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6화
제116편 요한 취하다(1)
“재미있구나.”
그때.
파티홀의 공기가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홀에 들어선 황제와 그 뒤를 따르는 오스란 국왕, 하이아칸 국왕.
카자르의 표정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루틸루스의 얼굴은 긴장으로 인해 굳어져 있었다.
그리고 황제의 얼굴은…….
“트루히드 후작. 일어나지.”
“예 폐하.”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 트루히드 후작에게 황제가 말하자 후작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있던 기사가 내민 손수건으로 급히 음식물을 닦은 후작은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다시 황제를 바라보았다.
“저는 황태자 전하에게 폭행을 당하였습니다.”
“흐음.”
후작의 말에 턱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짓는 황제.
후작은 그런 황제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본국의 인재를 뺏어간 황태자 전하의 행동은 옮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당당하게 따진 것뿐, 한데 전하께서는 저에게 폭행을 가하였습니다.”
키야. 저 자식 지 입장에 맞춰서 말 잘하네.
나는 계속해서 나불거리는 트루히드 후작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황제를 바라보았다.
이미 황제는 여기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의 입장도 분명히 알고 있을 테고 말이다.
여기서 황제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봐야 했다.
“카자르 국왕.”
“예.”
웃음기 섞인 황제의 부름에 카자르는 일그러진 얼굴로 대답했다.
고개를 돌려 그런 카자르를 바라본 황제.
그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대의 귀족은 황족이 만만한가 보오.”
“…….”
“겁도 없이 미쳐 날뛰고 있으니 황제인 나는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황제의 말에 카자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 트루히드 후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국왕이라는 자가 왜 저런 행동을 한단 말인가?
“전하. 어찌 고개를 숙이시는 것입니까.”
그런 카자르를 향해 트루히드 후작이 언성을 높이며 원망하자 카자르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퍼억!
그리고 빛과 같은 속도로 후작에게 달려들어 후작의 머리통을 잡고 나의 앞, 대리석 바닥에 처박았다.
콰쾅.
어찌나 강하게 박았는지 파티홀 대리석 바닥이 부서졌고, 그 부서진 파편 사이로 트루히드 후작의 피로 보이는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
“황태자, 용서하게.”
그리고 한 나라의 국왕인 카자르가 나를 향해 용서를 구했다.
그런 카자르의 행동에 하이아칸 왕국의 귀족들은 굴욕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래 굴욕적이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당장 우리들의 도움이 없으면 곡식이 끊겨 백성들이 굶어 죽을 것이며, 내가 마음만 먹으면, 위로는 설인족들이, 밑으로는 제국의 병사들이 들이닥칠 수도 있다.
영토의 경계가 전부 제국에 접해 있기 때문에 타 왕국의 도움도 구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런 상황에서 제국의 미움을 받는다면?
하이아칸 왕국은 멸망이다.
“갈의 신변을 저에게 넘기십시오.”
“……알겠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카자르에게 내가 포박되어있는 갈을 가리키며 요구하자 카자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카자르의 모습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일어나십시오. 사위가 될 저로서는 불편합니다.”
“하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카자르를 향해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고 카자르는 얕은 한숨을 내쉬고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가?”
“장인어른 덕분에 여기까지 한 것입니다. 아니었다면 저자가 지금처럼 숨을 쉬고 있지 않았지요.”
여기서 끝낸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나를 원망하는 카자르의 눈빛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적인 감정 때문에 봐준 것이다.
여기서 더 봐달라고?
그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나의 대답이면서 동시에 경고인 말에 카자르는 고개를 돌렸다.
흐음…… 아무래도 점수 깎인 듯하다.
한데 어쩌겠는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이니 말이다.
갈을 넘겨받은 나는 황제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폐하, 송구합니다만 저는 이만 물러나도 되겠습니까?”
“그러도록 하라. 그리고 철저히 조사하거라.”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 황제.
그런 황제의 명령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당당한 걸음으로 수많은 귀족들의 시선을 받으며 레헤튼, 메이슨, 칼론과 함께 파티홀을 벗어났다.
* * *
파티가 흐지부지 끝이 나고.
황궁 내부, 배정받은 별궁으로 돌아온 루틸루스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시우를 바라보았다.
“살벌하더군.”
그러고는 파티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런 루틸루스의 말에 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희 남부인들처럼 호전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천성적으로 지닌 카리스마와 위엄으로 주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섭지.”
“…….”
시우의 평가에 동의하며 대답한 루틸루스가 말하자 시우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 초인의 경지를 진작에 넘었다.”
“정말입니까?”
20살의 나이에 소드 마스터에 오른 역대급 천재 요한 카르미언 듀크.
스피어 마스터라 불리며 20년 전 초인의 경지를 넘은 강자, 루틸루스의 말에 시우는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에 루틸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 3년은 지난 듯하다. 완숙한 경지야.”
“허어…… 하면 17의 나이에……?”
“그렇겠지.”
루틸루스의 확신 어린 말에 시우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일평생을 창에 매달려 수련해와서 오러 나이트 상급이라는 위치에 올랐는데, 17살의 나이에 소드 마스터에 올랐다고?
이 얼마나 허탈한 순간인가?
“우리 왕국도 끝이겠더군.”
“예……?”
오스란 왕국의 국왕이자 붉은 사신, 스피어 마스터 루틸루스.
그의 조용한 말에 시우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루틸루스를 바라보았다.
항상 최전방에 나서서 적들과 싸워온 초인.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남방의 무인 중 최고의 무인.
그런 무인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제 20살인 황태자를 말이다.
루틸루스의 말에 시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런 시우의 눈빛에 루틸루스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들었다.
“나도 늙었군그래.”
“…….”
오늘따라 왠지 더 처량해 보이고, 작아 보이는 루틸루스의 모습에 시우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물러가게.”
“예 전하. 푹 쉬십시오.”
힘없는 루틸루스의 축객령에 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고, 이내 물러났다.
그러고는 가만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이 비추는 아름다운 밤하늘.
시우는 그런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미안하다…….”
이제는 별이 되었을 자신의 벗을 생각하며 말이다.
* * *
“뭐 하십니까?”
그 시각.
아름다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술 한잔 하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선생님의 옆자리에 앉았다.
“왔느냐?”
“예 왔지요.”
선생님의 말씀에 빙긋 웃으며 대답한 나는 선생님이 건넨 술잔을 조심스레 받았다.
“웬 청승입니까?”
“까부는구나.”
“하하.”
나의 말에 선생님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고 나는 소리 내 웃었다.
-왜 그래?-
가만히 있던 크산느.
녀석이 나와 선생님의 사이에 있는 테이블에 앉으며 묻자 선생님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요새 외롭군.”
“……?”
선생님의 대답에 나는 놀란 표정을 찌푸렸고 크산느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런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수천 년을 혼자 살아온 녀석이 갑자기?-
“코피아가 왕국에 가겠다고 합니까?”
빈정거리는 크산느를 무시한 채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묻자 선생님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왜……?”
“코피아 요새 연애하더군.”
“아…….”
-미친놈.-
생각지 못한 선생님의 대답에 나는 당황했고 크산느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푸하하!”
그리고 나는 이내 소리 내 웃었다.
“웃기냐?”
그런 나의 웃음에 기분이 나빴을까?
선생님이 살짝 째려보듯이 보시며 물었고 그에 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찔끔 나온 눈물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요. 선생님. 진짜 인간 같아요.”
“응?”
-완벽했다.-
나의 말에 당황한 선생님.
이어 크산느까지 말을 보태자 선생님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손에 들린 술잔을 들어 나에게 내밀었다.
“제자는 허튼소리 하지 말고, 선생님이나 위로해주거라.”
“넵! 술은 또 제가 전공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자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선생님 잔에 부딪혔다.
이때는 나는 잠깐 깜빡했다.
선생님이 드래곤이라는 것을.
그리고 선생님의 본체는 거대한 대저택만큼 컸고, 주량도 그만큼 엄청나다는 것을 말이다.
정말…… 강적이었다.
* * *
“끄응.”
다음 날.
나는 깨질 듯한 두통에 머리를 붙잡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무…… 물…….”
너무나도 갈라져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나의 목 상태.
힘들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이내.
“자.”
나의 앞에 내밀어 진 물컵을 받아 들었다.
꿀꺽꿀꺽.
그리고 시원하게 들이켰다.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에 그제야 머리가 조금은 맑아진 나는 컵을 내려놓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 엘로나.
그녀가 평소에는 보여주지 않는 차가운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머릿속으로 내가 잘못한 것을 떠올리려 했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당장 어제의 기억도 나지 않는 나였기에 나는 긴장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나는 이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엘로나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엘로나, 아침부터 이렇게 예쁘네.”
“지금 오후야.”
“미안.”
쩝, 많이도 잤네.
차가운 엘로나의 목소리에 나는 바로 사과했다.
안 하는 것보다 나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런 나의 사과에 엘로나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움찔.
그런 엘로나의 눈빛에 움찔한 나는 이내 헤헤 미소를 지으며 엘로나를 바라보았다.
“화내는 것도 예쁘네.”
“조용히 해.”
“응.”
쩝, 무서워라.
엘로나의 말에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야 크산느.>
-크큭.-
아까부터 계속해서 배를 잡으며 아예 뒹굴거리면서 웃고 있는 크산느.
그런 녀석을 부르자 크산느는 웃으면서도 나를 바라봤다.
아 얄밉다.
<엘로나 왜 이래?>
-기억 안 나지?-
<…….>
크산느의 한마디에 나는 극도의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정말 미친 사람…… 아니 미친 드래곤처럼 술을 잘 마시는 선생님 때문에 처음으로 기억이 끊겨버린 나다.
혹시 그 기억을 잃어버린 사이.
만취한 상태로 엘로나에게 실수한 것은 아닐까?
도대체 무슨 부끄러운 짓을 했단 말인가?
엄청난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왔다.
-그러니까 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