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화
제91편 자랑스러운 내 꼬봉들
“고생하셨소 후작.”
황궁의 대전.
제국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중앙귀족들이 양옆으로 나열해있었고 그 정중앙.
레드카펫이 깔린 곳 중앙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루드비히 후작을 향해 황제가 그의 노고를 치하하자 후작은 황공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황공하옵니다! 하지만 저는 한 것이 없사옵니다.”
“호오? 설마 황태자를 띄워주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
루드비히 후작의 말에 황제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묻자 후작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기는 저도 싫습니다. 하지만 정말 황태자 전하가 전부 다하셨습니다.”
“뭐라? 푸하하!”
조금은 무례한 루드비히 후작의 말.
그의 말에도 황제는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루드비히 후작.
그는 사람을 상대하는 외교관이다.
황제의 자랑인 황태자. 조금은 강하게 말하면서도 황태자를 칭찬하면 황제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잘 알기에 그렇게 발언했고 후작의 짐작은 맞아떨어졌다.
저렇게 황제가 좋아하니 말이다.
‘역시 배울 것이 많은 인물이다.’
공치사를 위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루드비히 후작을 보며 다시 감탄했다.
정말 능력 있는 남자였고, 탐나는 인재였다.
어떻게 보면 아첨을 잘하는 간신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누구보다 충신이었으며, 제국의 이득을 위해 그 어떤 자존심도 버릴 수 있는 진정한 신하인 것을 말이다.
“밀리언 공국과 훌륭하게 조약을 맺고 온 루드비히 후작에게 1년 동안 세금을 감면하도록 하겠다.”
생각보다 큰 포상.
그에 루드비히 후작은 고개를 깊이 고개를 숙이며 힘 있게 입을 열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제국의 고위귀족인 루드비히 후작이다.
그의 영지인 루드비히 후작령은 작은 소국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넓었으며, 거기에서 나오는 세금은 어마무시했다.
한데 황제는 통 크게 그 세금을 1년 동안 면제시켜주겠다고 한 것이다.
“하아…….”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던 나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황제의 옆에서 한숨을 내쉬는 재상.
리프크네 공작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 큰아버지.
기분 좋아서 포상을 막 내리셨나 보다.
“칼론과 레헤튼. 그리고 위즐리는 앞으로 나오라!”
루드비히 후작이 물러나고.
시종장 드라칸의 위엄 어린 목소리에 대기하고 있던 세 명의 꼬봉이 앞으로 걸어갔다.
“충! 황제 폐하께 영광을!”
그리고 절도 있게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짜식들. 정복을 쫙 빼입고 있으니 멋져 보였다.
장하다 내 새끼들.
그들의 인사에 황제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먼저 칼론.”
“예 폐하.”
“고생했다.”
“아닙니다.”
짧은 황제의 치사에 짧은 대답.
저 재미없는 녀석.
아무튼 칼론의 대답에 황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고대 불의 정령과 계약을 했다고?”
“그렇습니다.”
황제의 물음에 또다시 짧게 대답한 칼론.
그런 칼론의 무례한 행동에 귀족들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지만 황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칼론. 그대에게 자작이라는 직위를 하사하겠다. 그리고. ‘화염의 기사’라는 이명을 내리겠다.”
“!!!”
“폐…… 폐하!”
생각지 못한 황제의 포상.
그에 칼론은 두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들었고 가만히 있던 아버지가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나섰다.
화염의 기사.
제국의 개국공신이며, 초대 황제 에펜하르트의 호위기사였던 게르만.
온몸에 화염을 휘두른 채 적들을 도살하던 그에게 붙여진 명예로운 이명이다.
한데 그 명예롭고 고귀한 이명을 아직 20살인 칼론에게 내리다니?
“황태자.”
“예 폐하.”
앞으로 나선 아버지를 무시한 황제가 나를 불렀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네 호위기사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명인 것이냐?”
황제가 그런 나를 향해 묻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꿀꺽.
나를 바라본 채 침을 꿀꺽 삼킨 칼론.
그 녀석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준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황제의 두 눈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
“아…….”
나의 대답에 칼론은 실망을, 다른 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명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제 호위기사 칼론은 ‘화염의 기사’ 게르만 님을 뛰어넘을 기사가 될 것입니다.”
“!!!”
‘내 호위기사 무시하지 말라고.’
이어진 나의 말에 칼론은 물론 모든 귀족이 경악으로 두 눈을 크게 떴다.
제국의 영웅인 게르만을 뛰어넘겠다니?
그 무슨 발칙한 발언이란 말인가?
“칼론! 자신 없나?”
“자신 있습니다!”
그런 귀족들을 무시한 채 내가 고개를 돌려 칼론을 바라보며 묻자 칼론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너라면 충분히 가능해.
게르만의 검술과 심법을 배우고 고대 불의 정령과 계약한 칼론.
네가 게르만을 뛰어넘지 못하면 그 누가 뛰어넘을 수 있을까?
칼론의 힘 있는 대답에 살짝 미소를 지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황제를 바라보았다.
“대답이 되었습니까.”
짝짝짝.
“훌륭하다.”
나의 물음에 황제는 박수를 치며 나를 칭찬했고 나는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이의 없나?”
내가 물러나자 황제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스윽.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아버지는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행동에 모든 귀족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지.”
그런 귀족들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인 황제는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레헤튼을 바라보았다.
“레헤튼.”
“예 폐하.”
황제의 부름에 조심스럽게 대답한 레헤튼.
황제는 그런 레헤튼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남작이라는 작위와 램턴이라는 성을 내리겠다.”
“!!!”
그리고 또 한 번 모든 귀족이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폐…… 폐하! 감당할 수 없사옵니다!”
레헤튼 또한 경악하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황제는 역시나 나를 바라보았다.
“황태자. 부족한가.”
하아…… 저 양반 진짜…….
-램턴이라…… 오랜만에 듣는군.-
황제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던 나의 귀에 들려오는 크산느의 목소리.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크산느로써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일 것이다.
에펜하르트의 두뇌였던 군사.
스프링 램턴.
뛰어난 두뇌로 제국의 초석을 다진 뛰어난 명군사였으며 명재상이었다.
아쉽게도 그는 무정자증이라는 괴상한 병으로 인해 자식을 볼 수 없었고, 그의 이름은 그렇게 잊혀 갔다.
한데 그 전설의 이름을 나의 수하이자 나의 두뇌인 레헤튼에게 내리려고 한다.
그러고는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만약 레헤튼이 그 이름을 받고 그런 능력을 보이지 않으면 나에게 죄를 묻겠다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그런 황제의 협박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충분합니다.”
“호오. 황태자의 이름을 걸고?”
“네.”
“전하!”
나의 대답에 씨익 웃으며 물은 황제.
그에 내가 당당하게 대답하자 레헤튼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말렸다.
하지만 나는 그런 레헤튼을 무시하고 황제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레헤튼은 제가 뽑은 수하입니다. 램턴이라는 성. 충분히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만약 그럴 가치가 없으면, 저는 수하도 제대로 뽑지 못하는 놈입니다. 그렇다면 황태자로서 자격도 없으니 황태자위를 내려놓겠습니다.”
“호오…….”
“그러니 더 이상 제 수하들을 시험하려 하지 말아주십시오.”
“!!!”
그리고 나는 황제에게 경고했다.
내가 아끼고 믿는 수하들을 시험하지 말라는 경고를 말이다.
나의 말에 귀족은 물론 아버지 또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흠칫하며 고개를 숙였다.
“재미있구나.”
늘 허허로운 미소를 지으며 사람 좋아 보이던 황제.
그가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나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평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황제의 위엄.
그에 귀족들은 몸을 추스르며 고개를 숙였고 아버지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황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시리도록 차갑고 깊은 황제의 두 눈동자.
나를 귀여워하고 예뻐하는 큰아버지의 눈이 아닌, 제국의 주인이자 대륙을 호령한 황제. 알칸 듀크의 눈이었다.
그런 황제의 눈빛에도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나의 의지를 확실하게 전하고 싶었다.
더 이상 내 수하를 건드리지 말아 달라는 나의 의지를 말이다.
“많이 컸구나.”
그리고.
황제는 나를 인정했다.
차가운 기세를 내뿜던 눈빛은 어느새 사라지고 봄 햇볕처럼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황제.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황공하옵니다.”
조금은 무례한 나의 행동을 기특하다면서 넘어가 준 황제에게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고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의 있는 자 있는가?”
그리고 대전의 귀족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뜻대로 하시옵소서.”
가만히 있던 아버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고 이내 모든 귀족이 고개를 숙이며 아버지의 말을 따라 했다.
귀족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제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레헤튼을 바라보았다.
“수고했다. 레헤튼 램턴 남작.”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의 치하에 레헤튼은 고개를 숙이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황제는 고개를 돌렸다.
“위즐리.”
“예 폐하.”
황제의 부름에 힘있게 대답한 위즐리.
황제는 그런 위즐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잘했다.”
“헤헤. 감사합니다!”
황제의 칭찬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위즐리.
그것이 끝이었다.
내심 어마무시한 포상을 기대했던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모든 귀족 또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위즐리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말이다.
정말 정상은 아닌 녀석이다.
“황태자 요한은 앞으로!”
셋의 공치사가 끝이 나고.
이어진 부름에 나는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척.
그러고는 절도 있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마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을 것이다.
“황태자.”
“예 폐하.”
속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나의 귀에 들려오는 황제의 목소리에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그대는 황태자로서. 내가 내린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했다.”
“황공하옵니다.”
황제의 이어진 말에 나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고 그에 황제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황태자로서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었으므로 따로 상은 내리지 않겠다.”
“…….”
아 저 양반…….
생각지 못한 황제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말이 없었다.
제일 고생한 건 나인데 말이다.
“황태자.”
“예 폐하.”
“농담이었다. 내 너에게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을 내리도록 하마.”
역시.
내심 실망했던 나는 이어진 황제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기대했다.
대륙의 주인이라고도 불리는 황제.
그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라고 하니 괜스레 기대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