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0화
제180편 진실을 안 칼론
똑똑.
“들어가겠습니다.”
침대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던 칼론.
그는 자신의 방문에서 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사내를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그런 칼론을 보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묻는 금발의 미남, 게슈레.
그의 물음에 칼론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비어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일단은 앉으시지요.”
“네.”
칼론의 권유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게슈레는 침대 옆에 위치해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조금은 초췌한 모습인 칼론을 바라보았다.
“전하께서는 조금 늦으실 것입니다.”
“오늘, 국교 선언식의 날입니까?”
게슈레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칼론이 묻자 게슈레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칼론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시끌시끌하더군요…… 오래 잠들어 있었네요.”
“정확히 3일간 잠들어 있었습니다.”
칼론의 말에 게슈레가 정확히 말해주자 칼론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주군께 또 무례를 범했군요.”
“아마 지금 칼론 경의 이야기를 전하가 들으셨다면 화내셨을 것입니다.”
칼론의 말에 게슈레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칼론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지었다.
상상이 되었다.
자신에게 욕을 하며 화내는 주군의 모습이 말이다.
그렇게 잠시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칼론과 게슈레.
그들의 침묵은 칼론에 의해 깨졌다.
“대공 전하의 휴가지 발설. 잡았습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칼론이 게슈레에게 묻자 게슈레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황궁 내에 타 대륙, 신성교국의 첩자가 있었습니다. 그에 분노한 황제께서 성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전하께서 막으셨습니다.”
“그래도, 성녀가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하께서 폐하께 조건을 거셨습니다. 성녀인 그녀가 국교 선언식에 참가하여 트레이 교단을 인정한다고 공언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신성교국의 교황과 같은 위치인 성녀.
교국의 상징과도 같은 그녀가 트레이 교단의 국교 선언식에 참가하고, 트레이 교단을 인정한다고 공언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그림이다.
물론 현재로써는 신성교국의 존재를 모르는 백성들이 많아 상관은 없지만 그것은 시기상조.
미래를 생각해보면 성녀의 공증을 받아 놓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기회이다.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트레이 교단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에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황권이 강화가 되는 것이다.
성자가 된 황태자 덕에 현재 백성들은 황족은 신의 선택을 받은 혈족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런 게슈레의 대답에 칼론은 가만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웃음 속에 냉철함을 숨긴 황제가 고작 그것으로 넘어간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칼론의 모습에 게슈레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선언식이 끝이 나고 정식으로 공문을 보낼 것입니다. 교황이 직접 이곳으로 와 사과를 하라고 말입니다.”
“…….”
게슈레의 말에 칼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지금 그 뜻은 타 대륙에 위치한 신성교국과 전쟁을 하겠다는 말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에 놀란 칼론이 떨리는 눈빛으로 게슈레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을 주군께서는……?”
“네, 수락하시고 직접 가시겠다고 했습니다.”
“하아…….”
게슈레의 대답에 칼론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게슈레를 바라보았다.
“일단 그건 넘어가고, 첩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심문 중입니다.”
“……?”
심문 중이라니?
모든 첩자를 잡아낸 것이 아니란 말인가?
칼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게슈레를 바라보자 게슈레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사실, 한 명 더 있는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만…… 잡힌 첩자들이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마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보 수집과 암살, 고문이 주특기인 블랙 문.
그들의 고문에도 일반인과 같은 첩자들이 입을 다문다?
절대 불가능하다.
그 뜻은 정말 서로 간의 존재를 모른다는 뜻과 같다.
그런 게슈레의 대답에 칼론은 갑자기 얼굴을 굳혔다.
“칼론 경…….?”
“실례합니다…….”
그런 칼론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게슈레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황태자 전하의 시녀 중 한 명인 여인.
게슈레도 익히 얼굴을 알고 있는 한 시녀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없으신지요? 전하께서 선언식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푹 쉬라고 하셨습니다.”
게슈레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정중히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게슈레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를 내보내려는 찰나.
“이리 와 보거라.”
시리도록 차가운 칼론의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그런 칼론의 목소리에 움찔한 시녀.
그녀가 고개를 들어 칼론과 게슈레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차가운 칼론의 목소리와 눈빛에 겁을 먹은 것이다.
“괜찮으니 와 보거라.”
칼론의 음성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느낀 게슈레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에 표정을 살짝 풀며 칼론과 게슈레에게 다가온 시녀.
칼론은 가만히 그런 시녀를 바라보았다.
그에 게슈레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시녀를 노려보는 칼론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기 때문에 잠시 지켜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스윽.
시녀가 다가와 칼론과 게슈레의 앞에 서자, 칼론은 이불을 걷었다.
그러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시녀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얼굴을 시녀에게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런 칼론의 행동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뒤로 빼는 시녀.
칼론은 그런 시녀의 행동을 무시하고는 손을 들었다.
스륵.
“역시.”
그리고 그런 시녀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손가락으로 꺼내어 보고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
갑작스러운 칼론의 행동에 놀란 표정을 짓던 게슈레.
그는 시녀의 목에 걸려 있는 펜던트를 보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게슈레가 모를 리가 없는 펜던트다.
황궁 내에 잠입해 있던 신성교국의 첩자들이 가지고 있었으며, 천신 미하일을 상징하는 하얀색 별 펜던트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황태자궁의 시녀인 그녀가 들고 있다는 것은?
스응.
그녀가 첩자라는 뜻이다.
별 모양의 펜던트를 확인한 게슈레는 허리춤 뒤에 숨겨져 있던 검을 꺼내 들어 그녀의 목에 겨누었고 칼론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별 모양의 펜던트를 쥐었다.
차악!
“꺄악!”
그리고 강하게 잡아당겨 펜던트를 그녀의 목에서 끊어내었다.
갑작스러운 칼론의 행동에 소리를 지른 그녀가 황급히 손을 들어 칼론의 손에서 펜던트를 다시 뺏으려 했지만.
“다친다.”
그녀의 목을 향해 깊게 들어오는 게슈레의 검과 차가운 목소리에 그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너, 레브의 친구지.”
황태자궁에서 레브가 일하던 시절.
그녀와 가깝게 지내던 한 시녀의 얼굴을 떠올린 칼론이 차가운 음성으로 물었고 시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 칼론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말해라.”
“무엇을 말입니까.”
칼론의 명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 시녀.
그런 시녀를 바라보며 칼론은 다시 입을 열었다.
“미하일의 신자인가.”
“그 펜던트는 그냥 주운 것이고, 예뻐서 차고 다니던 것입니다.”
칼론의 물음에 시녀가 대답하자 칼론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챙.
그러고는 펜던트를 쥐고 있던 손을 풀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맑은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펜던트. 시녀는 떨리는 눈빛으로 그런 펜던트를 내려다보았다.
콰득!
“꺄악!”
그리고 그 펜던트 위로 칼론의 발이 올라왔고, 이윽고 펜던트를 짓이겨 밟는 칼론의 행동에 시녀는 두 눈을 가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그런 시녀의 모습에 칼론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미하일의 신자가 맞는군.”
“…….”
칼론의 발길질로 가루가 되어버린 펜던트.
칼론이 발을 다시 들어 그 가루를 보여주었고 시녀는 얼굴을 그대로 굳혔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칼론을 노려보았다.
“그것이 문제가 됩니까?”
“아니, 문제 될 것은 아니야. 누구를 믿든 그것은 자유. 하지만 너는 믿는 방법이 잘못된 거야.”
“…….”
싸늘한 칼론의 말에 시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날카로운 눈빛으로 칼론을 노려볼 뿐이었다.
“레브지?”
움찔.
그때, 칼론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이름이 나오자 시녀는 눈에 띄게 움찔했다.
그러고는 두려운 표정으로 칼론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레브구나.”
그런 시녀의 모습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칼론.
그가 무서운 표정으로 다시 시녀를 바라보았다.
“레브가 시켜서, 아비뇽에게 휴가지를 발설한 것이군”
“칼론 경, 흥분을 가라앉히십시오.”
칼론의 몸에서 무서운 살기와 함께 화염이 뿜어져 나와 일렁거리자 게슈레가 차가운 목소리로 칼론에게 경고했다.
이곳은 황태자궁이며 넓게는 황제가 기거하고 있는 황궁이다.
이곳에서 살기를 일으킨다?
그것은 역모와 같은 행동이다.
그런 게슈레의 차가운 말에 정신을 차린 칼론이 살기를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게슈레를 바라보았다.
“레브는 어디 있습니까.”
“칼론 경. 전하께서 알아서 하십니다.”
칼론의 물음에 게슈레가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하자 칼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옥이군요.”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다음 시녀를 지나쳤다.
“칼론 경!”
그런 칼론의 행동에 게슈레가 황급히 언성을 높였지만 이미 칼론은 그곳에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그에 게슈레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앞에 있는 시녀를 노려보았다.
“곱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 * *
“아쉽지 않으십니까?”
“무엇이 말인가?”
황궁의 지하 감옥.
유서 깊은 가문이면서 자작이라는 낮은 작위임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깊은 신임을 받고 있는 지켜 자작가.
그곳의 주인인 지켜 자작은 보초를 서는 근위 기사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는 자신이다.
한데 그런 자신이 뭐가 아쉽다는 말인가?
그런 지켜 자작의 모습에 근위 기사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자작을 바라보았다.
“간수장님은, 제국의 귀족이십니다. 게다가 황제 폐하의 깊은 신임을 받는 명문가의 주인이십니다. 오늘 국교 선언식으로 큰 축제가 열리는데 간수장님은 거기 참석은커녕, 이 곰팡이 냄새나는 지하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피식.
답답하다는 듯 말하는 근위 기사의 모습에 지켜 자작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기사를 바라보았다.
“내가 왜 황제 폐하의 신임을 받는지 아는가?”
“무엇입니까?”
“주제를 알고, 나대지 않아서야.”
“…….”
지켜 자작의 말에 젊은 기사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에 지켜 자작은 피식 한 번 더 웃고는 마저 입을 열었다.
“그대가 남작가의 자제였나?”
“그렇습니다.”
자작의 물음에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쫙 펴며 대답하는 기사.
그에 지켜 자작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젊은 나이에 근위 기사단에 든 사내.
작위가 낮은 남작가의 자제가 근위 기사단에 드는 경우는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 이상 힘들다.
아마, 이 젊은 기사는 집안에서 영웅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에 지켜 자작은 그런 기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런 자작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사.
지켜 자작은 그런 기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되네. 그러면 언젠가는 반드시 보상이 있네. 황제 폐하는 물론 황태자 전하께서는 그런 분이시니까.”
“아…….”
지켜 자작의 물음에 기사가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자작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미소를 지으며 묻는 지켜 자작.
그런 자작을 보며 젊은 기사 또한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곳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래.”
그런 기사의 대답에 자작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기사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콰앙!
그리고 그때.
지켜 자작과 기사는 전방에서 들려오는 폭음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황궁의 지하 감옥에서 발생한 폭음.
심지어 소리가 난 전방은 지하 감옥의 입구이다.
그 뜻은?
“침입자다.”
지켜 자작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고, 젊은 기사는 벌써 소리가 난 감옥의 입구로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