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화
제84편 내 전공 깽판
“왕녀 또한 아름답고, 뛰어난 실력이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뛰어난 요한이 왕녀 하나만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오.”
“!!”
“왕녀가 생각하는 그 잘난 요한이. 바로 왕녀 그대를 사랑하고 있단 말이오. 그 잘난 요한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왜 이렇게 힘없이, 그리고 불안하게 있는 것이오?”
“…….”
감히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가치관에 엘로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고 에스란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섭섭하면, 티를 내시오. 아니면 요한 또한 그대의 눈치를 보게 될 테니 말이오.”
그리고는 사라졌다.
에스란이 사라진 것도 모른 채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며 홀로 생각에 빠진 엘로나.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하루가 지나갔다.
우웅!
하루하고도 한 시간이 지났을 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엘로나의 주위를 맴돌던 눈의 정령 프루에게서 빛이 뿜어나왔다.
우우웅!
프루에게서 나오는 하얀 빛과 엘로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어울려지더니 한순간에 엘로나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아…….”
그러고는 엘로나의 눈이 떠졌고 아름다운 푸른 눈이 정원의 풍경을 담았다.
* * *
“전쟁을 해야 합니다!”
밀리언 왕국의 수뇌부들이 모인 한 나무집.
엘프들이 신성시하는 세계수의 가장 최정상에 위치한 가지에 만들어진 이 집에서 4명의 장로가 모여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잠시 진정하시게.”
얼굴을 붉히며 전쟁을 외치는 3 장로, 차차의 말에 2 장로이자 최고령이며, 유일하게 노인의 모습인 노노가 침착한 음성으로 차차를 진정시켰다.
노노의 말에 차차는 호흡을 고르며 입을 다물었고 차차는 자신의 앞에 놓인 서신을 내려다보여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선택권은 하나뿐이네. 그대들도 알지 않은가?”
“끄응.”
현실적인 노노의 말에 차차는 물론 가만히 있던 4 장로와 5 장로가 동시에 신음을 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엘프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국의 명령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인간들과 함께 어울러 가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엘프족이 발전할 수 있는 길입니다.”
“나나! 입 닥쳐!”
“언니!”
4 장로이자 차차의 동생인 나나.
그녀의 말에 차차가 언성을 높이며 소리치자 나나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언성을 높이며 그런 차차를 노려보았다.
“하아…… 노노 님의 말이 맞습니다. 나나 님의 말도 틀리지 않았지요. 이제 세상은 변했습니다. 솔직히 그동안 우리 엘프들의 선민사상. 솔직히 부끄럽지 않습니까?”
5 장로이자 간부 중 가장 젊은 후후.
그의 말에 차차가 두 눈을 부라리며 후후를 바라보았다.
“우리 엘프들이 부족하다는 뜻인가?”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패배자입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존심만 세우다가 왕국에서 속국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
너무나도 직설적인 후후의 말에 차차는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에 후후는 가만히 있는 노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여왕님과 실 공작을 혼인시켜서 인간들과 교분을 다시 다져야 합니다. 문호를 완벽하게 개방하고 교역을 성실하게 이루어야 합니다.”
퍼억!
이어진 후후의 말에 차차는 후후의 얼굴을 걷어차 버렸다.
그러고는 경멸 어린 표정으로 후후를 내려다보았다.
“미친 새X. 자존심도 없는 놈.”
“그 자존심 때문에 우리는 멸족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야말로 멍청하군요.”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뭘 안다고!”
“정말 죽고 싶습니까?”
차가운 후후의 말에 언성을 높인 차차.
그런 차차의 모습에 후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살기를 일으키며 차차를 노려보았다.
그에 분노한 차차 또한 살기를 일으켰고 이내 둘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자세를 잡았다.
콰앙!
“그마아안!!”
움찔!
그런 둘의 행동에 결국 화가 나고만 최고 연장자 노노.
그가 손에 있는 지팡이로 바닥을 내려치며 언성을 높이자 서로 마주 보던 차차와 후후는 언성을 높이며 조심스레 눈길을 돌렸다.
“장로라는 작자들이 어린아이들처럼 무슨 짓인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노노의 소리침에 차차와 후후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 둘의 행동에 노노는 불쾌한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곧 그들이 도착하니 맞이하러 나가지.”
“알겠습니다.”
노노의 말에 세 명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고 이네 네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 * *
“멋지군.”
맑은 공기가 인상적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 속.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은 거대한 나무들과 그 나무들의 가지에 오목조목 지어진 나무집,
어둠이 내려앉은 지금.
마을을 밝히기 위해 작은 유리병 안에 초록색, 노란색의 빛을 발하는 벌레를 집어넣어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거기에 나무 위로 올라가기 위해 만들어진 나무 사다리, 그리고 계단은 신비로웠으며 미의 종족이라고도 불리는 뛰어난 외모를 지닌 엘프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마치 동화 속에서 나올법한 요정들이 사는 듯한 나무마을의 모습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감탄했다.
“멋있네.”
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옆에 있던 위즐리가 감탄했고 칼론과 레헤튼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들의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군요. 역시 엘프들만의 문화도 무시는 못 할 듯합니다.”
“네. 정말 자연 친화적이면서 아름답습니다. 힐링이 되는군요.”
루드비히 후작의 말에 내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어깨에 앉아 있던 크산느가 날개를 파닥거렸다.
-많이 변했군.-
<와본 적이 있나?>
크산느의 말에 내가 마나 마우스로 물었다.
그러자 한심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프들을 이곳으로 쫓아낸 인물이 누군지 잊었냐?-
<아…….>
그렇다.
엘프 종족을 이곳에 내쫓은 인물은 크산느의 전 주인.
즉. 나의 선조 에펜하르트다.
그리고 에펜하르트 옆에서 도운 인물이 크산느일 테고 말이다.
-멍청한 놈.-
이어지는 크산느의 조롱을 가볍게 무시한 나는 고개를 돌려 나의 뒤에 가지런히 서 있는 4명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로브 벗지?”
“네 성자님.”
나의 명에 선두에 있던 크림슨이 고개를 숙이며 예의 바르게 대답한 다음 로브를 벗었다.
그러자 그의 뒤에 있던 4명의 사내가 로브를 벗었다.
“어휴. 음흉한 놈들.”
검은색의 사제복을 입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린 다음 다시 고개를 돌렸다.
“로리 님.”
“예 전하.”
밀리언의 영역에 들어서자 마차에서 나와 나의 옆에서 말을 타며 함께한 미래의 숙모, 로리.
그녀를 부르자 로리는 예의 바르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까지 예를 차리지 않아도 됩니다.”
“황태자 전하께 속국의 주인인 제가 예를 올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흐흠.”
우리 숙모님 조금 빈정 상하셨나 보다.
뼈가 있는 그녀의 말에 나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호호. 농담이에요 전하. 고마워요.”
나의 행동에 미소를 지은 로리가 친근한 말투로 나에게 다시 말을 건넸고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우리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
“아직이에요.”
나의 환영인사에 로리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고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제가 빨리 되도록 노력할게요.”
나만 믿어요, 숙모.
이번 시뮬레이션 임무 빨리 끝내고 싶거든요.
그렇게 실없는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어느덧, 밀리언 왕국의 왕성.
거대한 세계수에 지어진 나무왕궁의 앞에 멈춰 섰다.
“귀환을 환영합니다, 여왕이시여…….”
그리고 장로로 보이는 네 명의 존재가 나의 옆에 있는 로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새X들 보게?’
“크큭.”
그런 장로들의 행동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고 뒤에 있던 위즐리가 입을 가리며 소리죽여 웃었다.
밀리언 왕국, 아니 공국의 주인.
듀크 제국의 황태자인 나.
그런 나를 무시하고 한낱 공왕인 로리에게 먼저 인사한다라…….
이 장로들 사회생활이 많이 부족한 것인지, 나를 무시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혼이 나야 할 듯싶다.
“여왕이시여…… 옆에 계신 분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내려다보던 나.
나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그제야 늙은 엘프가 나를 의식한 듯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뻔히 누구인지 알면서 굳이 내 앞에서 자신들의 여왕에게 물어보며 말이다.
그런 늙은 엘프의 행동에 로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로리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어 준 나는 말에서 내렸다.
저벅저벅.
그러고는 선두에 서 있는 늙은 엘프를 향해 걸어갔다.
움찔.
다 들린다 이 자식들아.
늙은 엘프를 향해 내가 걸어가자 나의 성격을 직접 목격했던 엘프들.
우리 일행과 함께 서 있는 엘프들이 움찔하며 긴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뚝.
그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피식 웃은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제국의 황태자 전하이십니까?”
내가 멈추어서자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묻는 늙은 엘프.
나는 그런 엘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름이?”
울컥.
“가만히 있거라.”
나의 물음에 뒤에 있던 붉은 머리의 엘프 여인.
그녀가 울컥하며 한 걸음 나서자 늙은 엘프가 그녀를 말렸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밀리언 왕국의 2 장로, 노노라고 합니다.”
“흐음……,”
자신을 소개한 늙은 엘프 노노.
그를 바라보며 나는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나의 모습이 의문이었는지 노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는지요.”
“연락을 받지 않았나?”
“무엇을 말입니까?”
나의 물음에 아까 욱했던 여인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행동에 살짝 미소를 지은 나는 몸을 돌려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우뚝.
그러고는 그녀의 바로 앞에 멈추어 섰다.
“엘프들에게 보기 힘든 붉은 머리이군.”
“……얼굴 치우십시오.”
그녀의 얼굴을 향해 내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묻자 그녀가 눈길을 돌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원래 위치로 되돌렸다.
그런 다음 고개를 돌려 엘프들의 여왕. 로리를 바라보았다.
“엘프 여왕.”
“예 전하.”
“나는 그대의 주군이 될 자입니다. 틀렸습니까?”
“맞습니다.”
웅성웅성!
나의 물음에 로리가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하자 주변에 있던 엘프들이 당황스러워하며 웅성거렸다.
로리의 대답을 들은 나는 다시 몸을 돌려 늙은 엘프 노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뭐하는 거지?”
“예?”
나의 물음에 당황하며 대답한 노노.
나는 그런 노노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무릎 꿇어,”
나는 말이야.
나이가 적든 많든, 나에게 시비를 건 존재에게 얄짤없거든.
너, 나한테 나이 대우 못 받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