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2화
제92편 청혼
잠시 후.
드라칸은 고급스러운 쿠션을 들고 와 나의 앞에 섰다.
“…….”
그리고 나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푸른색의 사파이어가 박힌 목걸이.
딱 봐도 비싸고 좋아 보이는 목걸이지만 그래 봤자 귀금속이다.
여자들이 좋아할 법한 그 귀금속 말이다.
내가 좋아할 물건은 아니었다.
나의 마음을 알았을까?
미소를 지은 황제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사랑했던 여인의 유품이다.”
“!!!”
생각지 못한 황제의 말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황좌에 앉아 있는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황제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황제가 황태자 시절, 황태자비였던 여인.
리프크네 공작의 여동생이기도 한 여인이었으며 불미스러운 사고로 일찍 죽고 말았다.
제국 역사상 최초로 죽은 상태에서 황후의 자리에 오른 여인이었으며 그녀를 잊지 못해 현재 황제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전 국민이 아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여인의 유품을 황제가 직접 나에게 내리려고 한다.
나의 놀란 표정에 황제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바다의 눈물이라는 목걸이다. 심해 깊은 곳에서 자란 보석이며 자연에서 가공된 보석이다.”
“…….”
“그것을 너에게 내린다.”
“폐하…… 너무 과분하옵니다.”
황제의 말에 내가 고개를 숙이며 거절하자 황제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그녀에게 프러포즈했을 때 주었던 선물이다.”
“…….”
“그것을 받고 그녀는 좋아했지. 그리고 나에게 말했었다. 나중에 아들에게 주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며 고백하게 할 것이라고 말이다.”
“…….”
황제의 설명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벌떡.
뚜벅뚜벅.
그때.
황제가 처음으로 황좌에서 일어났고 황좌의 앞에 위치한 계단을 내려왔다.
그러고는 바다의 눈물이라는 보석을 직접 들더니 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요한아. 네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주거라.”
그러고는 나의 손에 그 귀한 보물을 쥐여 주었다.
“내가 사랑했던 여인의 소원이다. 부디 이 목걸이를 그녀에게 주었으면 한다.”
황제가 말한 그녀는 하이아칸 왕국의 왕녀이자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 엘로나일 것이다.
그녀를 언급한 황제의 모습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황제가 건넨 목걸이를 받아들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 *
“나 안 이상하지?”
하이아칸 왕궁의 손님들에게 배정된 별궁 앞.
그곳에선 나는 옷매무새를 다듬고 크산느에게 물었다.
-완벽하다.-
그런 나의 물음에 귀찮다는 듯 아무렇게나 대답한 크산느.
그에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걸음을 옮겼다.
“왕녀. 안에 계신가?”
“예. 들어가시지요, 전하.”
별궁을 지키던 기사.
그에게 내가 물어보자 기사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길을 비켜주었다.
“고생하게.”
나는 그런 기사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준 다음 안으로 들어섰다.
“허억!”
별궁 안으로 걸음을 옮기던 나.
수많은 궁녀들이 인사를 받으며 정원을 가로지르던 그때, 나를 바라보고 화들짝 놀라는 여인의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낯익은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 왕녀의 시녀인가?”
“황태자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엘로나 왕녀님의 시녀 하빈이라고 합니다.”
그래. 분명 엘로나가 친구 같은 아이라고 했었지.
나의 물음에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 하빈.
그녀를 보며 나는 전에 엘로나가 나에게 말해주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그리고 전생에서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잘생겼다면서 엘로나의 짝으로 부족함이 없다며 이야기를 하고 다니던 시녀 하빈.
그제야 그녀를 완벽하게 떠올린 나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갑군. 항상 고생이 많아. 지금처럼 부탁하지.”
“!! 영광…… 아니……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의 말이 뜻밖이었을까?
하빈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말을 버벅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고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빈에게 말을 건네었다.
“엘로나는 어디에 계시느냐?”
“연무장에 계십니다.”
“호오?”
예상외인 하빈의 대답에 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하빈이 자세한 설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
“전하의 배필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매일같이 궁술 연습을 하고 계십니다.”
“하하. 고마운 일이군.”
깜찍한 엘로나의 행동에 살짝 미소를 지은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고 하빈이 그런 나의 뒤를 따라나섰다.
“어머 안녕하세요.”
그리고. 미청년 칼론을 향해 얼굴을 붉히며 인사를 건넸다.
끄덕.
그리고 우리의 재미없는 칼론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고 말이다.
잠시 후.
나는 연무장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겨울 일족의 보물인 코르누.
평소에는 푸른 보석이 박힌 하늘색의 팔찌이지만 마나를 일으키면 거대한 거궁이 된다.
푸른색의 거대한 거궁을 든 엘로나가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휘잉~
그 순간.
엘로나의 옆.
작은 소녀의 형태를 한 고대 눈의 정령 프루가 정령력을 일으켰고 이내 새하얀 색의 화살이 생겨나 코르누의 활시위에 걸렸다.
타앗.
그리고 활시위를 놓았다.
우웅.
쿠웅!
소리 없이 날아간 화살.
아쉽게도 마지막에 소리가 생겼지만 과녁 정중앙에 명중이었다.
그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궁이라 불리는 하이엘프 로리만이 가능한 무음시.
그 어려운 기술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엘로나가 성공한 것이다.
분명 열심히 수련을 하면 나중에는 가능하겠지.
“요한!”
그때.
활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던 엘로나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저벅.
그런 엘로나의 반응에 나는 그녀에게 걸어갔다.
아니 달려갔다.
와락.
그러고는 사랑스러운 그녀를 강하게 안았다.
“요한……?”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당황한 엘로나.
나는 그런 엘로나의 음성에 살짝 미소를 짓고는 엘로나의 귓가에 나의 입을 가져다 대었다.
“보고 싶었어.”
그리고 속삭였다.
-아이 씨.-
옆에서 짜증 내는 도마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저. 오랜만에 보는 연인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이렇게 꼭 안고 싶었다.
“잘 다녀왔어?”
그런 나의 등을 다독이며 따뜻한 목소리로 묻는 엘로나.
그런 엘로나의 말투에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응. 잘 다녀왔어.”
그렇게 인사를 나눈 우리 둘은 손을 마주 잡고 연무장을 벗어났다.
“어머님은?”
나의 궁인 황태자궁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한 엘로나.
그녀와 함께 나의 궁으로 걸음을 옮기던 중 내가 조심스레 묻자 엘로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어머니랑 같이 있어?”
“응? 우리 어머니?”
엘로나의 대답에 내가 나를 가리키며 묻자 엘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두 분이 많이 친해지셨어.”
“아…….”
그렇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었다.
나이도 같았기에 서로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으며, 한 달에 한 번은 꼭 함께 여행을 떠났었다.
그 정도로 죽이 잘 맞고 친하게 지냈던 어머니와 어머님.
그것을 떠올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
“응.”
나의 말에 엘로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로나.”
“응.”
가만히 걸음을 옮기던 우리 둘.
그때. 내가 걸음을 멈추며 엘로나를 불렀다.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엘로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엘로나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황제에게 받은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예쁘지?”
“응.”
나의 물음에 싱긋 미소를 짓는 엘로나.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스윽.
그러고는 엘로나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머리카락 들어줄까?”
“센스쟁이.”
그런 나를 향해 싱긋 웃으며 묻는 엘로나.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 또한 싱긋 미소를 지었다.
나의 대답에 엘로나는 손으로 긴 머리칼을 한군데로 모아들었고 나는 새하얀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예쁘네.”
엘로나의 쇄골 중앙에 걸린 푸른 사파이어.
그 보석을 만지며 내가 말하자 엘로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엘로나.”
“응.”
“나랑 결혼해줘.”
“…….”
나의 말이 갑작스러웠을까?
엘로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프러포즈도 하지 않고 약혼을 하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
프러포즈도 하지 않고 약혼을 올리게 되어 괜히 그녀에게 미안했었던 것이다.
그런 나의 말에 엘로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고 나는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푸른색의 두 눈동자.
나는 그런 그녀의 눈을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대답은?”
“그래.”
이윽고, 그녀의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 * *
“아이들은?”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깊은 밤.
대사제 크림슨은 자신의 첫 제자인 튜칸에게 물었고 튜칸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크림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에게 들었습니다. 황태자가 성자님이라구요?”
크림슨의 뒤를 따랐던 3명의 사제.
크림슨을 대신해 이곳에 남았던 튜칸은 동생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물었고 크림슨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거기에다가 그분께서는 신님의 힘. 아니, 신성력을 지니고 계신다.”
“……? 그것이 정말입니까!”
대사제인 크림슨만이 지닌 신의 힘.
아니 이제는 신성력이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힘.
그 힘을 요한이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에 튜칸은 두 눈을 부릅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그래. 나중에, 세계수의 수호자인 것을 밝히셨을 때 그분의 몸에서 신성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임무 완료 보상으로 인해 신성력의 힘을 얻었던 요한.
그 짧은 순간을 느낀 크림슨이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튜칸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정말…… 좋은 일이군요.”
“그래.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어.”
적은 신성력으로 수많은 사람을 도우면서도 더 도우지 못해 늘 아쉬워했던 크림슨이다.
한데 이제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도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으니 그만큼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가진 크림슨이 진심으로 순수하게 기뻐하며 말하자 튜칸 또한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이 깊은 동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인공 동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어린아이들과 몸이 불편한 인간들.
바로 크림슨을 통해 에르의 손길을 받은 존재들이며 에르를 믿는 신자들이었다.
“재미있군.”
“!!”
그때.
동굴을 울리는 한 목소리.
듣기 좋은 그 목소리에 크림슨과 튜칸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성자님을 뵙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둘은 무릎을 꿇었다.
신성력을 뿜어내며 자신들에게 걸어오는 흑발의 미청년.
바로 성자, 요한 카르미언 듀크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