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3화
제93편 고대 이야기, 그리고 신
“잘 만들었구나.”
동굴 내부에 들어선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내심 감탄했다.
깊은 동굴에 거대한 제단이 지어져 있으며, 벽에 구멍을 뚫어놓았다.
그리고 그 구멍 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으로 보아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는 듯했다.
마치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지하 마을 같기도 했다.
“그대는?”
“1 사제, 튜칸이라고 하옵니다 성자님.”
처음 보는 검은 사제복의 사내.
그에게 내가 묻자 사내, 아니 튜칸이라고 소개한 이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나를 성자로 잘도 인정하는군.”
“성자님의 몸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은 대사제 크림슨 님보다 순결하고 강합니다.”
나의 물음에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한 튜칸.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상태창.’
상태창
이름 : 요한 카르미언 듀크.
상태 : 대륙의 천재, 세계수의 수호자.
힘 +60 민첩 60
체력 62 마나 75
행운 56 위엄 93
매력 +108 신성력 5
시뮬레이션 진척도
33/50
새로 생겨났기에 아직은 5밖에 되지 않는 신성력이다.
한데 이 작은 신성력이 대사제인 크림슨보다 강하다고?
-아직 초반이기에 당연하다.-
그런 나의 귀에 들려오는 크산느의 목소리.
크산느의 목소리에도 나는 의문을 풀지 못했다.
<왜? 주신이라며?>
-인간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싶지 않으셨거든.-
의문 섞인 나의 물음에 크산느가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인간을 만든 창조신이면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몰랐으면 했다?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그럼 이 녀석들은 뭐야.>
-전생에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던 인물들.-
<…….>
-벌을 받고 있는 거야.-
이어진 크산느의 대답에 나는 가만히 나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두 명을 바라보았다.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노인 크림슨과 긴장한 표정으로 바짝 얼어있는 튜칸.
이 순해 보이는 두 놈이 전생에서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고?
“잠시 비켜봐.”
“네.”
그 둘을 가만히 바라보던 내가 입을 열자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 다음 옆으로 물러났다.
저벅.
그리고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제단을 향해 걸어갔다.
저벅저벅.
제단의 계단을 오른 나는 크림슨이 방금까지 앉은 흔적이 보이는 방석에 앉았다.
“불편하군.”
심각하게 불편한 자리.
이 자리에서 매일같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단 말인가?
내심 크림슨이 대단하다고 생각된 나는 피식 웃고는 두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몸속에 잠들어 있던 새로운 힘을 끌어 올렸다.
우웅.
“아아…….”
그와 동시에 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보랏빛의 광채.
그에 크림슨과 튜칸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무릎을 꿇었고 동굴 벽, 구멍에서 쉬고 있던 신자들 모두가 나와 나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나는 두 눈을 감았다.
* * *
“오랜만이구나.”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두 눈을 떴다.
그러자 보였다.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공간.
낯선 이 공간의 한가운데서 엄청난 존재감을 뿜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흑발, 흑안의 미청년이 말이다.
“에르…….”
그렇다.
나의 눈앞에 있는 흑발 흑안의 미남자는 바로 주신이자 마신이며, 용신인 에르였다.
“에르 트레이다.”
“…….”
그런 나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은 에르.
나는 그런 에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너의 첫 번째 생의 이름은 이자크 트레이다.”
“……?”
“트레이라는 이름 익숙하지 않느냐?”
놀란 나를 향해 묻는 에르.
그에 나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이내 두 눈을 크게 뜨며 에르를 바라보았다.
고대에서 대륙통일을 했던 대 제국 트레이 제국.
그곳의 황제였던 철혈의 황제 에르 트레이였다.
잊힌 고대의 시대이지만 조금씩 발견되는 유적으로 인해 수많은 발굴가들과 역사가들이 유추해 어느 정도 비밀을 풀어 놓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철혈의 황제 에르 트레이가 나중에는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어 신이 되었다는 전설을 말이다.
한데 문제는…….
말 그대로 전설이다.
사실이 아닌 전설!
“사실이지.”
한데 전설이 아닌 사실이었다.
나의 눈앞에 서서 싱긋 미소를 짓고 있는 에르.
전설의 주인공인 그가 직접 인정한 것이다.
“어…… 어…….”
이 믿기지 않는 사실에 나는 당황해했고 에르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
그래. 인간이 아니라 신이잖아.
갑자기 쓸데없는 말을 하고 그래?
갑작스러운 에르의 말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에르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첫 번째 생에서는 인간이었으며 다음 생에서는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이었던 시절의 이름이 에르인가?”
“그렇지.”
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에르.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전설로 전해지는 드래곤.
얼마 전에 드래곤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신이라는 존재가 원래 드래곤이었단다.
로첸 대륙에서 전해지는 전설은 전설이 아닌 모두 사실이었다.
우리 역사가들, 발굴가들 정말 대단하다. 칭찬해!
“한데 내가 왜 성자입니까?”
나의 물음에 대답한 에르를 보며 내가 묻자 에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나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가 아까 너에게 무엇이라 했지?”
“…….”
분명 첫 번째 생의 이름이 이자크 트레이라고…….
“트레이……?”
그제야 이상한 것을 발견한 나.
나의 눈앞에 있는 에르와 성이 같았다.
그런 나의 물음에 에르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나를 부정하지 말거라.”
파앗!
그 순간.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 * *
“주군!”
번쩍!
나의 귀에 들려오는 칼론의 다급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정신이 드십니까!”
그때 다시 나의 귀에 들려오는 칼론의 목소리.
나는 시끄러운 칼론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시끄러 인마.”
“아아…… 다행입니다.”
그런 나의 반응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이는 칼론. 그런 칼론을 무시한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나를 향해 무릎을 꿇고 있었고 나는 아까 그 제단의 자리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된 거야?”
“보랏빛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얼마나.”
“아주 잠시입니다.”
칼론의 대답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칼론은 짧게 대답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림슨.”
“예 성자님.”
“앞으로 우리는 트레이 교단이다.”
“네……?”
“에르님을 믿는 종교. 그 이름은 트레이 교단이라고.”
“아아…….”
생각지 못한 말이었을까?
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던 크림슨은 이어진 나의 말에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감격하며 고개를 숙이는 크림슨과 다른 사제들, 그리고 신자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살짝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의식을 잃기 전 들려왔던 에르의 목소리.
‘나를 부정하지 말거라.’
괜히 기분이 찝찝했다.
띠링.
신성력이 10만큼 상승합니다.
그때, 나의 귀에 반가운 알림음이 들려왔고 동시에 더욱더 강해진 신성력을 느끼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우웅!
그 순간.
크림슨을 제외한 4명의 사제.
그들의 몸에서 보랏빛의 빛이 뿜어져 나왔고 이내 그들의 몸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아아…… 에르님 감사하옵니다.”
그 기이한 현상에 나와 칼론은 당황했지만 크림슨은 감격 어린 표정으로 두 손을 모으며 에르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드디어…… 드디어 우리도 신성력이!”
4명의 사제.
대사제 크림슨의 제자이기도 한 4명은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힘에 환한 미소를 지었고 튜칸은 감격하며 그 자리에서 두 손을 모아 에르에게 기도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말이다.
“크림슨.”
그런 네 명을 보며 혀를 찬 나는 아직도 감사 기도를 올리고 있는 크림슨을 불렀고 그제야 크림슨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자.”
그리고 나는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건네었다.
내가 건넨 주머니를 받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크림슨.
나는 그런 크림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알지? 강요하면 안 되는 거. 그저 사람들을 돕기만 해.”
“아…….”
이어진 나의 말에 설마 하는 표정으로 주머니를 열어본 크림슨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떨리는 두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주머니 속에 존재한 휘황찬란한 보석에 감격해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 것이다.
이런. 괜히 줬나?
그런 크림슨의 모습에 괜히 후회가 되었던 나는 보석을 뺏으려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관뒀다.
“쪽팔리는 짓 하지 마라.”
“걱정 마십시오.”
그들을 향해 한 번 더 말을 한 나는 크림슨의 확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곳을 벗어났다.
이제는 저들이 알아서 잘하겠지.
교리를 만들어 전파를 하든, 신님의 이름으로 힘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든 말이다.
물론 나는 믿었다.
크림슨 저 녀석이 허튼짓을 할 리가 없다고 말이다.
* * *
“위즐리!”
오랜만에 돌아온 자신의 방.
황태자궁에 마련된 자신의 연구실에서 독을 연구하던 위즐리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청객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불청객을 향해 손짓을 했다.
나가라는 뜻으로 말이다.
“응! 나 왔어!”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불청객은 반대로 알아들었다.
가까이 오라는 뜻으로 말이다.
“피식.”
그런 불청객, 아니 코피아의 모습에 위즐리는 결국 피식 미소를 지었고 코피아는 그런 위즐리의 모습에 헤헤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다. 그치?”
“그러게.”
살가운 코피아의 물음에 차갑게 대답한 위즐리.
코피아는 그래도 좋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위즐리의 연구실에 위치한 소파에 앉았다.
“위즐리~”
“잠깐. 중요해.”
“옙!”
코피아의 부름에 위즐리가 손을 올리며 말하자 코피아는 짧게 대답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독을 연구하는 위즐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늘 청량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미청년 위즐리.
과연 그는 정말 잘생겼다.
시원한 하늘색의 머리칼에 하늘색의 두 눈동자는 신비했으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청량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의 새하얀 피부와 높은 콧대, 앵두 같은 입술은 묘하게 섹시했으며…….
“어멋.”
멍하니 위즐리의 얼굴을 관찰하던 코피아는 점점 이상한 상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왜 그래?”
그때.
연구를 끝낸 위즐리가 코피아에게 다가와 옆에 앉았고 코피아는 얼굴을 붉히며 그런 위즐리를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 잘생겼으며……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고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차가운 말투와 눈빛은 너무나도 섹시했다.
아…… 이것이 나쁜 남자의 매력일까?
“어머!”
또 이상한 생각을 한 코피아는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그런 코피아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린 위즐리는 코피아의 손목을 잡았다.
두근두근.
그러고는 맥을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