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3화
제103편 나만의 시종
드넓은 황궁. 그리고 그 지하.
지하 5층으로 이루어진 감옥, 그리고 그곳의 정문인 거대한 철문.
철문 앞에 서 있던 지켜 자작은 내가 그의 앞에 도착하자 허리를 반으로 굽히며 나에게 인사를 올렸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오랜만.”
그런 지켜 자작의 인사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받아준 나는 드높은 철창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언제봐도 거대하군.”
대륙에서 가장 무거운 철로 이루어진 철창문.
그 위용에 내가 감탄 어린 어조로 말하자 지켜 자작은 자부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황제 폐하의 은덕 덕분입니다.”
그리고 모든 공을 황제에게 돌렸다.
“시종장님께서도 오셨군요.”
평민 출신이었으나 황제의 최측근 자리까지 오른 드라칸.
그를 발견한 지켜 자작이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었고 드라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지켜 자작님.”
“응당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드라칸의 말에 지켜 자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한 다음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잡혀 온 자는 1층 감옥에 넣어 놓았습니다.”
“5층에 잡아넣지 그랬나.”
“5층은 흉악범들이 있는 곳이라…….”
지켜 자작의 말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지하 1층은 비교적 가벼운 범죄자. 그 밑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죄질이 무거운 범죄자들을 가두어놓고 있었다.
“나를 향해 검을 휘두른 놈인데?”
그런 자작의 모습에 내가 장난기 어린 어조로 묻자 지켜 자작은 사색이 되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 찢어 죽일 놈을 오 층에 집어넣겠습니다!”
그러고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재미있는 놈이다.
“됐어. 어서 가자고.”
“알겠습니다.”
오버하는 자작을 보며 내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자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철컥!
챠라라락!
그런 다음 철창 옆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와 함께 쇠가 맞물려지는 소리가 들렸으며 거대한 철창문이 위로 올라가며 길을 만들어주었다.
“모시겠습니다.”
철창문이 전부 열리고, 앞장선 지켜 자작이 예의 바르게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는?”
“파티를 즐기고 계실 것입니다.”
지켜 자작의 뒤를 따르며 걸음을 옮기는 나와 칼론, 그리고 드라칸.
황제의 시종장이며 황제의 옆에 있어야 하는 드라칸을 보며 내가 묻자 드라칸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은 거지?”
“폐하께서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황제에게 드라칸을 1시간만 빌려달라고 부탁했던 나였기에 드라칸의 대답을 듣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큰아버지.
파티에서 수족과 같은 시종장이 없는 것은 상당히 불편할 텐데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나에게 빌려주었다.
“제자는?”
“예?”
걸음을 옮기던 드라칸은 갑작스러운 나의 물음에 당황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제자는 없냐고.”
그리고 나 또한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미소를 지은 채 드라칸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어린 시절, 나는 너를 아버지 친구로 대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대의 주인이 될 자이지.”
“맞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하시는 행동이 옳습니다.”
나의 말에 드라칸이 고개를 정중히 숙이며 대답했고 나는 그런 드라칸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그대는 쉬어야지.”
“…….”
“그대는 현 황제 폐하, 알칸 듀크의 시종장이자 벗일세. 나는 나의 시종장을 원하네. 자네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그 뜻은……?”
이어진 나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뜬 드라칸이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고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의 진전을 모두 잇고, 나의 시종장이 되어줄 존재, 황제 폐하와 자네 같은 사이좋은 친구 말일세.”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드라칸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고 나는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겼다.
“여기입니다.”
잠시 후.
우리는 한 철창문 앞에 도착하였다.
도착한 지켜 자작이 정중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밀었다.
철렁.
나의 손 위에 얹어진 열쇠.
나에게 열쇠를 건넨 지켜 자작은 정중히 고개를 숙인 다음 물러났고 잠시 후 그 철창문 앞에는 나와 칼론, 그리고 드라칸 셋만이 남게 되었다.
“칼론.”
“알겠습니다.”
나는 옆에 있던 칼론을 부르며 열쇠를 건넸고 칼론은 고개를 숙이며 내가 건넨 열쇠를 받았다.
철컹!
그리고는 무거운 철창문을 열었다.
“좀 잤나?”
감옥 구석에 쭈그려 앉아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 게슈레.
그를 향해 내가 웃으며 묻자 게슈레는 고개를 아래로 낮추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이제 좀 진정된 듯하군?”
“…….”
그런 게슈레의 모습에 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묻자 게슈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라는 것이 맞겠지.
수많은 관중들과 귀빈들이 보는 대회에서 미쳐 살기를 일으킨 범죄자이니 말이다.
그런 게슈레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린 드라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칼론이 서둘러 그를 말렸다.
“……?”
그런 칼론의 행동에 드라칸은 고개를 돌려 의문 어린 눈빛으로 칼론을 바라보았다.
“램 백작의 서자 게슈레.”
“…….”
“하녀의 아들인 게슈레. 하지만 운이 좋았지. 백작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평민의 피를 반 가지고 태어난 너는 백작 정부의 아들로 입양이 되었고 완벽한 귀족도련님이 되었지. 서자가 말이야.”
“그…… 그걸 어찌…….”
나의 입에서 나온 말에 놀랐을까?
게슈레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보며 물었고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나의 뒤에 있는 드라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녀석 덕분이지.”
“시종장……?”
나의 손짓에 고개를 돌린 게슈레는 드라칸이 누구인지 알아채고는 두 눈을 크게 떴고 나는 그런 게슈레를 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때? 네 스타일이야?”
“예?”
“전하…….”
나의 물음에 깜짝 놀란 게슈레와 한숨을 내쉬는 드라칸.
그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정색을 하고는 게슈레를 바라보았다.
“평민의 핏줄을 타고났으나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자신의 생모는 물론, 죄 없는 평민까지 혐오하는 삶을 살아오던 게슈레.”
“뭐하는 짓입니까?”
정곡을 찔려서일까?
늘 예를 차리고 있던 게슈레는 도전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고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빠악!
그러고는 게슈레의 대갈통을 한 대 후려쳤다.
“눈에 힘 풀어.”
건방진 자식이 죽으려고.
나의 폭력에 그제야 눈에 힘을 푼 게슈레.
나는 그런 게슈레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 내 시종 해라.”
“예……?”
“내 시종 하라고.”
“…….”
전생에서 귀족 암살자라고 불리었으며, 24살의 나이에 요절한 불쌍한 젊은이.
평민들을 괴롭히던 귀족들을 암살하며 평민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기에 전생의 나는 그런 젊은이를 부러워하였다.
그리고 죄 없는 평민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영웅이었던 젊은이. 진심으로 내가 존경했던 나와 동갑의 젊은이, 그의 이름은 게슈레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에게 지금 나의 시종 자리를 권하였다.
“전하.”
가만히 있던 드라칸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나를 불렀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드라칸을 바라보았다.
“왜?”
“저 녀석은 시종 자격이 없는 놈입니다.”
모든 백성과 귀빈이 있는 곳에서 살초를 펼친 범죄자.
평민들을 혐오하며 황태자인 나에게 검을 휘둘렀던 녀석이다.
나의 명으로 인해 녀석을 직접 조사한 드라칸은 알고 있었다, 게슈레의 인성이 얼마나 개쓰레기인지 말이다.
아무튼 드라칸의 의견에 나 또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도대체 왜……?”
그런 나의 행동에 드라칸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고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슈레를 바라보았다.
“이 새X. 피만 보면 미치는 피 성애자거든.”
흠칫.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치부를 들킨 듯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는 게슈레.
나는 녀석의 그런 눈빛에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나쁜 놈은 아니야.”
전생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평민들을 위해 죽은 영웅이니까.
그런 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드라칸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고개를 돌려 칼론을 바라보았다.
“네 생각은?”
“전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네가 싫어하는 놈이지 않았나?”
“저는 그의 일면을 보고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주군이 마음에 들어 하신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주군이 마음에 들어 하신 다른 일면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자식.
요새 책을 읽더니 말 한번 잘한다.
나의 물음에 칼론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고 그에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턱.
“고맙다.”
그리고 녀석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아닙니다.”
나의 인사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칼론.
그런 녀석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드라칸을 바라보았다.
“어때?”
“…….”
나의 물음에 가만히 게슈레를 바라보는 드라칸.
나는 그런 드라칸을 바라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같은 피 성애자로서 애 교육 잘 해줘.”
사실 시종장 드라칸 또한 게슈레와 같이 피만 보면 미쳐버리는 피 성애자였던 것이다.
피만 보면 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피를 맛보고 싶으며 피를 흘리는 상대방을 죽이고 싶은 최악의 병.
수많은 범죄자들을 만든 병이기도 한 그것을 유일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드라칸.
녀석을 향해 내가 말하자 드라칸은 걸음을 옮겨 게슈레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고치고 싶나.”
“…….”
드라칸의 물음에 게슈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 건방진 자식.
고치기 싫은 건가? 내가 이렇게 기회도 만들어 줬는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드라칸을 노려보기만 하는 게슈레의 행동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벌어진 풍경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만 믿어라.”
게슈레의 머리에 손을 얹은 드라칸이 믿음직한 음성으로 그에게 말한 것이다.
왜? 도대체 왜??
게슈레의 눈빛에 설렌 거냐?
“잘 되었군요.”
“응?”
그때, 나의 옆에 있던 칼론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나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칼론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의 눈빛…… 절실했습니다.”
아 그랬어?
칼론의 말에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죽일 듯이 노려보던데 뭐가 절실하다는 거야?
“멋지군요.”
그러고는 드라칸과 게슈레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칼론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들어 기특한 말만 하던 녀석이었기에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새끼도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드라칸에게 게슈레를 맡겼다.
한 달 후 완벽한 시종으로 만들어 보여드리겠다는 약속을 드라칸에게 받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