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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대공가의 귀한 아들-214화 (214/226)

제 214화

제214편 자격이 없어

“다른 귀족가도 우리와 마찬가지라고 했었나?”

잠시 생각을 정리한 아인츠 후작.

그가 소파 등받이에서 몸을 떼고 자세를 바로 하며 헤르만 자작에게 물었다.

그런 후작의 물음에 헤르만 자작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서류 하나를 집어 후작에게 내밀었다.

“저희와 같은 피해를 본 귀족들의 명단입니다.”

“먼저 나에게만 연락을 했었나?”

“네, 다른 귀족들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아인츠 후작의 물음에 헤르만 자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권이 약해지고 교권이 강해지면서 이도 저도 아니게 된 귀족들.

그런 귀족들을 그나마 관리하고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가 아인츠 후작이다.

그렇기에 헤르만 자작은 다른 귀족들에게는 연락을 취하지 않았고, 귀족들을 총괄할 수 있는 아인츠 후작에게만 알린 다음, 그를 설득 시키고 도움을 얻으려 했다.

그런 자작의 행동에 아인츠 후작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해주었네, 만약 자네가 한꺼번에 모든 귀족에게 보냈다면 필히 교황이 알게 되었을 것이네.”

“네, 그게 두려워 후작님에게 먼저 연락을 했습니다.”

헤르만 자작의 대답에 아인츠 후작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다음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

헤르만 자작이 내민 귀족 명단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허어…….”

그리고 탄식했다.

약해진 황권 아래에서, 그나마 교국에서 영향력이 있는 귀족들.

그들의 이름이 모두 적혀있었다.

“교황의 장난감 신세였군.”

황제의 신하인 귀족들.

그런 이들이 교회의 주인인 교황의 장난감이 되어 놀아나고 있었다.

그에 분노한 아인츠 후작이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모든 가문의 비리를 조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말인가?”

그런 후작의 귀에 들려온 헤르만 자작의 말.

그에 아인츠 후작은 자신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신성교국이다.

어느 영지에도 작게는 한 개 크게는 다섯 개까지의 교회가 존재한다.

영지의 움직임이 수상하다고 느낀다면 교회는 최우선으로 교황에게 보고를 올릴 것이다.

그것을 염두에 둔 아인츠 후작이 말하자 헤르만 자작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귀족인 자신들이 교회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 씁쓸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헤르만 자작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아인츠 후작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조용히 움직여야지요.”

“어떻게 말인가?”

헤르만 자작의 말에 흥미를 보인 아인츠 후작.

그가 자세를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일단, 후작님은 영지로 돌아가서 아무렇지 않게 부인과 시간을 보내십시오.”

“…….”

그리고, 이어진 헤르만 자작의 말에 후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집으로 돌아가 부인과 아무렇지 않게 시간을 보내라고?

후작은 자신이 없었다.

자신을 배신하고, 아니. 애초에 자신을 속이려고 다가왔고 목숨보다 소중한 영지를 더럽혀 왔으며, 자신에게 있어서 아주 행복한 추억인 지난 세월이 모두 거짓이 되었다.

어찌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부인도 부인이지만.

“아들을 볼 자신이 없네.”

도저히 아들을 볼 자신이 없다.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들이다.

이때까지 친아들이라 생각하며 키워왔는데 한순간에 남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겠는가?

자신 없다는 듯 말하는 후작의 말에 헤르만 자작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자신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작과 같은 마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지낼 수는 없었다.

교황에게 복수를 하고, 더럽혀진 영지를 깨끗이 청소를 해야 했다.

그렇기에 헤르만 자작은 고개를 들고 힘 있는 눈빛으로 아인츠 후작을 바라보았다.

“제 아들을 데려가십시오.”

“……?”

헤르만 자작의 입에서 나온 갑작스러운 말에 후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자작을 바라보았다.

“그대의 아들도…….”

“제 아들입니다.”

아인츠 후작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헤르만 자작이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에 아인츠 후작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

“공자는 헤이가 설득시킬 것입니다.”

“…….”

아인츠 후작의 말이 채 끝나기 전, 그의 말을 끊고 헤르만 자작이 말했다.

그런 자작의 말에 후작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오 일 후. 파티를 연다 하고 모든 귀족을 초대하십시오. 물론 교회의 인물도 함께.”

“자네 무슨 생각인가?”

이어진 헤르만 자작의 말에 아인츠 후작이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헤르만 자작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 아인츠 후작의 모습에 헤르만 자작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교회의 인물들은 황제 폐하와, 요한 황태자가 상대해줄 것입니다.”

“그렇군. 최근 공석에 얼굴을 비치지 않은 황제와 타 교단의 성자인 황태자가 등장한다면 교회의 시선이 돌려지겠지.”

자세한 자작의 말에 아인츠 후작이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자작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마 카노사 대사제와 성녀도 파티에 참여할 것입니다.”

“흐음…….”

“황태자는 성녀에게 호의적입니다. 자연히 교회의 세력과 대립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대화를 나누자?”

“네.”

헤르만 자작의 말에 아인츠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헤르만 자작을 바라보았다.

“자네…… 이렇게 똑똑했었나?”

자신이 아는 헤르만 자작은 이렇게 똑똑하고 노련한 귀족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인츠 후작이 새삼스러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인츠 후작의 물음에 헤르만 자작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요한 황태자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허어…….”

헤르만 자작의 대답에 아인츠 후작은 감탄했다.

잠시 보았던 흑발의 황태자.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호승심을 느꼈던 아인츠 후작이다.

한데 이런 심계까지도 갖추었다?

요한 황태자, 그는 너무나도 대단하고 너무나도 두려운 인물이었다.

* * *

“전하. 카노사 대사제가 찾아왔습니다.”

교국에 들어서고 헤르만 자작령이자, 교국의 유일한 항구인 나가사에서 지낸 지 약 일주일.

나는 삼 일 전 나와 마주치고 얼굴도 보지 못했던 카노사 대사제가 찾아왔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문 앞에 자리 잡은 샌드를 바라보았다.

“왜?”

“보고 싶어서 아닐까요?”

나의 물음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샌드.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감히 황태자인 나에게 말장난을 하는 것이냐?”

“죽여주시옵소서.”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샌드는 즉시 허리를 넙죽 숙이며 용서를 구한다.

저 자식, 내가 장난치는 줄 알고 장난으로 대응한다.

머리가 아주 많이 컸다.

“됐고, 들어오라 해.”

“네 전하.”

그런 녀석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은 내가 말하자 녀석은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문을 열고, 문 앞에 위치한 백발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들어오시랍니다.”

“고맙네.”

샌드의 말에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를 표한 카노사.

그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쿵.

잠시 후.

방문은 닫혔고, 나는 나의 앞에 위치한 소파를 가리켰다.

“이곳에 앉으십시오.”

“고맙습니다.”

나의 권유에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를 표한 카노사.

그가 소파에 앉았다.

잠시 후.

샌드가 향기로운 향을 자랑하는 홍차를 들고 와 우리 둘의 앞에 놔두었다.

그러고는 뒤로 물러선 다음 절도있게 고개를 숙였다.

“저는 물러가 있겠습니다.”

“아니, 대기하고 있어.”

“네.”

저놈 분명 나가서 땡땡이칠 것이다.

확실하다.

그렇기에 나는 샌드를 붙잡아 두었고, 샌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보았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샌드의 눈가가 잠시 움찔한 것을 말이다.

고놈 쌤통이다.

-잘했어.-

크산느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나를 칭찬했다.

아무튼, 샌드는 나의 명에 의해 조금 물러서서 시립했고,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홍차를 집어 들었다.

“드십시오.”

그러고는 카노사에게도 권유했다.

나의 권유에 고개를 끄덕인 카노사.

그가 찻잔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따뜻한 홍차를 한 모금 마신 우리 둘.

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카노사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

나의 물음에 카노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카노사의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천천히 입을 연 카노사의 입에서 나온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하는 카노사.

그런 카노사의 행동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우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보기 안 좋습니다, 일어나세요.”

노인네가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보기가 좋지 않았다.

그에 내가 불편하다는 어조로 말하자 카노사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는, 정말 미안했습니다. 수행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

“미안합니다, 황태자.”

“앉으세요.”

다시 고개를 숙이려는 카노사의 기세에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 나의 말에 다시 소파에 앉은 카노사.

나는 그런 카노사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사과하러 찾아오신 것입니까?”

“네, 용서를 구하러 왔습니다.”

“그 이유는?”

카노사의 대답에 내가 카노사의 두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성녀를 도와주십시오.”

역시 도와달라는 건가.

카노사의 대답에 나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고는 삐딱한 얼굴로 카노사를 바라보았다.

“제가 도와줄 것은 없습니다.”

“교국에서는 교황의 힘이 너무나도 막강합니다.”

“그래서?”

카노사의 말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나의 목소리에 담긴 분노를 느꼈을까?

카노사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고, 타인에게 도움만 요구하는 당신의 모습. 옳다고 생각됩니까?”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의 물음에 카노사가 변명하듯 대답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교황과 다른 대사제들을 설득시키려고 노력했으며, 어린아이들에게 신님의 가르침을 똑바로 전달하려 했습니다.”

“그게 끝입니까?”

카노사의 대답에 나는 애매하다는 표정으로 카노사를 바라보았다.

그에 카노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매일매일 기도를 열심히 올렸으며, 조금 가지고 있는 신성력을 모두 사용해가며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피식.

이어진 카노사의 대답에 나는 결국, 다시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주 순수하군.

아니, 나이가 있으니 멍청한 것일까?

나는 정말로 열심히 노력했다며 알아달라는 듯 바라보는 카노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당신, 교국에서 일어난 여인들과 소녀들의 실종. 교황과 관련된 것 알고 있었잖아?”

움찔.

나의 입에서 나온 차가운 말에 카노사가 움찔했다.

그러고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나 보다.

아무튼, 그런 카노사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외에도, 교황이 저지르고 있는 온갖 비리들.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했잖아.”

“그것은…….”

“목숨 걸고 그것을 막아봤나? 아니면, 교황의 명령에 항명을 해보았나?”

“…….”

카노사의 말을 끊고 내가 차가운 음성으로 묻자 카노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겁쟁이야. 아니, 당신은 가지고 있는 권력을 은연중에는 잃지 않고 싶어 했지, 그리고 말로만 나는 착한 사람, 나는 참된 종교인이다. 라고 하고 다녔지.”

“…….”

“당신은 종교 개혁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자격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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