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9화
제99편 코피아, 그리고 위즐리
“후우. 이제 살겠군.”
코피아가 돌아가고 잠시 후.
위즐리는 홀로 남게 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최근 들어 자신은 이상했다.
코피아를 보면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고 얼굴이 화끈거렸으며 몸의 체온이 올라갔다.
처음에는 병에 걸린 것인가 싶어 진맥을 해보았지만 웬걸, 자신의 몸은 아주 건강했다.
그래서 혹시 몸이 허한가 싶어 좋은 약을 지어 먹었지만 이 증상은 고쳐지지 않았다.
혹시 모르는 희귀병인가 싶어 온갖 의학 저서에 할아버지와 상담도 해보았지만 할아버지는 음흉한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이 상당히 불편했던 위즐리는 자연스럽게 코피아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한데 또 이상한 것은 코피아를 보면 그런 이상증세가 생기는데 또 반대로 즐겁고 코피아가 돌아가면 아쉽다는 감정이 들었다.
도대체 이 증상은 무엇일까?
내가 죽을병에 걸린 것인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위즐리는 정말 우연히 이 증상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사랑.”
그렇다. 고서도, 의서도 아닌 바로 레헤튼이 심심풀이로 읽던 소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
그것이 서술되어 있었는데, 우연히 그것을 읽게 된 위즐리는 자신과 너무나도 똑같은 주인공의 감정에 당황스러워했고 오늘.
그녀의 손을 잡아보니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자신이 코피아를 좋아한다고, 아니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다.
“후우…….”
아름다운 코피아의 얼굴을 떠올리던 위즐리는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 연구실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연구가 최고이니 말이다.
그렇게 위즐리는 순식간에 연구에 빠져들었다.
그때,
쾅쾅!
다시 힘겹게 빠져든 위즐리의 집중이 깨지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 때문에 말이다.
그에 짜증이 치밀어 오른 위즐리는 걸음을 옮기고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찌푸린 얼굴로 이 시간에 방문을 두드린 인물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방문을 두드린 인물을 확인한 위즐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
급하게 달려왔는지 머리칼은 엉망이었으며, 오다가 넘어졌는지 그녀의 무릎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평소에는 보여주지 않는, 완벽하게 흐트러진 코피아의 모습이었다.
지끈.
그런 코피아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온 위즐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위즐리…….”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코피아의 모습에 인상을 푼 위즐리는 자신을 부르는 코피아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고운 녹색의 눈에서 뚝 뚝 떨어지는 눈물.
위즐리는 서둘러 코피아의 손을 잡아 방 안에 있는 소파에 앉혔다.
그러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코피아의 무릎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심하게 넘어졌는지 무릎의 살이 찢어져 있었다.
다행히 심각한 상처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아픈 상처이다.
이 상처로 또 달려왔다는 것인가?
그래서 그녀가 우는 것일까?
“많이 아파?”
코피아의 무릎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위즐리가 묻자 코피아는 그런 위즐리를 내려다보았다.
“우와아앙!”
그러고는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코피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위즐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황스러워하며 코피아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위즐리…… 나 어떡해…….”
그런 위즐리를 바라보며 묻는 코피아.
위즐리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런 코피아를 바라보았다.
코피아는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는 듯 계속해서 소리 내 울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에 위즐리는 가만히 코피아의 옆에 앉았다.
스윽.
그러고는 조용히 코피아의 한 손을 잡아주었다.
이때는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주는 것이 정답일 것이라고 판단이 되었던 위즐리.
그러고는 나머지 한 손을 들어 코피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와락.
그 순간.
코피아는 위즐리의 가슴에 안겨 울기 시작했고 당황한 위즐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갑자기 훅 들어왔기에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두근두근.
급격히 빨라지는 자신의 심장.
위즐리는 혹시나 자신의 품에 안긴 코피아가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되었다.
만약 듣는다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이내 가슴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에 정신을 차린 위즐리는 쓸데없는 생각을 치우고는 조용히 코피아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자세히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자신이 울었을 때 어머니가 해준 것처럼 아주 부드럽고, 귀한 보물을 쓰다듬듯 말이다.
그렇게 코피아는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위즐리는 그런 코피아의 옆을 지켜주었다.
계속해서 그녀의 등을 다독여 주며 말이다.
잠시 후.
한참을 운 코피아는 진정이 된 듯 위즐리의 품을 벗어났다.
“괜찮아?”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 눈물을 닦는 코피아를 보며 위즐리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묻자 코피아는 코를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킁. 응. 미안해.”
갑작스럽게 찾아와 대성통곡한 코피아.
그리고 위즐리의 품에 안겨 위즐리의 옷을 더럽히고 말았다.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이 흉측한 몰골을 보이며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을 했는지 자각했고, 이내 얼굴을 붉히며 위즐리에게 사과했다.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기에 고개를 숙이며 말이다.
스윽.
“괜찮아.”
그런 코피아의 사과에 위즐리는 그녀의 머리칼을 정리해주며 미소를 지었다.
예의 청량하고 맑은 미소 말이다.
그런 위즐리의 미소에 마음이 더 진정이 된 코피아.
그녀 또한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위즐리의 그 미소 오랜만이네.”
“뭐래.”
코피아의 낯간지러운 말에 미소를 지운 위즐리가 손을 내리며 대답했고 그에 코피아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부끄러워하는 위즐리의 모습이 아주 귀여웠던 것이다.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돼?”
“응…….”
고개를 돌린 위즐리가 코피아를 다시 바라보며 묻자 코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방금까지 있었던 일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시우 공작이 자신의 외삼촌이었으며,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
코피아의 모든 설명이 끝이 나고.
위즐리는 가만히 그런 코피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많이 놀랐겠네.”
“……응.”
따뜻한 위즐리의 어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코피아.
위즐리는 그런 코피아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코피아.”
“응.”
“나는, 시우 공작 덕분이라고 생각해.”
“……?”
갑작스러운 위즐리의 말에 코피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위즐리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버린 외삼촌이다.
한데 갑자기 그자 덕분이라니?
자신을 놀리는 것인가?
“네가 에스란 후작님을 만나고, 요한 형아를 만나고, 또 나와 만났잖아.”
“…….”
“나는 너와 만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야.”
“정말……?”
이어진 위즐리의 말에 코피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묻자 위즐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헤헤.”
그런 위즐리의 대답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미소를 짓는 코피아.
위즐리는 그런 코피아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코피아. 웃어. 변하는 건 없으니까.”
“그래. 맞아. 변하는 건 없어.”
위즐리의 말에 용기를 얻었을까?
코피아가 힘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위즐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그런 코피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쁘네.”
멈칫.
그렇게 코피아를 쓰다듬어주던 위즐리는 그만 손을 멈추고 말았다.
바로 코피아가 자신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즐리.”
꿀꺽.
“응…….”
갑작스럽게 낮아진 코피아의 목소리.
그에 긴장한 위즐리가 침을 꿀컥 삼키며 대답했다.
자신이 오버한 것일까?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며 머리를 쓰다듬은 것일까?
마음속으로 깊은 후회를 하며 말이다.
그런 위즐리의 마음을 모르는 코피아는 위즐리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좋아……?”
“…….”
갑작스러운 코피아의 물음에 위즐리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훅 들어오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던 것이다.
“싫어……?”
그런 위즐리의 모습에 혼자 착각한 코피아가 실망 어린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위즐리는 서둘러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좋아해.”
“친구로?”
그런 위즐리의 대답에 코피아는 다시 물었다.
초조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이다.
그런 코피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위즐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갈팡질팡하는 코피아의 손을 잡아주었다.
“여자로.”
위즐리의 말과 동시에 환한 미소를 지은 코피아.
위즐리는 그런 코피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는?”
“사랑해!”
위즐리의 물음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힘있게 대답한 코피아.
위즐리는 그런 코피아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윽한 위즐리의 눈빛에 환한 미소를 짓던 코피아가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이내 입술을 살짝 내밀며 두 눈은 꼭 감았다.
마치 키스를 해달라는 듯한 코피아의 모습.
그런 그녀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은 위즐리는 조심스럽게 코피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녀의 입술을 향해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콰앙!
그 순간!
위즐리의 연구실 방문이 또 열리고 말았다.
“위즐리! 형이 너를 위해서 술을 가지고 왔…….”
아까 요한 때문에 술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위즐리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던 칼론.
세월이 흘러 어느 정도 융통성이 생긴 칼론이 위즐리를 위해 술을 들고 직접 위즐리의 방을 찾아 왔고 또 어서 함께 마시고 싶어 강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그러고는 술병을 자랑스레 흔들어 보이며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다가 이내, 방 안을 확인하고는 말을 채 끝내지 못한 채 굳어버렸다.
며칠 전, 이 상황과 똑같은 상황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
키스하기 일보 직전의 자세인 위즐리와 코피아.
그 둘의 모습에 그대로 굳어버린 칼론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 또 잘못한 거야?”
“문 닫아.”
칼론의 물음에 위즐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하던 거 마저 해.”
그에 당황한 칼론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 다음 황급히 다시 문을 닫아주었다.
“…….”
그렇게 위즐리와 코피아는 또 키스를 하지 못했다.
그 둘만이 있는 위즐리의 방은 어색한 공기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렇게 어색한 공간에 있는 것이 불편했던 코피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위즐리를 바라보았다.
“시간 늦었다. 나 갈…….”
그러고는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위즐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위즐리의 부드러운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쳐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