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2화
제212편 요한, 제자 생기다
“오셨습니까.”
지하 밀실.
무릎까지 오른 흰색의 긴 가운을 입고 있던 한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미청년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고생이 많군.”
사내의 인사에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미청년.
그가 자신의 앞에 비치된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잘되어 가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금발에 호수와도 같은 푸른 눈을 지닌 미청년.
그의 입에서 나온 따뜻한 목소리에 사내가 구십 도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미청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사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대가 있어 정말 다행이군. 미하일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영광입니다!”
미청년의 격려에 사내는 진심으로 기쁜 듯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런 사내의 행동에 미청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미청년의 앞에 위치한 투명한 유리창.
그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수십 명의 어린 소녀들과 여인들을 보며 미청년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저 아이로 하지.”
수십 명의 어린 소녀들과 여인들 중 유일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한 소녀.
다른 소녀들과 달리 아직 생기가 느껴지는 눈빛을 한 소녀를 가리키며 미청년이 말하자 사내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대에게 늘 고맙게 생각하네.”
“미하일님의 종으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저 소녀들도 교황 성하께 성은을 입게 되었으니 영광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사탕발림과도 같이 달콤한 사내의 말에 미청년, 신성교국의 교황인 그레고리우스가 소리 내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사내를 바라보았다.
“실험은?”
“곧, 마지막에 들어설 것 같습니다.”
그레고리우스의 물음에 깊이 고개를 숙인 사내.
교국에서 비밀리에 실행되는 실험의 총책임자인 사내, 하이든이 두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그에 그레고리우스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하이든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긴 그레고리우스.
그는 걸음을 멈춘 자신의 앞에 위치한 방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주변을 물리게.”
“알겠습니다.”
신과 같은 힘을 지닌 그레고리우스였기에 호위 기사들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 그레고리우스의 명에 그의 강함을 알고 있던 하이든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주변을 지키던 기사들에게 눈치를 주었고 이내, 그 기사들과 함께 하이든이 물러났다.
씨익.
그들이 물러나고 홀로 남게 된 그레고리우스.
그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문을 열었다.
쾅.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서고, 다시 문을 닫았다.
이중으로 설치된 문.
그레고리우스는 방금 자신이 열고 들어선 문을 잠갔다.
그러고는 다시 새로운 문을 열었다.
“!!!”
철컹!
그레고리우스가 안으로 들어서자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향해 달려드는 한 소녀.
하지만 소녀의 손과 발에 묶인 쇠사슬로 인해 소녀는 그레고리우스의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야수와도 같이 반응하는 소녀의 모습에 그레고리우스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아름답구나.”
야수와도 같은 눈빛으로 자신에게 적대심을 내세우는 소녀.
그 소녀, 아니 천족과 인간의 혼혈인 반천족을 보며 그레고리우스는 아랫도리가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스윽.
그러고는 소녀의 앞에서 보란 듯이 윗옷을 벗었다.
윗옷을 벗자 보이는 탄탄한 근육의 상체.
올해 70살, 하지만 이계의 무공 흡정마공 吸精魔功으로 반천족과 천족들은 물론,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들에게서 신성력과 정기를 흡수한 그레고리우스의 외형은 물론 신체나이 또한 20대와 같았다.
몇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백, 아니 수천 명의 여인과 천족 소녀들을 겁탈하고 정기와 신성력을 흡수했던 그레고리우스였기에 약 5년 전부터 신체에 변화가 찾아왔다.
그에 사람들은 미하일의 축복이라며 그레고리우스를 더 경외시하기 시작했다.
실상은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웃통을 벗은 그레고리우스.
그는 침대 위에서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이를 가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곧, 천국을 보여주마.”
* * *
“황제 폐하께 신, 아인츠 후작이 인사 올립니다.”
나의 방안에 들어선 갈색 머리칼의 중년 사내.
아인츠 후작이 케한과 나란히 앉아 있는 아이작에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아…….”
그런 아인츠 후작의 인사에 당황한 아이작.
녀석이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듯한 표정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인사를 받으라는 뜻이다.
그런 나의 뜻을 다행히 제대로 이해했는지 두 눈에 힘을 준 아이작이 입을 열었다.
“일어나십시오.”
신하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황제.
이상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나의 눈에는 아주 보기 좋았다.
어린 황제, 그가 자기보다도 경험이 많고 나이가 많은 신하를 존중하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작의 말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아인츠 후작.
그가 고개를 돌려 아이작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나를 바라보았다.
“그대가, 요한 황태자입니까?”
듣기 좋은 중후한 음성.
아인츠 후작의 물음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아인츠 후작.”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고개만 까딱거린 나의 인사.
무례한 나의 행동이지만 아인츠 후작은 개의치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 나의 성격을 조사하고, 파악하고 온 듯하다.
그래, 이래야 귀족이지.
오랜만에 제국의 귀족들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이곳 귀족의 모습에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황제 폐하, 루터 대사제를 잡아들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인츠 후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아이작.
그런 아이작의 대답에 아인츠 후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교회에서 반발할 것입니다.”
“…….”
“어떤 생각을 지니고 계신지 신이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작을 향해 다시 고개를 숙인 아인츠 후작.
그의 물음에 아이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으잉?
갑자기 웬 스승?
나를 스승이라 칭하며 자세를 바로 하는 아이작의 행동에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부터 내가 스승이 되었던가?
나의 기억에는 전혀 없었다.
-좋겠네.-
아까부터 케한의 머리맡에 앉아 지켜보고 있던 크산느.
녀석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까불거렸다.
하여튼 저 얄미운 자식.
“제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미치겠다.
자신의 신하들 앞에서 대놓고 나에게 의견을 구하는 아이작의 모습에 나는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볍게 호흡을 고른 나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신하들의 앞입니다. 어찌 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입니까?”
“저는 아직 부족합니다. 스승님의 의견을 듣고 또, 경험이 많은 신하들의 이야기를 듣고 결정하고 싶습니다.”
나의 물음에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또랑또랑하게 대답하는 아이작.
그런 아이작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띠링!
그리고, 나의 귀로 반가운 음성이 들려왔고, 동시에 나의 눈앞에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이 생겨났다.
38. 성장하고 싶은 어린 황제.
너무 어려 기억이 나지 않을 때부터 황제가 된 아이작.
그는 주변에서 도와주는 인물은 자신의 친누이 샤를로트 공작밖에 없었다.
교국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교회의 인물들에게 무시를 받고, 신하인 귀족들에게 외면을 받는 불쌍한 황제.
그가 황태자인 요한을 만나고 그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황족이 되고 싶어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도화지 같은 어린 황제를 도와 귀족들의 지지를 받게 하자.
성공보상 : 올 스탯 +10, 신성교국(구, 신성제국)의 황제 아이작 카를의 무한한 신뢰.
호오.
보상이 후하다.
올 스탯 +10이라니?
이제 곧, 끝날 때가 돼서 그런가.
막 퍼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아무튼, 나의 눈 앞에 펼쳐진 홀로그램을 모두 읽은 나는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잠깐 생각을 정리한 뒤.
눈을 떴다.
기대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작, 그리고 긴장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인츠 후작과 헤르만 자작.
마지막으로.
호록.
맛있게 핫초코를 마시는 케한이 보였다.
짜식, 좀 조용히 마시지.
아무튼, 나는 그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다시, 나의 앞에 있는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교회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귀족들을 모으십시오.”
“제가 직접 나서서 말입니까?”
나의 말에 아이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자가 직접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작의 옆에서 나를 바라보던 아인츠 후작.
그를 가리키며 내가 말하자 아이작은 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인츠 후작을 바라보았다.
“아인츠 후작…….”
“폐하, 저는 폐하의 신하입니다.”
아이작의 부름에 싱긋 미소를 지은 아인츠 후작.
그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처음 보는 아인츠 후작의 예의 바른 행동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은 아이작.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작은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무릎을 꿇은 아인츠 후작을 내려다보았다.
“그대는, 모든 귀족을 소집하십시오. 황명입니다.”
“황명을 받듭니다!”
되었다.
아이작의 물음에 아인츠 후작은 큰 목소리로 대답했고, 그 둘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 * *
“아버지…….”
요한에게 무수한 비난을 받은 카노사.
그가 멍한 표정으로 서 있자, 칼론에게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루멘이 다가와 그를 불렀다.
듣기 좋은 루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카노사.
그가 고개를 돌려 루멘을 바라보았다.
“나는 교황을 비판할 자격이 없는 인물이구나.”
루멘과 함께 종교 개혁을 꿈꾸던 카노사.
그가 권력에 찌들어 신의 가르침을 더럽히는 다른 인물들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는지 힘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카노사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은 루멘.
그녀가 충격으로 인해 떨리고 있는 카노사의 두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러고는 카노사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아니요, 이번에는 실수였습니다. 아버지도 인지하고 계시잖아요.”
“…….”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충실한 미하일님의 종입니다. 그분의 뜻을 올바르게 전파해야 합니다.”
“그래…….”
자신을 위로하는 루멘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은 카노사.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칼론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트레이 교단의 검, 팔라딘인가?”
“성자님의 검, 팔라딘 칼론 루드비히입니다.”
카노사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은 칼론.
그가 트레이 교단이 아닌, 성자 개인의 검이라 호칭을 칭하고 고개를 숙이자 카노사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교단의 검이 아니라는 것인가?”
“저는, 에르님, 그리고 그분의 뜻을 이어받은 요한 성자님의 검입니다.”
카노사의 물음에 칼론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같으면서도 애매하게 다른 칼론의 대답.
그에 카노사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네, 칼론 경.”
“반갑습니다, 카노사 대사제님.”
힘이 없는 듯하면서도 또렷한 카노사의 목소리.
그에 칼론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