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4화
제154편 남부의 파티(1)
“처음 뵙겠습니다.”
그때, 우리를 향해 한 귀족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었다.
갑작스러운 불청객에 인상을 찌푸리던 나는 우리를 찾아온 인물을 확인하고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레게 후작이군요.”
천생군인, 제국의 속국이 되는 것을 유일하게 반대했던 귀족, 레게 후작이었다.
그의 등장에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맞이하자 후작은 나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고개를 숙이되 비굴하지 않게 적당히 예를 차리는 후작의 모습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저자가 깊이 고개를 숙이는 인물은 국왕, 루틸루스뿐일 것이다.
“반갑습니다, 후작.”
레게 후작의 인사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잠시 따로 이야기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흐음…….”
나는 나를 향해 정중히 부탁하는 레게 후작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속국으로 받아들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실망인데…….
“잠시면 됩니다.”
고민하는 나의 모습에 초조함을 느꼈을까?
레게 후작이 다시 한 번 더 부탁을 해왔고 나는 결국.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 둘은 잠시 파티 홀을 벗어나, 수많은 발코니 중 비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시원하군.”
발코니에 나오자 나를 반겨주는 시원한 바람.
그 바람에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겨 발코니에 떨어지지 말라고 설치된 손잡이에 몸을 기대었다.
“말씀하세요.”
그러고는 삐딱한 자세로 레게 후작을 바라보았다.
“본국을 속국으로 만드는 것…… 전하의 생각이십니까?”
흐음…….
역시 그 문제 때문인 건가.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레게 후작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엄밀히 내 생각은 아니다.
루틸루스가 먼저 그것을 꺼내며 거래를 제안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것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따로 불러내어 속국으로 받아들이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할 것 같은 레게 후작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나는 제국의 인물 황태자이다.
나의 입장에서는 왕국을 속국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엄청난 이득이기에 내가 당연히 행해야 하는 행동이다.
한데 그것을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은 나를 무시하는, 아주 무례한 행동이었으니까.
“그렇군요…….”
나의 대답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레게 후작.
그가 돌연 무릎을 꿇었다.
역시, 부탁을 하려는 것인가.
무릎을 꿇는 후작의 행동에 나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뭐하는 짓입니까?”
짜증 났다.
이렇게 무례한 행동을 하는 레게 후작의 모습에 나는 정말 큰 실망감을 느꼈다.
천생군인이며 뛰어난 지휘관인 레게 후작.
그가 이렇게 무례한 행동을 하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레게 후작의 말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국왕 전하를 살려주십시오.”
“……?”
갑자기 무슨 개 소리인가?
멀쩡히 살아있는 양반을 살려달라는 레게 후작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국이 공국이 되더라도, 국왕 전하의 권위는 계속 인정해주십시오.”
“아니……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무릎을 꿇은 데다가 고개까지 숙이는 후작의 모습에 나는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런 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게 후작.
나는 그런 레게 후작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애초에, 이름만 바뀌는 것일 뿐.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공국으로써 제국을 섬기면 제국은 공국에 자치권을 줄 것이고 행정에 간섭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중에 왕을 바꾸실 생각 아닙니까?”
이 양반.
소설을 너무 많이 봤구만?
그래, 사실상 원래 공국으로 격하가 되면 사실상 식민지나 다를 바가 없어진다.
공국의 공왕은 황제의 명을 따르는 허수아비가 되며, 공국의 법은 황제의 말에 바뀌고, 공국의 백성들은 제국의 백성들을 위해 희생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것이 일반적인, 아니 소설과 역사서에서 나오는 공국이 처한 상황이다.
“다음 왕위 계승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야 시우 공작님…….”
“위즐리입니다.”
역시 이 양반 모르고 있다.
나의 말에 레게 후작은 두 눈을 부릅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루틸루스 국왕의 유일한 손녀, 코피아의 약혼자이지요.”
“그…… 그렇군요…….”
아직 루틸루스가 신하들에게는 자세하게 얘기 안 했나 보다.
“그리고 위즐리는 제 친동생과 같은 아이입니다.”
“그럼!”
“네.”
나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보는 레게 후작.
나는 그런 후작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제대로 제국을 섬긴다면 저는 오스란에 간섭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
“일어나십시오.”
나의 말에 허탈한 표정을 지은 레게 후작.
그런 그를 향해 내가 손을 내밀자 후작은 어색한 표정으로 나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 꽉 막힌 양반.
혼자 소설 쓰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어휴 야윈 것 봐라.
볼이 핼쑥한 레게 후작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굳이 사과받을 필요는 없었다.
내가 생각하던 천생군인.
그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후작을 보며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 * *
“반갑다.”
“아…… 반갑소…….”
한창 자신들끼리 대화를 주고받던 오스란 왕국의 귀족들.
그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튜라칸을 보며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튜라칸이다.”
“램컨이오.”
“라한이오.”
황태자의 친우이자 남부의 영웅이라 불리는 튜라칸.
그의 인사에 귀족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초면에 반말을 내뱉는 튜라칸의 행동은 상당히 실례되는 행동이었지만 다행히 이 귀족들은 정말 선한 귀족들이었다.
오스란에 몇 없는, 순박하고 착한 그런 귀족 말이다.
잠시 후.
“푸하하!”
“하핫.”
무례하지만 착한 튜라칸과 순박한 귀족 램컨과 라한은 금세 친해졌다.
서로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을 정도로 말이다.
“튜라칸 경이 정말, 마적단장 미라를 잡은 것이오?”
“그렇다. 그 자식 약했다.”
소드 마스터로 알려진 초인 미라.
그를 잡은 것이 황태자가 아닌 튜라칸인 것을 안 램컨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고 튜라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외다!”
그런 튜라칸의 모습에 라한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에 튜라칸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상인 가문이오. 항상 사막을 지나치는데…… 그대 덕분에 우리 가문이 살았소.”
작은 상단을 운영하여 영지를 먹여 살리는 램컨 남작.
그의 감사인사에 튜라칸은 어색한 표정으로 콧잔등을 긁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다.”
인간에게 감사인사를 받는 것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튜라칸이었던 것이다.
“나는 대장장이 가문이오, 이 친구를 통해 철을 공급받고 있었는데 망할 마적들 때문에 항상 적자였소. 한데 튜라칸 경 덕분에 일이 해결되었으니 그대는 나의 은인이오.”
“그렇소, 은인이오.”
가만히 있던 라한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하자 옆에 있던 램컨 또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튜라칸은 정말 은인이었던 것이다.
“크흠.”
그리고 그 둘의 인사에 튜라칸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흐흠.”
“나도 고맙소이다.”
그리고, 사막을 통해 영지를 먹여 살리는 또 다른 하위 귀족들이 다가와 튜라칸에게 감사인사를 건넸다.
솔직히 튜라칸이 두려웠지만 램컨, 라한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경계심이 풀렸던 것이다.
“한데, 오크 또한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오?”
여러 귀족들이 모여들고, 한 귀족이 튜라칸에게 묻자 튜라칸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 오크는 지식이 없지, 지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호오…….”
튜라칸의 대답에 신기해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주변 귀족들.
그에 신난 튜라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고대시대에는 오크와 인간이 함께 어울리며 살았다.”
“확실히.”
“그렇지요. 전설이지만 오늘 보니 가능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튜라칸의 말에 귀족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튜라칸의 의견에 동의했다.
오크인 튜라칸이 이렇게 말을 하며 자신들과 아무런 문제 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니 고대시대의 이야기가 전설은 아니라고 생각된 것이다.
“말도 안 되는군.”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싸늘한 목소리에 귀족들은 입을 다물었고 튜라칸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기에 끼어든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튜라칸이 고개를 돌리자 한 청년을 볼 수 있었다.
갈색 피부에 고급스러운 터번을 쓰고 있는 귀공자.
그게 손에 들린 와인잔을 흔들며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보고 한 소린가?”
“그럼 누구한테 한 말이지?”
그런 청년을 보며 튜라칸이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청년은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그러고는 와인 잔을 근처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가 마적단장 미라를 잡았다고?”
“그렇다.”
청년의 물음에 팔짱을 끼며 대답한 튜라칸.
“푸하하!”
그리고 그런 튜라칸의 대답에 청년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
그런 청년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튜라칸과 주변 귀족들.
“어이, 너희들.”
그런 귀족들을 보며 웃음을 멈춘 청년이 말을 걸자 귀족들은 몸을 떨었다.
“그 몬스터한테서 떨어져.”
“…….”
그리고 청년은 그런 귀족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청년의 명령에 귀족들은 튜라칸에게서 물러났고 튜라칸은 얼굴을 굳혔다.
“왜?”
그런 튜라칸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청년.
튜라칸은 당장에라도 저 청년을 죽이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이곳에서 실수한다면 오크의 이미지가 나빠져 자신의 수하들에게 피해가 간다.
오크 또한 참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술에 취한 건가?”
그런 청년을 보며 애써 화를 참고 입을 연 튜라칸.
튜라칸의 말에 청년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몬스터의 되도 않는 거짓말이 웃겨서 조금 마셨지.”
“레민 공자. 말이 지나친 것 같습니다.”
청년, 아니 시우 공작의 제자이자 조카인 레민의 명령에 물러나지 않은 두 명 중 한 명인 램컨.
그가 인상을 찌푸린 채 말하자 레민은 고개를 돌려 그런 램컨을 바라보았다.
피식.
그러고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지금…… 네놈 따위가 나한테 한 말이냐?”
공작의 후계자인 레민과 남작인 램컨.
평소에는 눈도 못 마주치는 하위 귀족 램컨의 말에 레민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민은 공식적으로 왕위서열계승 1위인 시우 공작의 양자이다.
자식이 없는 공작에게 있어서 레민은 유일한 후계자이며, 시우 공작이 왕이 된다면 그는 왕자가 된다.
하여 사실상 왕자와 같은 대우를 받았고, 그렇기에 레민의 콧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었다.
한데 웬 오크 놈이 나타나 파티의 주인공처럼 구니 꼴 보기가 싫었고, 그래서 시비를 걸었다.
한데 작위도 낮은 남작이 자신을 향해 경고하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취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램컨과 함께 튜라칸의 곁에 남아있던 라한이 램컨의 말을 거들었다.
“이런 미친 것들이…….”
그런 둘의 행동에 격분한 레민은 욕설을 내뱉으며 램컨과 라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가오는 레민을 바라보며 램컨과 라한은 두 눈을 감았다.
아마 자신들의 뺨을 후려칠 것이다.
확실하다, 이때까지 항상 낮은 작위의 귀족들을 때리고 권위를 내세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맞아야 했다.
그것이 자신들의 위치니 말이다.
한데 그 셋이 간과한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바로, 이곳에 국왕인 루틸루스가 있었고, 또 계속해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평소 파티에는 국왕인 루틸루스가 참가하지 않아 레민은 멋대로 행동할 수가 있었지만 이곳에는 국왕이 있다.
만약 루틸루스가 레민이 귀족들의 뺨을 때리고 깔보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분명 레민의 목숨은 지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레민은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 파티에 참여하며 맘에 들지 않는 귀족들을 항상 괴롭혀왔던 그이기에 루틸루스를 생각하지 못했다.
평소 늘 해왔던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간과한 것은…….
덥석.
“크윽!”
“너는 쓰레기군.”
소드 마스터인 미라를 손쉽게 제압한 초인, 튜라칸이 램컨과 라한의 옆에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