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7화
제187편 팔라딘 Paladin(2)
“으음…….”
“칼론 경! 정신이 드나요?!”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잠도 제대로 자지 않은 채, 매일, 24시간 동안 칼론의 옆을 지킨 루멘.
칼론의 손을 잡고 기도를 올리던 루멘은 작은 신음을 내는 칼론의 모습에 두 눈을 크게 뜨며 칼론을 불렀다.
“무…… 물…….”
갈라진 칼론의 입술 사이로 들려오는 목소리.
그에 루멘은 옆에 있던 물수건을 들어 칼론의 입술을 살짝 적셔주었다.
칼론이 언제 일어날지 몰라 2시간마다 깨끗한 물수건으로 갈아놓은 루멘의 정성이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칼론의 갈증을 조금 해소한 루멘은 손을 들어 칼론의 가슴에 얹었다.
우웅!
그러자 루멘의 양손에서는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고, 이내 칼론의 몸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어 갔다.
우웅!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칼론의 몸으로 스며들던 새하얀 신성력이 다시 튕겨 나왔다.
처음 보는 괴현상에 루멘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성력을 본능적으로 좋아해야 할 인간이 신성력을 튕겨내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성…… 녀……?”
그때,
칼론의 음성이 루멘의 귀에 들려왔다.
그에 루멘은 떨리는 눈동자로 몸을 일으키는 칼론을 바라보았다.
그런 루멘의 모습에 칼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은 분명 죽었다.
심장에 꽂히던 칼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이 나는 자신이다.
지옥에서도 보라색의 지옥불에 벌도 받았다.
한데 왜 그런 자신의 눈앞에 성녀인 루멘이 있을까?
설마 루멘도 죽은 것일까?
칼론이 별의별 상상을 하며 루멘을 바라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얼굴로 말이다.
또륵.
그때, 칼론의 그런 표정에 루멘의 아름다운 두 눈동자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 성녀!”
멍한 표정으로 루멘을 바라보던 칼론은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루멘을 바라보았다.
와락!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멘의 눈물을 보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려던 칼론은 모든 행동을 그대로 멈추었다.
“다행…… 정말 다행이에요…….”
자신의 품에 안겨, 너무나도 애처롭게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루멘의 행동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품에 안겨 다행이라는 소리를 계속해서 내뱉는 루멘의 모습에 칼론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 설마…… 내가 살아있는 것입니까?”
믿기지 않는 이 상황에 칼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루멘은 칼론의 품에서 얼굴을 들었다.
그러고는 눈물을 흘리는 얼굴로 칼론을 올려다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밝게 대답하는 루멘의 모습에 칼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신은 분명, 지옥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살아있다니?
우웅!
그때, 평소 칼론의 심장 속에 잠들어 있던 쿠르스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아…….”
그러자 느껴졌다.
지옥에서 보았던, 흑색의 쿠르스.
변화한 친구의 모습이 말이다.
그에 칼론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를…… 살려주신 것입니까.”
자신을 향해 나의 검이라 칭한 신적인 존재.
칼론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자신의 몸속에 새로 자리를 잡은 힘.
신성력이라는 힘과 강해진 쿠르스의 기운. 그리고 자신이 다시 살아난 것은 주신, 에르의 뜻이라는 것을 말이다.
“칼론 경……?”
그때.
칼론은 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두 눈을 크게 뜬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사랑스러운 여인.
아직도 그 큰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에 칼론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루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칼론 경…….”
너무나도 따뜻한 미소와 손길에 당황한 루멘.
그런 그녀가 당황한 어조로 칼론의 이름을 불렀다.
그에 칼론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나직한 칼론의 한마디.
듣기 좋은 중저음에 부드러움까지 더한 칼론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그에 얼굴이 붉어진 루멘이 고개를 숙였다.
칼론의 두 눈동자를 마주하기에는 너무나도 부끄러웠던 것이다.
턱.
하지만 루멘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는 루멘의 턱을 칼론이 다시 잡고 들어 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잘생긴 칼론의 얼굴이 루멘의 얼굴로 천천히 다가왔다.
두 눈을 살짝 감은 채 말이다.
그에 루멘은 두 눈을 크게 떴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의 입술을 포개어오는 부드러운 칼론의 입술에 두 눈을 감았다.
* * *
띠링!
트레이 교단의 대사제인 크림슨에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성기사단장의 인물을 알려주려는 그때.
나는 오랜만에 들려오는 반가운 알림음과 동시에 나의 눈 앞에 펼쳐진 반투명한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36. 트레이 교단, 최초의 성기사의 탄생
기사의 명예를 잃어버린 불명예 기사.
하지만 그가 황태자이자 성자인 요한에게 가지고 있는 충심은 신인 에르마저 감동하게 할 정도이다.
그에, 신은 그 불명예 기사에게 새로운 성기사의 힘.
팔라딘 Paladin의 힘을 선사하였다.
새로운 팔라딘, 그를 수하로 맞이하고 트레이 교단의 성기사단장으로 맞이하자.
성공보상 : 팔라딘, 신성력 +10, 매력+5, 위엄+5.
“!!!”
나의 눈 앞에 펼쳐진 새로운 임무 창.
그 임무 창의 내용을 확인한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니까…….
칼론이 잠에서 깨어났다는 뜻이 아닌가?
“전하……?”
그때, 갑작스럽게 놀라는 나의 모습에 크림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크림슨을 바라보았다.
“함께 가시지요.”
느껴진다.
황태자인 나와 나의 기사인 칼론만이 사용 가능한 연무장.
그곳에서 나를 부르는 듯한 강력한 기운이 말이다.
그에 씨익 미소를 지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크림슨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한창 성기사단장 후보 인물을 들어야 하는 지금.
그 대답을 듣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함께 가자는 나의 말은 확실히 당황스러울 만하다.
나라도 아주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수상하게 웃는 나를 보며 크림슨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으니 따라가겠습니다.”
이런, 처세술이 좋아지더니 눈치도 좋아졌나 보다.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크림슨을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가시지요.”
그렇게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고, 그런 나의 뒤로 크림슨이 따라나섰다.
* * *
“하 저 새X봐라.”
연무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붉은 머리의 한 청년.
너무나도 당당하게 서 있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연무장 한가운데 서 있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연무장을 울리는 나의 목소리에 가만히 서 있던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붉은 머리와 눈이 인상적인 청년.
한때, 나의 기사였던 칼론의 두 눈동자와 나의 두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쳤다.
“주군.”
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 칼론의 목소리.
그에 나는 다시 피식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우웅.
내가 손을 뻗음과 동시에 생성된 겔루 칼립스.
대검인 겔루 칼립스를 가볍게 들어 어깨에 걸친 나는 삐딱한 자세로 칼론을 바라보았다.
“좀 맞아야겠지?”
나의 건들거리는 물음에 칼론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쭈?
나의 이런 장난에 매일같이 울상을 짓던 놈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받아친다.
좀처럼 보기 힘든 녀석의 모습에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칼론은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저 이제 기사 아니지 않습니까?”
역시, 소식을 들었나 보다.
칼론의 물음에 나는 칼론의 뒤에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루멘을 슬쩍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렇지, 근데 성녀 입술은 왜 저렇게 빨개?”
“!!!”
평소와 달리 유난히 붉은 성녀의 입술에 내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묻자 루멘은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입술을 가렸다.
“뽀뽀했다.”
그때.
나의 귀로 칼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하지 못했을 뻔뻔한 대답과 회귀 전, 전생에서 들었던 친근한 말투가 말이다.
“…….”
그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칼론을 바라보았다.
전생에서 나를 향해 지어주던 유쾌한 미소를 지은 칼론.
녀석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나의 눈빛에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 더 이상 기사 아니잖아?”
능글맞게 대답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래, 회귀 전 내가 아는 칼론의 성격은 저 성격이다.
그에 나는 너무나도 당혹스러웠고…….
“새X…….”
또 아주 반가웠다.
무능력과 열등감에 폭발한 나의 옆에서 항상 친구가 되어 주었던 칼론.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칼론 또한 미소를 지었다.
“건방져 아주.”
“사촌에다가, 친구잖아?”
“그래 친구다 이 자식아.”
칼론의 대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칼론이 정신을 차렸다는 것을 듣고 나의 연무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엘로나와 위즐리, 메이슨, 레헤튼, 루드비히 후작, 크림슨, 그리고 아버지와 실까지.
실 저 양반은 직접 찾아오라고 전하라 하더니 결국 자기가 찾아왔다.
하여튼 말이랑 행동이 참 다른 양반이다.
아무튼, 갑작스럽게 달라진 칼론의 행동에 모든 인물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고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칼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칼론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여유롭게 넘겼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한번 놀아보자. 친구야!”
“그래 이 새X야!”
칼론의 입에서 나온 친구라는 소리.
그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다음 칼론에게 달려들었다.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칼론에게 휘둘려지는 나의 겔루 칼립스.
칼론은 루드비히 후작에게 받은 붉은색의 검을 들어 나의 검을 막았다.
카가가각!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손목을 꺾어 나의 대검, 겔루 칼립스를 흘려보내었다.
이 기술은 내가 자주 쓰는 기술인데 역으로 당하니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뭐해?”
그런 나를 향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칼론이 물었다.
그에 나는 다시 회귀 전, 자주 있었던 기억을 하나 떠올렸다.
‘뭐하냐?’
‘한 대만 맞아라!’
10대 중반의 나. 칼론에게 어떻게든 일격을 허용하기 위해서 나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고…….
‘바보.’
주군인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바보라 칭하며, 나의 검 하나하나를 막아내는 어린 칼론.
‘크아아! 이 새X!'
'푸하하!‘
그런 얄미운 칼론의 모습에 나는 폭발하며 다시 검을 휘둘렀고 칼론은 크게 웃으며 계속해서 나의 검을 하나하나 막아내었다.
그리운 전생의 추억이었다.
그에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넌 죽었어.”
추억이 되살아나니 나는 그때로 되돌아간 것만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마치 잃었던 친구를 되찾은 기분이랄까?
검을 휘두르는 나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죽이지는 말아주라.”
능글맞게 대답하면서 나의 검을 받아치는 칼론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