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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대공가의 귀한 아들-80화 (80/226)
  • 제 80화

    제80편 은혜도 모르는 것들

    “너는 이름이 뭐야?”

    “클라라예요.”

    케한의 물음에 다른 케이크를 가져온 소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름 예쁘네.”

    “고마워요.”

    케한의 말에 소녀, 아니 클라라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를 표한 다음 포크를 집어 들었다.

    “몇 살이야?”

    “90살이요.”

    “……난 91살인데. 내가 오빠네?”

    클라라의 대답에 당황한 케한이 이내 어색한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고 그에 클라라는 놀란 표정으로 케한을 바라보았다.

    “인간은 수명이 100살로 아는데요……?”

    “난 황족이잖아.”

    “아…… 황족은 다른가요?”

    “응. 우리 형처럼 다 뛰어나.”

    “와아…….”

    엘프 세상에서 벗어난 적 없는 순순한 어린 엘프, 클라라는 깜찍한 케한의 거짓말에 속고 말았다.

    날카로운 그녀의 귀를 쫑긋거리며 감탄한 것이다.

    그에 케한은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형아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특별히 나를 오빠라고 부르게 해줄게.”

    “정말요?”

    “물론! 불러봐!”

    “네 케한 오빠!”

    클라라의 물음에 케한은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고 아직 어린 엘프. 클라라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보다 83살 연하의 인간 아이에게 오빠라고 칭하고 있었다.

    그런 클라라의 호칭에 케한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쓰윽 쓰윽.

    “착하네 클라라.”

    그러고는 클라라의 보라색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탁!

    “그 손 치워!”

    그때.

    한 어린 소년이 다가와 케한의 손을 쳐내고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케한을 노려보았다.

    “랜터스!”

    “한낱 인간이 감히 엘프족의 머리를 쓰다듬어?”

    클라라가 소년의 이름을 부르며 급히 말렸지만 랜터스는 이미 눈이 돌아간 상태이다.

    올해 99살로 곧 성인식을 치를 엘프.

    엘프는 100살 때 성인식을 치르고 육체가 급성장한다.

    그전까지는 어린아이의 육체를, 100살부터는 성인의 육체를 지니게 된다는 뜻이다.

    엘프들의 세상에서 벗어난 적이 없고, 인간들에게 원한이 가득한 어른들에게 인간들의 안 좋은 이야기만을 들어온 랜터스는 인간을 혐오했고, 그에 자신의 친한 친구 클라라의 머리를 쓰다듬는 인간을 보고 눈이 돌아간 것이다.

    “꺼져라 더러운 인간!”

    “…….”

    랜터스의 모욕에 클라라는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랜터스의 앞에 있는 케한을 바라보았다.

    “…….”

    아무 움직임 없이 내쳐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는 케한.

    “흥.”

    랜터스는 그런 케한을 내려보며 콧방귀를 뀐 다음 몸을 돌려 클라라의 손목을 잡았다.

    “가자.”

    “랜터스! 어서 사과해!”

    “닥쳐. 내가 인간 따위에게 왜…….”

    “그거 놔.”

    클라라의 말에 신경질을 내던 랜터스는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움찔.

    그러자 보였다.

    시리도록 차가운 파란 눈동자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케한이 말이다.

    “내가 더러워?”

    “인간은 모두 더럽다.”

    “우리한테 패배한 너희 종족은 뭐야?”

    움찔.

    생각지 못한 케한의 질문에 랜터스는 움찔하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인간을 욕하는 어른들에게 그저 부정적인 이야기만 들었기에 케한의 질문처럼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제국은 인간들에게 멸종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엘프들을 보호해주고 있는 거야. 너희가 그렇게 좋아하는 숲을 내주고 너희들의 생명을 보장해주잖아.”

    “거짓말하지 마! 너희는 수명도 짧고 정령과 계약도 못 하는 머저리들이야!”

    “랜터스!”

    선을 넘는 랜터스의 말에 클라라가 화들짝 놀라며 랜터스의 어깨를 잡았지만 랜터스는 그런 클라라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케한의 앞으로 다가갔다.

    케한보다 키가 더 큰 랜터스.

    랜터스는 그런 케한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엘프족은 너희들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어.”

    “아니. 너희는 우리 인간을 이길 수 없어. 그리고 우리 제국이 없으면 너희는 노예로 몰락하고 말 거야.”

    에스란 후작에게 배운 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친 케한.

    하지만 상대는 생각이 깊지 못한 어린아이였으며 자부심이 넘쳐흐르는 아이였다.

    퍼억!

    케한의 모욕에 분노를 참지 못한 랜터스가 주먹을 휘두르고 만 것이다.

    황제의 조카이자, 대공의 아들이며, 황태자의 동생인 케한에게 말이다.

    “공자님!”

    “오빠!”

    갑작스러운 이 상황에 주변에 있던 어린 귀족들은 화들짝 놀라며 케한에게 달려왔고 클라라 또한 케한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덥석.

    “미쳤어? 인간을 걱정해?”

    하지만 랜터스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클라라의 손목을 잡은 랜터스가 두 눈을 부릅뜨며 클라라에게 언성을 높였고 그에 클라라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짜악!

    그러고는 랜터스의 뺨을 후려쳤다.

    “…….”

    “너는 지금 제국의 귀인에게 큰 실수를 저지른 거야. 너 때문에 우리 종족이 멸족될 수도 있다고!”

    “뭐? 제국이 두려워? 저런 인간이 두렵냐고!”

    “야.”

    자신의 뺨을 때린 클라라를 향해 언성을 높이던 랜터스.

    그가 클라라의 뒤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뚜벅뚜벅.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으로 스윽 닦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 케한.

    랜터스의 앞에 선 케한은 섬뜩한 눈빛으로 랜터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너는 혼날 거야.”

    “뭐?!”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듯한 케한의 모습에 긴장하고 있던 랜터스는 생각지 못한 케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악!

    그러고는 랜터스의 의식은 끊겼다.

    * * *

    “주군. 잠시…….”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한창 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건넨 칼론의 행동에 귀족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칼론을 바라보았다.

    “뭔데?”

    굳어있는 칼론의 얼굴을 발견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주위 눈치를 보던 칼론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추며 나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아이들끼리 싸움이 붙은 모양입니다. 근데. 그 아이가 케한이인 것 같습니다.’

    칼론에게도 친동생 같은 케한.

    아니 실제로 외사촌이기도 하다.

    아무튼 칼론의 말에 인상을 굳힌 나는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내가 발걸음을 옮기자 주변에 있던 귀족들은 당황했고 레헤튼과 위즐리는 눈을 반짝이며 나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아이들이 모인 방안에 들어선 나는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살심을 겨우 가라앉혔다.

    한 번도 혼낸 적 없으며, 매일 미소를 지으며 사랑스러움으로 무장해 나에게 힐링을 해주며, 매일같이 존경한다며 형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리치던 내 동생 케한.

    그 사랑스럽고 귀한 내 동생이 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씩씩거리며 인간을 비하하는 어린 엘프가 보였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사색이 된 로리와 위로로가.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로리를 바라보았고 나의 눈빛에 로리는 움찔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조카…….”

    “죄송합니다. 제 아들입니다.”

    로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위로로가 앞으로 나서서 고개를 숙였지만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무시하고는 걸음을 옮겨 위로로를 지나쳤다.

    콰앙!!

    그러고는 내 동생 앞에 있는 아이의 머리채를 잡아 그대로 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

    “칼론.”

    “예 주군!”

    “모든 엘프들을 포박하라.”

    “명!”

    채챙!

    나의 명이 끝나자마자 칼론은 검을 뽑아 로리에게 겨누었고 주변에 있던 황실기사단 모두가 검을 뽑아 들어 위로로와 나머지 엘프들에게 겨누었다.

    “모두 무기를 거두세요!”

    황실기사단의 행동에 반사적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 든 엘프들.

    그에 화들짝 놀란 로리가 언성을 높이며 엘프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고민하던 엘프들은 경계 어린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무기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퍼억!

    “크윽…….”

    그러고는 기사들의 발길에 무릎을 꿇었고 우악스러운 힘에 포박당했다.

    잠시 후.

    모든 엘프들이 포박되었고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기절해있는 어린 엘프의 앞에 있는 어린 소녀를 바라보았다.

    “설명.”

    “히끅!”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현재 이 상황이 조금 버거웠을까?

    차가운 나의 목소리에 어린 소녀는 딸꾹질을 하며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클라라. 괜찮으니 설명해주겠니?”

    무릎을 꿇은 채 포박된 로리가 따뜻한 목소리로 소녀를 달래듯 말하자 그제야 소녀의 입이 열렸다.

    그러고는 어떤 일이 있는지 모든 귀족 앞에서 설명이 됐다.

    모든 설명이 끝이 나고.

    제국과 왕국 귀족들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고 밀리언 왕국의 엘프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네들 잘못이니 면목이 없어 고개를 못 드는 듯했다.

    그런 엘프들을 한번 둘러본 나는 고개를 돌려 케한을 바라보았다.

    움찔.

    내가 바라보자 몸을 움찔하는 케한.

    나는 그런 케한을 가만히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으냐?”

    “…….”

    “괜찮으니 대답해 보거라.”

    나의 물음에 움찔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케한의 모습에 내가 조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더 물었다.

    그제야 대답이 케한의 입을 통해서 나왔다.

    “사과를 받아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케한의 대답에 고개를 살짝 끄덕인 나는 걸음을 옮겼다.

    스윽.

    그러고는 케한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너는 그 마음을 꼭 유지하거라. 나머지는 형이 처리해줄 테니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케한을 지나친 나는 바닥에 엎어진 채 기절하고 있는 어린 엘프의 앞에 섰다.

    콰드득!

    “으아아악!”

    그러고는 어린 엘프의 팔을 비틀었다.

    갑작스럽게 느껴진 고통에 기절에서 깨어난 어린 소년 엘프.

    나는 그 어린 엘프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기초 교육이 다시 필요하겠구나?”

    “죄…… 죄송…….”

    나의 한마디에 소년 엘프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용서를 구했지만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방금까지 하찮다 하던 인간에게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하는 엘프의 모습이 웃겼던 것이다.

    -요한. 여기까지 해. 임무 완료해야지.-

    그때.

    나의 귀로 크산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산느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심각한 얼굴의 실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실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을 정했다.

    황족을 능멸하고 인간을 비하하였으며, 고마운 마음도 모르는 쓰레기를 죽이기로.

    우웅!

    나의 의지와 동시에 생성된 거대한 대검 겔루 칼립스.

    내가 겔루 칼립스를 소환하자 주변 모든 귀족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빌고 있는 어린 소년 엘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황족능멸과 인간 비하, 그리고 은혜도 모르는 쓰레기 같은 엘프들을 혐오하는 마음도 컸기 때문이었다.

    덜덜.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눈물 콧물을 흘리며 손바닥이 닳도록 싹싹 비는 어린 소년 엘프.

    그 불쌍한 모습과 진심 어린 사죄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거대한 대검 겔루 칼립스를 한 손으로 든 나는 소년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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