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4화
제104편 특별 무대
두 번째 날은 마법대결.
모두의 예상대로 인스티오 수석 학생이 우승을 차지했다.
두 눈을 밝히며 그를 영입하려고 노력했던 할아버지는 그의 정체를 알고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포기했다.
하이아칸 왕국의 대마법사 갈의 손자였던 것이다.
그러고는 나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신세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우리 손자는 마법도 못하고!”
누가 봐도 나를 저격하는 말이었지만 나는 무시했다.
상대하면 더 피곤해지니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
세 번째 날은 지식대결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역시, 인스티오 출신 학생이 우승했으며 녀석은 레헤튼이 눈여겨 봐둔 학생 중 하나였기에 황태자궁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준우승과 3위 또한 나의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3명 모두 제국 출신이었고 제국의 위상은 한층 더 높아졌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자신 있나?”
선수 대기실.
모든 경쟁이 끝이 나고 마지막 날은 관중들을 위한 스페셜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바로 무술 경쟁의 우승자와 마법 경쟁의 우승자의 대결!
그 스페셜한 대결을 위해 대기실에 있던 무커를 나는 친히 찾아갔다.
내가 대기실에 들어서며 무커에게 묻자 렌 그리고 아델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무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세 명이 함께 나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딱딱한 녀석들.
나의 등장에 각을 잡으며 예를 차리는 놈들을 보며 내심 혀를 찼지만 이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저들의 교육을 맡은 사람은 바로 칼론이다.
노잼에 군인처럼 각을 중시하는 재미없는 놈.
눈치도 없고, 멍청하지만 충직하며 뒤를 맡길 수 있는 충직한 놈.
그런 놈이 마음에 들어 하는 놈인데 그놈이 그놈이겠지.
내심 저들이 한심하면서도 왠지 정이 가는 나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고는 중간에 있는 무커를 바라보았다.
“자신 있느냐고.”
“물론입니다!”
나의 물음에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무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상대는 하이아칸 왕국의 대마법사 갈의 손자이다.”
“…….”
“이것은 제국과 하이아칸 왕국의 자존심 싸움이며, 개인적으로…… 외할아버지의 투덜거림을 듣기 싫다.”
“풉.”
“렌!”
장난스러운 나의 말에 입을 가리며 웃은 렌.
그리고 그런 렌을 무서운 표정으로 호통치는 칼론.
칼론의 호통에 움찔한 렌이 서둘러 다시 각을 잡았고 나는 피식 웃으며 칼론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좀 닥치라고 말이다.
아무튼 나의 말에 무커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국의 위상을 높이고 모든 공을 전하께 바치겠습니다.”
“이 자식, 덩치에 안 맞게 말 잘하네.”
그런 무커의 말에 피식 웃은 나는 품속에서 하나의 장갑을 꺼내 무커에게 건넸다.
“……?”
“받아라.”
내가 건넨 장갑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무커.
그런 무커의 행동에 나의 뒤에 있던 칼론이 서둘러 말했고 그제야 무커는 내가 건넨 장갑을 받아들었다.
“미스릴을 가늘게 실처럼 뽑아 수천 번 엮어 만든 장갑이다.”
“!!!”
대륙에서 가장 귀하고 단단한 광물 미스릴.
최고의 명장만이 가능한 미스릴을 실처럼 뽑아 엮은 희대의 명작.
그것을 받은 무커는 두 눈을 부릅뜨며 그대로 굳어버렸고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런 무커를 내려다보았다.
“내 수하는 한 분야에서 최고여야 한다.”
“…….”
“너는 그래플러에서 최고, 너는 방패 기사에서 최고, 너는 쌍검술에서 최고.”
무커, 렌, 아델 순으로 가리키며 내가 말하자 셋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갑작스럽게 내가 최고가 되라 했으니 당황스러울 법도 할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나는 황태자이며 대륙의 주인이 될 존재다.
그리고 세계정복도 할 생각이다.
그런 나의 수하가 최고가 아니면 쓰나?
“자신 없나?”
그런 셋을 보며 내가 장난스러운 어조로 묻자 세 명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최고가 되겠습니다!”
그래 이 자식들아.
“내가 뒤에서 도와주마.”
너희들 주군이 돈 많은 황태자야.
장비는 빵빵하게 지원해줄게.
* * *
“메이슨.”
“예 할아버지.”
그 시각, 다른 선수 대기실.
마법 경쟁의 우승자 메이슨은 할아버지의 방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너는 마법 명가 콜드 가의 핏줄이다.”
“…….”
갈의 말에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는 메이슨.
갈은 그런 메이슨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닌 것이냐?”
“맞습니다.”
언성이 높아진 갈의 물음에 메이슨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고 그에 갈은 인상을 찌푸렸다.
“쯧쯧. 어찌 방계에서 저런 놈이 나와가지고…….”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혀를 찼다.
꽈악.
그에 주먹을 강하게 말아쥔 메이슨.
갈은 그런 메이슨을 보고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분하느냐?”
“아닙니다…….”
갈의 물음에 이를 악물고 부정한 메이슨.
누가 보아도 분한 모습이었지만 메이슨은 부정했고 갈은 다시 한 번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분하면 최고가 되어라. 그리고 가주가 되거라.”
“꼭 그럴 것입니다.”
‘콜드 가의 가주가 되어 당신을 죽일 것이니까요.’
갈의 말에 메이슨은 고개를 들고 갈의 두 눈을 보며 대답했다.
마음속으로 칼을 갈며 말이다.
그런 메이슨의 말에 갈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대기실을 벗어났다.
“…….”
갈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홀로 남게 된 메이슨.
그는 자신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들었다.
딸깍.
그러고는 버튼을 눌러 펜던트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보이는 선남선녀 한 쌍.
메이슨은 그 그림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콜드 가주의 서자의 아들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하녀 출신이었던 자신의 어머니.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
어린 시절 메이슨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마법 수련을 했다.
그 결과.
직계를 뛰어넘는, 아니 대륙의 역사를 다시 쓸 재능을 보였고 콜드 가의 가주, 갈은 그를 후계자로 삼았다.
그에 기뻐한 메이슨은 이제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콜드 가에서 무시를 받지 않고 살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갈은 악마였다.
자신의 부모를 볼모로 자신을 압박하였으며, 자신이 잘못하면 자신의 부모를 고문시켰다.
자신의 눈앞에서 말이다.
그렇기에 메이슨은 이를 악물며 노력했다.
자신의 부모를 위해서 말이다.
만약 이번 대회에서 진다면…….
자신의 부모는 다시 자신의 눈앞에서 괴로워하겠지.
꽈악.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메이슨이 펜던트를 꽈악 쥐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꼭 이긴다.”
* * *
“좋겠군.”
“하하. 아닙니다.”
귀빈석 상석에 앉아 있는 나의 귀에 들리는 음성.
루틸루스의 음성과 기뻐하는 카자르의 음성이었다.
이번 오스란 왕국의 성적은 저조했다.
준우승자 중에서도 오스란 왕국 출신의 학생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에 루틸루스의 기분은 상당히 저기압이었고 카자르는 그런 루틸루스 옆에서 연신 미소를 지었다.
“시우.”
“예 전하.”
그런 카자르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루틸루스는 고개를 돌려 시우를 바라보았다.
시우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돌아가기 전, 이제 졸업생으로 올라가는 우리 왕국 출신 학생들 모두 모아.”
“알겠습니다.”
저런…….
루틸루스의 명령에 시우 역시 강하게 긍정하는 듯 칼같이 대답했고 나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졸업생이 되는 오스란 왕국 출신 학생들.
아마 내일 겁나 혼날 듯싶었다.
아이고 불쌍해라.
“드라칸은?”
“보이지 않습니다.”
“바쁜가 보군.”
나의 물음에 칼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하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긴, 암살자 교육과 시종의 교육을 모두 받아야 하는 게슈레다.
자는 시간도 없이 아주 바쁘겠지.
게슈레는 죽을 맛일 거고.
괴로워할 게슈레를 생각하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전생에서 내가 존경했던 영웅이며, 조금은 질투했던 대상이다.
녀석이 괴로워하는 걸 상상하니 조금은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뭐 자신의 수련을 위한 괴로움이니 상관없지 않은가?
“왜 웃으십니까?”
미소를 짓는 내가 이상했는지 칼론이 살짝 뒷걸음질 치며 물었고 나는 그런 칼론을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불안하냐?”
“아닙니다.”
나의 물음에 칼같이 고개를 가로젓는 칼론.
나는 그런 칼론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위즐리는?”
“요새 바쁜 것 같습니다.”
“왜?”
맨날 형아라고 하면서 나를 따라다니는 놈이 요새 잘 안 보이네.
칼론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칼론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연애를 시작해서 그런 듯합니다.”
“오 드디어?”
칼론의 말에 내가 반가운 표정으로 되물었고 칼론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나의 머리에 앉아 졸던 크산느는 바라던 소식에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고 나 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이야.>
위즐리와 코피아의 케미를 보며 즐거워하던 크산느와 나.
우리 둘은 드디어 이전 둘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주군.”
“왜.”
“아들을 장가보낸 아버지 같습니다.”
“시끄러 새꺄.”
나의 표정에 말을 건넨 칼론.
그런 칼론을 향해 인상을 살짝 찌푸린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편안한 자세로 아래의 대련장을 바라보았다.
“반갑습니다! 리턴입니다!”
대련장 정중앙에서 마이크를 들고 자신을 소개한 리턴은 귀빈석과 관중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관중들은 박수를 보내며 그를 맞이했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와아!”
그런 관중들의 박수에 살짝 미소를 지은 리턴이 말했고 백성들은 환호했다.
“재미있는 사내입니다.”
가만히 그런 리턴을 바라보며 루틸루스가 말하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리턴 자작을 경쟁전 사회자로 임명한 사람은 바로 나다.
레헤튼의 추천이 있었지만 나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 파티와 연회장에서 찾는 최고의 사회자로 유명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리턴은 역시 나를 실망하지 않았고 루틸루스를 포함한 모든 귀빈과 관중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약간 자부심 섞은 나의 대답에 루틸루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저도 한 재미 합니다.”
“어쩐지? 호감이 막 가더군요.”
나의 농담 어린 대답에 농담으로 받아친 루틸루스.
루틸루스의 말에 내가 두 눈을 크게 뜨며 과장되게 말했고 루틸루스는 소리 내 웃었다.
“하하하! 제국과 본 왕국의 동맹이 한층 더 깊어질 듯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소리 내 웃으며 은근히 호감을 내보이는 루틸루스.
그리고 나는 그런 루틸루스의 호감을 친절하게 받아주었다.
세계정복이 목표이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니 친하게 지내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피아의 핏줄이다.
전생에서는 싫어했지만 현생에서는 정이 가는 여동생이었으며, 자신의 동생 위즐리의 연인이다.
코피아의 입장도 생각해주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