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3화
제183편 성자의 기적
내 이름은 스칼렛.
올해 7살이 된 깜찍한 소녀이다.
오늘은 국교 뭐시기라는 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하여 나는 매일매일 사과 장사를 하는 아빠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사과를 파는 아빠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장사를 하지 않고 나와 함께 나가자고 했기에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오랜만에 아빠와 놀게 되었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와아!”
잠시 후.
나는 축제가 열리는, 황궁의 광장에 도착했다.
그러자 보이는 수많은 인파가 몰린 광장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태어나서 처음이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이렇게나 드넓은 장소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을 본 것이 말이다.
“스칼렛, 아빠 손 꼭 잡으렴.”
나의 손에 쥐어진 거대한 아빠의 손.
아빠가 나의 손을 꽉 잡으며 말하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뭐라 하지 않더라도 그럴 생각이었다.
이런 데서 손을 놓으면 바로 아빠와 헤어질 것 같아서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빠,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있어?”
광장의 구석.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런 나의 물음에 아빠는 사과가 많이 팔린 날에나 지어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헤헤.”
그런 아빠의 미소에 나 또한 미소를 지었다.
행복해 보이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나도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에르 님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이란다.”
“에르?”
“님이라고 해야지.”
아빠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빠가 살짝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주의를 주었다.
그에 나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 님.”
“그래, 에르 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굽어살펴주신단다.”
“굽어살펴?”
아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그에 아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긁적거리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스칼렛은 누가 돌봐주고 있지?”
“아빠 엄마!”
아빠의 물음에 나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매일같이 나를 혼내지만, 나를 위해서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해주며 동화책을 읽어주는 엄마.
매일매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지만 우리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무거운 사과 상자를 이끌고 장사를 하는 아빠.
때로는 술에 취해 늦게 들어와 잠든 나를 뽀뽀로 깨우는 아빠였지만 나는 아빠랑 엄마가 좋았다.
그런 나의 대답에 아빠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모든 사람에게 엄마, 아빠 같은 존재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도?”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영지에 살고 있는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를 언급하며 내가 묻자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한스도?”
옆 동네에 위치한 꼬마 대장 한스.
내가 내심 신랑감으로 찍은 한스를 떠올리며 묻자 아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스에게도 엄마 아빠 같은 분이란다.”
“와아! 그럼 나도 저렇게 기도할까?”
아빠의 말에 나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아빠에게 물었고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집에 가서 엄마랑 같이 기도드리자.”
“응! 엄마랑 같이할래!”
아빠의 말이 옳은 것 같다.
나는 아빠의 말에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와아!!!
그때,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광장이 떠나가듯 거대한 함성을 내질렀다.
그에 나는 울상을 지으며 귀를 막았지만 그것도 잠시.
“와아…….”
열린 문 사이로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한 사내를 보고는 그대로 입을 벌렸다.
검은색의 머리칼과 붉은 눈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남자.
그 남자의 등장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에 나는 정했다.
한스?
필요 없었다.
오늘부터 저 남자가 내 신랑감이다.
“아빠. 저 남자 누구야?”
“말조심해야지! 저분이 바로, 우리 제국의 영웅인 황태자 전하시란다.”
나의 말에 화들짝 놀란 아빠가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주의를 주면서도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남자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그에 나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시장 사람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던 황태자.
당연히 그를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그를 존경하고, 남자아이들도 그처럼 되겠다고 맨날 나뭇가지 들고 뛰어다녔기 때문에 모를 리가 없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오늘 보니까, 어쩜…….
동화 속에서 공주를 구해주는 왕자님보다 더 아름다운 분이다.
그때.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황태자의 모습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그에 나는 그대로 굳어 버린 채로 황태자를 바라보았고, 황태자는…….
‘안녕.’
입 모양으로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었다.
어쩜…… 너무나도 완벽한 남자였다.
나의 왕자님인 황태자가 참가하고 잠시 후.
무서운 기운을 내뿜는 황제가 등장했다.
그에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아빠와 함께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이후에는 지겨웠다.
알 수 없는 말이 계속해서 나왔다.
빨리 끝나고 아빠가 맛있는 음식을 사주었으면 좋겠다.
“와아!”
그때.
나는 너무나도 예쁜 언니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백금발에 황금색의 두 눈동자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언니였다.
동화 속에서 나오는 공주님일까?
너무 예뻤다.
아무튼, 그 언니야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황제라는 아저씨가 짧게 한마디 했다.
그에 사람들은 환호했고 나는 지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끼익.
그때.
나는 갑자기 열리는 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지금 열리는 것이지?
아빠나 다른 사람들은 환호하고 있어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뭘까?
나는 열린 문 사이로 이곳에 들어오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적발 적안이 아름다운 미남자였지만…….
“꺄악!”
그의 몸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피 칠갑을 한 사내의 모습에 나는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고 이내 깜짝 놀란 아빠가 나의 입을 막았다.
“읍읍!”
아빠 저기 봐바! 무서운 사람이야! 도망치자!
“괜찮아…… 저분은 칼론 님이셔.”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치는 나의 입을 꽉 막으며 나의 귀에 속삭이는 아빠.
그에 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사 칼론 님이라고?
한스가 매일같이 닮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그 기사?
그에 나는 다시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왼쪽에 어른 머리통만 한 주머니를 들고 있는 사내의 모습은 너무나도 무서웠고…… 또 묘하게 멋있었다.
털썩.
그때.
칼론이라는 기사가 황제를 향해 무릎을 꿇었고, 황태자는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왕자…… 아니 황태자님, 놀라면 안 되는데 말이다.
괜히 칼론이 미워졌다.
스윽.
나는 나의 입을 막고 있는 아빠의 손이 사라지자 황급히 다시 입을 열었다.
“왜 황태자님이 저렇게 놀라시는 거야?”
“칼론 님의 친구시거든.”
“그렇구나.”
나의 물음에 아빠는 칼론을 빤히 바라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시 우리 황태자님을 바라보았다.
“아빠…….”
무섭다.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황태자와 황제.
그리고 너무나도 무거운 분위기.
나는 무서웠기에 아빠의 손을 꽉 잡았고, 아빠는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괜찮아.”
나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주는 아빠.
그에 용기를 얻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꺄악!”
그리고, 혓바닥을 길게 내뱉으며 죽어있는 여인의 머리통을 볼 수 있었다.
소리를 지르는 나의 뒷머리를 잡고 품에 안은 아빠.
“아빠…… 아빠…….”
“괜찮아…… 괜찮아…….”
나는 너무나도 놀라서 두서없이 아빠만을 불렀다.
그런 나의 등을 다독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정시켜주는 아빠.
그에 나는 놀란 가슴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훌쩍.”
저 칼론이라는 기사가 너무나도 불쌍했다.
미쳐버린 자신의 연인과 그에 죄책감을 느끼고, 주군에게 피해를 끼치자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연인을 죽인 기사.
“아빠…… 너무 불쌍해…….”
“그래…….”
나의 말에 아빠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 칼론이라는 기사…… 정말 너무 불쌍했다.
“죄송합니다.”
푸욱!
그리고 그때, 드넓은 광장에 칼론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동시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살을 파고드는 소리가 울렸다.
“칼론!”
“칼론!”
그리고, 광장에는 절규와 같은 황태자의 소리침과, 붉은 머리의 한 아저씨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아…… 아빠…….”
어떻게…….
저 불쌍한 기사…….
자신의 연인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너무 불쌍해서 어떻게?
칼론이라는 기사가 살아서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울먹이며 아빠를 불렀지만 아빠는 대답이 없었다.
그에 내가 고개를 들자 굳어있는 아빠를 볼 수 있었다.
“아빠……?”
“칼론 님…….”
황태자의 품에 안겨 피를 흘리고 있는 칼론.
그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아빠의 모습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나도 슬프지만 우리 아빠도 슬픈가 보다.
“와아! 아빠!”
그때, 나는 보았다.
맑은 하늘에서 생성된 보라색의 아름다운 빛기둥이.
그 빛기둥에 놀란 나는 아빠를 불렀고 아빠는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예뻐! 엄마 같아!”
하늘에서 생성된 보라색의 빛기둥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그에 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아빠는 눈물을 흘렸다.
“아빠……?”
그리고, 무릎을 꿇는 아빠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아…….”
“에르 님이시여…….”
“성자의 기적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꿇으며 두 손을 모으자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윽…….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무릎을 꿇었다.
“아아…….”
그렇게 광장에 존재하던 모두가 찬란한 보라색 빛기둥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개중에는 우리 아빠처럼 눈물을 흘리는 인물도 있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심장에 검이 박혀있던 기사, 칼론.
그의 심장에서 검이 뽑혀 나왔고, 곧이어 그의 피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보라색의 빛이 칼론의 심장에 앉았고 칼론의 상처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창백했던 기사 칼론의 안색이 보통 사람처럼 돌아오기 시작했다.
“와아!”
칼론이라는 기사.
자신의 연인을 지키지 못해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가 동화처럼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에 나는 차오르는 기쁨에 환호했다.
다행이다!
이제 저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결말이라 너무 다행이다.
“아빠 정말 다행이다!”
그런 칼론의 모습에 나는 폴짝 뛰며 아빠에게 안겨들었고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나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그러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자의 기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