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화
제73편 북부에서 온 손님
로리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을 건넨 실.
실의 말에 로리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실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런 로리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너는 여왕의 자리를, 나는 공작의 자리를 버리고 우리 둘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서 살까? 나 그럴 능력 되는데.”
“저도 능력 돼요.”
실의 품에 안겨 듣기 좋은 실의 음성을 듣던 로리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대답했고 그에 실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로리를 안은 팔에 더욱더 힘을 주었다.
“떠나자. 행복하게 해줄게.”
“지금은…… 지금은 아니에요.”
“로리…….”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로리의 대답에 슬픈 표정을 짓던 실.
하지만 이어진 로리의 대답에 실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대답을 하는 로리의 얼굴에서 진한 아쉬움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 언제든 기다릴게. 떠나고 싶어지면 말해.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할 거야.”
그런 로리를 보며 실이 진지한 어조로 말하자 로리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네. 고마워요.”
“사랑해.”
“제가 더요.”
* * *
“오랜만이군.”
제국의 수도 팔센에 들어서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검문소.
그곳의 정문에 선 나는 긴 사절단을 끌고 나타난 사내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나의 인사에 말에서 내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트루히드 후작.
하이아칸 왕국의 귀족파 수장이자 강한 권력을 지닌 젊은 귀족의 예의 바른 인사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영하지.”
조금은 건방진 태도.
그에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트루히드 후작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왕비 마마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의 물음에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 트루히드 후작.
그가 수하에게 눈치를 주자 수하가 서둘러 뒤에 있던 마차를 향해 달려갔다.
벌컥.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수하가 마차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마차의 문이 먼저 열렸으니 말이다.
저벅저벅.
열린 마차 문 사이로 아름다운 중년 여인 코르와 아름다운 여인 엘로나가 내렸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 여인 둘을 향해 걸어갔다.
스슥.
내가 말에서 내려 걸음을 옮기자 하이아칸 왕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서둘러 길을 비켜주었고, 그에 나는 금방 코르와 엘로나의 앞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황태자.”
“오랜만입니다. 이곳까지 오시는 데 불편한 점은 없으셨는지요?”
코르의 인사에 내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르게 대답하자 코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로나가 어서 빨리 황태자를 보고 싶다고 호들갑 떨던 것이 상당히 불편하더군요.”
“어마마마!”
코르의 대답에 엘로나가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불렀고 그에 나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코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잘나서…….”
“호호. 그렇지요. 그렇고말고.”
나의 농담 어린 대답에 코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엘로나가 얼굴을 붉힌 채 나를 바라보았다.
“잘 지냈어?”
“여전히 이쁘네.”
“쫌!”
엘로나의 인사에 내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엘로나는 얼굴을 붉히더니 코르의 눈치를 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런 엘로나의 행동에 어깨를 한번 으쓱인 나는 이내 코르와 엘로나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본 제국을 방문해주신 하이아칸 왕국의 사절단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기사와 병사에게 들리도록 목소리에 마나를 실은 나.
그런 나의 인사에 코르와 엘로나 또한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나는 트루히드 후작의 옆에서 말을 몰며 사절단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더 헌양해 지셨습니다.”
사절단 일행의 가장 선두.
말을 몰던 나는 옆에서 트루히드 후작이 친근한 미소로 다가오자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고맙군.”
“이번에 성인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대도 왕국 재상의 자리에 오른 것 축하하네. 왕국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오른 것이라지?”
트루히드 후작의 인사에 내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후작은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어쩌다 보니……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하기를 바라네.”
“감사합니다.”
정말 영혼이라고는 일도 없는 우리 둘의 대화.
그렇게 우리 둘은 계속해서 영양가 없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팔센의 수도 성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 * *
“황제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레드카펫이 깔린 거대한 대전.
그곳에 도착한 코르, 엘로나 트루히드 후작은 황좌에 앉아 있는 황제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 셋의 인사에 황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 제국에 온 것을 환영하오. 이곳에 오는 동안 불편한 점은 없으셨소?”
“곱게 깔린 도로에 편하게 왔으며, 안전한 치안으로 그 흔한 산적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잘 도착하였습니다. 역시 제국이라 생각하며 많이 배웠습니다.”
“호오. 그대는 분명 트루히드 후작이지?”
“기억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입에 기름칠을 바른 듯이 자연스러운 트루히드 후작의 아첨.
그에 황제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아는 체를 하자 후작은 황공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주 지X을 하고 있다.
“후작의 칭찬에 기분이 좋군. 그래 많은 것을 배워가게.”
-황제도 정상은 아니야.-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놓고 말하자 크산느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고 나 또한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의상 한 말이건만 당연하다는 듯 배워가라는 황제의 말이 너무나도 웃겼던 것이다.
“예 황제 폐하.”
한데 트루히드 후작은 끄떡도 없었다.
오히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더욱 깊이 숙였다.
-귀찮은 놈인 것 같은데.-
<인정.>
크산느의 말에 마나로 대답한 나는 황좌에 앉아 있는 황제를 바라보았다.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텐데 조금 쉬게 하는 것이 어떠십니까?”
“그러는 것이 좋겠구나. 황태자.”
“예 폐하.”
“네가 안내해주거라.”
“알겠습니다.”
나의 의견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황제.
그가 나에게 직접 손님 응대를 맡기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엘로나랑 데이트해야지.
대전을 나와, 황제가 기거하는 본궁을 나선 나는 하이아칸 왕국의 인물들에게 배정된 별궁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이곳이 하이아칸 왕국의 사절단이 지낼 곳입니다.”
별궁이라 하여도 제국 유일의 황궁이다.
황금색으로 장식된 거대한 궁을 가리키며 내가 미소를 짓자 트루히드 후작은 감탄 어린 표정을 지었다.
“대단하군요. 별궁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니…….”
“손님들이 기거하는 궁이니 어찌 가볍게 여기겠나? 우리도 조금 무리한 것이지.”
트루히드 후작의 감탄에 내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흠칫.
그런 나의 대답에 흠칫한 트루히드 후작.
나는 그런 후작의 빈틈을 발견하고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 혓바닥.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그에게 경고했다.
가면을 쓴 채 허튼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 말이다.
살짝 기세를 끌어올리며 경고한 나의 협박이 통했는지 트루히드 후작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나는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나를 거두었다.
“들어가서 쉬게나.”
“전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역시 저 자식 보통 아니다.
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바로 안색을 되찾은 후작이 나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후작을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정말 기분 나쁜 놈이다.
나는 저 녀석이 정말 싫었다.
물론 전생에서 엘로나와 결혼하려 했던 사내였던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 망할 놈의 야망이다.
분명 능력 있는 놈이지만 야망이 너무나도 크다.
그리고 인성도 아주 안 좋고.
황태자가 되고 나서 제국의 정보조직을 통해 모든 귀족에 대한 자료를 읽어본 나였기에 저 녀석이 더더욱 싫어졌다.
그리고…….
‘전생에서 나에게 자객을 보냈던 후보 1위지.’
호수 스타폴에서 홀로 술을 마시던 그때, 나를 습격했던 자객들.
물론 칼은 이상한 귀족 놈에게 맞았지만 그 원인은 분명 나를 죽이기 위해 들이닥친 자객들 때문이었다.
나와 칼론 단둘만 있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그날 하이아칸 국왕 카자르를 만나고 헤어져 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다.
그에 상처를 받은 나는 칼론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왕국을 벗어나 호수 스타폴에서 홀로 술을 마셨다.
그 누가 나의 행적을 알 수 있었을까?
유일하게 나의 행적을 알던 칼론이 외부에 알렸을까?
그건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단 하나. 왕국에서부터 나의 행적에 집중하고 있던 존재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바로 트루히드 후작이고 말이다.
그에게 있어서 나는 엘로나와 혼인하는 데 큰 장애물이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심증일 뿐이다.
하지만 나의 직감은 말하고 있었다.
범인은 저 자식이라고 말이다.
“칼론.”
“예 주군.”
궁에 들어서는 후작의 뒷모습을 보던 내가 옆에 있던 칼론을 부르자 칼론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드라칸에게 전해. 트루히드 후작을 특별히 더 감시하라고.”
황제의 시종장 드라칸.
그리고 제국의 정보조직 블랙 문의 수장이자 암살자인 드라칸.
그를 떠올리며 내가 명령을 내리자 칼론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물러났다.
나의 명령을 바로 수행하기 위해 걸음을 옮긴 것이다.
“왕비 마마. 어머니가 기다리시니 함께 가시겠습니까?”
“직접 안내해주는 것인가요?”
가만히 물러서서 짐짓 모르는 척하고 있던 코르와 엘로나.
그런 둘을 보며 내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자 코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힐끔 엘로나를 보았다.
“안 하면 혼날 것 같아서요.”
“호호. 고마워요 황태자.”
나의 대답에 코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고 나 또한 마주 고개를 숙였다.
* * *
대공가의 손님이 머무는 저택.
에스란은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저택 앞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산책로, 그리고 그곳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종들, 그리고 시녀들.
대공가에서 일하고 있는 사용인들은 황궁에서 파견된 시종과 시녀들이다.
즉 하위 귀족이나 몰락 귀족가의 자제들이다.
그들은 젊은 시절 시종과 시녀로 일하며 인맥을 넓히고, 약 5년 정도 근무 후 황궁에서 나오는 추천장으로 어디든 들어갈 수가 있다.
즉 엄청 뛰어난 엘리트들이라는 뜻이다.
그런 엘리트들도 아직은 청춘이고 피 끓는 나이다.
“하찮은 것들.”
산책로 구석구석에 보이는 남녀.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 마주 보는 남녀, 그리고 키스를 나누며 사랑을 확인하는 남녀들.
에스란은 자신의 눈에 훤히 보이는 시종들과 시녀들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차가운 말투와 달리 에스란의 두 눈은 따뜻했다.
-츤데레냐?-
“하아…… 왜 온 거지?”
그것도 잠시.
뒤에서 들려오는 가벼운 목소리에 에스란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자신이 모시는 용신이자 마신의 아들인 존재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