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5화
제215편 처음입니다
“…….”
나의 차가운 말에 카노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숙일 뿐이다.
그래, 인간이라면 부끄러운 것을 알겠지.
힘없이 고개를 숙인 카노사의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가십시오. 그대가 루멘의 양부이기에 입 다물고 있었을 뿐. 이 이상 귀찮게 한다면 저도 어떻게 할지 모릅니다.”
내 친구 칼론이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
그녀를 끔찍한 곳에서 구해주고 훌륭하게 돌보아주었던 카노사였기에 나는 지금까지 일부러 그 사실을 숨겨왔었다.
하지만, 이 이상 나를 귀찮게 하면 나도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나의 경고에도 카노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쯧.”
내가 나가야겠다.
충격에 빠져 멍하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카노사의 모습.
노인이 그러고 있으니 보기가 안쓰러웠다.
물론, 동정심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런 카노사를 보며 혀를 한번 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문을 나섰다.
쾅.
방문이 닫히고, 나의 뒤를 따라 방에서 함께 나온 샌드가 나의 옆에 붙었다.
“어디 가시렵니까?”
“헤르만 자작에게.”
“모시겠습니다.”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샌드.
녀석이 앞장서며 대답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샌드의 뒤를 따라 헤르만 자작의 집무실에 도착한 나.
나는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일어나 정중히 나를 반기는 헤르만 자작을 만날 수 있었다.
“스승님!”
그리고, 그런 자작의 옆에서 아이작이 웃으며 나를 반겼다.
“황제 폐하도 계셨군요.”
이곳에 아이작이 있을 거라 짐작하지 못했던 나였기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 나의 물음이 아이작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헤르만 자작에게 각 귀족가의 가주들의 특징과 성격을 듣고 있었습니다.”
아주 바람직하다.
아이작의 대답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장하십니다.”
“저는 황제이니까요.”
녀석.
기특하다.
아이작의 대답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헤르만 자작을 바라보았다.
“아인츠 후작으로부터 초대장은 왔습니까?”
“네, 여기 있습니다.”
나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 헤르만 자작.
그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고급스러운 편지 봉투를 건네었다.
“언제입니까?”
“이틀 후입니다.”
“내일 출발합니까?”
“파티 당일인 이틀 후에 출발해도 됩니다.”
호오, 아인츠 후작령이 나가사에서 가까웠나 보다.
헤르만 자작의 대답에 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헤르만 자작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스승님.”
그때, 옆에서 아이작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웃으며 그런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예 폐하.”
“이따, 저녁 같이 드시겠습니까?”
이어진 아이작의 물음.
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저야 영광입니다.”
“그러면 저녁 시간에 맞추어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예 폐하.”
녀석의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다음 고개를 돌려 헤르만 자작을 바라보았다.
“별 이상 없지요?”
“네, 황제 폐하의 스승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나의 물음에 싱긋 미소를 지은 헤르만 자작.
그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방금까지 보아놓고 들었다니?
속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의 대답에 헤르만 자작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고 나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굳이 계속 집무실에 있어 봤자 녀석의 공부만 방해되기 때문이었다.
쿵.
그렇게 나는 헤르만 자작의 집무실을 나섰다.
“어디 가시겠습니까?”
하아…….
이 자식은 왜 이렇게 귀찮게 계속 물어?
집무실의 문을 닫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나에게 묻는 샌드.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녀석을 노려보았다.
“하하…….”
그런 나의 눈빛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볼을 긁적거리는 샌드.
-보내줘.-
<왜?>
그때, 나의 귀로 크산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비단 도마뱀 자식.
왜 갑자기 그냥 보내주라 하는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나를 끌어올려 대답했다.
내가 녀석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하는 놈인데 말이다.
-저 녀석, 연애해.-
<…….>
하…… 이 새X.
주인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연애를 해?
크산느의 이야기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샌드를 노려보았다.
“히익!”
그런 나의 살벌한 눈빛에 화들짝 놀란 샌드.
녀석이 뒷걸음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누구냐.”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는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다짜고짜 누구냐고 묻는 나의 행동에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얼굴을 보라.
아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나라를 팔아먹을 놈이다.
이 망할 놈!
“누구냐니까.”
“뭐가 말입니까?”
계속되는 나의 추궁에도 샌드는 끄떡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빈이다.-
나의 귀로 듣고 싶었던 정답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전하……?”
갑자기 미소를 짓는 나의 모습이 의심스러웠을까?
샌드가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나는…….
“엘로나한테 가야지!”
엘로나의 방으로 달려갔다.
“아니…… 전하!”
뒤에서 들려오는 샌드의 목소리는 가볍게 무시하며 말이다.
* * *
엘로나의 방을 찾아 하빈과 샌드를 한껏 놀리고 방으로 돌아온 나.
나는 방에 들어서자 보이는 케한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여기 있어?”
“헤헤.”
나의 물음에 그저 미소만 짓는 케한.
그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케한의 옆에 있던 칼론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황제가 저녁 같이 먹자고 하더라.”
“아 같이 가는 거구나. 케한아, 배고프지?”
칼론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나.
나는 소파에 앉은 케한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그런 나의 물음에 케한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 배 많이 고팠나 보다.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케한을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가자, 밥 먹으러.”
“네!”
나의 말에 케한은 짧게 대답하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나와 나란히 서서 걸음을 옮겼다.
아이작이 보낸 사람의 뒤를 따라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복도를 걸었다.
걷는 것도 잠시.
우리는 식당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까지 우리를 안내한 사내가 식당 문을 열었고, 나는 케한과 나란히, 그리고 칼론은 나의 뒤에서 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스승님.”
우리가 안으로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작이 일어나 우리를 반겨주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작의 옆에 있는 화사한 미녀, 샤를로트를 발견하고는 얼굴을 굳혔다.
샤를로트와 나는, 하이아칸에서 나를 좋아하지 말라고 일러준 다음 어색한 관계를 유지 중이었다.
한데 이렇게 떡하니 만날 줄이야.
“잘 지내셨나요?”
그런 나의 어색함을 느꼈을까?
샤를로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아…… 네, 오랜만입니다 공작.”
샤를로트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인 나.
아이작의 앞이기에 존대를 사용하며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야, 배고프다.”
“앉아. 나도 배고파.”
그런 나를 두고 쪼르르 달려가 아이작의 옆에 앉은 케한.
친근하게 다가오는 케한을 아이작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옆자리를 비워 주었다.
참…… 보기 좋은 둘이었다.
아무튼, 케한이 아이작의 옆에 앉았고, 나는 그런 케한의 옆에 앉았다.
어쩌다 보니 샤를로트와 마주 앉게 된 나.
나는 나와 두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를 짓는 샤를로트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너무 그러지 마, 나도 어색해 죽겠으니 말이다.
“칼론 경도 앉으십시오.”
그때, 나의 뒤에 서 있는 칼론을 보며 아이작이 자리를 권했다.
나와 벗이며 트레이 교단의 팔라딘이라는 것을 잘 아는 아이작이었기에, 특별히 칼론의 자리도 준비해두었던 것이다.
“그래, 앉아.”
아이작의 권유에 난처한 표정을 짓던 칼론.
이어진 나의 말에 칼론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네, 주군. 실례하겠습니다, 폐하.”
나의 말에 대답과 함께 아이작에게 인사를 한 칼론이 자리에 앉았고, 아이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아이작의 시종, 시종장 팔렌을 바라보았다.
“음식을 들여 줘.”
“네 폐하.”
아이작의 명에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 팔렌.
그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후.
팔렌의 지휘하에 시녀들이 우리의 앞에 수많은 음식들을 놓아주었다.
“많이 드십시오.”
시녀들이 뒤로 물러서고, 아이작이 웃으며 말했다.
그에 나와 케한, 그리고 칼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식사가 끝이 나고.
모든 음식과 접시를 치우고, 우리의 앞에 간단한 디저트가 자리 잡았다.
“스승님.”
“예 폐하.”
아이작의 부름에 고개를 끄덕인 나.
그런 나를 보며 아이작은 미소를 지었다.
“누님에게 들었습니다, 말을 편하게 하는 사이라고.”
“…….”
“제 앞이라고 예를 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은 저에게 있어서 가족이니까요.”
뭘까.
아직 시뮬레이션 임무에 성공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무한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그동안 사랑을 받지 못해서일까?
나를 과하게 신용하며 신뢰하는 아이작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아이작.”
“네 스승님.”
나의 부름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아이작.
나는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를 너무 믿는 것은 아니더냐? 황제가 그렇게 믿음을 주면 좋지 않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나의 마음을 담아 조언했다.
그런 나의 조언에 살짝 당황한 아이작.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녀석이 나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황제이기에 믿는 것입니다.”
“흐음…….”
예상외다.
나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어서 나올 아이작의 말을 기다렸다.
“황제가 자신을 도와준 스승, 그리고 나아가 자신의 신하인 귀족들을 믿지 않는다면 그들이 나를 따를 리가 없습니다.”
호오.
아주 바람직하다.
녀석의 대답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너무 과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특하다.
빙긋 웃으며 나의 걱정을 해소해주는 아이작의 모습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샤를로트를 바라보았다.
“네 동생 대단하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이작을 바라보고 있던 샤를로트.
그녀가 나의 물음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입니다.”
“뭐가?”
샤를로트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처음이라니?
그런 나의 행동에 샤를로트가 입을 열었다.
“아이작이, 황제처럼 보이는 것이.”
“누님!”
너무나도 솔직한 샤를로트의 대답에 아이작이 발끈했고.
“하하!”
“헤헤!”
나와 케한, 그리고 칼론이 소리 내 웃었다.
아주 즐거운 식사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