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화
제70편 실의 그녀……?(3)
“와 목소리도 이쁘시네요.”
“무엄하오.”
“엇. 죄송.”
그때, 로리의 목소리에 감탄한 위즐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가만히 있던 위로로가 인상을 찌푸리며 위즐리에게 경고했다.
그런 위로로의 경고에 위즐리는 양손을 들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사과를 했고 그제야 위로로는 다시 뒤로 물러섰다.
“헤에. 누나가 밀리언 왕국의 이거네요.”
“네 이놈!”
“어휴…….”
저 미친놈.
엘프들의 여왕. 세계수의 아이 하이엘프에게 누나라고 칭하다니.
그것도 로리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던 놈이 새삼스레 엄지손가락은 왜 치켜세운단 말인가?
친근하지만 무례한 위즐리의 언행에 위로로가 격분하며 레이피어를 뽑아 들었다.
“꺄악!”
갑작스럽게 무기를 뽑아 든 위로로의 행동에 주변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백성들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아…… 이 건방진 엘프가 어디서 검을 뽑아?
“넣어.”
“뭐요?”
“넣으라고. 우리 백성들이 무서워하잖아.”
우웅!
나의 차가운 말에 분노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던 위로로.
이어진 나의 말과 동시에 나의 몸에서 뿜어지는 위엄에 위로로는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아차 한 표정을 지었다.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거두세요.”
“…….”
갈팡질팡하며 당황하던 위로로는 로리의 명령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레이피어를 다시 거두었다.
아무래도 로리가 명령을 내릴 때까지 기다린 듯하다.
아휴 찌질이. 자존심만 세 가지고.
“사과해.”
“미안합니다.”
위로로가 레이피어를 거두고, 내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위즐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로리에게 사과를 건넸다.
“아니요. 괜찮아요.”
위즐리의 사과에 로리는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이내 로브를 벗었다.
“!!!”
“와아…….”
그러자 밝아진 팔센의 한 거리.
로브를 벗자 마치 후광이 비치는 듯한 아름다운 외모가 드러났고 백성들은 물론 위즐리와 코피아 또한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연두색의 머리와 보라색의 두 눈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으며 새하얀 피부와 완벽한 이목구비는 성스러워 보였다.
역시, 엘프다웠다.
“와. 엄마 귀!”
“쉿!”
그때, 백성들의 사이에서 한 아이가 로리의 귀를 가리켰고 화들짝 놀란 아이 엄마가 아이의 일을 막았다.
“훗.”
엄마의 손에 의해 말을 못하게 된 아이.
로리는 그런 아이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주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다음 말에서 내렸다.
“안내 부탁드려도 될까요?”
“예. 하이엘프 로리 님.”
웃으며 말을 건넨 로리.
그에 나 또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안내했다.
그렇게 오슬란 왕국과 밀리언 왕국의 사절단은 제국의 황성에 들어설 수 있었다.
* * *
“좋은 말 할 때 가라.”
“아~ 놀아줘. 나 심심하단 말이야.”
제국의 수도 팔센의 한 저택가.
제국의 대공인 보스는 수도에 들렀을 때 기거하는 저택에서 업무를 보는 도중 자신의 앞에서 얼쩡거리는 동생 놈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한데 이 미친놈은 술에라도 취한 양 발광을 하며 칭얼대고 있었다.
이 녀석이 왜 이러는 것일까?
탁.
그에 짜증이 난 보스는 신경질적으로 펜을 내려놓고는 안경을 벗었다.
“연두색?”
움찔.
“귀?”
움찔움찔.
보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반응하는 실.
그런 동생의 모습에 보스는 한숨을 내쉬고는 한심한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냥 가서 고백해.”
“…….”
“어차피 그녀도 너를 좋아하잖아?”
“그녀는 엘프들의 여왕이야.”
보스의 말에 실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근처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실의 말이 같잖은 변명으로 들린 보스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펜을 집어 들었다.
“형.”
“왜.”
“형수 처음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
“너…… 진짜 백수냐?”
하다 하다 자신의 러브스토리까지 묻는 노총각 동생 실.
그런 실을 보며 보스가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실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 요한이가 마중 나갔다.”
멈칫.
“뭐……?”
“형님이 요한에게 너와 그녀의 관계를 얘기했다. 도와달라고 했다더군.”
“이런 제길!”
보스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실.
보스는 그런 동생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 너한테 원한 많지 않냐?”
보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1시간이나 심심하다며 칭얼대던 동생은 사라져 있었다.
“크크. 요한아. 부디 엄청 괴롭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라진 동생의 빈자리를 보며 오랜만에 소리 내 웃는 보스였다.
* * *
황성에 도착 후 황제와 인사를 나누고 자신에게 배정된 방에 들어선 시우는 근처 소파에 털썩 앉았다.
소파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시우가 돌연 입을 열었다.
“알아봤나?”
스르륵.
시우의 말이 끝나자 전신을 검은색 옷으로 뒤덮은 한 사내가 나타나더니 이내 시우의 앞에 부복했다.
“대륙의 현자. 에스란 후작의 손녀입니다. 올해 17세로 평범한 영애들과 달리 무예를 수련하였으며, 꽤 괜찮은 재능을 지니고 있어 웬만한 수련 기사들과 비슷한 무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시우는 자신의 명령대로 최대한 자세하게 조사해온 수하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하의 보고를 들으니 아무래도 자신이 혼자 착각한 듯하다.
‘나도 늙었군.’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웃겼던 시우는 피식 웃고는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자신의 앞에 부복하고 있는 수하에게 축객령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수하는 물러나지 않았고 시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런 수하를 내려다보았다.
“뭐냐?”
평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수하의 모습에 시우는 화가 나는 것보다 의문감을 더욱 크게 느꼈다.
평소에는 안 하던 행동을 했던 수하는 시우의 물음에 그제야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필요한 정보인지는 모르지만…… 에스란 후작가의 친손녀가 아니라고 합니다.”
“뭐라!”
“송구합니다!”
수하의 보고에 시우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언성을 높였고 그에 당황한 수하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수하는 잘 알았다.
평소에는 호탕하게 웃으며 수하들과 격 없이 지냈지만 그의 심기가 불편하면 아무리 친한 수하라도 용서치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수하는 밉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시우는 그런 수하를 내려다보았다.
“더 알아오도록.”
“네. 모든 것을 다 알아오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알겠나?”
“존명!”
차가운 시우의 목소리에 수하는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다시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수하가 사라지고 넓은 방에 홀로 남게 된 시우.
그가 테이블 위에 마련된 술병을 들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아니겠지.”
* * *
“오랜만이오.”
“예 황제 폐하. 잘 지내셨지요?”
황제의 응접실.
나는 나의 양옆에서 서로 미소를 지으며 안부 인사를 건네는 두 명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명은 엘프들을 굴복시키고 종족전쟁에 승리한 인간들의 군주이며 한 명은 그런 인간들에게 굴복당해 증오하는 엘프 왕국의 여왕이었다.
분명 서로 으르렁 가려야 하는 원수지간인데 왜 이리 사이가 좋단 말인가?
“황태자가 안내는 잘 해주었는지 걱정이군.”
“아주 잘해주셨습니다. 중간중간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셨지요.”
황제의 물음에 여왕, 로리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 여자. 우리 삼촌에게는 아까울 정도로 착하고 아름답다.
“호오. 그렇소?”
“네. 그의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해주시던걸요? 그와 아주 친한 것 같더라구요.”
“아닙니다.”
흥미로운 황제의 물음에 웃으며 대답한 로리.
그녀의 대답에 내가 정색을 하며 부정했지만 그녀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마치 나는 다 알고 있으니 괜찮아 하는 눈빛 같다.
“그 녀석은 만났소?”
“아직이요.”
“녀석. 레이디를 기다리게 하다니.”
로리의 대답에 황제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삼촌이 원래 그렇죠.”
“그를 아주 좋아하나 봐요.”
기다렸다는 듯 실을 디스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로리가 싱긋 미소를 지었고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조만간 싸울 것입니다.”
“어머. 역시 젊음이 좋네요. 꼭 이기길 바라요.”
“…….”
상식을 초월하는 대답에 나는 대화하기를 포기했다.
-새로운 캐릭터군.-
<삼촌에게 어울리는 여자야.>
-인정한다. 실을 잡아먹겠어.-
가만히 그런 로리를 지켜보던 크산느가 나에게 말을 건넸고 나는 싱긋 웃으며 마나로 대답했다.
그런 나의 대답에 크산느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 다음 미소를 짓고 있는 로리를 바라보았다.
-아이야.-
끼익.
“네. 위대한 존재시여.”
“!!”
크산느의 부름에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로리.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크산느의 목소리를 그녀가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신기하군.”
그리고 황제 또한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크산느가 항상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보이지 않아 늘 그분도 같이 계시냐며 물어보던 황제다.
한데 자신도 보지 못하는 크산느를 엘프인 로리가 볼 수 있으니 흥미로웠나 보다.
-이 녀석이 도와줄 것이니 그 녀석과 잘 해보거라.-
“!!!”
생각지 못한 말을 들어서일까?
크산느의 말에 로리가 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들어 크산느를 바라보았다.
“정말인가요?”
그러고는 눈을 내려 나를 바라보았다.
로리의 물음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로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실이 좋을까…….
되게 우렁차게 감사인사를 전하는 로리였다.
“요한.”
“예 폐하.”
로리의 감사인사에 마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황제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황궁을 직접 구경시켜 드리거라.”
“알겠습니다.”
황제의 말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인 다음 로리를 바라보았다.
“가시죠?”
멀리서 느껴지는 실의 기운.
그 기운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고 로리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황제에게 인사를 하고는 응접실을 나섰다.
응접실을 나서고 황제가 기거하고 있는 본궁을 나서자 보이는 한 사내.
“실!”
궁의 기둥에 삐딱하게 기대어 서 있는 흑발의 미청년.
바로 나의 숙부이자 엘프 여왕의 그. 실이었다.
실을 발견한 로리는 환하게 웃으며 실에게 달려갔고 실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로리를 바라보았다.
“잘 지냈어?”
“푸훕!”
저 미친 인간!
저 미쳐 날뛰는 인간이 쑥스러워하며 보통사람처럼 인사를 건네다니!
그 경악스러운 모습에 나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지만 입술 사이로 웃음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찌릿.
그런 나의 웃음에 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부들부들.
저 인간.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차마 주먹을 휘두를 수 없나 보다.
원래라면 주먹이 날아왔어야 할 이 상황에서 저 인간이 몸을 부르르 떨며 참고 있으니 너무나도 신선하고 재밌었다.
아 이 짜릿한 상황 너무나도 좋다.
“형아! 어! 공작님 오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