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6화
제206편 아버지와 아들
“비키란 말이다!”
“물러나십시오!”
아…… 시끄럽다.
나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침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나의 맞은편.
쇠창살로 이루어진 감옥 안에 있는 여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네 아들인가?”
“…….”
나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여인, 아니 헤르만 자작을 속여온 사란.
그녀의 반응에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교황과 많이 닮았나?”
“…….”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 나의 음성에도 불구하고 사란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친아버지라고 믿었던 존재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면 얼마나 슬플까? 그리고, 친아버지인 인간이 자신을 부정한다면?”
콰앙!
드디어 반응이 보였다.
나의 장난스러운 말이 끝나자마자 쇠창살을 강하게 내려치며 나를 노려보는 사란.
그런 사란의 행동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사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아들은 소중한가 보지?”
“헤이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의 물음에 이를 갈며 대답하는 사란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 잘못 없지. 네가 미친 X인 거지.”
“나는 미하일님의 자녀로 인정받기 위해 행동한 것뿐이다.”
나의 말에 낮은 목소리로 반박하는 사란.
나는 그런 사란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교황의 여인이 된 것인가?”
“진정한 미하일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미하일님의 대리자인 그분에게 축복을 받아야 한다.”
나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사란이 쇠창살을 강하게 쥐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쭈그려 앉아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사란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너 때문에, 한 사내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어.”
“그것은 미하일님의 뜻.”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 인간의 삶을 저버린다고?”
“헤르만 자작은 미하일님의 뜻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사내였다.”
“해서 그를 이용했나?”
“모든 것이, 다 그분을 위해서였다.”
정말 답도 없다.
끝나지 않는 대화를 그만두기 위해 나는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쇠창살을 강하게 쥔 채 주저앉아 있는 사란을 내려다보았다.
“너는, 신을 믿는 것이냐? 아니면 교황을 믿는 것이냐?”
“교황 성하가 곧 신이다.”
나의 물음에 사란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교황.
그자는 미하일의 이름을 빌려 자신을 신성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성 교국에서 강한 영향력을 지닌 귀족들에게 자신이 세뇌한 여인을 그 귀족의 이상형에 맞게 교육한 다음 귀족에게 보내 유혹하게 만들었고, 또 결혼하게 만들었다.
사내는 아무리 훌륭한 능력을 지니고 있더라고 결국 단순한 존재였다.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자신이 꿈꾸던 아름다운 여인이 등장한다면?
그녀를 위해서는 재산과 권력은 물론, 목숨도 바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대부분의 사내였다.
그리고, 여인들은 교황의 명령에 따라 그 사내들의 애간장을 녹이면서 교황의 권력을 강하게 만들었고 말이다.
정말, 무서운 놈이다.
벌컥.
헤르만 자작의 영주성에 위치한 감옥에서 벗어난 나.
그런 나의 눈에 금발의 소년과 그 소년을 막아서고 있는 칼론이 보였다.
“어머니는! 어머니는 왜 잡아 놓은 것이냐!”
내가 밖으로 나서자마자 나를 향해 소리치는 소년.
나는 그 소년을 보며 입을 열었다.
“헤이인가?”
“그렇다! 아버지는 어디 계시는 것이냐!”
나의 물음에 대답하면서도 아버지를 찾는 헤이.
그런 헤이를 보며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헤르만 자작도 불쌍하지만 이 아이도 불쌍한 녀석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녀석.
그에 녀석이 측은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네 아버지가 동의한 일이야. 너의 어머니를 가두는 것.”
“거짓말하지 마라! 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어!”
나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하는 헤이.
나는 걸음을 옮겨 그런 헤이의 앞에 멈추어 섰다.
스윽.
내가 다가오자 뒤로 물러섰고, 나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헤이의 턱을 잡았다.
그러고는 내 두 눈을 바라보게 고개를 들어 고정했다.
“야, 너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잖아?”
“!!!”
나의 물음에 급격하게 떨리는 헤이의 두 눈동자.
나는 그런 헤이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에게 가.”
“…….”
“네 아버지인 헤르만 자작에게 가서 직접 들어.”
이것이 내가 보일 수 있는 녀석에 대한 예의다.
싸늘한 미소와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으며 내가 말하자 헤이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헤이를 지나쳤다.
“…….”
그런 녀석을 지나치고 걸음을 옮기던 나와 두 눈이 마주친 샤를로트.
그녀가 두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를 지나쳤다.
지금 내 모습을 보고 차가운 사람이라고 비난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없어지겠지.
“요한…….”
그때, 나의 귀로 들려오는 목소리.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나의 손을 잡는 엘로나가 보였다.
“가자.”
그에 나는 그런 엘로나의 손을 강하게 쥐며 말했고, 엘로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의 옆에서 걸음을 옮겼다.
* * *
“너무하는군.”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노사.
그는 주저앉아서 멍한 표정을 짓는 헤이와 그런 헤이를 지나치는 요한을 보며 차가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카노사의 의견에 반발하는 아름다운 목소리.
바로, 그들의 옆에 있던 샤를로트였다.
샤를로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카노사.
그가 고개를 돌려 샤를로트를 바라보았다.
“공작은 어찌 저자를 그렇게 믿는 것입니까?”
“제가 본 저자는 가볍게 움직이면서도, 또 하나하나 그 뜻을 생각하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며, 차가워 보이지만, 상대방을 위해 인성적인 판단을 하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흐음…….”
카노사의 물음에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한 샤를로트.
그런 샤를로트의 대답에 카노사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하인리히를 바라보았다.
“그대가 보았을 때는 어땠는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인리히마저 샤를로트와 같은 뜻으로 대답하자 카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복잡한 사연이 있나 보군. 하인리히 경. 그대가 알아봐 주겠는가?”
“알겠습니다.”
카노사의 부탁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
* * *
똑똑.
집무실로 돌아와 생각을 정리하던 헤르만 자작.
그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자신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인상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누구냐!”
신경질적인 헤르만 자작의 물음에 문밖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에 신경질이 난 헤르만 자작이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이곳에 들이려는 집사를 혼내기 위해서였다.
“아버지, 저입니다.”
멈칫.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밖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헤르만 자작은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 가장 만나기 껄끄러운 존재.
생각이 채 정리되지 않았던 헤르만 자작은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두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물러가거라.”
자신의 대답에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 문밖.
그에 헤르만 자작은 걸음을 옮겨, 집무실에 마련된 소파에 앉았다.
“아버지…….”
그때, 문밖에서 다시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
그에 헤르만 자작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두 눈을 감을 뿐이었다.
아직은……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 맞지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밖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에 헤르만 자작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버지…… 크흑…….”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아들.
헤르만 자작은 문득 생각이 났다.
15년간 변함없이, 자신의 속을 단 한 번도 썩이지 않았으며, 자신의 말을 잘 듣고 그 누구보다 반듯하게 자라 자신의 자랑거리였던 아들.
그런 아들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헤르만 자작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다.
“물러…… 가거라…….”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자작의 대답에 문밖에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아들인 헤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잠시, 집무실의 문 하나로 나누어진 공간에 있던 자작과 헤이.
헤르만 자작은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는 알고 있었느냐……?”
“크흑!”
헤르만 자작의 물음에 그저 흐느끼기만 하는 헤이.
그에 헤르만 자작은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헤이, 자신이 15년 동안 사랑해왔던 자신의 아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에 격분한 헤르만 자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벌컥!
그러고는 강하게 문을 열었다.
“아버지…….”
강하게 문을 열자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헤이가 보였다.
분노로 두 눈이 뒤집힌 헤르만 자작은 그런 헤이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헤이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너도 알고 있었구나! 그동안 네 어미와 나를 속여 먹으니 재미있었더냐!”
“아버지…….”
저택의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헤르만 자작의 목소리에 헤이는 고개를 숙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의 분노 어린 모습에 그저 눈물만 흘렸다.
“내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 누구보다 아껴왔던 아들 헤이.
그의 배신이 너무나도 가슴 아픈 헤르만 자작은 헤이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죄송…… 죄송합니다…….”
그런 자작을 향해 흐느끼며 사과를 건넨 헤이.
자작은 그런 헤이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이내 그를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던졌다.
“꺼져라.”
“아버지!”
“넌 내 아들이 아니다!”
헤이의 부름에 붉어진 얼굴로 소리친 헤르만 자작.
그에 헤이는 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제 아버지는 한 분뿐입니다!”
멈칫.
헤이의 절규에 집무실에 들어서려던 헤르만 자작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에 헤이는 다시 소리쳤다.
“어릴 때부터 사용인들과 가신들이 쑥덕이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버지와 하나도 닮지 않은 저를 보며 수군거리는 것을 말입니다!”
“…….”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매일 같이 일찍 일어나 학문과 검술에 힘썼으며,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 제 감정을 참아가며 예를 지켜왔습니다!”
헤이의 절절한 소리침에 헤르만 자작은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두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저에게 아버지는 한 분뿐입니다. 아버지…….”
“아아…….”
“저를 부디 버리지 말아 주세요…….”
헤이.
그는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을 돌보던 시녀들과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면서도 의심하던 기사들과 가신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눈총을 받아온 헤이다.
어찌 모를까?
자신이 보아도, 자신은 헤르만 자작과 전혀 닮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헤이에게 있어서 헤르만 자작은 하나뿐인 아버지이다.
그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그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헤이는 매일같이 노력해왔다.
그리고 헤이는 언제나 생각했다.
자신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단 한 명.
헤르만 자작뿐이라고 말이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 아들입니다…….”
계속된 절규로 인해 갈라진 목소리.
그런 헤이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숙였고, 그에 헤르만 자작은…….
와락.
몸을 돌려 무릎을 꿇은 헤이를 부둥켜안았다.
그러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넌…… 내 아들이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