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0화
제210편 어린 황제의 첫 명령
“…….”
친구.
자신과는 인연이 없었던 그 단어가 케한의 입에서 나오자 아이작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케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케한은 그런 아이작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팔짱을 낀 채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루터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감히 이러는 것이오?”
자신에게 겨누어진 검과 지팡이.
그것들의 주인인 칼론과 메이슨을 바라보며 말하자 메이슨은 어깨를 으쓱였고, 칼론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칼론과 메이슨의 모습에 루터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 칼론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이 분이 누구인지 아나?”
팔짱을 끼고 있는 케한을 가리키며 칼론이 묻자 루터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서운 기세를 내뿜는 기사와 마법사.
이들을 부릴 수 있는 존재는 교국에서도 손에 꼽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모르는 인물이다.
하면, 이 아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루터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케한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얘한테 사과해요.”
“……?”
갑작스러운 케한의 말.
그런 케한의 말에 루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힘없는 꼬마 황제에게 사과를 한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황제인 얘에게 건방지게 굴었잖아요. 나 참, 황제에게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거지?”
막상, 자신도 황제인 아이작에게 예를 지키지 않으면서 케한은 루터를 올려다보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케한의 말투에 루터는 그제야 알았다.
무늬만 황제에 불과한 아이작.
교국의 백성들과 귀족들에게 잊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황제이기에 황권을 존중하는 케한의 행동에서 타 대륙인, 판게아 대륙의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에 루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케한을 바라보았다.
“공자, 판게아 대륙에서는 어떨지 모르나, 이곳에서는 황제는 상징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황제인 아이작의 앞에서 대놓고 황제를 비하하는 루터.
그런 루터의 말에 아이작은 다시 분노 어린 표정을 지었고, 루크는 허리춤에 얹어진 검에 손을 얹었다.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루터에게 무기를 겨눈 칼론과 메이슨의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하얀 갑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기사들이 검을 뽑아 칼론과 메이슨에게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하인리히가 속한 신성기사단은 아니지만, 황제에게 정식으로 기사 작위를 받은 성기사.
바로, 대사제인 루터를 호위하는 성기사들이었다.
그들의 등장에 루터는 다시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아직도 자신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는 칼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려놓으십시오.”
자신의 목에 겨눈 검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며 여유롭게 말한 루터.
그런 루터의 행동에 칼론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화르륵!
그러자 칼론의 붉은 검신에서 보라색의 불꽃이 생겨나 무서운 기세로 검을 뒤덮었다.
“흐악!”
벌러덩.
자신의 목을 겨눈 검에서 갑작스럽게 뜨거운 불꽃이 올라오자 화들짝 놀란 루터.
그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고. 성기사들은 황급히 그런 루터에게 달려가려 했다.
파사삭!
“뭐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였다.
갑작스럽게 바닥에서 솟아난 얼음 장벽이 그런 성기사들의 앞을 막은 것이다.
당황해하는 성기사들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은 메이슨.
그가 손에 들린 지팡이를 여유롭게 돌리며 성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어서 치우시오!”
채앵!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말하는 메이슨의 행동에 모욕감을 느낀 한 기사가 검을 강하게 뽑으며 메이슨에게 경고했다.
그의 무서운 경고에도 불구하고 메이슨은 그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타앗!
그런 메이슨의 모습에 분노한 기사는 매서운 기세로 메이슨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기사의 행동에도 계속 여유롭던 메이슨.
그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아이스 에이지.”
콰앙!
메이슨의 속삭임과 동시에 얼어붙은 대지.
갑작스럽게 얼어붙은 대지에 성기사는 그만 흉한 모습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이스 프로텍터.”
그리고, 그런 성기사와 뒤에서 검을 뽑던 성기사들 주변으로 파란색의 얇은 벽이 생겨나더니 이내 그들을 가두었다.
몸을 보호하는 실드 마법, 아이스 프로텍터.
그것을 오히려 상대방에게 시전하여 상대방을 가둬버린 것이다.
뛰어난 마법 이해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최고급 마법.
천재 마법사 메이슨은 아무렇지 않게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는, 아이스 프로텍터를 주먹으로 치고, 검으로 내려치는 성기사들을 바라보았다.
“거기 편해요. 그러니 좀 기다려요.”
싱긋 웃으며 그들에게 말해주고는 몸을 돌렸다.
앞으로 펼쳐질 재미있는 광경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메이슨이 그렇게 성기사들을 처리하는 동안 칼론은 성화에 둘러싸인 검을 루터에게 들이밀었다.
신성력을 지닌 루터였기에 알았다.
칼론의 검을 뒤덮고 있는 저 보라색의 화염이 보통 화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 그만!”
칼론이 검을 들이밀자 화들짝 놀란 루터.
그가 놀란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런 루터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은 칼론.
그가 검을 들었다.
푸욱!
그러고는 세로로 집어 들어 루터의 가랑이 사이로 깊게 찔러 넣었다.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깊이 박힌 칼론의 검.
루터는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박힌 칼론의 검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으아아아!”
이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뻔했는지 깨닫고는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소중한 가랑이를 부여잡으며 두려운 표정을 짓는 루터.
칼론은 그런 루터를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턱으로 케한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우리 도련님이 사과하라고 하시잖아.”
* * *
아이작은 꿈만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왔던 대사제 루터.
그에게 당당하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케한과, 그런 케한의 말을 이루어주기 위해 검을 뽑은 기사 칼론, 그리고 마법사 메이슨.
그 둘의 활약에 그렇게나 두렵고, 증오스럽던 루터가 꼴사나운 모습으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주륵.
심지어, 어린 자신도 하지 않는 오줌을 지리면서 말이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통쾌했다.
“사과하세요.”
루터를 지리게 만든 기사 칼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케한이 아이작을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그런 케한이 신기했다.
일단…… 처음으로 자신에게 친구라고 했다.
거기서부터 정신이 없었는데, 자신과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른인 루터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케한의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쉬익!
퍽.
“히익!”
케한의 말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루터.
그때, 날카로운 고드름이 날아와 루터의 가랑이 사이로 떨어졌다.
축축한 가랑이 사이로 떨어져 바닥에 박힌 날카로운 고드름.
그것을 본 루터는 다시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어이고, 실수.”
그런 루터의 모습에 메이슨은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마나 컨트롤이 안 돼서…… 또 날아갈 수도…….”
“황제 폐하! 미안합니다!”
웃으며 차갑게 내뱉은 메이슨의 말.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세를 바로 한 루터가 아이작에게 사과했다.
그런 루터의 사과에 아이작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처음이었다.
대사제인 루터가 자신을 향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말이다.
늘, 빈정거리며 사과하던 모습과는 달랐다.
오줌을 지린 채 축축한 바지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루터의 모습에 아이작은 그동안 루터에게 당해왔던 서러움이 한 번에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뭐해? 사과 안 받아줄 거야?”
그런 아이작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린 케한이 묻자 아이작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케한을 바라보았다.
“너…… 아니, 너희 형님인 황태자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
궁금했다.
판게아 대륙에서의 황족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말이다.
아이작의 물음에 가만히 턱을 쓰다듬은 케한.
그가 고개를 들어 칼론을 바라보았다.
“칼론 형, 우리 형님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죽였지요.”
케한의 물음에 칼론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 빠른 대답에 아이작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죽이다니?
그건 너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케한과 메이슨을 보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정말 죽인다고……?
“황족을 능멸한 죄는 목숨으로 갚아야 합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뜬 아이작.
그런 아이작의 모습에 메이슨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랬다.
아이작은 잊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본 적이 있다.
약,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신성 교국은 제국이었으며, 황족을 능멸한 죄는 사형으로 벌을 주었다.
왜 그것을 잊고 있었을까?
아이작이 놀란 표정을 짓자 메이슨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황족의 위엄을 보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메이슨 경,”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메이슨의 행동에 화들짝 놀란 칼론.
그가 낮은 목소리로 메이슨의 이름을 불렀다.
“아…….”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인지한 메이슨.
그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 죽이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영락없이 8살인 어린 아이에게 살인을 강요한 듯한 자신의 행동에 놀란 메이슨이 변명하듯 대답했다.
“폐하.”
메이슨의 이야기에 고민 어린 표정을 짓는 아이작을 보며 루크는 걱정스러운 어조로 그를 불렀다.
“루크 경.”
루크의 부름에 생각을 정리한 아이작이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고는 근엄한 목소리로 루크를 불렀다.
평소와 달리 힘 있는 아이작의 부름에 충성스러운 기사, 루크는 서둘러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며 힘차게 입을 열었다.
“어떤 명이든 내려주시옵소서!”
“황족을 능멸한 대사제, 루터를 포박하라!”
“명을 받듭니다!”
처음으로 아이작의 의지에 의해 내려진 명령.
그 명령을 받은 루크는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 * *
“이게 무슨 짓입니까!”
밖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신성력의 기운에 황급히 달려 나온 카노사와 루멘, 그리고 하인리히.
그 셋은 넓은 정원에서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칼론 경…….”
바닥에 꽂힌 검을 뽑으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 칼론의 모습에 루멘은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의 양부인 카노사에게 인사시키기도 전에 안 좋은 모습을 보이게 되었으니 불안했던 것이다.
칼론의 앞에서 볼품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황제의 기사인 루크에게 포박당하고 있는 익숙한 중년 사내.
“루터 대사제!”
자신의 후배뻘인 루터의 볼품없는 모습에 카노사는 분노 어린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를 묶고 있는 루크를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지금 뭐하는 짓인가!”
“황명입니다, 물러서십시오.”
카노사의 서슬 퍼런 기세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대답한 루크.
루터를 포박하는 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에 극대노한 카노사가 손을 뻗으려는 찰나!
“손 치우는 게 좋을 것입니다.”
낮은 목소리가 카노사의 귀에 들려왔다.
카노사의 귀, 아니 머릿속에 파고들어 정신을 흩트려 놓는 목소리.
그에 깊은 신성력과 정신력으로 간신히 버틴 카노사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흑발의 미청년.
이곳에 방문한 이후, 아직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한 듀크 제국의 황태자 요한이 차가운 표정으로 카노사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