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화
제77편 황태자의 성인식(1)
“대사제님.”
깊은 동굴 속.
횃불로 밝힌 거대한 동굴 내부에는 보기만 해도 압도적인 거대한 제단이 세워져 있었다.
그곳의 가장 높은 제단에서 검은색의 로브를 입은 채 경건한 자세로 기도를 올리고 있던 대사제, 크림슨은 자신을 부르는 사제의 목소리에 기도를 잠시 멈추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제자이자 사제인 튜칸을 바라보았다.
“제국의 황태자가 곧 성인이 되어 전 대륙이 축제입니다. 이때 밖으로 나가 전도를 하심이 어떠신지요?”
자신의 첫 제자이자 아들 같은 튜칸의 조언에 크림슨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분의 허락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저희 아이들이 굶어 죽습니다.”
“나의 식사를 줄이거라.”
“이미 한 끼만 드시고 계십니다!”
크림슨의 대답에 튜칸은 결국 언성을 높였고 그에 크림슨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튜칸을 바라보았다.
“나는 먹지 않아도 된다. 그분께서 힘을 주고 계시니 말이다.”
화륵!
그와 동시에 크림슨의 손에 나타난 보라색의 기운.
어두운 색이라 불길하면서도 그 보라색의 기운에서는 그 어느 것보다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먹지 않아도 된다.”
“……알겠습니다. 하면 저 또한 대사제님과 함께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하겠습니다. 저 또한 그분의 아들이니까요.”
크림슨의 만류에도 튜칸의 눈은 확고했다.
그런 튜칸의 모습에 크림슨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정말 믿음직한 제자였다.
<들어라.>
“!!!”
“!!!!”
그 순간!
처음 교단의 신물을 만졌을 때 들려온 신의 목소리가 동굴 내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아버지시여!”
그 울림과 동시에 동굴에 있던 모든 존재가 제단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한마음 한뜻으로 그를 불렀다.
<요한. 요한을 찾아라.>
“아버지시여…… 그분이 누구십니까……?”
두서없는 신의 명령.
그에 대사제인 크림슨이 조심스럽게 묻자, 다행히도 신의 대답이 들려왔다.
<나의 분신이자 대리자. 그를 찾아라. 이번에 성인이 되는 요한이다.>
* * *
제국의 궁술 연무장.
모든 존재를 물리게 한 엘로나는 멀리 보이는 과녁을 바라보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쩌저적!
그러자 공기가 얼어붙더니 이내 엘로나의 왼손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활이 생겨났다.
두 눈이 의심될 정도로 괴상한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엘로나는 아무렇지 않게 활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은 빈 활시위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수우웅!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또 일어났다.
바로 아무것도 없던 엘로나의 활에서 새하얀 색의 기운이 휘몰아치더니 이내 하나의 화살로 형상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고오오!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팽팽해진 화살.
그 화살에서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피융!
그리고 그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갔다.
과녁은 일반 사람들에게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먼 거리에 있었지만 엘로나의 화살은 명중이었다.
콰콰쾅!
과녁을 그대로 폭발시키며 말이다.
“후우…….”
살짝 한숨을 내쉰 엘로나는 자신이 날린 화살의 경로를 바라보았다.
화살이 지나간 자리에는 하얀색의 서리가 껴있었으며 목적지였던 과녁은 흔적도 없이 폭발되어 있었다.
정말 강한 파괴력이었지만 엘로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자신의 오른손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엘로나는 이내 자신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힘이 너무 들어가 있네요.”
꽉 쥐어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던 엘로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기척을 숨기고 다가왔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자신에게 말을 건 존재를 확인한 엘로나는 놀란 표정을 지우고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엘프들의 여왕. 로리 님을 뵙습니다.”
“그렇게 예를 차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비롭고, 상쾌한 연두색의 머리에 아름다운 보라색의 눈.
뾰족한 귀를 지닌 숲의 종족 엘프의 여왕 로리는 자신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건넨 엘로나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실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다.
실이 아끼는 아이이며 황태자의 연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개인 수련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던 로리는 백여 년 전 자신과 같은 고민을 지닌 듯한 엘로나의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휘이잉!
로리의 말에 어색한 표정을 짓던 엘로나.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서 있던 로리가 마나를 끌어올려 연두색의 활을 소환하는 것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팍.
그리고 두 눈을 부릅떴다.
빠른 속도로 활시위를 당긴 로리.
그 순간 바람의 기운이 모여 화살을 만들었고 이내 아무런 소리도 없이 날아가 조용히 과녁에 박혀버렸던 것이다.
“이걸 원하는 거죠?”
평생을 활에 투자해도 이룰 수 없는 경지를 보여준 로리.
그녀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엘로나를 바라보자 엘로나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의 기술이라고 알려진 무음시.
판게아 대륙에서 유일하게 신궁이라 불리는 자.
로리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맞추어야 할 목표가 죽을 때까지 모르는 소리 없는 무음시는 정말 대단했다.
“가르쳐줄게요.”
“네?”
그렇게 무음시에 감탄하던 엘로나는 로리가 생각지 못한 제안을 하자 깜짝 놀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로리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 귀한 기술을 남인 자신에게 가르쳐주겠다니?
부담스러웠던 엘로나는 거절했으나 로리는 괜찮다는 듯 빙긋 미소를 지었다.
“난 괜찮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무엇인가요?”
로리의 말에 혹한 엘로나가 조심스럽게 묻자 로리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스승님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실과 나를 도와줘요.”
칼론이 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괜히 제자가 가지고 싶었던 로리였던 것이다.
* * *
“와아아!!”
제국의 수도 팔센.
팔센 성의 안쪽에 위치한 황금색의 황궁.
황궁의 정문 앞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있었다.
수많은 백성들이 모인 정문의 광장을 다 볼 수 있고, 광장의 모든 백성이 볼 수 있도록 배치된 발코니로 내가 걸음을 옮겨 백성들에게 모습을 비추었다.
“황태자 전하 만세!”
“만세! 만세!”
내가 발코니에 모습을 비추자 수많은 백성들이 환호하며 나를 찬양했다.
그 기분 좋은 환호에 나는 손을 들어 고마운 백성들에게 화답을 해주었다.
“와아아!”
나의 화답에 백성들은 더욱더 열광했고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마나를 끌어 올렸다.
“모두 고맙습니다.”
“와아아!”
모든 백성에게 들릴 정도로 울린 나의 목소리.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아니었으나 이곳에 모인 모든 백성의 귀에 쏙 박혀 들었다.
마나의 경지가 높은 강자만이 가능한 기술에 백성들은 다시 한 번 열광했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계속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백성들과의 인사는 짧은 시간에 끝이 났다.
시간이 다 되었는지 발코니의 안으로 들어와 귓속말을 건넨 드라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발코니에서 벗어났다.
“황태자 전하 만세!”
내가 발코니를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찬양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기에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인기 많으십니다.”
그런 나를 보며 안내하던 드라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난기 섞인 드라칸의 말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좋지요.”
황제의 정보조직 블랙 문의 수장이자 시종장인 드라칸.
그를 보며 내가 말하자 드라칸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전하께서는 폐하의 뒤를 이어 성군이 되실 것입니다.”
“도와주실 거지요?”
“제 모든 힘을 바칠 것입니다.”
드라칸의 말에 내가 장난스레 묻자 드라칸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에 나는 미소를 짓고는 드라칸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솔직히…… 드라칸이라는 이 시종장은 정말 뛰어난 인재였으니 말이다.
“오셨습니까.”
황궁에서 행해질 황태자의 성인식.
대기하기 위해 마련된 대기실 앞에는 칼론, 레헤튼, 그리고 위즐리가 서 있었다.
그 세 명은 내가 도착하자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고 나는 그런 셋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내 꼬봉들이군.”
“호위기사입니다.”
“꼬봉이라 불리어도 전하의 곁에만 있을 수 있다면…….”
“형아. 주치의라는 좋은 단어가 있잖아?”
장난스러운 나의 한마디에 각자의 개성대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런 세 명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그 세 명 또한 미소를 지었다.
“들어가자.”
“네!”
나의 한 마디에 세 명은 힘차게 대답했고 이내 함께 대기실 안으로 들어섰다.
“드라칸. 잠시 쉬어도 되지?”
“물론입니다.”
대기실 안에 들어선 내가 들어오지 않고 문 앞에 서 있는 드라칸을 보며 묻자 드라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문이 닫혔다.
“후아. 겁나 불편하네.”
문이 닫히고 나는 근처에 있는 소파에 앉아 목까지 채워진 단추를 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주군.”
그런 나의 모습에 레헤튼이 대기실 한쪽에 배치된 음료를 가져와 나의 앞에 놔두었다.
“오. 고맙다.”
그런 레헤튼의 행동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음료를 들고는 그대로 들이켰다.
벌컥벌컥.
“아이고. 시원하게 먹네.”
내가 음료 마시는 것이 맛있어 보였는지 위즐리가 조금 과장되게 말했다.
그러자 레헤튼은 빙긋 웃으며 음료를 건넸고 위즐리는 예의 청량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레헤튼 형.”
“칼론은?”
“괜찮아.”
음료 한 잔을 더 따른 레헤튼이 칼론에게 묻자 칼론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레헤튼은 내가 마신 것처럼 시원하게 음료를 비웠다.
“참. 전하. 파티 홀 내부 귀빈들의 배치도입니다. 한번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듯하여 가져왔습니다.”
음료를 마시고 컵을 내려놓은 레헤튼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품속에서 서류를 하나 꺼내어 나에게 건넸다.
컵을 내려놓고, 레헤튼이 건넨 서류를 받아든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는 서류를 펼쳐 들었다.
그러고는 대충 훑어보며 확인했다.
“역시.”
황제와 자신의 자리를 가장 상석으로 제국의 귀족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왕국의 사절단 자리를 배치해두었다.
그 뜻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왕국들을 떨어뜨려 놓았단 뜻이다.
“아무래도, 오스란 왕국과 밀리언 왕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고,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그래서 중간에 우리 아버지가 자리를 잡고 있군.”
대공의 자리 양옆으로 배치된 오스란 왕국과 밀리언 왕국의 사절단.
레헤튼의 설명에 내가 씨익 웃으며 물었고 그에 레헤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공 전하가 계신다면 호전적인 오스란 왕국의 귀족들, 그리고 건방진 밀리언 왕국의 귀족들이 눈치를 볼 테니까요.”
“우리 아버지 끗발 좋네.”
“아무래도 황제 폐하 다음으로 제국을 대표하시는 분이시니까요.”
이어진 레헤튼의 대답을 들은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의 뒤에 시립해 있는 칼론을 바라보았다.
“드라칸에게 말은 전했지?”
“네. 이미 모든 요원이 그를 감시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이아칸 왕국의 트루히드 후작.
그를 감시하라는 나의 명령을 완수한 칼론의 대답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새X. 한 번만 걸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