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화
제69편 실의 그녀……?(2)
“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금방이라도 서로에게 달려들 기세였던 시우와 위로로의 귀에 들리는 듣기 좋은 음성.
시우와 위로로는 자신들의 시야 한가운데.
한 사내가 여유로운 걸음으로 걸어 나오며 말리자 시우와 위로로는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얼굴을 찌푸렸다.
“무기 내리십시오.”
검은 머리가 너무나도 인상적인 한 사내.
붉은 눈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으며 큰 키와 함께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에 시우와 위로로는 자신도 모르게 무기를 내렸다.
각 왕국의 이인자들이 오늘 처음 보는 사내의 명령을 듣고 만 것이다.
“반갑습니다. 황태자 요한 카르미언 듀크입니다.”
그런 둘을 보며 차가운 표정을 짓던 사내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고 그와 동시에 시우와 위로로는 말에서 내렸다.
자신들을 만류했던 사내.
북방의 야만족을 굴복시킨 영웅담으로 대륙을 진동시키고 제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영웅, 15세의 나이에 소드 마스터였던 대역죄인, 더 패론 후작을 죽인 대륙의 천재, 범죄조직 카르텔을 청소한 백성들의 영웅. 바로 제국의 황태자 요한이었던 것이다.
* * *
시뮬레이션 완료를 위해 밀리언 왕국의 사절단을 마중 나온 나는 뜻하지 않게 재미있는 상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오스란 왕국의 이인자 시우와 밀리언 왕국의 이인자 위로로가 금방이라도 싸울 듯한 분위기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안 말리십니까?”
그런 둘을 보며 내가 흥미로운 미소를 짓자 뒤에 있던 칼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그런 칼론의 물음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기다리는 중.”
“네?”
나의 대답에 칼론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지금이구나.”
기운을 끌어올리며 당장에라도 달려나가려는 시우와 위로로.
그런 둘의 모습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그들의 앞으로 나섰다.
저벅저벅.
“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조용히 걸음을 옮겨 그들의 사이에 멈춰 선 나.
그와 동시에 나의 몸속에 잠들어있는 마나와 위엄을 끌어 올렸다.
차가운 나의 목소리가 산을 울렸고 그에 시우와 위로로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훗. 갑작스럽게 어마무시한 미남자가 등장했으니 당황스러울 만하지.
그런 둘의 표정에 마음속으로 살짝 웃은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겉으로는 차가운 표정을 유지한 채 말이다.
“무기 내리십시오.”
정중하면서도 위엄 어린 나의 모습.
-제법.-
그런 나의 모습에 크산느가 살짝 감탄했다.
나의 명령에 위로로와 시우는 무기를 내렸고 말 잘 듣는 그들을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황태자 요한 카르미언 듀크입니다.”
나의 인사와 동시에 말에서 내리는 시우와 위로로.
그런 둘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역시, 현재 나의 위치는 전생과 너무나도 다르다.
저 자존심 높은 사막 왕국의 이인자와 엘프 왕국의 이인자가 나의 이름을 듣고 화들짝 놀라며 말에서 내리는 꼴은…… 정말 재미있었고 기분이 상당히 새로웠던 것이다.
아무튼 시우와 위로로는 당당하게 나의 앞으로 걸어오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오스란 왕국의 사절단 대표 시우 공작이 황태자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밀리언 왕국의 사절단 호위단장. 위로로가 황태자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마치 윗사람에게나 하는듯한 정중한 인사.
그 둘의 인사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그들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본국을 방문하신 오스란 왕국과 밀리언 왕국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딸깍.
나의 인사말과 동시에 뒤에 있던 순백색 마차의 문이 열렸고 칼론이 깜짝 놀라며 나의 앞에 섰다.
“물러나.”
하지만 이어진 나의 말에 칼론은 다시 나의 뒤로 물러났고 나는 열린 문 사이로 마차에서 내리는 여인을 보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륙에서 흑발만큼이나 보기 드문 연두색의 머리, 그리고 보석같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보라색의 눈을 지닌 한 여인.
그가 우아한 걸음으로 마차에서 내려 나에게 걸어오더니 이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이엘프 클로리터스입니다. 편하게 로리라고 불러주세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을 건넨 엘프들의 여왕 로리.
그녀의 말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숙였다.
“세계수의 딸. 하이엘프 로리 님을 환영합니다.”
드디어 만났다.
우리 노총각 삼촌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말이다.
그런 여인, 로리를 향해 나는 진심을 담아 그녀를 환영했다.
이제 실을 겁나 놀릴 일만 남았으니 어찌 그녀를 환영 안 할 수 있겠는가?
“황태자께서 직접 반겨주시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옥 굴러가듯 아름다운 목소리만큼이나 보기 좋은 화사한 미소.
로리의 말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숙부님이 부탁을 해주셔서 직접 나왔습니다.”
멈칫.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멈칫한 로리.
그러더니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인가요?”
아…….
젠장. 짝사랑은 아닌가 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되묻는 로리의 모습에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안타까움에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자존심 센 양반의 짝사랑이었다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너무나도 아쉬웠다.
“네 정말입니다.”
아무튼 나는 아쉬운 표정을 애써 숨기며 대답했고 그에 로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왠지 이 여인이 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두 왕국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제가 안내해드려도 되겠습니까.”
로리에게서 눈을 돌린 내가 시우와 위로로를 번갈아 보며 묻자 둘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뭐해?”
“또 왔냐?”
제국의 수도, 팔센의 한 빈민가.
노인을 향해 침을 놓던 위즐리는 자신의 옆에서 얼쩡거리는 코피아를 보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좋으면서.”
그런 위즐리를 보며 코피아는 살짝 눈을 흘기고는 그의 옆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귀하신 분들을 이런 누추한 곳까지.”
“할배 조용히 하라 했지?”
코피아의 물음에 누워서 침을 맞던 노인이 황공하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위즐리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노인에게 말했다.
“에구구…… 미안합니다.”
위즐리의 그런 말에 노인은 사과를 했고 위즐리는 다시 침을 놓는 것에 집중했다.
“…….”
그리고 코피아는 아무 말 없이 그런 위즐리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올해 17살이 된 위즐리.
그는 소년의 티를 벗고 이제 갓 청년의 든든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큰 키에 조금은 넓어진 어깨, 하지만 여전히 상쾌한 하늘색의 머리와 눈.
그리고 은은한 미소.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힐링이 되는 외모다.
“왔으면 도와.”
코피아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위즐리가 무심한 말투로 말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코피아는 배시시 미소를 짓더니 이내 위즐리가 뽑은 침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소꿉놀이하는 것 같아.”
“헛소리.”
위즐리가 뽑은 침을 받아 들어 뜨거운 물에 담가 잠시 기다린 다음 깨끗한 천으로 닦으며 통에 집어넣는 코피아.
그가 지나가듯이 말하자 위즐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칼 같은 위즐리의 대답에 코피아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위즐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환자. 노인에게만 신경 쓰고 있었다.
잠시 후.
노인의 진찰을 끝내고 급한 환자들의 진찰을 끝낸 위즐리는 피곤한 듯 어깨를 돌리며 빈민가를 벗어났다.
“밥 먹고 들어가자.”
“피곤해.”
“이씨…….”
그런 위즐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던 코피아.
그녀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위즐리를 보며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형아!”
그때.
피곤한 표정을 짓던 위즐리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양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뭐 하냐?”
바로 밀리언 왕국과 오스란 왕국의 안내를 하고 있던 요한이었다.
“씨…….”
그리고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낀 코피아였다.
* * *
팔센에 들어선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한 미청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는 청량함을 지닌 위즐리의 인사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시우와 위로로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뭐하냐?”
“잠깐 볼일 좀 봤어.”
나의 물음에 위즐리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다음 나의 뒤에 있는 사절단들을 힐끔 바라보았다.
“오스란 왕국과 밀리언 왕국의 사절단들.”
“호오…… 그런 저 로브 뒤집어쓴 자들이……?”
“그래 엘프다.”
백성들의 시선을 의식해 로브를 뒤집어쓴 밀리언 왕국의 사절단.
그들을 보며 위즐리가 묻자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둘이 요즘 너무 붙어 다닌다?”
최근 항상 붙어 다니는 위즐리와 코피아를 보며 내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맞아! 쟤네 둘이 수상하다!-
나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머리에 앉아 있던 크산느가 파닥거렸고 나는 얼굴이 살짝 붉어진 코피아를 보고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이야.”
하지만 이어진 위즐리의 말에 얼굴을 붉히던 코피아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위즐리가 칼처럼 딱! 잘라내 버린 것이다.
그런 위즐리의 모습에 나와 크산느는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휴 저 등신.
다른 사람 일에는 말도 안 되게 눈치가 빠르면서 자기 일에는 왜 저렇게 눈치가 없단 말인가? 칼론보다 더한 놈인 것 같다.
“어디 갈 거야?”
“형한테 놀러 가려고 했어.”
나의 물음에 위즐리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옆에 있던 코피아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런 위즐리를 노려보았다.
쟤 왜 저러지?
아무튼 위즐리의 대답에 나는 잘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같이 가자. 사절단들과 인사도 나누고.”
“응!”
나의 제안에 위즐리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고 코피아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위즐리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처음 뵙겠습니다. 해밍턴 백작가의 위즐리입니다.”
나와 함께 사절단의 앞으로 걸어온 위즐리와 코피아.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시우와 위로로 그리고 로리에게 위즐리가 고개를 숙이자 위로로 또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에스란 후작가의 코피아입니다. 한데……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위즐리의 뒤를 이어 자신을 소개한 코피아.
그녀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우를 보며 묻자 시우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치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말이다.
“왜 그러십니까?”
그런 시우를 보며 나 또한 궁금하다는 듯 묻자 시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를 보니 감탄을 했습니다. 반갑네. 시우 공작이네.”
나의 물음에 시우가 어색하게 대답하고는 위즐리와 코피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반가워요.”
시우의 말에 기분이 좋았을까?
코피아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움찔.
그런 코피아의 모습에 다시 움찔한 시우.
나는 그런 시우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황태자 전하.”
“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리.
그녀가 나를 부르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도 걸어가도 되나요?”
마차에서 내려 말을 타고 움직이던 로리.
그녀가 갑작스럽게 부탁을 하자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활력 넘치는 팔센의 모습을 조금 더 보고 싶어서 그래요.”
놀란 나의 귀에 다시 들려오는 로리의 목소리.
진심이 담긴 로리의 목소리에 나는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