 서 있는 칼론에게 물었다.
“큰일을 보러 간 것 같습니다.”
“큰일이요? 무슨 큰일!”
칼론의 대답에 화들짝 놀란 아이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그에 케한이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키킥!”
“……?”
요한에게 큰일이 일어났다는데 웃다니?
케한이 웃는 것을 본 아이작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장실 말입니다.”
“아…….”
보다 못한 메이슨이 나서서 아이작에게 알려주었다.
메이슨의 말에 아이작은 얼굴을 붉혔고 칼론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기분 나쁘시다면 죄송합니다, 폐하.”
황제에게 농담을 던진 상황이 되어버린 지금.
칼론은 혹시나 아이작이 기분 나쁠 수도 있기에 사과를 건넸다.
“아니에요.”
그런 칼론의 사과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은 아이작.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그런 농담 배우고 싶네요.”
“하핫! 제가 책임지고 가르쳐 드리지요!”
아이작의 말에 칼론은 소리 내 웃으며 가슴을 탕탕 쳤다.
만약 요한이 지금 이 상황을 보았다면 이상한 것을 가르친다고 칼론을 몰아쳤을 것이다.
“황제 폐하, 오랜만입니다.”
그때, 한 노인이 아이작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그런 노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아이작.
그가 자신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존재가 누구인지 확인하고는 아미를 살짝 찌푸렸다.
“아…… 엘론 추기경.”
“그새 많이 크셨습니다.”
아이작의 탐탁지 않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는 엘론 추기경.
그의 말에 아이작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황제인 자신에게 많이 컸다니?
황제가 아닌 어린애 취급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엘론 추기경의 행동에 가만히 듣고 있던 칼론이 인상을 찌푸렸다.
칼론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아이작을 대신해 나서려는 순간.
“그대는 말을 가려 해야 하겠습니다.”
귀에 들려오는 아이작의 목소리에 칼론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작의 뒤에 섰다.
“예?”
생각지 못했을까?
아이작의 경고에 엘론 추기경은 당혹스러운 어조로 되물었다.
그에 아이작은 차가운 표정으로 엘론 추기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황제입니다, 어린애가 아닙니다. 예를 지키십시오.”
“아…… 그렇군요.”
아이작의 똑 부러진 말에 당황한 엘론 추기경.
그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처음 인사했을 때처럼 고개를 살짝 숙였다.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교황은 오지 않았습니까?”
사과하는 엘론 추기경의 행동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아이작.
그가 차가운 어조로 묻자 엘론은 추기경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교황 성하는 일이 아주 바쁘십니다. 국정까지 돌보아야 하니, 몸이 하나로는 부족하시지요.”
“…….”
황제의 앞에서 교황이 국정을 돌본다고 언급하는 엘론 추기경.
그의 도 넘는 발언에 아이작이 분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어서, 폐하가 장성하셔서 교황 성하를 도와드려야겠습니다.”
이제는 아예 교황을 도우라는 엘론 추기경의 말에 아이작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도 화가 나 머리가 차갑게 식은 것이다.
“그대는 내가 황제로 보이지 않습니까?”
“보입니다.”
8살 아이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
그런 아이작의 물음에 엘론 추기경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대답에 아이작은 다시 입을 열었다.
“한데, 어찌 예를 지키지 않습니까? 미하일님의 가르침에는 윗사람은 물론 아랫사람에게도 예를 지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지키고 있습니다.”
미하일의 가르침까지 언급하며 아이작이 말했지만 엘론 추기경은 그저 능글맞은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에 아이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지X하네.”
그때, 파티 홀에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게슈레에게 지도를 건네주고 그곳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린 나는 다시 파티 홀로 돌아왔다.
한데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저 노인네 뭐냐?-
나의 머리에 앉아 심드렁한 표정으로 노인을 가리킨 크산느.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엘론 추기경.”
대사제와 같은 위치이지만 교황의 오른팔이기에 실상 교권에서는 이인자라고 불리는 사내.
엘론 추기경을 보며 크산느에게 그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크산느.
녀석이 입을 열었다.
-저 새X 선 넘네.-
그러게 말이다.
점점 선을 넘는 발언을 내뱉으며 아이작을 몰아세우는 엘론 추기경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X하네.”
몸속에 잠들어 있던 마나와 위엄을 끌어올리며 입을 연 나.
홀에 울려 퍼지는 나의 목소리에 홀에 모인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몰렸다.
“그대는?”
욕설을 내뱉은 내가 팔짱을 끼고 아이작에게 다가가자 그의 앞에 있던 엘론 추기경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너는 누군데?”
엘론 추기경의 물음에 내가 삐딱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런 나의 물음에 인상을 찌푸린 엘론 추기경.
그가 입을 열었다.
“무엄하군, 나는 교황 성하를 보필하고 있는 엘론 추기경이다.”
“아…… 교황의 개야?”
“뭐라!”
엘론의 말에 귀를 후비며 내가 되묻자 그가 화를 냈다.
왜 화를 내는 것일까?
교황의 개가 맞으면서 말이다.
“왜 아닌척해? 이곳에 왜 온 거야? 아…… 파티 음식을 얻어먹으러 왔구나.”
“그대! 감히 나를 모욕하다니!”
내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엘론 추기경을 몰아세우자 그가 격분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황제 폐하에게 사과해.”
“뭐라?”
나의 말에 눈꼬리를 치켜뜨며 되묻는 엘론.
그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사과할 필요 없지.”
“그래, 나는 잘못을 하지 않았다.”
나의 말에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엘론 추기경.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녀석의 머리를 잡고 냅다 바닥에 꽂아버렸다.
콰앙!
“개는 맞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