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7화
제167편 칼론의 감옥 면회(1)
“좋네.”
새로운 스킬 에르의 가호.
그 상세설명을 모두 읽은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랭크는 낮지만, 성취도가 오를수록 성장하는 스킬.
그중에, 나중에는 여러 사람에게 한 번에 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만약, 최악의 경우 전쟁이 일어났을 때 아군들의 사기를 증진할 수 있는 최고의 스킬이었으니 말이다.
만족스러운 나의 말에 크산느 또한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효율성이 아주 좋아.-
녀석도 새로운 스킬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녀석답지 않은 후한 말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야.”
-그래.-
걸음을 멈추며 입을 연 나.
그런 나의 말에 크산느 또한 날갯짓을 멈추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거슬리네.”
타앗!
차가운 나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나를 지켜보고 있던 한 사내가 뒤로 몸을 날렸다.
쿠웅!
하지만 이미 늦었다.
빠르게 달려가 그 사내의 뒤통수를 잡고 그대로 바닥으로 처박아 버린 나는 나의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새하얀 로브를 입고, 새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한 사내.
나는 그런 사내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너 누구냐?”
“크윽…….”
이 자식.
아주 건방졌다.
나의 물음에 녀석은 신음만 흘릴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이런 녀석은 고문이 특기인 존재에게 맡겨야 했다.
괜히 내가 건드리다가 까딱하면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미하일 님. 부족한 종이 가니 부디 따듯하게 받아 주소서.”
추욱.
녀석의 뒷목을 잡고 일으킨 나는 혼자 중얼거린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녀석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뭐 어떻게 할 새도 없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자살해버릴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미하일이라…….”
그나저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내의 입에서 미하일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하면 이자는 미하일의 신자, 신성 교국의 인물인가?
감히 황태자인 나를 감시하고 미행해?
이거…… 어쩐지 귀찮아질 것만 같았다.
이제는 죽어버린 사내의 뒷목을 잡고 나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황궁으로 돌아가서 이자에 대한 신원과 정보를 파악해야 했다.
* * *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황궁에 들어선 칼론.
그는 궁에서 보이지 않는 주군을 찾다가 메이슨의 집에 갔다는 샌드의 이야기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황태자 요한의 바로 옆에 위치한 자신의 방.
샤워를 마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칼론은 창문을 열고는 은은한 빛을 자랑하는 달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하아…….”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달빛과 시원한 밤바람이었다.
그에 기분이 좋아진 칼론은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폐 속으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젖은 머리칼을 말려주었다.
아주 기분 좋은 밤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 좋은 바람을 느끼며 달을 올려다보던 칼론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동그랗고 아름다운 달.
어떻게 보면 하얀색으로 보이는 달이 그녀의 머리칼로 보였고, 또, 동그랗고 신비로운 달의 모습이 그녀의 두 눈동자로 보였다.
모든 것이 그녀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칼론은 멍하니 달을 올려다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달을 올려다보며 그녀를 그리워하는 지금 이 순간.
아무런 걱정도 고민도 없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좋아 칼론의 본심이 애써 외면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삐익!
그렇게 한창이나 달을 올려다보던 칼론은 아래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새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보이는 푸른색의 작은 새.
창틀에 앉아 화가 난 듯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녀석을 보며 칼론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짭새…….”
자신과 그녀가 인연을 맺게 해주고, 이름을 지어주었던 푸른 매의 새끼.
바로 짭새였다.
오랜만에 보는 녀석을 보며 칼론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작은 짭새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웬걸.
짭새는 그런 칼론의 손가락을 뿌리로 쪼았다.
그러고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삐이익!
“…….”
날카로운 짭새의 반응에 당황한 칼론.
삐익! 삐익!
그리고 짭새는 그런 칼론을 올려다보며 계속해서 날카로운 소리를 내었다.
“자주 못 보러 가서 화난 거야?”
자신을 향해 따지듯 소리치는 녀석을 보며 칼론이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고.
삑!
거짓말처럼 짭새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인간의 언어를 듣고 이해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 짭새의 모습에 칼론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짭새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내 말을 알아듣는 거야?”
삑!
또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말하는 짭새의 모습에 칼론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알아듣는 듯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신의 말에 이렇게 확실하게 대답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 짭새의 모습에 칼론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미안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정신이 없었어…….”
변명이 아니다.
정말 정신이 없었다.
슬픔이 가득한 칼론의 말을 듣고 이해를 하는 것일까?
삐익.
방금까지 신경질 내던 짭새가 칼론에게 다가와 손에 머리를 맞대었다.
마치 위로하듯 말이다.
“나 위로해주는 거야?”
삑.
칼론의 물음에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짭새.
칼론은 그런 짭새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보고 싶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심코 내뱉어버린 칼론.
삐익!
그런 칼론의 말에 짭새는 고개를 바짝 들고는 날개를 파닥였다.
마치, 지금 당장 만나러 가자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인지한 칼론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연인, 레브에게 마음의 병이 생기고 감옥에 갇혀있는 지금 이 상황.
이 상황에서 그녀가 보고 싶다고?
자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렇기에 칼론은 얼굴을 굳혔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니…….
이러니 연인인 레브가 그런 병을 얻은 것일 것이다.
삐익!
그런 칼론의 모습에 다시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짭새.
그런 녀석을 보며 칼론은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 그녀를 만날 자신이 없어.”
삐이익!
힘없는 칼론의 말에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소리 지른 짭새.
파닥.
그런 녀석이 작은 날개를 움직여 몸을 띄웠고 이내.
“…….”
칼론의 옷깃을 발로 잡아 바깥으로 이끌었다.
마치 제발 나가달라는 듯 말이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칼론은 조용히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는 녀석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솔직하게 그녀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삐익!
칼론의 마음을 읽었을까?
칼론의 옷깃을 놓아준 짭새가 칼론의 두 눈동자를 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래도 된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칼론은 조용히 옷을 갈아입었다.
최대한 깔끔하고 멋있어 보이는 옷을 입은 칼론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나쁘지 않았다.
그에 칼론은 고개를 돌려 공중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짭새를 바라보았다.
삐익!
칼론의 옷깃을 잡고 다시 문 쪽으로 끌고 가는 짭새.
칼론은 내키지 않지만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듯 짭새가 원하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오러 나이트 상급에 오른 강자 화염의 기사 칼론이 작은 새에게 이끌려 나갔다.
* * *
“전하.”
“응?”
황궁의 지하 감옥.
나는 아까 전 나를 습격했던 이를 끌고 곧바로 지하 감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드라칸을 불러 시체를 한창 확인하던 중에 간수장인 지켜 자작이 나를 찾아왔다.
그의 부름에 시체에서 눈을 뗀 나는 몸을 돌려 자작을 바라보았다.
“칼론 경이 왔습니다.”
“응? 녀석이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내가 미행당한 이 사건을 키우지 않기 위해 일부러 드라칸에게만 알렸는데 칼론이 어떻게 이곳에 온 것일까?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텔레파시?
-지X한다.-
크흠.
나의 표정에서 또 이상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짐작했는지 크산느가 한심하다는 말투로 말했고 나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람 무안하게 저렇게 묵직하게 한방을 난리냐.
쩝.
아무튼, 나의 물음에 지켜 자작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전하를 뵈러 온 것이 아닙니다.”
“하면?”
지켜 자작의 말에 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자작을 바라보았다.
설마 레브를? 아니면…… 루멘을?
나는 개인적으로 후자였으면 좋겠다.
“성녀와의 면회를 요청했습니다.”
“당장 허락해줘!”
그리고, 이어진 자작의 말에 나는 흥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녀석!
장하다!
나의 대답에 당황한 표정을 지은 지켜 자작.
하지만 이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녀석.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저렇게 힘차게 대답하지?
왠지 모르게 기분 좋게 대답하는 자작의 모습에 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다음 다시 시체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녀석의 신원에 대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녀석의 품에는 아무런 물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이 분야에서 전문가인 드라칸은 녀석의 몸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역시 블랙 문의 수장답게 나를 미행한 녀석의 근육과 굳은살을 보고 어느 무기를 배웠는지, 또 작은 흉터로 어떠한 훈련을 받아왔는지 추측하고 정리해나가고 있었다.
역시 아주 뛰어난 인재였다.
“가보고 싶으시면 가셔도 됩니다.”
아.
티가 났나?
칼론과 루멘의 만남이 궁금했던 나였기에 나도 모르게 티가 났나 보다.
잠시 수첩을 내려놓은 드라칸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그에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될까?”
미안. 가고 싶었다.
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드라칸.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대충 조사는 끝이 났습니다. 감옥에 수감된 이들을 불러 혹시 이자를 아는 자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은 무리가 있겠군요.”
루멘을 만나러 간 칼론.
그 둘의 관계를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정보기관의 수장 드라칸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크흠…….”
그리고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헛기침을 했다.
나 참.
나는 정말 일하고 싶은데 아랫사람이 가보라고 했다.
그래 이 상황에서 고집을 부리며 이곳에 남아봤자 아랫사람만 불편할 뿐이다.
나는 그렇게 꽉 막힌 상사가 아니었으니 물러나는 것이 답이다.
드라칸을 위해서 말이다.
“고생해줘.”
그런 드라칸을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항상 고마워.”
그리고 이어 고마움을 표했다.
이때까지 나를 도와준 녀석을 향해 진심으로 말이다.
진심이 가득 담긴 나의 감사인사에 놀랐을까?
드라칸은 놀란 표정을 지으면 나를 바라보았다.
거참, 그렇게 놀랄 필요까지가 잇는가?
사람 무안하게 말이다.
아무튼, 나의 감사인 사에 놀라던 그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도 고마워.”
그런 드라칸의 어깨를 한번 다독여 준 나는 이내 방을 벗어났다.
칼론이랑 루멘 보러 가야지.
아이 재미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