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2화
제122편 항구도시 렌으로(1)
“칼론.”
“네.”
“네 삼인방은 잘하고 있지?”
무커와 렌, 그리고 아델.
이번 경쟁전이 칼론이 점찍은 평민 출신 세 명을 언급하자 칼론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네. 아주 열심히 수련 중입니다.”
“그래. 가족들과 자주 만나게 해주고, 최대한 편의를 봐주도록 해. 물론 잡을 때는 조져버리고.”
“알겠습니다.”
나의 명령에 칼론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메이슨.”
“네.”
“고문은 했나?”
“…….”
칼론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시 메이슨을 향해 물었고 나의 물음에 메이슨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왜?”
그런 메이슨의 모습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메이슨은 고개를 들고는 특유의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자식, 저게 그냥 무표정인 듯하다.
아무튼, 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 메이슨이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는 그자의 죄에 맞게 벌을 주실 것 아니십니까?”
“음? 그렇지?”
나를 보며 묻는 메이슨.
녀석의 물음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메이슨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되었습니다.”
“뭐?”
“저는 따로 복수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메이슨.
그런 녀석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선택이지만, 자기가 그러겠다는데 내가 뭐라 하겠는가?
나는 그런 메이슨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뭐, 네가 알아서 해라.”
“감사합니다.”
그런 나의 말에 메이슨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고 피식 미소를 지은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집에 가봐. 부모님이랑 좋은 시간 보내야지.”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나의 말에 메이슨은 변함없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메이슨이 물러나고 나와 칼론, 그리고 크산느만이 나의 집무실에 남게 되었다.
“칼론.”
“예 주군.”
낮게 깔린 나의 목소리.
그런 나의 부름에 칼론은 얼굴을 굳히며 대답했고 나는 조용히 품속에서 신성력이 담겨 있는 병을 꺼내었다.
“갈이 소지하고 있던 것이다.”
“신성력입니까?”
이미 나의 몸에 있는 신성력을 접한 칼론.
병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기운을 느낀 칼론이 조심스럽게 묻자 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갈의 말로는, 이것을 트루히드 후작에게 받았더군.”
“하면, 둘 다 트레이 교단의 신도인 것입니까?”
나의 말을 들은 칼론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피식.
그런 칼론의 물음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신이 있다는군.”
“신이 두 명인 것입니까?”
나의 말에 칼론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칼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나의 대답에 가만히 입을 다물고 복잡한 표정을 짓는 칼론.
나는 그런 칼론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더 복잡해진 것 같다.”
“그렇군요.”
“참, 너는 나와 함께 렌으로 갈 거다.”
“……?”
남부.
사막과 바다가 공존해 있는 나라 오스란 왕국.
사막을 지나면 해상무역이 발달한 항구마을이 수없이 많았으며, 오스란 왕국의 수도, 렌 또한 수많은 항구마을 중 하나다.
아니 정확히는, 대륙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지.
아무튼, 나의 말에 칼론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갑자기 렌이라니 말이다.
“크림슨이 그러더군, 랜에 갔을 때, 또 다른 힘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하면……?”
나의 설명에 칼론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찾아서 직접 물어봐야지.”
어떤 사상을 지녔는지, 정말 사이비인지 말이다.
* * *
“뭐라 했느냐?”
“이런 미친놈이!”
황제의 집무실.
로얄 패밀리의 구성원인 황제와 아버지, 그리고 실.
마지막으로 황태자인 나.
보기 드문 이 모임에서 황제는 인상을 찌푸렸고 아버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실은 테이블을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웅!
그때,
“!!!”
나의 어깨에 앉아 있던 크산느.
녀석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이내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밝은 빛과 함께 황제와 아버지, 그리고 실에게 보이는 크산느.
녀석은 자신의 모습을 세 명에게 보이게 하고는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내려다보았다.
-에펜의 아이들이구나.-
“수호룡을 뵙습니다.”
크산느의 근엄한 한마디.
그의 마나가 가득 실린 한마디에 황제, 그리고 아버지와 삼촌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가장 존경하는 선조의 벗이며, 제국을 수호하는 수호룡, 전설시 되는 존재이기에 대륙의 주인이라 불리는 황제 또한 선조를 대하듯 크산느에게 예를 갖춘 것이다.
이거…… 어째 족보가 꼬인 듯하다.
아무튼, 크산느는 그런 셋을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일어나거라.-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아닌, 머리를 울리는 목소리.
그런 크산느의 목소리에 세 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떨리는 눈빛으로 크산느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이렇게 뵙게 되니 좋습니다.”
대륙의 주인, 황제.
그가 떨리는 음성으로 크산느에게 말하자 크산느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이내 나의 머리로 날아와 앉았다.
“앉으시지요.”
나의 머리에 앉은 크산느를 무시하고, 아직 일어서 있는 세 명에게 내가 자리를 권했고, 세 명은 크산느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크산느가 이렇게 형태를 보인 것은, 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맞지?”
-그렇다.-
앉은 세 명을 바라보며 말한 다음 내가 크산느에게 묻자 크산느는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식, 되게 근엄한 척하네.
있어 보이게.
내 말을 믿지 못했던 세 명은 크산느까지 동의하자, 내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중 가장 깊은 한숨을 내쉰 황제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만들어주신 분입니다.”
황제의 말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이비 같군.”
그런 나의 모습에 실은 한숨을 내쉬었고, 옆에 있던 아버지 또한 부정하지 않은 채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나도 처음에 못 믿었으니 당연하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라, 나약한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여, 나는 이때까지 신을 믿는 인간들을 혐오해왔고 말이다.”
낮게 깔린 황제의 음성.
자신의 가치관을 주장하는 황제를 보며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입을 열었다.
“……폐하의 생각과 정말 다르다는 것은 알지만…… 사실입니다.”
황제의 생각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황제의 생각이 대륙의 대부분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이니 말이다.
나의 대답에 세 명은 다시 신음을 흘렸다.
제국의 수호룡인 크산느가 보증을 해도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았나 보다.
그래, 이해한다.
나도 에르와 직접 만났기에 그를 믿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웅.
테이블에 올려진 나의 손.
펼쳐진 나의 손바닥에 동그란 보라색의 기운이 생성되었다.
“!!!”
나의 손에 유형화된 신성력.
그에 7 서클 러너인 황제와 소드 마스터인 아버지, 그리고 엘리멘탈 마스터인 실은 두 눈을 부릅뜨며 나의 손에 생성된 신성력을 바라보았다.
마나, 정령력, 그 모든 것에 익숙한 세 명이었다.
한데 나의 손에 생성된 신성력은 그들이 처음 보는 힘이었기에 이렇게 놀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입을 열었다.
“어떤 기운입니까?”
“따뜻하다.”
“패도적이다.”
“…….”
나의 물음에 아버지는 따뜻하다고, 실은 패도적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나는 아무 말 없는 황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의 시선을 눈치챈 것일까?
빤히 신성력을 바라보던 황제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의 두 눈을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버지다.”
빙긋.
역시 황제는 뭔가 다른 듯하다.
황제의 대답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에르님을 믿는 교단, 트레이 교단의 성자입니다.”
“!!”
“에르라는 신을 직접 만난 적도 있습니다.”
“허어.”
첫 번째 나의 말에 놀란 표정을, 그리고 이어진 나의 말에 세 명은 탄식했다.
신과 직접 만났다는 내가 미친놈 같기도 하고, 또 평소에 이런 것에 헛소리 안 하는 나를 잘 알기에 사실이라고도 생각되어 복잡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신은…… 정말 존재합니다.”
나의 확신 어린 말.
그 말에 잠시 고민 어린 표정을 짓던 황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네가 그렇게 결정을 한 것이냐?”
나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는 듯한 황제의 날카로운 눈빛.
그 눈빛을 피하지 않고 나는 당당하게 마주했다.
그리고 확신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다.”
“폐하.”
“큰형!”
나의 확신 어린 대답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아버지와 실이 깜짝 놀라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황제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다음 황제는 누구냐.”
“…….”
“다음 세대는 저 녀석이 만들어 갈 것이다. 도움이 되지 못할망정 방해할 생각이냐?”
“폐하, 하지만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황권이 약해질 것입니다.”
황제의 말.
그 말에 실은 입을 다물었지만 날카로운 우리 아버지는 황제에게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에 황제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머리가 많이 굳었구나.”
“예……?”
생각지 못한 황제의 대답.
그 대답에 나는 입가를 가리며 웃었고 아버지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이 무엇이라 했느냐?”
“…….”
“성자라고 하지 않았느냐.”
“……!!”
황제의 첫 번째 물음에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아버지, 이어진 황제의 말에 아버지와 실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래, 고대시대에 존재했던 제정일치의 시대가 시작된다, 그 뜻은?”
“황족은 신의 선택을 받은 고귀한 혈통이 됩니다. 모든 백성은 황족을 신성시할 것이며, 귀족들은 감히 반역을 꿈꾸지 못할 것입니다.”
황제의 물음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나.
그에 황제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거지.”
“아…….”
나의 대답과 미소를 지으며 긍정하는 황제.
그에 아버지와 실은 감탄 어린 표정을 지었고 가만히 있던 크산느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무서운 놈들.-
그러고는 말했다.
신, 에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우리 둘의 모습이 밉지 않았나 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에르를 진심으로 따르고, 그에 부가적인 이득은 내가 취해야 하지 않는가?
크산느의 말에 나와 황제, 그리고 아버지와 실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술 한잔하시지요.”
“헐.”
“헙.”
“보스야…….”
그때,
아버지의 입에서 생각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알코올 쓰레기라고 불릴 정도로 술이 약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자진해서 먼저 술을 한잔하자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늘 무뚝뚝하던 얼굴이 아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