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9화
제129편 요한, 나서다(1)
흠칫!
거대한 공터 옆 벽면.
그곳에 마련된 수 개의 방 중 한 곳에 들어선 나는 익숙한 뒷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느껴졌다.
익숙한 기운을 지닌 누군가가 이 레어 안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 어찌!”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짓는 땅딸보 드워프 라칸.
그런 라칸을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운명이랄까?”
“…….”
“너무 경계하는데?”
장난스러운 나의 대답에 경계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라칸.
그런 라칸을 보며 내가 어깨를 다시 으쓱이며 말하자 라칸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대는 좋은 사람이기에, 경고하겠네. 이곳은 내가 모시던 주인의 집. 물러나 주게.”
“흐음…….”
“부탁이네.”
정중하면서도 강력한 라칸의 경고.
그에 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라칸이 모시는 존재가 바로 죽은 드래곤이었던 것인가?
그를 잊지 못해 나를 따르지 못하는 것이고?
‘아…… 그래서 성공보상이 드워프들의 절대적인 충성이었군.’
이제야 모든 것이 들어맞았다.
이 레어에 관련된 임무를 완료하면 드워프의 충심은 덤이었던 것이다.
이거 다시 생각해봐도 아주 좋은 임무였다.
그렇다면…… 내 눈앞에 있는 존재 라칸.
그도 죽은 이 집주인과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 집주인의 보물이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 것 말이다.
<크산느.>
-꺼져.-
나의 부름에 본능적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크산느.
나는 그런 크산느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부탁해. 내 친구.>
-누…… 누가 네 친구냐!-
나의 간절한 어조와 부탁.
그에 크산느가 당황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고는 나의 허리춤에 있던 가방을 뺏어 들었다.
-흥! 친구니까 들어주는 건 아니다!-
저 자식 뭐지……?
나의 가방을 뺏어 들고 보물들의 기운이 가득한 방으로 날아가면서 툴툴거리는 크산느.
그런 크산느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이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귀엽네 저 자식.
아무튼, 라칸의 눈에는 보이지 않은 크산느였기에 라칸은 내가 보물을 챙기는 것도 모르고 계속 경계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이 레어를 허물 생각이다.”
“……?”
나의 말의 의미를 이해 못 한 것일까?
나의 말에 라칸은 여전히 경계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저 땅딸보 녀석, 이해력이 달리는군.
아무튼 나의 말에 라칸은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이오?”
“그래. 나도 인간이지만,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추악한지 잘 알고 있다.”
책에서 많이 봤으니 말이다.
나의 말에 라칸이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러더니 이내 호감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그대는 좋은 사람이오.”
“그러니, 그만 죽은 주인은 보내주고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그대와 함께 가면 나는 무엇을 볼 수 있소?”
나의 제안에 라칸이 나를 보며 물었다.
솔직히 생각지도 못했다.
라칸의 물음에 가만히 인상을 찌푸린 나.
머릿속으로 무엇을 말해야 라칸이 나를 따라올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라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세계정복.”
“…….”
“그리고, 모든 종족이 평화롭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전쟁 없는 나라.”
“!!!”
“네 자식 대에는 지금처럼 숨어 살지 말고, 인간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좋지 않겠나?”
마지막 나의 말에 라칸은 동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 분명 처자식이 있다 했다.
그렇다면 자라나는 자식들이 살아가는 세대에 민감한 것은 당연지사.
솔직히 그것을 노리고 말한 것이지만, 이 이야기는 백 퍼센트 진심이었다.
신인 에르가 황제였던 시절.
고대 제국 트로이는 엘프, 드워프, 오크, 심지어 고블린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어울리며 살아왔다.
서로 존중하며 개성을 이해했다.
정말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세상이었지만 에르는 해냈다.
그렇기에 나도 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전생의 나와 같은 심각한 둔재도 노력만 한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세상.
나의 말과 표정에 진심을 느꼈을까?
라칸은 진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를 믿겠소!”
“고맙군.”
라칸의 대답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라칸이 포함된 우리는 레어의 입구에 섰다.
다시 봐도 거대한 동굴 입구.
나는 가만히 그런 동굴 입구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사라져 사람들에게 잊힐 예정인 동굴.
내 눈에 조금이라도 더 담아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마음, 아니 나보다 더 강한 마음으로 동굴을 바라보는 라칸.
그가 동굴 입구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더니 이내 몸을 돌렸다.
“나는 준비 됐소.”
몸을 돌리고 눈물을 훔치며 말한 라칸.
나는 그런 라칸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은 다음 마나를 끌어올렸다.
우웅.
그와 동시에 생성된 겔루 칼립스.
나는 조용히 겔루 칼립스를 들었다.
“형. 정말 없앨 생각이야?”
“그래.”
“하지만…….”
“위즐리.”
나의 대답에 아깝다는 표정으로
나를 만류하려던 위즐리.
내가 목소리를 깔고 녀석을 부르자 녀석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차마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녀석.
왜 네 마음을 모를까?
하지만 본인이 원하잖아.
인간들의 탐욕에 이용되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우웅!
나는 그런 위즐리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은 다음 다시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나의 검에 검은색의 유형화된 마나가 나타나 검을 휘감더니 이내, 정제된 오러 블레이드가 되었다.
그 상태로 나는 조용히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디위니타스 (dīvínĭtas) 검술 일 식.
위대한 황제의 한 걸음.
나의 한걸음에 모두가 무릎을 꿇고 나를 경배하리.
우웅!
주변의 공기가 나의 제어에 들어온다.
주변에 있던 생명체 그리고 식물들.
그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마음만 먹으면 그들의 숨을 멈추게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이제부터 내가 지배할 것이고, 모두가 나를 경배할 것이다.
디위니타스 (dīvínĭtas) 검술 이 식.
위대한 황제의 내려침.
그 누가 나의 것에 벌을 내린다는 말인가?
무엄하고. 무례하다. 벌을 내릴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나 자신뿐.
나의 것을 건드린 그대, 천벌을 받아라.
나의 앞에 위치한 거대란 드래곤 레어.
인간들의 탐욕에 의해 사라지기를 원하는 장소이다.
인간들의 군주이자 황제인 나.
내가 인간들을 대표해 이곳에 벌을…… 아니 상을 내리겠다.
우리 탐욕스러운 인간들에게 잊혀 이제 그만…… 행복한 단잠에 빠지기를…….
쿠콰콰쾅!!
그와 함께, 레드 드래곤 니코의 레어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 * *
레어를 처리하고 나온 우리.
나는 일행들을 먼저 렌으로 보내고 칼론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오스란 왕국에 하나뿐인 산맥.
그곳의 중간 지점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 때문이었다.
위즐리는 눈치를 채고 나를 따라오고 싶어 했지만 눈치 빠른 엘로나가 그런 위즐리를 만류했다.
정말 영특하고 예쁜 내 여자친구다.
아무튼, 엘로나는 위즐리와 라칸을 데리고 렌으로 돌아갔고, 나는 칼론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볼 수 있었다.
복부에 상처를 입어 괴로워 보이는 한 여인과 찌질해 보이는 남성.
그리고 맞은편에 거대한 기세를 내뿜으며 대치하고 있는 3명의 소드 마스터, 그리고 1명의 오러 나이트 상급.
그 4명을 보며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국에서도 보기 힘들고 귀한 소드 마스터이다.
한데 그 소드 마스터가 사막의 왕국이라 불리는 렌에 있다니?
“용병왕입니다.”
그때,
용병왕 할간을 알아본 칼론이 나를 향해 말해주었고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4명. 모두 내가 아는 인물이었다.
시종장인 드라칸이 필히 알아야 한다면 나에게 대륙의 소드 마스터와 대마법사들의 신상명세서, 그리고 그림을 보여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용병왕 할간, 정보 길드장 카리나, 전갈 마적단 단장 미라, 그리고 루틸루스의 검이라 불리는 헤이 공작까지.
오스란 왕국에서 유명한 인물은 모두가 이곳에 모여 있었다.
물론 용병왕 할간은 오스란 왕국소속이 아닌 자유의 몸이었지만 이곳에서 보니 솔직히 의외였다.
“보기 흉하군요.”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들이 비교적 평범해 보이는 여인을 압박하고 있었다.
보물이라는 탐욕에 눈이 멀어 말이다.
그에 분노한 칼론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고 나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에도 칼론과 같이 아주 추악해 보였으니 말이다.
그 추악한 모습에 분노한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욕심에 눈이 멀어 서로 검을 겨누며 싸우고 있는 추악한 인간들.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점점 잦아지는 검 소리, 함성.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마나를 끌어올린다.
이제 이 공간은 내가 지배한다.
우웅!
나의 몸에서 뿜어지는 위엄.
그와 동시에 모든 사람은 들고 있던 무기를 내렸다.
감히 나의 앞에서 검을 겨눌 수가 없으니 말이다.
우뚝.
나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고는 여인과 사내의 앞에 멈추어섰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한번 둘러본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가관이군.”
언제 싸웠냐는 듯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멍청한 인간들.
그들을 보며 내가 싸늘하게 말하자 선두에 있던 노인, 헤이 공작이 정중한 어조로 나를 향해 물었다.
“그대는 누구시오?”
헤이의 정중한 어조.
“나?”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펄럭.
그리고 나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로브를 벗어던졌다.
로브가 벗겨지며 사람들에게 보이게 된 나의 잘생긴 얼굴.
나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들은 이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설마!”
그런 사람들의 행동에 나는 더욱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반가워 나는 요한이야.”
존X 반갑다, 쓰레기들아.
욕심에 눈이 멀어 동료를 버리고, 인간이 하지 않아야 할 짓을 했으며 자리에 맞는 책임감도 저버린 쓰레기들.
그들을 보며 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황태자 전하께서 이곳까지 어인 일로…….”
나의 인사에 당황하던 할간이 조심스럽게 묻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용병왕은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
“그야…….”
“돈이 많이 궁하셨나?”
나의 말에 대답을 하려던 할간은 이어진 나의 말에 입을 그대로 다물었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말이 심하시오.”
대륙에서 용병왕이라 추앙받는 존재.
대륙에 있는 수만 명이나 되는 용병들의 대표이자 초인인 그다.
아무리 황태자인 나라도 할간에게 이렇게 하는 것은 상당히 예의를 벗어나는 일이다.
그렇기에 할간은 나한테 화를 냈다.
그런데 말이다.
“꿇어.”
털썩.
나보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눈을 쳐다보니 목이 아프네.
이 공간의 지배자인 나의 한마디에 할간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용병의 위상을 높이 올린 대륙의 초인 용병왕 할간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