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7화
제87편 엘프들의 문명
완벽하게 정화가 된 거대한 세계수.
그런 세계수의 앞에 거대한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다.
하이엘프 로리에게만 허용되었던 의자이지만 나는 그곳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나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크림슨을 내려다보았다.
“대단하더군.”
“다 에르님의 보살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의 칭찬에 크림슨은 모든 공을 신인 에르에게 돌렸다.
나는 그런 크림슨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언제부터 신을 믿었지?”
“올해로 40년째입니다.”
“고생했겠군.”
생각보다 더 긴 시간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로첸 대륙인들은 신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신을 믿는 사람들은 사이비라며 손가락질을 받아왔으며, 그 누구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한데, 나의 앞에 있는 대사제 크림슨은 자그마치 40년이나 그 외롭고 힘든 길을 묵묵히 걸어왔던 것이다.
나의 말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크림슨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나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성자님을 만났으니,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성자라고 확신하나?”
“저와 같은 힘…… 그러니까 성자님이 지어주신 신성력. 그 힘이 성자님의 어깨에서 느껴집니다.”
“흐음…….”
아마 크산느일 것이다.
크림슨의 말에 나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신의 등장. 그리고 새로운 힘.
그에 상당히 당황스러워 내가 어떻게 행동을 취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내 어깨에 있는 녀석은 크산느. 제국의 수호룡이며…….”
-그분의 아들이다.-
멈칫.
크림슨을 향해 나의 어깨에 있는 크산느를 소개하던 나는 나의 말을 끊고 들려오는 크산느의 목소리에 멈칫했다.
갑자기 그분의 아들이라니?
크산느의 말을 농담으로 인식한 나는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분의 아들이라는군.”
“오오…….”
나의 말에 감격하며 양손을 모으는 크림슨.
나는 그런 크림슨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일단…… 내가 성자인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우선은 같이 다니지.”
“알겠습니다.”
일단 이 녀석은 보류다.
나의 결정에 크림슨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 나의 주변인에게 신을 믿으라고 강요를 한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을 믿든, 안 믿든, 에르님은 모든 인간, 그리고 생명체를 굽어살펴주십니다.”
“……그렇군.”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크림슨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크림슨의 모습에 살짝 당황한 나는 이내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라는 신,
어쩌면 생각보다 괜찮은 신일지도…….
“카노!”
“응?”
크림슨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짓던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절박한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노노 님! 치료를!”
“어서 이리로 눕히게!”
어린 엘프 소녀를 품에 안고 울먹이는 엘프 여인,
여인의 말에 노노는 병원으로 보이는 건물로 걸음을 옮겨 빈 침상에 눕히게 하였다.
“재미있겠군.”
엘프들의 치료술이 궁금하기도 했고, 또 크림슨과 둘이 있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던 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겼다.
“왔어 형아?”
쓰러진 엘프 소녀에게 다가가자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청량한 미청년 위즐리.
위즐리의 인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는?”
“심하지 않아. 나무에서 떨어져서 살이 조금 찢어진 것 같아.”
위즐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누워있는 엘프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피로 젖은 허벅지.
상처가 찢어져 피가 계속해서 뿜어나왔기 때문이다.
“저 정도면 간단하게 봉합하면 끝이야.”
나의 표정에 위즐리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설명해주었고 그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라고 불리는 위즐리가 간단하다면 간단할 테니 말이다.
“운디네!”
엘프 소녀의 상처를 살피던 노노.
그가 드디어 정령력을 끌어올려 물의 정령을 소환했다.
기대하던 엘프들의 치료술을 곧 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나와 위즐리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집중했다.
“운디네. 이 아이의 상처를 치료해주겠나.”
막대한 정령력을 소모해 소환한 정령에게 정중하게 부탁한 노노.
노노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인 작은 소녀 형태의 정령, 운디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프 소녀의 상처로 날아갔다.
솨아아!
“오…….”
그리고 정화를 시작했다.
흘러나오던 피가 멈추었고, 투명하고 맑은 물이 생성되어 엘프 소녀의 상처 부위를 깨끗하게 씻어내었다.
그렇게 모든 기본 작업이 끝이 나고.
위즐리와 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노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간단하고 쉽게 기초 작업을 끝냈으니 그다음은 어떻게 진행할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어진 노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후우. 끝이네. 약초를 줄 테니 바르고 내일 다시 오게.”
“감사합니다. 노노 님!”
“……?”
치료가 끝이 난 것이다.
벌어진 상처를 봉합도 하지 않고, 그저 소독만 하고 끝이 난 것이다.
“아니. 이게 끝이라고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위즐리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노노에게 묻자 노노는 위즐리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끝이지. 보이지 않는가? 완벽하게 소독했다네.”
“아니…… 상처가 벌어져 있잖아요? 이러면 또 세균이 들어가서 썩을 수가 있어요, 또 다른 병에 걸릴 수도 있구요.”
노노의 말에 위즐리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위즐리의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의술에 지식이 없는 나도 알 정도로 간단한 기본 상식이었으니 말이다.
“이미 모든 소독을 마쳤네. 약초를 발라 새로운 살이 빨리 자라 살이 붙기만을 기다리면 되지.”
“뭐요……?”
벌어진 상처가 새로운 살로 다시 붙을 때까지 기다린다고?
이 무슨 개 같은 소리인가?
노노의 대답에 위즐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고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우리에게 장난을 하는 것인가?
“내 말이 틀렸는가?”
“허어…….”
아니, 노노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노노의 반응에 위즐리는 탄식을,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인간들과 교류를 나누지 않은 숲의 종족 엘프.
이들의 문명은 정말 개판이었다.
띠링!
32. 세계수의 부탁.
자연 친화적인 숲의 종족 엘프.
폐쇄적인 성향으로 인간들과 교류를 하지 않아 문명발전이 심각하게 뒤떨어진 상태이다.
제대로 된 치료술은 물론, 기본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 발전이 어려웠으며, 어린 엘프들이 병으로 인해 많이 죽어 나간다.
엘프들에게 기본 상식과 의사기술을 교육시켜 발전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시오.
성공보상 : 엘프들의 무한신뢰,
새로운 스탯 ‘신성력’ 생성, 위엄 +2, 디위니타스 검술, 심법 성취도 +1.
“호오.”
그 순간 나의 귀에 반가운 알림음이 들리더니 나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생겨났다.
새로운 임무.
새로운 임무를 읽어 내려가던 나는 마지막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성공보상에 있는 새로운 스탯, 신성력과 그 외의 보상이 놀라웠던 것이다.
5년간 변함없던 디위니타스 검술과 심법의 성취도를 올려주는 보상, 그리고 로첸 대륙에 존재하지 않았던 미지의 힘 신성력.
나는 나를 더 강하게 해줄 새로운 힘에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생겨났다.
-잘되었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기대감에 멍하니 알림창을 바라보던 나의 귀에 크산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위즐리, 치료해줘.”
“응. 비켜봐요.”
나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인 위즐리가 노노를 어깨로 밀치며 엘프 소녀의 옆에 섰다.
“내가 치료해줄게.”
두려운 표정으로 위즐리를 올려다보는 엘프 소녀.
위즐리는 그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청량한 미소를 지었다.
“응…….”
위즐리의 청량한 미소에 얼굴을 붉힌 엘프 소녀가 쑥스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위즐리는 미소를 지으며 수건을 꺼내 소녀의 눈을 덮어주었다.
“마취할 거니까 아프지 않을 거야. 잠깐만 눈 감고 있으면 금방 나을 거야.”
“응.”
위즐리의 맑은 목소리에 엘프 소녀는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편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저 자식, 어린아이들에게 잘하네?
의외인 위즐리의 모습이 조금 놀라웠다.
아무튼, 엘프 소녀의 대담에 그제야 위즐리는 품에서 자신의 도구를 꺼내 들었다.
푸욱.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침을 소녀의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
“!!”
“가만히 있어.”
갑작스러운 위즐리의 행동에 소녀의 엄마로 보이는 여인과 노노가 화들짝 놀라며 말리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가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고 차가운 목소리로 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나의 만류에 여인과 노노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나서지 않았다.
그런 둘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위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팔짱을 끼고는 위즐리의 치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침을 꽂아 감각을 잃게 한 위즐리는 자연스럽게 실과 바늘을 꺼내 들었다.
“노노 할배. 이거 정화 좀.”
“……운디네.”
솨아!
바늘을 보이며 위즐리가 부탁하자 노노는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운디네에게 부탁했다.
운디네의 힘으로 세상 깨끗해진 바늘을 고쳐 잡은 위즐리는 봉합을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후.
“후우 됐다.”
아주 예쁘게 봉합이 되었다.
봉합이 된 상처 위에 마취약과 소독약을 바르고, 약초를 바른 후, 붕대로 감은 위즐리가 맑은 목소리로 말한 다음 소녀의 얼굴에 덮어 놓은 수건을 치워주었다.
“코오…….”
그리고 잠든 소녀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얼씨구. 누가 보면 소녀의 친아버지인 줄 알겠다.
“어…… 어찌…….”
바늘이 엘프의 피부를 파고들고, 옷가지처럼 실로 피부를 봉합한 위즐리의 괴상한 행동.
그리고 그런 괴상한 치료를 받으면서 잠든 엘프 소녀를 번갈아 보며 노노가 놀란 표정을 짓자 위즐리는 예의 청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놀란 표정의 노노를 바라보았다.
“3일 정도 물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 아. 운디네가 있으니 상관없겠구나.”
상처의 오염을 염려해 경고를 하려던 위즐리는 이내, 물의 정령의 특성을 생각하고는 박수를 쳤다.
그러고는 소녀의 엄마인 엘프 여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약 2주일 정도 후에, 실을 제거할 거에요. 그러면 상처가 다 붙어 있을 테니 걱정 마세요, 그전까지는 운디네의 정화 능력이 있어도,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예? 네…… 감사합니다.”
엘프들의 입장에서는 상식 밖이었던 봉합술.
그에 넋이 나가 있던 여인은 위즐리의 자세한 설명에 정신을 차리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에 위즐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은 다음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위즐리의 모습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잘했다.”
“응.”
나의 칭찬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위즐리.
나는 그런 위즐리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