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화
제71편 얼레리 꼴레리!
그때.
나의 귀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묵묵히 걷는 칼론의 앞에서 나를 부르며 반갑게 달려온 위즐리.
녀석은 로리와 함께 있는 실을 보며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싸가지없는 놈아. 인사는 고개를 숙여 하는 것이다.”
“응? 오늘 왜 이렇게 얌전?”
그런 위즐리를 보며 차갑게 대답한 실.
평소와는 다른 실의 말투에 위즐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하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그런 위즐리의 눈빛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실을 바라보았다.
‘말하면 죽어.’
로리에게 보이지 않게 입 모양으로 나에게 경고를 하는 실.
그런 실의 모습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실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위즐리, 칼론 인사해라. 우리 숙모님 되실 분이다.”
“이 새X가!”
헤헤.
너무 재밌다.
“당신. 참아요.”
분노하며 달려들려는 실을 막아선 로리.
그녀의 만류에 실은 거짓말처럼 당장에라도 나에게 달려들 것 같던 행동을 멈추었고 칼론과 위즐리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저 미치광이 실을 막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 집안 남자는 다 자신의 여자한테 약한 것 같았다.
“황태자 전하에게 화내지 마요.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주신 분인데요.”
“저 녀석이 얼마나 싸가지없는 새…….”
“말 이쁘게.”
“녀석인지 아시오?”
격분하며 언성을 높이던 실.
나직한 로리의 한마디에 바로 말투를 고쳤고 나와 위즐리 그리고 칼론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아…… 파울로랑 할버드가 봤다면 박장대소를 터뜨렸을 텐데……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렇다고 어른이 이렇게 화를 내면 안 되지요.”
“그렇습니다, 숙부님. 진정하시지요.”
로리의 말에 내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로리의 뒤에서 말했고 실은 그런 나를 노려보았다.
훗. 어쩌게? 한 대 치게?
내가 한껏 띠꺼운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자 실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고 위즐리와 칼론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의 뒤에 섰다.
“그래요. 공작님. 어른이 참아요.”
“스승님. 사모님 앞입니다.”
그러고는 나를 도왔다.
깐족거리는 위즐리.
그리고 묵직하게 놀리는 칼론의 모습에 실은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거 이러다가 저 양반 폭발할 것 같으니 그만둬야 할 것 같았다.
“그래. 아까 인사 못 해서 미안해요. 이 사람의 제자이신 거죠?”
칼론의 농담에 로리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환한 미소로 칼론에게 다가왔고 칼론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사모님께 인사드립니다. 황태자 전하의 호위기사. 칼론 루드비히입니다.”
짜식. 이제 자신의 성을 당당하게 대답하는구나.
아주 보기 좋았다.
“반가워요. 이 사람에게 배운다고 고생했죠?”
“아닙니다.”
칼론의 대답에 로리는 마치 아들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칼론을 격려했고 칼론은 싫지 않은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마워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입니다. 주군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저는 항상 스승님을 모실 것입니다.”
로리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생각을 밝힌 칼론.
진심이 느껴지는 칼론의 대답에 나는 물론 위즐리, 그리고 실 또한 살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저렇게 실을 생각하고 있는 줄 몰랐던 것이다.
누가 보면 내가 아니라 저 녀석이 조카인 줄 알겠다.
“고마워요.”
칼론의 진심에 로리는 칼론의 두 손을 잡으며 감사인사를 전했고 칼론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삼촌.”
“뭐 이 새…… 왜.”
나의 부름에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던 실은 로리의 눈치를 살피더니 나의 부름에 대답했고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풋풋한 노총각을 바라보았다.
“로리 님 황궁 안내를 해드릴 예정인데…… 대신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북쪽의 손님을 맞이하러 가야 하여…….”
하이아칸 왕국 사절단의 방문.
솔직하게 황태자인 내가 마중 나갈 필요는 없지만 그 이유를 들며 실에게 부탁했고 실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래도 주위 시선이 신경 쓰이나 보다.
“삼촌. 진짜 후회할 행동 하지 마요.”
그런 실의 모습에 나는 인상을 굳히고는 낮은 목소리로 조언했다.
임무 성공이고 뭐고. 저 멍청한 노총각이 저 좋은 여자를 놓치는 것이 안타까워 진심을 담아 조언한 것이다.
나의 말투에 실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한번 바라보고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가봐.”
“감사합니다.”
하여간 결국 수락할 거면서.
퉁명스레 대답하는 실에게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한번 숙여 보인 다음 위즐리와 칼론을 바라보았다.
“가자.”
“예.”
“쩝.”
나의 말에 칼론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고 위즐리는 실을 바라보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저 자식이!”
그런 위즐리의 모습에 실이 주먹을 올려 보였고 위즐리는 배시시 웃으며 나의 뒤로 숨었다.
“로리 님. 숙부님이 저보다 더 황궁을 잘 안내해드릴 것입니다.”
“황제 폐하의 명령인데…… 이렇게 어겨도 되나요?”
나의 말에 로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확실히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괜찮다.
“폐하도 이러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 양반이 누구보다도 잘 되기를 기원하는 사람이거든요.
나의 확신 어린 대답에 로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그 둘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은 다음 물러났다.
즐거운 데이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 * *
“좋은 영혼을 가지고 있어요.”
“저 녀석이?”
단둘만이 남게 된 실과 로리.
멀어지는 요한의 뒷모습을 보며 로리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하자 실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로리를 바라보았다.
저 망할 놈이 좋은 영혼이라니?
그럼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얼마나 엄청난 영혼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어머니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저런 영혼을 가진 이와 적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
엘프들의 어머니 세계수.
판게아 대륙을 지탱하는 신목(神木)이다.
그런 세계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뿐이다.
자연의 축복을 받았으며 세계수의 사랑을 받은 가장 순수한 영혼 하이 엘프가 바로 그 존재이다.
그만큼 세계수의 목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그리고 세계수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대륙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세계수다.
그의 의지를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아. 물론 엘프 중에서 말이다.
하지만 소수의 인간들 또한 알고 있다.
세계수의 한마디가 가지는 엄청난 힘을 말이다.
아무튼 그런 그녀의 말에 실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이제는 사라진 요한의 뒷모습을 쫓았다.
저 망할 놈이 세계수가 인정한 존재라는 것이 상당히 낯설었던 것이다.
“주위에 좋은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개뿔.”
그런 실의 모습에 로리는 싱긋 웃으며 말했고 그에 실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실의 모습에 로리는 다 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스윽.
움찔.
그러고는 실의 팔에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왜…… 왜 이래?”
갑작스럽게 적극적인 로리의 행동에 실이 그답지 않게 말을 더듬으며 물었고 로리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런 실을 바라보았다.
“황태자가 그러던걸요? 내가 연상이라니까 연상이 리드를 해야 한다고. 실같이 강한 남자는 오히려 그런 여인에게 약하다고.”
“그걸 믿나?”
“좋아하고 있잖아요.”
“…….”
돌아온 로리의 대답에 실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좋은 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 * *
“이 녀석이냐?”
대공가에 마련된 손님들의 저택 중 가장 화려한 저택.
그곳의 현 주인인 에스란 후작은 자신의 앞에 포박된 채 무릎 꿇고 있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에스란의 물음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다크엘프 린과 렌.
자신의 가디언이자 쌍둥이 형제인 그 둘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인 에스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사내의 앞으로 걸어갔다.
“너 뭐냐?”
“너야말로 뭐지?”
에스란의 물음에 오히려 되묻는 사내.
그런 사내의 모습에 에스란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우웅!
“네놈이 미쳤구나.”
그와 동시에 에스란의 몸에서 믿을 수 없는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에스란의 기세에 그대로 노출된 사내는 두려움에 온몸을 떨면서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에스란의 모습 뒤로 거대한 골드 드래곤이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환상이 보였기 때문이다.
“대답해라. 너는 누구냐.”
부들부들.
쿠웅!
“오스란 왕국의 정보조직 블랙 스콜피온의 1 조장이라고 합니다!”
이어진 에스란의 명령에 사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이마를 바닥에 처박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오스란의 개가 왜 코피아를 조사하는 거지?”
사내의 소개에 에스란이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사내는 갈등을 하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크어억!”
그런 사내의 모습에 에스란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사내는 괴로워하며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몸을 압박하던 무형의 기운이 갑작스럽게 강해져 괴로웠던 것이다.
“죽여.”
푸욱.
차가운 에스란의 명령에 린은 망설임 없이 검을 소환해 사내의 심장을 찔렀다.
린의 검에 목숨을 잃은 사내.
린이 검을 뽑자 렌이 손을 가볍게 휘저었고 이내 피를 흘리던 사내의 시체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조사해.”
“명을 받드나이다.”
그런 둘을 보며 에스란은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고 쌍둥이 형제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의 주인이자 위대한 존재의 명령이다.
어찌 그들이 의문을 가지겠는가?
잠시 후.
린과 렌은 그림자처럼 사라졌고 에스란 후작은 걸음을 천천히 옮겨 창가에 섰다.
그러고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죽고 싶나 보군.”
인간에게 너무나도 정이 들어버린 골드 드래곤 에스란.
그가 몇백 년 만에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 * *
“오라버니!”
“황태자 전하라고 불러라.”
“그러면 우리 사이가 너무 멀어 보이잖아요.”
북부에서부터 함께해온 수하 두 명과 걸음을 옮기던 나는 나에게 다가오며 말을 거는 코피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이렇게 말괄량이 같은 성격이 아니라 여우 같은 아이였는데 왜 이렇게 변했을까?
“왜 왔냐.”
아마 저 녀석 때문이겠지.
나와 인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위즐리의 옆에 선 코피아와 그런 코피아를 보며 차가운 표정으로 틱틱거리는 위즐리.
그런 둘을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전생의 코피아보다는 현생의 코피아가 더 보기 좋은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위즐리 저 녀석도 솔직하지 못하군.-
모든 사람의 앞에서 아이인 척을 하며 알게 모르게 속 뒤집는 위즐리.
하지만 유일하게 코피아의 앞에서만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녀석의 모습에 크산느가 귀엽다는 목소리로 말했고 나 또한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
“왜?”
“우리 어디 가는 겁니까?”
“엘로나 마중.”
“알겠습니다.”
칼론의 물음에 내가 짧게 대답하자 칼론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