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9화
제139편 스피어 마스터, 루틸루스
“헤이 공작에게는 자세한 보고를 받았네.”
“그렇습니까.”
오스란 왕성의 응접실.
왕국의 주인인 루틸루스와 독대를 하기 위해 소파에 앉는 나는, 앉자마자 본론을 꺼내는 근육 영감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 양반.
실내인데 왜 웃옷을 벗고 있을까?
근육을 자랑하고 싶은 것인가?
-흉터가 대단하군.-
움찔거리는 근육을 보며 딴생각을 하던 나는 나의 왼쪽 어깨에서 들려오는 크산느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 가슴팍에 새겨진 엑스자의 흉터. 등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흉터. 배는 물론 팔까지, 흉터가 가득한 몸이었다.
“하핫!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훈장일세!”
나의 눈길을 느꼈을까?
루틸루스가 호탕하게 웃더니 팔을 흉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 영감, 아까부터 근육이 계속 움찔거리네.
아무튼, 나는 그런 루틸루스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하하. 대단한 거로 따지자면 황태자가 더 대단하지 않나? 황태자를 보면 나는 나 자신이 한심하네, 더 열심히 수련하고 노력해야 할 걸 하며 후회도 하고 말이야.”
나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은 루틸루스가 나를 추켜세우며 말했다.
이거, 상당히 기분이 새롭다.
전생에서 루틸루스는 전장의 붉은 사신이라 불리며 창으로 초인의 경지를 개척한 유일무이한 사내이다.
그런 사내가 나를 추켜세우니 어찌 기분이 새롭지 않겠는가?
“국왕께서는 이미 대단한 삶을 살고 계십니다. 창이라는 무기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신, 유일무이한 길을 걸으신 분 아니십니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이 근육 영감.
존경받을만한 위인이었다.
진심 어린 나의 말에 루틸루스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화통하게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
정말 기분이 좋은가보다.
루틸루스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 같았다.
“사실 말일세, 나는 국왕의 자리까지 오르기 전까지는 검을 사용했었네.”
“……?”
돌연 웃음을 멈춘 루틸루스.
순간 진지해진 그의 말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스피어 마스터인 그가 검을 사용했다.
이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나는 15살의 나이에 국왕의 자리에 올랐네. 귀족들의 힘이 너무나도 강해 나는 전쟁터 선봉에 나설 수밖에 없었지.”
“…….”
이 이야기는 잘 알고 있다.
선대 국왕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아, 15살의 어린 소년이 국왕의 자리에 오르고 귀족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전쟁터를 돌아다녔다는 것을 말이다.
아주 유명하다.
그 고난을 이겨내고 초인의 자리에 올랐으며, 귀족들을 모두 물리치고 왕권을 찾은 루틸루스의 이야기는 제국의 도서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루틸루스의 말에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자세를 앞으로 기울었다.
조금 더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전쟁터에서 말을 타고 마적들과 싸웠지, 말을 타며 묘기 부리듯 전쟁을 하는 마적들과 싸우기에는 검은 상성이 좋지 않더군, 그래서 나는 리치가 긴 창으로 무기를 바꾸었지.”
“호오.”
“처음에는 리치가 길지만 무게가 무겁고 동작이 커서 무수한 상처를 입었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병사들과 그리고 나를 믿어주는 기사들과 수련을 함께했네, 그리고 나는 붉은 사신이라는 이명을 얻게 되었지.”
“그리고, 자연스레 전하를 따르는 기사들이 많아져 귀족들을 척결한 것이군요.”
“아니.”
루틸루스의 말에 내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묻자 루틸루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루틸루스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알기로는 분명 그런 이야기 전개였는데 말이다.
“고블린, 오크들을 모두 죽여버린 것뿐이네.”
크으, 시원하구만.
권력에 찌든 귀족들.
그들을 고블린, 오크라 칭하며 죽여버렸다고 표현하는 루틸루스의 모습에 나는 세상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런 고블린, 오크.
아니 이건 실수다.
고블린, 오크들도 기분이 나쁠 것이다.
아무튼 그런 쓰레기보다 못한 것들을 처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루틸루스의 모습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루틸루스는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황태자도 나와 같군.”
“그래 보입니까?”
“아주 시원한 미소를 짓고 잇지 않는가?”
루틸루스의 말에 내가 장난스레 묻자 루틸루스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기도 시원한 미소를 지으면서 남 탓하기는.
“아, 이야기가 왜 이렇게 된 것이지? 아무튼 헤이 공작의 보고는 잘 받았네.”
크크.
한참을 웃던 우리 둘.
계속 웃던 루틸루스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맨 처음의 화두를 꺼냈다.
이 영감. 생각을 의식의 흐름대로 하는구만.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아무튼 루틸루스의 말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왕명을 어긴 것에는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닐세. 나는 자네가 취한 행동이 아주 마음에 드네.”
나의 담백한 사과에 미소를 지은 루틸루스.
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되레 나를 칭찬했다.
그런 시원한 영감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기, 제국에 있는 마법 쓰는 좀생이 영감과는 아주 달랐다.
바람직한 영감이다.
아무튼, 루틸루스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아니네. 외교적인 문제는 없을 것이니 안심해도 되네.”
“감사합니다.”
뒤처리까지 시원한 루틸루스.
그의 말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한 번 더 숙였다.
“되었네. 그나저나 위즐리 말일세.”
“네.”
“내가 알기로는 심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나를 보며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꺼내는 루틸루스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본인에게 듣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런가?”
“네, 제가 친한 형이더라도 그런 이야기는 본인이 하는 것이 제일 좋을 듯합니다.”
나의 말에 살짝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던 루틸루스는 이어진 나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 하는 것이 맞지.”
다행히 내 뜻이 잘 전달되었나 보다.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루틸루스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근데 말일세.”
“네.”
소파에 등을 기대며 미소를 짓던 루틸루스.
그가 다시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 근육 영감.
그간 많이 외로웠나 보다.
말 더럽게 많네.
물론 속으로는 투덜거리며 말이다.
아무튼 나의 대답에 루틸루스는 은근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황태자, 자네 드래곤 레어 가본 것이지?”
이 영감 귀신인가.
정곡을 찌르는 루틸루스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해왔던 선물을 꺼내 들었다.
품속에서 꺼내 든 붉은색의 작은 반지.
나는 그것을 루틸루스에게 내밀었다.
“별거 없었습니다. 두 개의 마도구를 흭득했고 이것이 그중 하나입니다.”
“역시, 황태자는 대단한 인물이군.”
이 영감.
역시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나를 떠본 것이다.
어쩌면 레어가 존재했던 곳.
갑작스럽게 무너진 산의 지형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사전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예상했고, 일부러 부정하지 않았다.
도리어 미리 레어에 있던 마도구 중 하나, 루틸루스가 마음에 들을 법한 것을 준비했다.
수많은 마도구들 중 단 하나만 선택한 이유도 있다.
“고맙네.”
이 영감은 심각할 정도로 물욕이 없기 때문이다.
무인의 자세는 물욕이 없는 것부터 시작한다.
초인의 경지를 개척하고 처음으로 꺼낸 루틸루스의 한 마디였다.
이 이야기는 대륙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오스란 왕국.
진짜 부자인 나라다.
해상 무역이 발달하여 대륙의 모든 무역이 모이는 본고장이기에 굴러가는 돈의 액수가 어마어마했고 그것으로 벌어들이는 세금과 왕국에서 관리하는 상단의 수입은 대단했다.
솔직히 제국도 함부로 못 까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지출도 많은 나라였기에 제국의 위상을 넘지는 못했다.
사막에서 미쳐 날뛰는 도적놈들이 있기 때문에 말이다.
아무튼, 물욕이 없는 루틸루스는 눈을 반짝이며 내가 건넨 반지를 집어 들었다.
“이것은 무엇인가?”
“껴보시지요.”
루틸루스의 물음에 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루틸루스는 조용히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우웅!
조금은 작던 반지가 공명을 일으키더니 이내 커지면서 루틸루스의 손가락의 크기에 맞고 변형이 되었다.
그에 흥미로운 표정을 지은 루틸루스.
나는 그런 루틸루스를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마나를 일으켜 보십시오.”
우웅!
나의 말과 동시에 붉은 마나를 끌어올린 루틸루스.
그와 동시에 반지에서 또다시 공명이 일어나더니 이내.
착.
루틸루스의 덩치와 비슷한 거대한 붉은 창이 나타나 루틸루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대단하군.”
붉은색의 창대와 붉은색의 빛이 흐르는 날카로운 창날.
드래곤의 뿔처럼 휘어지며 곧게 뻗은 창을 보며 루틸루스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루틸루스를 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물욕이 없으시니 코피아에게 주는 것은 어떻습니까?”
움찔.
장난스러운 나의 말에 눈에 띄게 움찔한 루틸루스.
나는 그런 루틸루스를 보며 더욱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코피아가 요새 창이 없어서 뛰어난 대장장이를 찾고 있던데 말입니다.”
“크흠. 이런 창은 코피아가 쓰기에는 위험해. 코피아의 등을 찌를 수도 있는 무기일세.”
“그렇습니까?”
헛기침을 하며 눈도 못 마주친 채 대답하는 루틸루스를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전하께서 사용하셔야겠군요.”
“그러는 게 좋은 것 같지?”
나의 말에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보며 묻는 루틸루스.
이 영감.
물욕이 없기는 개뿔.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묻는 루틸루스를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레어에는 정말 두 개의 마도구뿐이었나?”
“그렇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제가 어떻게 들고 가겠습니까? 왕국 곳곳에 전하의 눈이 있을 텐데.”
물론 아공간과 같은 마법 주머니가 없다는 조건 하에 말이다.
당당한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루틸루스는 이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드래곤 레어의 일은 정말 여기서 마무리하지.”
“알겠습니다.”
끝이다.
루틸루스도 만족했고 나도 만족했다.
솔직히 이렇게 간단히 끝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제국의 다음 주인인 황태자.
그런 내가 오스란 왕국의 영역에서 오스란 국왕의 명에 반했다.
물론 명을 들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놓고 반했다는 것은 국왕의 명예를 무시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국왕의 입장에서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루틸루스는 쿨했다.
상식과 다른 그의 행동이 나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영감, 친하게 지내도 나쁠 것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