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화
제64편 황태자의 첫 행보(2)
“미치겠습니다.”
제국의 주인인 황제가 업무를 보는 집무실.
그곳에 있는 최고급 소파에 앉은 금발의 중년인이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말하자 상석의 소파에 앉아 있던 흑발의 사내, 제국의 주인이자 만인지상의 존재 황제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를 닮아 이렇게 완벽하게 일 처리를 하는지…….”
“사로잡은 쓰레기들 중, 오스란 왕국, 하이아칸 왕국의 귀족들도 있습니다.”
요한의 명령으로 사로잡은 귀족들.
코피아의 전언으로 황태자 요한이 돌아올 때까지 잠시 뇌옥에 가둔 쓰레기들은 대략 50명이 넘어갔다.
그중 제국의 귀족이 아닌 타국의 귀족들 또한 존재했기에 금발의 사내, 제국의 2 공작 중 한 명이자 제국의 재상인 리프크네 공작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공작의 모습에 황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리프크네 공작을 바라보았다.
“문제 있나?”
“아니요. 문제는 없습니다.”
황제의 물음에 리프크네 공작, 재상은 싱긋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의 주인이라 불리는 황제이다.
그리고 이곳은 그런 황제가 지배하는 제국이다.
무엇이 두려워 눈치를 본다는 말인가?
“황태자 전하는 어디 가신 것입니까?”
카르텔의 간부들은 물론, 더러운 귀족들까지 사로잡은 공을 세운 황태자 요한.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만을 전하고 사라진 요한의 행방을 재상이 묻자 황제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쩝.”
그런 황제의 모습에 재상은 입맛을 다시고는 다시 커피잔을 들었다.
황제에게 대답 듣기를 포기한 것이다.
“자네, 레헤튼이라는 자를 아는가?”
“압니다.”
황제의 물음에 커피잔을 내려놓은 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황제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물었던 질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카데미 행정학부 수석, 아카데미 창립 이후 가장 뛰어난 성적을 내보인 학생입니다. 졸업 후 양자로 들일 생각이었습니다.”
“호오?”
재상의 대답에 황제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정 없는 인간, 리프크네 재상이 한 사내가 마음에 들어 양자로 들인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던 것이다.
황제의 눈빛을 느꼈는지 재상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다음 재상은 키워야지요.”
“재미있군. 안 그래도 요한이 그 녀석을 거두어들이려고 하네.”
“이야기가 빨라지겠군요. 한데 그 학생을 폐하께서는 어찌 알고 계십니까?”
황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재상이 이내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재상의 물음에 살짝 미소를 지은 황제.
그가 재상의 두 눈을 바라보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카르텔의 수장, 라덴의 아들이거든.”
“!!!”
* * *
“…….”
“왜 온 것이냐?”
제국 황성의 뇌옥.
황제의 배려로 인해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나게 된 레헤튼.
그는 철창 너머로 보이는 라덴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진 라덴은 일부러 차가운 표정으로 레헤튼에게 말했고 레헤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아버지, 라덴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왜, 왜 저를 이렇게 키우신 것입니까?”
“너는 나처럼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레헤튼의 물음에 얼굴을 살짝 굳힌 라덴.
그가 차마 레헤튼의 두 눈을 마주 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고 그에 레헤튼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지금 제 심정이 어떤 줄 아십니까?”
“나는 너의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
자신의 말에 라덴이 차갑게 딱 잘라 대답하자 레헤튼은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태어나서 기억이 있을 때부터 자신은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존경했다.
그런 아버지가 자신과의 인연을 부정하고 있었다.
이것은 이것대로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가?
“나는 제국의 범죄조직 카르텔의 수장 라덴이다. 너와는 상관없는 존재이다. 그러니 당당하게 살아라.”
“누가 뭐라 해도 저는, 수많은 인간들을 괴롭힌 악마 라덴의 아들 레헤튼입니다.”
“레헤튼!”
두 눈을 똑바로 보며 대답하는 레헤튼의 모습에 라덴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레헤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레헤튼의 두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욕을 먹을 것입니다.”
“…….”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은 아버지의 손에 의해 인생이 망한 인간들의 고통, 괴로움, 슬픔 덕분입니다. 그런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너무 부끄럽지 않습니까?”
“너는 죄가 없다. 모든 죄는 내가 안고 갈 것이야.”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이상. 저 또한 공범입니다. 저는 산속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인생을 조용히 보낼 것입니다.”
“레헤튼!”
레헤튼의 향후 계획을 들은 라덴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레헤튼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인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레헤튼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공부를 했는지 말이다.
한데 그 꿈을 펼치지 못하고 산속에 들어가 살겠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저는 이미 마음을 정했습니다.”
“레헤튼…….”
자신의 꿈을 포기한 20살의 청년.
그런 아들의 모습에 라덴은 절망했다.
자신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인생을 포기하고 모든 것과 같았던 꿈을 포기했다.
정말 아비로서 최악이지 않은가?
“정말…… 정말 미안하다.”
“…….”
라덴의 사과에 레헤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끼익.
“그것 좀 곤란하겠군.”
그때, 굳게 닫혀있던 밀실의 문이 열리고 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자 라덴은 물론 레헤튼 또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중년 사내를 바라보았다.
화려한 금발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미중년인.
바로 제국의 재상이자 제국의 이 공작 중 한 명인 리프크네 공작이었다.
“재상님을 뵙습니다.”
“!!”
자신의 롤 모델과 같았던 리프크네 공작.
그의 등장에 화들짝 놀랐던 레헤튼은 서둘러 예를 갖추며 고개를 숙였고 라덴은 놀란 표정으로 그런 리프크네 공작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라덴인가?”
그런 라덴을 보며 묻는 리프크네 공작.
그에 라덴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자네는 수만 명의 인생을 망친 악마이네. 아는가?”
“…….”
정곡을 찌르는 리프크네 공작의 물음에 라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더욱더 깊이 숙일 뿐이었다.
자신 또한 자신이 한 행동이 경멸스러웠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앞에서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네는 그 악마의 아들이네.”
“맞습니다.”
고개를 돌린 리프크네 공작이 이번에는 레헤튼을 바라보며 묻자 레헤튼은 자조적인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닮고 싶었던 리프크네 공작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상당히 괴로웠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인 것을.
“그러니 자네는 더더욱 산속으로 들어가면 아니 될 것이네.”
“……?”
갑작스레 말하는 리프크네 공작의 말에 레헤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까지 악마의 아들이라 경멸하던 그가 갑자기 사라지겠다는 자신을 말리다니?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그대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 그대의 아버지 때문에 괴로워한 사람들의 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네.”
“…….”
“그대는 황태자 전하를 도와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지. 그것이 자네가 속죄하는 방법이네.”
“재상님…….”
생각지 못한 리프크네 공작의 말에 레헤튼은 살짝 감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경멸 어린 시선과 함께 자신을 혐오할 것이라 생각했던 리프크네 공작.
그가 자신을 위로하며 세상에 나오라고 격려를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 전에, 자네의 아버지는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하겠지.”
“…….”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어진 공작의 말에 레헤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은 옆에서 들렸다.
어느새 고개를 든 라덴이 맑은 눈빛으로 리프크네 공작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지가 찢겨 죽던, 몬스터의 밥이 되던. 저는 그렇게 죽겠습니다. 제발 제 아들의 앞날에 방해가 되지 않게만 해주십시오.”
“물론이네. 그대는 광장에 모인 백성들이 던지는 돌을 맞아 죽을 것이네. 그리고 자네의 시체는 몬스터들의 밥이 되겠지.”
“…….”
라덴의 말에 리프크네 공작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에 레헤튼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파왔다.
자신의 아버지가…… 형벌 중 가장 끔찍하다는…… 공개 투석형을 당한다는 것이다.
며칠이 걸리든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못하고 그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돌을 맞아야 하는 최악의 형벌.
기절도 할 수 없다. 기절을 하면 근처에 있던 병사가 물을 끼얹어 그의 정신을 깨울 테니 말이다.
그렇게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안식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 시체는 몬스터의 밥이 되어버린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 공작의 말에 레헤튼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지만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아버지, 철창 너머로 라덴이 따뜻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맙습니다. 재상님, 그리고 내 아들 레헤튼…… 사랑한다.”
“크흑.”
마지막 라덴의 말에 결국 레헤튼의 눈에서는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끄응…….”
-정신이 드냐?-
머리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
그 끔찍한 두통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두 눈을 떴다.
그러자 나의 귀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파닥파닥.
바로 파닥거리며 날고 있는 크산느의 목소리였다.
“어떻게 된 거야?”
인적이 드문 숲 속.
나무에 등을 기대어 앉은 내가 지끈거리는 골에 이마를 짚으며 묻자 크산느는 파닥거리며 날아와 나의 어깨에 앉았다.
-마나 부족으로 기절했다.-
“…….”
이어진 크산느의 간단한 설명에 얼마 전의 일을 회상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한 사내의 목이 말이다.
“기억이 없군.”
디위니타스 검술의 최종오의.
황제 군림이라는 초식을 사용하여 더 패론 후작의 목을 벤 이후 나의 기억은 없다.
그런 나의 말에 크산느는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잠시 내가 너의 몸을 빌려 이곳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기절하기에는 너무 쪽팔리잖아?-
피식.
어깨에서 날개를 파닥거리며 말하는 크산느.
그의 말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존X 고맙다.”
-그래.-
크산느의 말이 맞았기에 감사인사는 해야겠고, 그냥 하자니 자존심이 상해서 나는 삐딱하게 감사인사를 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산느는 기분이 좋은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크산느의 행동에 나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지금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 말이다.
멈칫.
아직 남아 있는 뒤처리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평소와 다른 기분에 멈칫했다.
분명 얼마 전에 겪은 어색하지만 괜스레 좋은 기분이다.
“상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