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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대공가의 귀한 아들-186화 (186/226)

제 186화

제186편 팔라딘 Paladin(1)

“하실 이야기는 이제 끝이신 것입니까?”

사제 임명권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아무 말이 없는 나를 보며 크림슨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누가 보아도 불편해 죽겠으니, 그만 보내달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짓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설마요, 한데 저랑 있는 것이 불편하십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의 물음에 언제 불편했냐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크림슨이 대답했다.

그런 크림슨을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연기가 많이 늘었습니다.”

“처세술이라고 해주시지요.”

교단의 대사제나 되는 인물이 처세술이 늘었다라…….

분명 좋은 뜻은 아닐 것인데 되려 당당하게 말하는 크림슨을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교단만을 위한, 독자적인 무력집단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이곳에 부른 이유 중 가장 큰 이유.

그 용건을 내가 꺼내며 입을 열자 크림슨은 두 눈을 반짝거렸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성기사들을 말입니까?”

그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크림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교단의 세가 확장이 되면서 이제는 스스로 지킬 힘이 필요해진 트레이 교단이다.

또한, 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지키기 위해서는 그 어느 창에도 뚫리지 않는 방패가 필요하다.

그것이 곧 무력이고 말이다.

아무튼, 적극 동의하는 크림슨을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성자인 제가, 그 무력집단을 준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나의 말에 흥분 어린 표정을 짓던 크림슨이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힘없는 두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설마…… 성기사들의 서임권도…….”

피식.

떨리는 크림슨의 물음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설마 내가 그 권한까지도 가져갈까 봐?

안심하라는 듯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요, 그것은 성기사단장의 권한으로 정하고 싶습니다, 성자인 저와 황제인 폐하. 그리고 대사제인 크림슨 님의 입김이 아닌, 성기사단장 그의 의지로 말입니다.”

“하면…… 성기사단장의 힘이 너무 커질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나의 의견에 크림슨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확실히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크림슨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나의 의견을 보충하기 위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성기사단장을 임명하는 사람은 성자인 나와, 대사제인 그대가 될 것입니다…….”

“혹시나…… 부정부패가 일어나 자격도 되지 않는 이가 성기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말에 그래도 걱정된다는 듯 크림슨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우리가 잘해야지요.”

“네?”

“성기사단장. 그 자리를 믿을만한 인물에게 맡기면 됩니다.”

“…….”

나의 말에 동의하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크림슨.

그가 고개를 들어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성기사단장 해임도, 우리 둘이 결정하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교단의 최고직위인 그대와 성자인 제가. 상의 후, 서로 동의하에 이루어지겠지요.”

나의 대답에 크림슨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기사 서임권은 기사단장이 지니고 있지만, 그 기사단장의 서임권과 해임권은 성자인 나와 대사제인 크림슨이 가진다.

그것은 곧, 성기사단장의 권력을 인정해주되, 언제든지 컨트롤 할 수 있도록 목줄을 쥐고 있겠다는 뜻을 크림슨이 이해한 것이다.

“혹, 생각해 두신 인물이 있으신 겁니까?”

가만히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크림슨.

그가 나를 보며 물었고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허락이 필요한 것 맞습니까?”

나의 대답에 크림슨이 다시 조심스레 물었고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합니다. 그대는 트레이 교단의 대사제이니까요.”

“알겠습니다! 누구입니까?”

나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크림슨.

그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물었다.

씨익.

그리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 * *

“여…… 여기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의 공간.

그곳에 홀로 존재하게 된 칼론은 주변을 둘러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군의 앞에서 심장에 검을 꽂은 것을 기억한 칼론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옥인 것인가…….”

주군의 앞에서 자결을 한 불명예스러운 기사.

그것이 자신이다.

어찌 죽어서도 편안할까?

그에, 칼론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군…… 죄송합니다.”

기억이 난다.

자신의 검이 심장을 향할 때.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주군의 모습이 말이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입을 가리던 성녀, 루멘이 떠올랐다.

그 두 사람에게 자신은 너무나도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편하구나.”

자신이 사랑했었고, 또 미워하고 괴롭고 죽고 싶게 만들었던 레브.

그녀를 죽이고 모든 것을 정리한 칼론이었기에 홀가분했다.

그의 몸을 짓누르던 죄책감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에 칼론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마 이 앞에서부터는, 끔찍한 지옥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는 칼론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지옥으로 다가가는 그의 모습이 이렇게나 가벼울 수가 있을까?

모든 존재가 고개를 갸웃거릴 행동이었지만 칼론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의 몸을 강하게 짓누르던 죄책감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화륵!

그때.

칼론의 양옆에서 보라색의 불꽃이 갑작스럽게 피어났다.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공간을 희미하게 밝혀주는 보라색의 불꽃.

칼론은 그 불꽃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쿠르스…….”

보라색의 불꽃 안에 존재하고 있는 자신의 친구.

고대 불의 정령 쿠르스가 보라색의 불꽃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이잉!

그런 자신을 향해 살려달라는 듯 괴로운 소리를 내는 쿠르스.

그에 칼론은 화들짝 놀라며 보라색의 불꽃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화르륵!

“크아아아!”

순식간이었다.

작은 보라색의 불꽃은 칼론의 손에 닿자마자 그의 전신을 뒤덮었고, 칼론은 타오를 듯한 고통에 괴성을 내지르며 주저앉았다.

“크아아아!!”

손바닥으로 쓸어보고, 땅바닥에 굴러보아도 도저히 꺼지지 않는 불꽃.

고대 불의 정령 쿠르스와 계약을 하고, 주군인 요한이 건네준 이그니스의 숨결을 배우고 난 이후, 불에 강한 내성을 지녀 이런 고통을 느끼지 못했기에 더욱더 괴로웠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으니 말이다.

“허억…… 허억…….”

잠시 후.

칼론은 전신을 뒤덮은 화염과 그를 괴롭히던 고통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는 땅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호흡을 골랐다.

“허억…….”

불길이 사라졌음에도 아직 남아있는 타오를 듯한 고통.

그에 칼론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곳이 지옥인 듯하다.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보라색 불꽃들.

마치 자신을 인도하듯 양옆으로 환하게 비추며 길을 만든 수십 개의 불꽃을 보며 칼론은 굳건한 표정을 지었다.

스윽.

그러고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몸을 일으켰다.

“에르 님.”

요한이 모시는 신인 에르.

그의 이름을 부른 칼론이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어떤 벌이든 당당하게 받겠습니다.”

주군을 총애하는 신이다.

그에게 주군의 신하였던 자신이 못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하고, 당당하게 벌을 받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충성일 테니 말이다.

저벅.

칼론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칼론은 한참을 걸었다.

시간이 도저히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체감상으로도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답답할 법도 하건만 칼론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처음과 다름없이 당당한 걸음으로 말이다.

그때였다.

히이잉!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은 칼론.

그가 저 멀리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익숙한 형태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다그닥 다그닥!

네 개의 발을 빠르게 움직이며 칼론의 앞에 도착한 거대한 말.

칼론은 자신의 앞에 멈추어선 거대한 말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친구 쿠르스와는 달랐다.

백색이었던 피부는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이 되어 있었고, 붉은색의 화염으로 이루어져 있던 말갈기는 보라색의 화염으로 바뀌어 있었다.

또 그와 마찬가지로, 붉은색의 화염에 휩싸여있던 말발굽은 보라색의 화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기에다가 전체적으로 쿠르스보다 덩치가 컸다.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지만 칼론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 아름답고 당당한 자태를 자랑하는 이 말이, 자신의 친구 쿠르스라는 것을 말이다.

히이잉!

칼론이 반가운 마음에 손을 뻗자 쿠르스는 자신의 뺨을 칼론의 손에 갖다 대고는 비볐다.

마치, 보고 싶었다는 듯,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에 칼론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쿠르스의 뺨, 그리고 목을 쓰다듬었다.

“미안해 쿠르스.”

히이잉!

칼론의 사과에 괜찮다는 듯 다시 소리를 내는 쿠르스.

그에 칼론은 살짝 슬픈 미소를 지었다.

정말 미안했다.

자신이 이렇게 죽게 되어, 쿠르스는 더 이상 넓은 초원을 달리지 못할 테니 말이다.

히이잉!

그때.

쿠르스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마치 자신의 등에 타라는 듯 말이다.

그에 칼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에서 말을 타라고?

자신은 벌을 받으러 가는 중이다.

어찌 친구의 등을 타고 움직일 수가 있을까?

칼론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쿠르스.”

히이잉!

칼론의 거절에 신경질을 부리듯 투레질을 하며 소리를 내는 쿠르스.

처음 보는 쿠르스의 모습에 칼론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벗인 쿠르스가 이렇게 격하게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마지막으로 나랑 달려보자.”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칼론은 억지를 부리는 쿠르스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다음 녀석의 목을 쓰다듬었다.

타앗!

그리고 익숙한 자세로 그런 쿠르스의 등에 올라섰다.

히이잉!

칼론이 쿠르스의 등에 올라타자 앞발을 들어 올리며 울음소리를 낸 쿠르스.

그에 칼론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가자.”

히이잉!

칼론의 나직한 한마디.

그에 쿠르스는 알겠다는 듯이 짧게 대답한 다음 보라색의 화염에 휩싸인 네 개의 발굽을 빠르게 움직였다.

다그닥, 다그닥.

거대한 덩치에 맞게 거대한 소리를 내며 달려나가는 쿠르스.

칼론은 자신의 머리칼을 넘기는 시원한 바람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너, 빨라졌구나!”

너무나도 빨라진 속도에 환한 미소를 지은 칼론.

히이잉!

그런 칼론의 말에 쿠르스는 여유롭게 대답한 다음 속도를 더욱 올렸다.

“하핫!”

그에 칼론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머리칼을 넘기는 바람이 너무나도 시원해 기분이 너무나도 좋았다.

-너는, 나의. 검이다.-

그 순간, 칼론의 귀로 웅장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앗!

그와 동시에 보라색의 화염이 안내한 길 맨 끝.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며 고고하게 서 있던 하얀색의 빛을 향해 쿠르스와 칼론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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