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대공가의 귀한 아들-163화 (163/226)

제 163화

제163편 거절(2)

“폐하.”

칼 같은 거절에 나는 간절한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기에 성녀를 부디 풀어주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진심이 가득 담긴 나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제일 중요한 애들인데 왜 풀어주어야 하지?”

“타 대륙의 신성 교국. 그곳의 성녀입니다. 그들의 반발이 거셀 것입니다.”

“그것도 괜찮지.”

타당한 나의 대답에 황제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생각지 못한 황제의 반응에 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반발이 거셀 것이라는데 그것도 괜찮다고?

황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당황한 표정 그대로 굳어져 버린 나를 본 황제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요한.”

“예, 폐하.”

나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는 황제의 모습에 나는 표정과 자세를 바로 하고는 진중하게 대답했다.

그에 황제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너는, 완벽한 황권이 싫은 것이냐?”

“…….”

갑작스러운 황제의 물음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완벽한 황권이라…….

확실히 달콤한 말이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나를 보며 황제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의 꿈은 세계정복이 아니더냐?”

“…….”

“내가 도와주는 것인데, 너는 왜 이렇게 반발하려는 것이냐?”

아…….

무심코 선을 넘은 것인가?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는 황제의 모습에 나는 등 뒤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미소를 짓고 있는 황제의 얼굴.

아름다운 붉은 보석이 박힌 듯한 신비로운 두 눈 속에서 일렁이는 분노를 발견한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까?

“나는 황제다, 나의 말이 곧 법이거늘 무엇이 그리 불만인 것이냐.”

“죄송합니다, 폐하.”

황제의 두 번째 물음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사과를 건넸다.

황제가 잘해주다 보니 내가 잠시 깜빡하고 말았다.

나를 좋아해 주는 큰아버지지만 그는 황제다.

만인지상의 주인이자, 그의 한마디가 법이 되어버리는 황제 말이다.

심지어 유례없을 정도로 강력한 황권을 지녔으며, 독재 황제이지만 동시에 성군이며 제왕인 황제이다.

내가 너무 안일했다.

부주의했던 나 자신을 탓하며 나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너는 나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될 것이다.”

“예.”

“완벽한 황권을 지니고 있어야 네가 뜻하는 세상을 만들 수가 있다.”

이어서 들려오는 황제의 대답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완벽한 황권이라…….

“내 말이 틀리느냐?”

“하지만…… 그것은 너무 독재가 아닙니까?”

의문이 담긴 나의 물음에 황제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짐이 독재자로 보이더냐.”

서늘했다.

황제의 물음에 나는 서늘한 기운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하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그렇기에 황태자이자 폐하의 신하로서 충언을 올린 것입니다. 성녀를 풀어달라고.”

“흐음…….”

나의 대답에 턱을 쓰다듬는 황제.

나는 그런 황제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는 강력한 황권을 지녔지만, 동시에 신하들의 충언을 새겨듣고 본인의 주장을 억지로 내세우지 않고 틀린 것을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피식.

나의 대답에 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분노가 담긴 미소가 아닌 진심으로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 말이다.

그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어찌어찌 해서 겨우 넘어간 듯했기 때문이다.

“요한아.”

“네.”

나직한 황제의 부름에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나.

그런 나를 보며 황제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나에게 반발해도 된다.”

“…….”

“장난친 것이니 너무 어려워하지 말거라.”

이 양반이.

두 번 장난쳤다가는 심장이 남아나지 않겠다.

“하지만, 성녀는 안 된다.”

“폐하!”

좋아진 분위기에 성녀를 풀어 줄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황제를 보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내가 계속 설명하고 말해왔는데 왜?

“요한아.”

“네.”

황제의 물음에 조용히 대답을 하자 황제는 나를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만약 내가 너였다면, 황태자로서 포교 활동을 시작하여 트레이 교단을 알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을 단축할 것 같은데. 너는 나에게 달려와서 바로 풀어달라고 요구하는구나.”

“…….”

“내가 성녀를 잡아들인 연유가 무엇이더냐.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니면 내가 첫눈에 반해 그녀를 황후로 맞이하기 위해서일 것 같으냐?”

풉.

아…… 웃으면 안 되는데.

황제의 장난스러운 말에 멍한 표정을 짓던 나는 결국 미소를 짓고 말았고 황제 또한 그런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트레이 교단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내가 결정을 내렸으면 타당한 이유로 반대하는 것도 좋지만, 네가 할 수 있는 행동을 빨리하여 네가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도 좋겠구나.”

내가 너무 어리광을 부렸나 보다.

황제의 말에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황제의 행동에 대해 생각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빨리 취하여 그 시간을 단축할 생각을 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그저 찾아와 풀어달라고 징징댔으니 말이다.

이때까지 항상 그래 왔던 것 같았다.

황제는 내가 원하는 것은 장난을 치면서도 항상 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이 안일해졌던 것 같고.

황제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며 정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이번에는 정말 한 개 배운 것 같았다.

진심이 가득 담긴 나의 말에 황제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그나저나 결혼은 언제 할 것이냐.”

“예?”

갑자기 왜 결혼으로 이야기가 빠지지?

황제의 물음에 내가 벙찐 표정으로 묻자 황제는 고개를 돌려 헛기침을 하며 지나가듯 입을 열었다.

“아니…… 나와 나이가 같던 리턴 백작은 엊그제 손녀를 보았다 하더구나.”

“…….”

“그냥 그렇다고. 외롭지는 않단다.”

“…….”

“정말이다.”

우리 황제 폐…… 아니,

큰아버지 많이 외로우신가 보다.

“내일 케한이를 황궁 구경시키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고개를 돌리며 지나가듯 말하는 황제의 모습에 미소를 지은 내가 말하자 황제는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알겠습니다. 바쁘시지 않으시다면 내일 점심…….”

“안 바쁘다!”

“네, 알겠습니다.”

황제의 즉답에 나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케한이가 황제랑 잘 놀아줄 것이다.

똑똑한 아이니 말이다.

* * *

휘이잉!!

매서운 눈 보람이 몰아치는 깊은 산맥.

대륙 북부에 위치해있으며, 하이아칸 왕국과 듀크 제국의 국경지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산맥 엘란 산맥.

그곳에 오른 50여 명의 인원들은 산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마을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단장님!”

가만히 앉아 매서운 눈보라를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노인,

카르미언 대공가의 최정예 블랙 기사단의 단장 카로스는 자신을 부르는 수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수제자이자 자신의 뒤를 이을 부단장 레인.

3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오러 나이트에 올라 카르미언 대공 전하에게 검술 지도까지 받은 레인이 헐레벌떡 달려와 카로스의 앞에 섰다.

“무슨 일이냐?”

그런 제자를 바라보는 카로스의 두 눈은 따뜻했고 매서운 추위마저 녹일 정도의 따뜻한 목소리에 레인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주웠습니다.”

금색의 작은 컵.

그것을 내려다보며 카로스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마나의 기운도, 정령의 기운도 아닌 처음 보는 기운.

바라보기만 해도 잠이 오고 포근해지는 기운에 카로스가 흥미로운 목소리로 말하자 레인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황태자 전하에게서 느낀 적이 있습니다.”

“뭐?”

레인의 말에 카로스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레인을 바라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이 기운.

이 기운을 황태자 전하에게서 느낀 적이 있다고?

놀란 표정의 카로스를 보며 레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오기 전, 저를 따로 부른 전하께서 제게 그 힘을 보여주시며 혹시 이와 비슷한 힘을 사용하는 자는 정중히 모시라고 했었습니다. 하여 그 기운을 기억하고 있는데…… 물건에서 느낄 줄을 몰랐습니다.”

“하여 이것을 나에게 들고 온 것이냐?”

레인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카로스.

그가 레인을 바라보며 묻자 레인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아서요.”

갑자기 실종된 설인들.

그들의 마을을 수색하던 레인은 금빛의 작은 컵을 찾아내었다.

그 이후에도 블랙 기사단은 계속해서 마을을 조사했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고, 결국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작은 컵만을 들고 철수했다.

* * *

“하아…….”

황태자의 시종 샌드.

그는 오늘도 열심히 황태자의 방을 청소했다.

시종 중 선택받은 이만 할 수 있는 황태자 방의 청소.

모든 시종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었지만 샌드는 하기 싫었다.

진짜 하기 싫어 죽겠는데 황태자 전하는 자신을 콕 집어서 자신의 방을 청소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에 샌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걷었다.

황제의 이불은 매일 세탁을 한다.

그리고 다른 세탁된 이불을 가져와 다시 깔아야 한다.

황태자 전하가 언제 이곳에 들어와 잠을 청할지 모르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처리해야 한다.

“자.”

황태자의 시녀 중 한 명.

붉은 머리의 소녀를 향해 샌드는 이불을 건넸고, 이내 소녀가 건넨 세탁된 이불을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다시 거대한 침대에 이불을 깔았다.

“쓸데없이 넓네.”

조금 거짓말 보태서 성인 다섯 명은 누워서 잘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침대.

누워서 중간에 가기까지도 힘들 듯한 침대를 보며 샌드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꼬우냐?”

흠칫.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샌드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짝다리를 짚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황태자, 요한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오셨습니까!”

“목소리가 크잖아!”

“죄송합니다…….”

“뭐라고?”

아…….

진짜 짜증 난다.

황태자고 뭐고…….

하지만 샌드는 시종이다.

시종장 드라칸에게 직접 전수받은 엘리트 시종!

그것을 상기한 샌드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시정하겠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샌드의 목소리.

배에 힘을 딱! 주고 똑바로 말하는 샌드를 보며 요한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침대로 달려가 누워버렸다.

“아…….”

신발 신은 채로 침대에 올라간 요한.

그런 요한을 보며 샌드는 절망했다.

방금 새것으로 바꾸었는데 다시 바꿔야 했던 것이다.

“왜? 짜증 나냐?”

그리고 황태자 요한은 보란 듯이 옆으로 누워 신발로 이불을 밟았다.

저 인간은 악마인 것일까?

내가 무슨 전생에 자신을 죽이기라도 했는가?

왜 자신을 이렇게 괴롭히는지 모르겠는 샌드는 오늘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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