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5화
제155편 남부의 파티(2)
레게 후작과 이야기를 마친 나는 발코니를 벗어나 파티 홀에 들어섰다.
“호오?”
그리고 파티 홀에서 벌어진 흥미로운 광경을 발견하고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거대한 덩치를 지닌 튜라칸이 한 청년의 멱살을 잡고 위로 들어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오!-
파티에 참여한 후, 너무나도 지겨워 꾸벅꾸벅 졸던 크산느.
녀석이 돌연 두 눈을 반짝거리며 고개를 들고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가장 재미있는 구경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니 그럴 만도 했다.
“레민 공자이군요.”
“누구입니까?”
뒤에 있던 레게 후작이 그 광경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고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레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시우 공작의 양자입니다.”
“그렇군요.”
레게 후작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정면을 바라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튜라칸이 저렇게 화를 내고 있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레민 공작이 먼저 시비를 걸었을 겁니다.”
역시, 개차반인 놈이었군.
뒤에서 들려오는 레게 후작의 말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뻔하다.
개차반인 레민. 저 자식이 튜라칸에게 시비를 걸었겠지.
참다가 결국 선을 넘어버린 레민의 행동에 튜라칸이 저런 행동을 취했고 말이다.
어느 정도 상황이 그려지기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는 튜라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사과해라.”
“크윽!”
싸늘한 튜라칸의 말.
그에 허공에 매달리게 된 레민은 괴로운 소리를 내며 몸을 버둥거렸다.
“사과하라고.”
그런 레민을 보며 다시 경고한 튜라칸.
레민은 자신의 멱살을 단단하게 부여잡고 있는 튜라칸의 손을 쳤다.
제발 놓아 달라는 듯 다급하고 강하게 말이다.
털썩.
“크흐읍!”
그런 레민의 행동에 손을 놓아준 튜라칸.
중력에 의해 바닥에 떨어진 레민은 그동안 마시지 못한 산소를 들이마시기 위해 헐떡거리며 호흡을 했다.
어휴, 보기 싫어라.
귀공자인 레민이 바닥에 퍼질러 앉아 그런 행동을 취하니 상당히 보기 흉했다.
주변에 있던 귀족들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웅성거리며 레민을 내려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저놈들.
좋아하고 있었다.
레민 저 자식의 평소 행실이 어땠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멍청한 놈이군.-
<그러게 말이야.>
귀에 들려오는 크산느의 한심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불쌍한 놈, 너는 오늘 튜라칸의 먹잇감이 된 것 같다.
“네 이놈! 내가 누구인지 알고!”
주변 귀족들의 시선을 알아차렸을까?
얼굴이 붉어진 레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언성을 높였다.
“사과해라.”
그리고 그런 레민의 행동에 튜라칸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방금 했던 말을 반복했다.
저 자식.
저렇게 보니까 멋있네.
거대한 덩치에서 나오는 위압감과 절대 흔들리지 않는 녀석의 눈빛.
그에 레민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너무나도 단단한 녀석의 모습에 기가 질려버린 것이다.
“튜라칸 경. 우리는 괜찮소.”
한 발짝 물러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귀족.
보다 못한 램컨이 나서서 튜라칸을 말렸고 옆에 있던 라한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요. 우리는 괜찮소이다. 그만하시는 것이 좋을 듯하오.”
“흐음…….”
그 둘이 나서며 말하자 튜라칸은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당사자인 그들이 괜찮다는데 자신이 계속 몰아치기에는 조금 그랬던 것이다.
“알겠다.”
결국 튜라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흥! 미개한 몬스터 같으니라고!”
다시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몸을 돌린 튜라칸.
녀석은 뒤에서 들려오는 레민의 목소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죽었네.-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크산느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나는 그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튜라칸은 굳은 얼굴로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선을 넘어버린 레민을 노려보았다.
흠칫!
좀 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튜라칸의 모습에 레민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오크는, 몬스터가 아니다.”
파티 홀을 울리는 낮은 튜라칸의 목소리.
우웅!
“크아악!”
그리고 그와 동시에 튜라칸의 몸에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 기세에 정면으로 노출된 레민은 괴성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고 주변에 있던 귀족들 또한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껄껄!”
그리고 단상 위에 앉아있던 루틸루스가 어느새 내려와 귀족들의 앞에서 마나를 끌어올리며 보호한 다음 소리 내 웃고 있었다.
저 양반.
그래도 자기 수하라고 지키네.
아무튼, 금방이라도 레민을 죽일 것 같은 튜라칸의 기세에도 루틸루스는 나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차라리 잘되었다.
이들에게 튜라칸의 힘을 똑바로 보여주는 편이 확실하겠지.
튜라칸은 사막에 자리 잡을 것이고, 오스란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이런 실력행사도 필요하다.
그래야 이 녀석들이 함부로 까불지 않을 것이다.
“오크는, 그대들과 조금 다를 뿐. 생각을 할 수 있다.”
“크윽!”
레민에게 한 발짝 다가가며 입을 연 튜라칸.
그의 목소리가 파티 홀을 울렸고 귀족들은 홀린 듯 그런 튜라칸을 바라보았다.
“오크는, 참을 줄 알며,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수용할 줄 안다.”
“크윽!”
다시 한 걸음.
“오크는, 타인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견을 고집부리지 않는다.”
“크흡!”
또 한 걸음.
“오크는, 타인의 행복을 바란다.”
“크아아악!”
마지막 한 걸음.
“오크는, 인간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털썩.
레민의 앞에 멈추어 선 튜라칸의 한마디가 파티 홀을 맴돌았고, 초인의 기세를 정면으로 받은 레민은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우리들은 조금 멍청하지만, 그대들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다.”
또다시 울리는 튜라칸의 목소리.
루틸루스는 기운을 거두어들이며 진한 미소를 지었고, 나 또한 미소를 지은 채 그런 튜라칸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티 홀에 있던 수많은 귀족들, 그리고 그들의 시중을 들던 궁녀들과 시종들, 그리고 무사들.
모두가 튜라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대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 내가 오크들을 교육하겠다.”
그리고, 튜라칸의 말이 끝났다.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고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 튜라칸.
나는 파티 홀을 벗어나는 튜라칸의 뒷모습을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 아주 잘해주었다.
* * *
“취이익! 맛있다!”
“취이익! 정말 맛있다!”
한 인간이 안내한 궁에 들어선 오크들은 거대한 궁에 흥분했고 이내,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흐르는 음식을 보고는 눈이 돌아가 버렸다.
로드가 가르쳐 준 식사예절.
다 필요 없다.
포크고 나발이고 다 집어 던지고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오크들.
그들은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음식에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주변에 있던 궁녀들과 시종들은 계속해서 그런 오크들에게 음식을 옮겼다.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오크들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취익! 로드!”
그때, 튜라칸의 오른팔과 같은 위치에 있는 카누는 힘없는 걸음으로 돌아온 튜라칸을 맞이했다.
“뭐하냐?”
흠칫.
그때, 방안을 울리는 튜라칸의 싸늘한 목소리.
오크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에 들린 음식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은…….
“취익!”
“대장 먹어라! 취이익!”
“맛있다 취익!”
먹다 남긴 음식을 들고는 두 눈을 꼭 감고 튜라칸에게 건네었다.
마치, 주기 아깝지만 어쩔 수 없이 주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피식.
그에 튜라칸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에게 음식을 건네는 수하들을 지나쳐 빈 의자에 앉았다.
“포크로 먹어라.”
“취익!”
“포크! 작다!”
“더럽다 이것들아.”
“취익! 손으로 집어야! 음식이 맛있어진다 취익!”
튜라칸의 말에 카누가 나름 논리적으로 대답했지만…….
퍼억.
대답은 튜라칸의 폭력이었다.
튜라칸에게 한 대 맞은 카누는 조용히 바닥에 집어 던졌던 포크를 집어 들었고, 나머지 오크들 또한 눈치를 살피며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취이익!”
다시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그런 수하들을 보며 미소를 지은 튜라칸은 책상 위에 올려진 와인 병을 들었다.
뭐…… 성자님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간들과의 관계에 실수를 하고 말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미친 듯이 음식을 먹는 녀석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저기…….”
수하들이 음식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튜라칸.
그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시종.
그의 부름에 튜라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지?”
“밖에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응?”
튜라칸은 시종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
자신을 찾아올 손님은 없을 텐데 말이다.
설마…… 사막 주둔지에 남기고 온 오크들이 이곳에 왔단 말인가?
“내가 나가지.”
호기심이 동한 튜라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고 시종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
흠칫.
그리고 이어진 튜라칸의 말에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어색한 듯 콧잔등을 훔치는 튜라칸.
그의 순박한 모습에 시종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걸음을 옮겨 별궁의 입구까지 나온 튜라칸은 생각지 못한 인물들의 등장에 두 눈을 크게 떴다.
“한잔 더 어떠시오?”
와인 병을 들어 보이며 미소를 지어 보이는 램컨과 라한.
“어찌 이곳에…….”
파티 홀을 벗어나 이곳까지 찾아온 두 명을 보며 튜라칸이 놀란 표정으로 묻자 둘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친우와 한잔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소. 계속 이곳에 세워 둘 것이오?”
“들어와라!”
램컨의 질책 어린 말에 화들짝 놀란 튜라칸이 뒤로 물러서며 안으로 들어올라 안내했고 둘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취이익!”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괴상한 소리를 내며, 툭 튀어나온 턱으로 미친 듯이 음식을 집어삼키는 오크들.
튜라칸과 달리 진짜 오크들의 모습에 살짝 당황했던 것이다.
“취익?”
그리고, 그들의 등장에 오크들은 먹던 음식을 내려놓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전 처음 보는 인간들이 별궁에 들어서니 의문스러웠던 것이다.
“반갑소이다!”
그때,
램컨이 미소를 지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취익!”
“반갑다 인간! 취익!”
그리고 오크들은 그런 램컨을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러고는…….
“취익! 먹어라!”
먹던 닭 다리를 램컨에게 건넸다.
“……고맙소이다.”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던 램컨.
그는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받아 들었다.
“취익! 로드! 친구인가?”
“오크들의 친구다.”
“취이익!”
카누의 물음에 튜라칸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그에 오크들은 흥분했다.
그러고는…….
들썩!
“취익 취익!”
램컨과 라한을 들어 의자에 앉히고는 음식을 계속 건네었다.
“인간. 먹고 많이 커라 취익!”
조금은 핀트가 어긋난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런 오크들의 모습에 궁녀들과 시종들은 입가를 가리며 웃었고 램컨과 라한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씨익.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튜라칸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참…… 기분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