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1화
제161편 아버지와 아들
“성녀님…….”
“네, 단장님.”
차가운 바닥에 앉아 기도를 올리던 루멘.
그녀의 귀에 들리는 하인리히의 음성에 루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교국에서 보낸 전도사들, 그리고 미하일 님을 믿고 있는 신자들 모두가 이곳 감옥으로 들어왔다.
그것을 상기하며 하인리히가 심각한 어조로 말하자 루멘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한 달만 기다리시지요.”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회색 머리의 중년인.
자신을 드라칸이라 소개한 사내가 분명히 말했다.
한 달만 기다려 달라고 말이다.
루멘은 그의 말이 진실인 것을 느꼈고 그렇기에 편안하게 지내기로 마음먹은 상태이다.
하지만 하인리히는 그것도 불안했다.
그렇기에 입을 열었다.
“도대체 한 달 가지고 무엇을 한다고…….”
“제국민들에게 트레이 교단을 먼저 소개하겠지요.”
“하아…….”
루멘의 대답에 하인리히는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 났다.
고작 그런 이유로 자신들을 이곳에 가둔단 말인가?
“단장님.”
“네, 성녀님.”
그런 하인리히의 마음을 알았을까?
루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인리히를 불렀고 하인리히는 화를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우리가 더…… 심하다는 것 알고 있지요?”
유일신 사상으로 다른 신을 용납하지 못하는 교국의 교리.
그것을 언급하며 루멘이 말하자 하인리히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저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예?”
이어진 루멘의 말에 하인리히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 밥을 먹고 등을 누워 잠을 자게 되었는데 오히려 다행이라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제국민들은 대부분 트레이 교단을 믿었으면 해요.”
“…….”
“그래야 저희 교국도 변화를 맞이할 테니까요.”
자신들의 나라.
미하일을 유일신으로 모시고, 교황이 정치를 하는 신성 교국.
그곳이 있는 대륙은 이곳 판게아 대륙보다 작았다.
3분의 일의 크기 정도.
그렇기에 인구수도 적었다.
그렇기에 많은 인구를 지닌 판게아 대륙의 사람들이 에르를 믿는다면 그들과 교류를 할 예정인 우리 교국도 변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를 한 루멘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하인리히의 생각은 달랐다.
루멘의 대답에 하인리히는 심각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이 우리를 배척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도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신님을 모시는 사제들이 권력이라는 달콤한 맛에 취해 썩어버리고 말았다.
이곳 또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하인리히의 지적에 루멘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트레이 교단의 성자. 그분은 신성 교국의 성녀보다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트레이 교단의 성자이자 황태자인 요한.
그를 떠올린 루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본 요한이라면 절대 그런 세상을 용납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 * *
“형아!”
“그래.”
나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 동생 케한.
녀석의 부름에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헤헤!”
나의 대답에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짓는 케한.
녀석 그렇게 좋을까.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 또한 미소를 지었다.
“케한이는 형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좋은가 보구나.”
“네! 형님이 오셔서 좋아요!”
그때, 차를 한 모금 마시던 어머니가 말하자 케한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짜식.
아주 귀여워 죽겠다.
나는 그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누구 동생인지 참…….
“황제 폐하께는 인사드렸느냐?”
“예.”
그때, 찻잔을 내려놓은 아버지가 나를 향해 물었고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고는 찻잔을 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여름에 가족 휴가를 가려고 한다.”
“오호……?”
재미있겠다.
아버지의 말에 내가 흥미로운 표정을 짓자 아버지는 트레이드 마크인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함께 가겠느냐?”
아…… 우리 아버지.
긴장하고 있다.
남들이 보면 그냥 무덤덤한 얼굴로 질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회귀 이후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관찰해왔던 나에게는 보였다.
아버지의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이 말이다.
귀여운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당연히 가야지요. 저도 아버지 아들인걸요?”
“와아!”
나의 대답에 케한은 만세를 했고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리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 웃었다.
우리 아버지 입꼬리 조금 올라가셨다.
“저도 가도 되나요?”
그때, 가만히 나의 옆에 앉아있던 엘로나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고 아버지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엘로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특유의 무덤덤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너도 가족이지 않느냐.”
무덤덤한 어조였지만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겉과 속이 너무나도 다른 아버지의 말에 엘로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있는 귀여운 소년을 바라보았다.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엘로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케한.
엘로나는 그런 케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누나도 가도 될까?”
“응!”
엘로나의 물음에 케한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나의 뒤에 서 있던 칼론을 바라보았다.
“칼론 형아도 갈 거지?”
“…….”
케한의 물음에 당황한 칼론.
나는 그런 녀석을 바라보았다.
여름휴가는 약 한 달 후.
스트레스받아 하는 칼론의 머리를 조금 식혀주고 싶었다.
그리고…… 만약 레브의 상황이 괜찮아진다면 함께 가는 것도 좋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글쎄…… 우리 칼론이가 너무 바빠서…….”
“히잉…… 같이 못 가는 거야?”
나의 애매한 대답에 울상을 지으며 칼론을 바라보는 케한.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케한의 반짝반짝 눈빛 공격에 칼론은 움찔했고, 결국.
“저는 주군과 항상 함께입니다.”
참가 의사를 밝혔다.
그에 케한은 환한 미소를 지었고 나 또한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티타임을 가졌다.
아직 식사시간까지는 한 시간도 더 남았기에 우리는 여유롭게 티타임을 즐겼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으며, 오스란에서 준비한 부모님과 케한의 선물을 주기도 했고, 사막에서 만난 오크들의 이야기도 했다.
“오크…….”
케한 이 녀석이 눈을 반짝거리며 흥미로워했기에 튜라칸 녀석의 이야기만 30분이나 하고 말았다.
아무튼, 티타임이 끝이 나고 우리는 곧장 식사를 했고, 식사를 마친 후, 어머니와 케한 그리고 엘로나는 산책을, 나는 아버지와 단둘이 아버지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앉거라.”
집무실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소파를 가리켰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앉았다.
“한잔하겠느냐?”
내가 앉자 찬장에서 술병을 한 개 꺼내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나를 향해 물었고 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역대급 알코올 쓰레기인 우리 아버지.
그러한 이유로 술은 입에도 안 대시는 아버지였기에 전생 현생을 통틀어 아버지가 먼저 술을 권한 적이 없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어른이 주는 술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말이다.
절대 내가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다.
나는 예의를 아주 잘 지키는 아이니까 당연히 거절하면 안 되는 것이다.
-히야. 좋겠네.-
그렇게 자기 주문을 하던 나는 나의 귀에 들리는 크산느의 빈정거림에 나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별로?>
-입꼬리 내려, 인마.-
아…… 입꼬리 올라갔었나 보다.
크산느의 지적에 나는 손을 들어 올라간 입꼬리를 내렸다.
쪼르륵.
그때, 아버지가 빈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고 나는 잔을 잡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한잔하시겠습니까?”
술병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아버지를 보며 내가 조심스레 묻자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러면 대화를 못 하지 않느냐.”
“풉.”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아버지의 대답에 나는 그만 소리 내 웃고 말았고 아버지는 조용히 그런 나의 웃음을 외면했다.
부끄러우신가 보다.
“크흠. 죄송합니다.”
“아니다. 그나저나 이때까지 내가 술을 못 하는 거에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그 시간에 일과 검술 수련을 더 할 수 있었으니 말이야.”
“그러시군요.”
역시 재미없는 우리 아버지.
재미없는 인생을 사시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진심으로 맞장구쳐주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한데 오늘은 아들과 술 한잔 못 하니 너무 불만이구나.”
그런 나의 건성 어린 대답에 아버지가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하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소를 지으면서도 진정으로 아쉽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
나는 그런 아버지의 눈빛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쪼르륵.
그러고는 아버지의 빈 술잔에 물 한잔을 따라주었다.
“건배라도 하시죠.”
아버지의 술잔에 물을 따르고.
내가 술잔을 들어 보이며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자 아버지 또한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술잔을 들었다.
“고생했다.”
째앵.
그리고 아버지의 격려와 함께 난생처음으로 아버지의 술잔과 나의 술잔이 서로 부딪쳤다.
아주 맑은 소리를 내며 말이다.
꿀꺽.
술잔에 비워진 액체를 한 번에 들이킨 아버지와 나.
“키야.”
나는 목을 타고 넘어가는 화끈한 알코올에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빈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고, 아버지 또한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고생했다. 이제 하이아칸 왕국만 남았구나.”
“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말.
그런 아버지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버지는 살짝 미소를 지으셨다.
오늘따라 미소가 후하시네.
아무튼 미소를 지은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세계정복 말이다.”
흠칫.
어떻게 알았지?
아버지의 말에 내가 흠칫하며 놀란 표정을 짓자 아버지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는 다시 술병을 들었다.
쪼르르.
그러고는 나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입을 열었다.
“남자라면 역시, 세계정복이지.”
아…… 내가 아버지를 닮았나 보다.
장난스레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따라…… 정말 아버지가 아버지 같이 느껴졌다.
전생에서는 아버지가 어려웠다.
나랑 너무나도 달랐으니 말이다.
한데 회귀를 하고 나서 본 우리 아버지는 내가 알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니, 내 눈에 틀렸겠지.
우리 아버지는 아들인 나를 정말 좋아했고 가족을 사랑했으며, 행복을 중시하는 깨어있는 어른이었다.
“자, 마셔라.”
조금 전 내가 했던 대로 물을 자신의 빈 술잔에 다시 따른 아버지.
그러고는 빈 술잔을 내밀며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아들인 나와 건배를 하고 싶어 빈 술잔에 다시 물을 따른 것이다.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우리 아버지 너무 귀여우신 것 같다.
“건배.”
“건배.”
그리고 닮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너무나도 닮은 우리 부자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부딪쳤다.
째앵.
오늘따라 정말…… 부딪히는 술잔의 소리가 너무나도 맑고, 듣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