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8화
제88편 진화하는 엘프들(1)
“꽃가마 타실 준비는 되셨습니까?”
하이 엘프가 거주하는 나무집.
그곳에 들어선 내가 앉아 있는 로리를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난 로리가 상석을 나에게 권하며 미소를 지었다.
“네.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리의 대답에 미소를 지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석이 아닌 그 옆에 앉았다.
사적으로는 실의 부인이 될 여인이다.
굳이, 저 여인의 앞에서 상석을 앉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실과 결혼을 해줘서 고맙기도 하고 뭐…….
아무튼, 그런 나의 행동에 로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 뭐에요?”
괜히 기분 나쁜 로리의 표정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로리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나의 맞은편에 앉았다.
로리 역시, 상석에 앉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상석을 비워두고 서로 마주 보며 자리를 앉았다.
“실과 정말 닮으셨어요.”
“그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로리의 말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 양반과 닮았다는 소리.
정말 많이 듣긴 했지만, 들어도 들어도 적응 안 되는 기분 나쁜 소리였다.
“한데…… 정말 괜찮은가요?”
“뭐가요?”
로리가 건넨 차를 마시던 나는 갑작스러운 로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나의 물음에 살짝 미소를 지은 로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국과 저희의 조약. 이름만 저희가 공국이지, 동등한 입장에서 조약을 맺어주셨어요.”
“그렇군요.”
로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 나의 행동에 로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치 기특한 아이를 바라보는 듯한 미소를 말이다.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전하는.”
“……지금 저한테 시비 거는 겁니까?”
갑작스러운 로리의 말에 당황한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로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저 엘프. 너를 다루는 방법을 아는군.-
<닥쳐.>
깐족거리는 크산느에게 욕을 한번 날린 나는 계속해서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자세를 바로 하고 로리를 바라보았다.
“어제오늘, 밀리언을 둘러본 저의 소감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나의 말에 로리가 당연하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엘프들은 멸망할 것입니다.”
“!!”
바로 직설적으로 말해야지.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로리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상당히 놀랐나 보다.
“지금처럼 이렇게 문명이 뒤처진 채로 살아가면 말이지요.”
“…….”
“기본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건 저도 동감해요.”
이어진 나의 말에 로리 또한 강한 긍정을 보이며 동의했다.
그래. 로리 또한 느끼고 있겠지.
현재 엘프들의 문명이 심각하다는 것을 말이야.
“제일 먼저. 의술이 심각합니다.”
“…….”
“왜 이렇게 방치해둔 것입니까?”
나의 말에 얼굴을 굳힌 로리.
그런 로리의 모습에 나는 역시 하는 표정을 지으며 로리에게 물었다.
왜 이 심각한 문제를 외면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엘프들은 자존심이 아주 강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자존감도 엄청나지요.”
“그래서입니다.”
“…….”
로리의 설명을 들은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저도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런 나의 모습에 로리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고 그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로리를 바라보았다.
“꽃가마는 한 일주일 후에 탑시다.”
“네?”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고개를 든 로리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로리를 향해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모든 엘프들을 모아주십시오.”
디위니타스 성취도를 한시라도 빨리 올리고 싶은 나였기에 서둘러 이번 임무를 끝내려고 한다.
* * *
잠시 후.
거대한 세계수의 앞에 마련된 넓은 광장.
상단에 마련된 의자에 앉은 장로들과 로리, 그리고 제국 측 사신들.
그중 정중앙에 위치한 가장 큰 의자에 앉은 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보였다.
수천 명의 엘프들이 자리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느껴졌다.
나를 바라보는 엘프들의 시선에서 적대감이라는 감정이 말이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건가.’
저들의 앞에서 나는 장로를 때렸으며, 여왕을 무릎 꿇게 하였다.
저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인간이며 인간의 군주가 될 예정인 나이다.
만약 세계수의 치료가 없었다면 적대감 가득한 시선이 느껴졌겠지.
아무튼 그들의 시선에 살짝 미소를 지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저벅.
그러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엘프들의 바로 앞에 멈추어선 나.
나는 나를 올려다보는 엘프들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오른손을 가볍게 들었다.
“……?”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엘프들은 물론 제국 측 사신 또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른손을 든 채 엘프들을 한번 둘러본 나는 이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우우웅!!
“아아…….”
“오오…….”
그 순간.
거대한 세계수가 진동을 했다.
세계수의 내부에서 느껴지는 신력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 장로들은 놀란 표정을, 수많은 엘프들은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경악했다.
세계수에서 뿜어져 나온 초록색의 빛이 나의 오른손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초록색의 빛이 나의 오른손목을 휘감더니 이내 초록색의 팔찌로 변해 나의 팔에 자리 잡았다.
“세계수 팔찌!”
나의 손목에 채워진 새로운 팔찌.
그 팔찌를 발견한 노노가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허억!”
“설마!”
그런 노노의 소리침을 들은 모든 엘프들이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쳤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스윽.
그리고는 팔을 내렸다.
오래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니 말이다.
아무튼, 팔을 내려 든 나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엘프들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시선을 엘프 여왕, 로리에게 멈추었다.
씨익.
“세계수의 수호자. 요한이다.”
“수호자를 뵙습니다!”
나의 인사에 반사적으로 나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차리는 모든 엘프.
모든 엘프들의 인사를 받은 나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저벅저벅.
거대한 세계수의 앞으로 걸어간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세계수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우우웅!
휘이익!
그와 동시에 나의 몸에서 보라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고, 세계수의 몸에서 초록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고오오!
이 상반된 두 개의 기운이 회오리처럼 서로 엉키더니 이내 하늘을 향해 날아올라 아름다운 빛 봉우리를 만들어냈다.
파앗!
그리고 순식간에 봉우리는 사라졌고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보라색, 초록색의 빛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눈이 말이다.
모든 엘프들과 제국의 사신들은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는 양팔을 들어 올리고는 힘차게 입을 열었다.
“그대들의 문명발전을 위해. 나는 노력할 생각이다. 나의 뜻이 곧 세계수의 의지이며, 세계수의 아버지이자 주신인 에르님의 뜻이다.”
“뜻대로 하소서!”
그리고 모든 엘프들이 고개를 숙였다.
“아아 성자님이시여…….”
“성자님 만세!”
눈물을 흘리는 크림슨과 만세를 하는 3명의 사제는 덤으로 말이다.
“하아…… 골치 아파졌군.”
“주군의 뜻이라면 잘못된 길이라도 기꺼이 함께 가겠습니다.”
“형아가 사이비라니!”
“나라가 걱정이구나.”
그리고 부정적인 목소리도 들려왔다.
말투만 들어도 알 듯하다.
레헤튼, 칼론, 위즐리, 그리고 루드비히 후작.
두고 봅시다.
* * *
“오오. 선생 대단하시구려!”
“할배. 이 정도는 기본이라니까요!”
-재미있네.-
밀리언에 마련된 유일한 병원.
그곳의 총 책임자이자 2 장로인 노노는 18살 미소년, 아니 미청년 위즐리의 수제자가 되었다.
스승을 아주 존경하는 제자 말이다.
“선생. 한번 봐주겠나?”
“오 잘하셨네요.”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숙제를 자랑하듯 내민 돼지가죽.
그 가죽 위, 꼼꼼히 잘 봉합된 실을 보며 위즐리가 칭찬을 건네자 노노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지었다.
“흐흠! 내 정말 열심히 했네!”
“아주 잘하셨어요.”
“다 선생 덕분이지. 아주 고마우이.”
노노의 말에 위즐리가 다시 한 번 더 칭찬을 건네었다.
그에 노노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모든 공을 선생인 위즐리에게 돌렸다.
아주 사이좋은 스승과 제자의 사이었다.
“여기는 조금만 더 있으면 되겠군.”
노노와 위즐리의 주변, 수십 명의 엘프들이 봉합 연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엘프 의사들의 스승이 돼버린 인간 위즐리였던 것이다.
저 엘프들은 알까?
자신들을 가르치고 있는 존재가 대륙에서 신의라고 불리는 것을 말이다.
이 재미있는 상황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다음, 병원을 나섰다.
그다음 목적지는 세계수의 앞.
아직 마땅한 건물이 없어 세계수 앞에 있는 광장에 의자를 갖다놓은 간이 학교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수백 명의 어린 엘프들과 5 장로 후후가 앉아서 레헤튼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레헤튼 선생. 그대는 정말 천재인 것 같습니다.”
“후후 장로님.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
레헤튼의 설명을 들으며 두 눈을 반짝이던 젊은 엘프, 후후.
그가 감탄하며 반짝이는 눈으로 레헤튼을 바라보자 한 개밖에 없는 안경을 들어 올린 레헤튼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주 겸손한 자세였다.
“역시 선생이십니다!”
그리고 후후는 레헤튼의 그 겸손한 행동에 다시 감탄했다.
아주 지X났다 났어.
“선생님 인간세계 이야기해주세요!”
역시.
저런 놈들 하나씩 있지.
레헤튼의 수업이 지겨웠던 한 엘프 소년.
그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하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동조했다.
아이들에게 교육이란 지겨울 수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이 녀석들! 레헤튼 선생님께서 얼마나 좋은 수업을 해주시고 계시는데!”
아이들의 요청에 당황해하며 안경을 매만지던 레헤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호통을 치는 후후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그를 말렸다.
“선생님. 괜찮습니다. 어서 수업을 이어가시지요.”
레헤튼의 만류에 안도의 미소를 지어 보인 후후가 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레헤튼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술을 삐죽이고 있는 어린 엘프 소년을 바라보았다.
“학생. 이름이 뭔가요?”
“라운이요!”
레헤튼의 물음에 다시 초롱거리는 눈빛으로 대답한 소년, 아니 라운.
라운의 대답에 레헤튼은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요. 라운 학생. 인간세계에 계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네! 황족, 왕족, 귀족, 그리고 평민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오!”
레헤튼의 물음에 라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하게 대답했고 주변에 있던 라운의 친구들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라운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맞아요! 라운 학생 아주 똑똑해요.”
레헤튼 저 녀석.
선생에도 소질이 있나 보다.
레헤튼의 칭찬에 라운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고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다시 눈을 빛냈다.
레헤튼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