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대공가의 귀한 아들-178화 (178/226)

제 178화

제178편 국교 선언식(1)

가만히 프리스트들을 지켜보고 있던 설인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잔크를 보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북부의 계곡, 설인들이 마시는 유일한 식수에 독을 풀어 자신들을 납치한 인물들이다.

납치에 그치지 않고, 저들의 수장에게 죽은 일족들의 수가 13명이다.

수장, 아비뇽이 아닌 저들이 자신들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지만 설인들에게 있어서 저들은 수장인 아비뇽과 똑같다.

똑같이 죽일 놈이고 원수이다.

증오 어린 눈빛으로 자신들을 노려보는 설인들의 모습에 잔크는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한 쇠창살의 자물쇠를 열었다.

“무슨 일이지.”

설인들의 리더 격인 눈보라 일족의 족장 위천.

그가 갑자기 쇠창살의 자물쇠를 여는 잔크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장에라도 달려들어서 잔크를 제압하고 싶었지만 위천은 힘이 없었다.

아직도 자신의 몸에 머물고 있는 독이 마나를 봉인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위천의 물음에 잔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걸음을 옮길 뿐이다.

철컹!

“…….”

철컹! 철컹!

그렇게 잔크는 동굴에 위치한 모든 쇠창살의 자물쇠를 풀었고,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런 모습에 설인들은 경계 어린 눈빛으로 잔크를 노려보았다.

그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 걸음을 옮긴 잔크.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던 잔크는 모든 설인들이 보이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설인들과 마주하였다.

증오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설인들.

개중에는 자신에게 고마워하는 설인들의 눈빛도 보였지만, 대부분의 설인들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에 죄책감이 더욱 깊어진 잔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양쪽 무릎을 꿇었고, 그대로 고개를 숙여 이마를 바닥에 붙였다.

“죄송합니다.”

“…….”

갑작스러운 잔크의 사과.

그런 사과에도 설인들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그대들은 이단도, 사탄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좁은 시야와 아집으로 그대들을 괴롭게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진심을 담아 절절한 목소리로 용서를 구하는 잔크.

그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위천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하게 위천은 알고 있었다.

독에 당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약한 여인과 노인, 그리고 아이들을 몰래 돌보아준 이가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용서를 구하고 있는 잔크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장인 사내의 명령에 반하며 자신들에게 몰래 식량을 넣어주고,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들과 여인, 그리고 노인들을 치료해주었던 사내이다.

그런 사내가 자신의 수장을 대신해 용서를 구하니 위천은 화를 내야 할지, 욕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작 사과를 해야 하는 이는 따로 있는데 그나마 호의를 품고 있던 잔크가 사과를 하니 많이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잘못은 그대의 수장이 했다.”

자신들에게, 이단이니 사탄이니 하면서 살아온 인생관을 부정하고, 모욕했으며. 신물인 겔루 칼립스의 위치를 물어보고 알아내기 위해 고문했던 아비뇽.

그를 떠올리며 위천이 이를 갈자 잔크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이를 갈고 있는 위천을 바라보았다.

“그는 죽었습니다.”

“……?”

“제국의 대공, 보스 카르미언이 그를 죽였습니다.”

“주군의 아버지가?”

설인들의 주인 요한.

그의 아버지인 보스가 그를 죽였다는 말에 위천을 포함한 모든 설인들이 동요했다.

“아아…… 북해신이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개중에는 무릎을 꿇고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설인들도 있었다.

그런 설인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잔크.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여, 새로운 수장이 된 저는. 새로운 길을 걸으려 합니다. 북해신을 믿는 그대들을 존중하고. 그대들에게 했던 행동들을 사과하고 싶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쿠웅!

이마를 바닥에 크게 찧으며 잔크는 큰 목소리로 사과했다.

잔크 또한 알고 있었다.

이들이 자신을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그런 잔크의 뒤로.

나머지 50여 명의 수하들이 잔크와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큰 목소리로 사죄했다.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그들의 모습에 위천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의 일족 중에 10여 명이 죽었다.

그 죽은 이들은 모두 수장인 아비뇽에게 고문을 당하다가 잔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 사내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하지만, 유족들은 그렇게 생각할까?

아니, 꼭 유족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설인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벗이었고, 전우였으며, 이웃이었던 존재가 죽었다.

저들이 죽인 것은 아니지만, 저들은 아비뇽의 수하들이다.

그들은 이 사내들을 보면 죽은 가족, 벗이 떠오를 것이고, 분노할 것이며, 괴로워할 것이다.

우리는 절대 이 사내를 용서할 수가 없다.

아니 못할 것이다.

“해독해라.”

“네.”

그런 잔크를 내려다보며 차가운 표정을 지은 위천.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잔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수하들과 함께 설인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몸에 있던 독을 해독해주었다.

퍼억!

그리고 그 순간, 한 사내가 잔크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주먹이 자신을 향해 날아온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하지 않았다.

털썩.

그저, 자신의 얼굴을 강타한 주먹에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졌다.

잔크.

그는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아팠다.

가슴이 말이다.

퍼억!

그리고 그런 잔크의 위에 올라타 잔크의 얼굴을 계속해서 후려치는 한 설인.

프리스트들은 그런 설인을 보며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설인들도 말리지 않았다.

퍼억!

그리고 다른 프리스트들 또한 반항하지 않고, 다른 설인들에게 주먹을 허용했다.

이렇게라도 그들의 분노가 풀린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 * *

“전하…….”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슈레.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케한은?”

며칠 전.

한 영지에서 황궁으로 보고가 올라왔다.

실종된 설인들이 케한과 그들을 납치한 사내들과 함께 황궁으로 올라간다고 말이다.

그에 황궁에서는 근위 기사들을 보내었고, 주변 영지에서 근무하던 기사들의 호위까지 받으며 황궁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그렇군.”

게슈레의 보고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는 칼론.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일어나 이 새X야.”

꾀병을 부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

그럼에도 부름이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할 녀석.

그런 녀석이 아직도 누워 있었다.

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다행히 장기를 빗겨나가 그렇게 위중한 상처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위즐리가 상처 부위를 깨끗하게 소독했고, 내가 신성력을 사용해 칼론의 상처를 치료했다.

하지만, 칼론은 깨어나지 않았다.

분명 상처가 다 치료되었는데 말이다.

똑똑.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끄덕.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게슈레가 걸음을 옮겨 문을 열었다.

“전하.”

문을 열고 칼론의 방으로 들어온 샌드.

그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어색한 듯 두 눈을 굴리는 샌드를 바라보았다.

“성녀가 국교 선언식이 시작되기 전에 전하와 독대를 하고 싶어 합니다.”

“…….”

샌드의 보고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죽은 듯이 계속해서 잠만 자고 있는 칼론을 내려다보았다.

“저녁에 올게.”

나의 인사에도 대답이 없는 칼론.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은색 바탕에 금색의 단추와 견장, 그리고 수실로 장식된 제복을 입은 나.

옷매무새를 대충 정리한 나는 샌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가지.”

“네.”

* * *

“갑작스러운 독대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황태자궁에 위치한 응접실.

그곳에 들어선 나는 나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성녀를 볼 수 있었다.

지하 감옥에서 나와 별궁을 내어주고 진귀한 음식을 대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몰골은 초췌했다.

두 눈은 퀭했고, 며칠 못 먹은 사람처럼 그녀의 볼은 조금 들어가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아름다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런 성녀의 인사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아직도 서 있는 루멘을 바라보았다.

“앉지.”

“네.”

나의 권유에 루멘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다음 의자에 앉았다.

“차는 됐어. 곧 시작이야.”

차를 내오려는 샌드를 향해 내가 말하자 샌드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뒤로 물러섰다.

“시끌시끌하군.”

궁 밖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국교 선언식이다.

모든 백성이 트레이 교단을 알게 되었고, 또, 웃기게도 대부분의 백성들이 트레이 교단의 신자가 되었다.

믿음이 전파가 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교단의 행사에 황제가 참여하는 것이고, 또 수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트레이 교단을 정식으로 인정하는 날이다.

거기에다가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나, 이제는 신의 선택을 받은 자로 존경과 추앙을 받게 된 성자가 그들의 앞에 나선다.

수많은 신자들은 성자인 나와 만남을 원했고, 아직 믿지 않는 백성들은 황태자인 나를 보고 싶어 했다.

그러한 이유로 오늘, 수많은 백성들은 국교 선언식이 열리는 황궁의 광장에 몰려들었다.

대륙의 가장 큰 행사였던 아카데미 경쟁전.

그때보다 큰 축제였으며, 오늘의 국교 선언식은 역사에 길이 남을 중대한 행사이다.

황실에서도 열심히 준비했고, 교단은 물론 하이아칸 왕국과 밀리언 공국, 오스란 공국. 그리고 신성교국을 대표해 성녀인 루멘이 참여한다.

또한, 역사상 처음으로 판게아 대륙을 넘어 타 대륙의 인물까지 참가하는 국교 선언식이다.

아마 대륙에 다시없을 큰 축제라고 생각된다.

“그렇네요.”

그런 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루멘.

나는 그런 루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나의 눈빛에 가만히 고개를 숙이는 루멘.

그런 루멘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칼론은 아직 의식이 없다.”

“…….”

“하지만 상처는 완전하게 치료가 되었으니 곧 일어날 것이다.”

“네.”

나의 말에 루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루멘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프리스트들은 죽이지 않을 것이다.”

아비뇽의 수하들이자 설인들을 풀어주고 자수한 프리스트들.

그들의 처우에 대해 내가 이야기하자 루멘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바라던 바잖아?”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루멘의 모습에 나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 루멘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들을 너와 함께 교국으로 다시 보내 주마.”

“하아…….”

나의 말에 루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닌척해도 역시 걱정하고 있었나 보다.

그에 살짝 미소를 지은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도 함께 간다.”

“네……?”

나의 말에 당황스러웠을까?

루멘이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빚 받으러 가야지.”

겸사겸사, 교황이라는 노인네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확인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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