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화
제57편 범죄조직 카르텔(1)
“저기 봐.”
“꺅! 도련님이잖아! 돌아오셨구나!”
제국의 수도 팔센,
귀족이 아닌 부유한 상인들이 모여 산다는 저택가의 한 저택.
일을 하던 하녀들은 당당한 모습으로 걸음을 옮기는 한 청년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레헤튼.
이 저택 주인의 아들이자 똑똑하며 예의가 바르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공자.
사용인들에게 절대 반말을 하지 않고 존중하였으며 항상 미소를 지은 채 인사를 건네는 독특한 공자다,
심지어 사용인들의 힘든 사정을 들으면 그들을 이해해주고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공자 레헤튼은 이곳 하녀들과 하인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차지하고 있었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이 저택의 집사장이자 주인의 심복인 헬.
그가 저택가의 문 앞에서 멈춰 선 레헤튼의 앞에서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레헤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하는데 바쁘십니까?”
“다행히 지금은 쉬고 계십니다. 바로 찾아뵙겠습니까?”
“당연히 바로 인사를 드려야지요.”
헬의 물음에 레헤튼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그에 헬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앞장섰다.
“흰머리가 많이 느셨군요.”
저택의 주인, 아버지를 향해 걸어가는 길에 레헤튼이 뒤에서 보이는 헬의 흰머리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자 헬은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당연한 수순인 것을요.”
“오래 사셔야 합니다. 제가 좋은 찻잎을 구해왔으니 꾸준히 드세요. 혈액순환이 잘되게 도와준다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도련님. 주인님께 드리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레헤튼의 걱정 어린 말에 헬은 싱긋 웃으며 거절했다.
하지만 레헤튼은 자신의 선물을 거절하는 헬을 보고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럴 줄 알고 아버지 것도 헬 집사님 것도 사 왔습니다. 받아주세요.”
“허허 참…… 감사합니다, 도련님.”
웃으며 말을 하는 레헤튼의 모습에 헬은 허허 미소를 짓다가 이내 걸음을 멈추고는 레헤튼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 헬의 행동에 레헤튼 또한 마주 고개를 숙였고 고개를 든 둘은 이내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들아!”
그때,
레헤튼을 만나기 위해 방에서 기다리지 않고 직접 복도까지 마중 나온 저택 주인.
그가 멀리서 걸어오는 자신의 아들을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들에게 다가갔다.
와락.
그러고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부드럽게 안았다.
“아버지. 부끄럽습니다.”
자신을 보자마자 반겨주는 아버지의 모습에 레헤튼은 미소를 지으며 농담조로 말했고 저택의 주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제 아들을 놓아 주었다.
그러고는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카데미에서 수석을 차지했다고?”
“아버지가 도와주신 덕분에 성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주인의 말에 레헤튼은 겸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주인은 그런 아들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대륙에서 온갖 천재들이 다 모인다는 최고의 아카데미.
그곳 행정학부에서 수석을 차지한 아들을 보며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 줄 것 같아 너무나도 행복했다.
“참, 아버지.”
“왜 그러느냐?”
레헤튼의 부름에 주인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레헤튼은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카르텔이라는 조직을 아십니까?”
움찔.
저택의 주인, 아니 카르텔의 보스인 라덴은 제 아들의 입에서 카르텔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움찔했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아들을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들어 보았다.”
“사실…… 그 범죄조직을 없애기 위해 상인 가문의 자제들로 작은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멈칫.
“…….”
“!!!”
생각지 못한 레헤튼의 말.
그에 라덴의 얼굴은 굳어버렸고 옆에 서 있던 헬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위험하구나.”
가까스로 미소를 다시 지으며 라덴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하자 레헤튼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라, 인간처럼 살아라, 누구에게나 모범이 되는,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그런 사람이 되어라. 어린 시절 아버지가 항상 해주셨던 말씀입니다.”
“…….”
“저는 그것을 이제 지키려 합니다.”
“하아…….”
자신의 아들 레헤튼.
귀족가의 서자로 태어나 온갖 멸시와 무시를 당하고 더러운 일을 행하며 세력을 키워온 라덴.
자신의 자식만큼은 귀족가의 자제처럼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정체를 숨겨왔고 뛰어난 선생들을 붙여 교육해왔다.
자신의 아들을 위해 라덴 또한 아들의 앞에서 항상 미소를 지으며 사람 좋은 척을 했고 말이다.
그에 레헤튼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주 훌륭하게 자랐다.
아니, 너무나도 훌륭하게 자라서 이제는 자신을 위협한다.
이 묘한 상황에 라덴은 얼굴을 굳힌 채 한숨을 내쉬었고 레헤튼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 라덴을 바라보았다.
“어디 아프십니까?”
“아…… 아니다. 힘들지? 잠시 쉬었다가 같이 밥 먹자꾸나.”
“아닙니다. 아버지와 더 대화하겠습니다.”
라덴의 말에 레헤튼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라덴은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수많은 영혼들을 더럽힌 자신과는 달리 너무나도 맑은 아들을 보며 라덴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꾸나.”
아무렴 어떤가?
자신의 아들은 자신의 꿈을 이뤄줄 존재이다.
아들의 장래를 위해 죽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것은 없으리라.
* * *
“타핫!”
대공가 저택의 연무장.
나는 오랜만에 나의 저택 앞에 있는 연무장에서 겔루 칼립스를 휘두르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크산느.
녀석이 내심 그리운 목소리로 말하자 나는 진한 미소를 짓고는 겔루 칼립스를 내렸다.
푸욱.
그러고는 바닥에 꽂아 넣었고 이내 나의 전속 시녀, 레브가 가져다준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칼론이 잘해줘?”
“예…….”
“시녀 일 그만둬도 된다니까.”
나의 물음에 얼굴을 붉히던 레브.
이어진 나의 말에 레브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결혼하면 그만두겠습니다.”
“뭐…… 알아서 해.”
몰락귀족이지만 레브는 엄연한 귀족이다.
카르미언 대공가와 실 공작가는 황족이다.
거기에 근무하는 사용인들 중 여인들은 시녀라고 부르며 남자들은 시종이라 부른다.
다 황궁에서 지원 나오는 존재들이었다.
그들 모두가 하위 귀족이나 몰락귀족 출신이며 상당히 뛰어난 머리의, 교육을 아주 잘 받은 엘리트들이다.
평범한 부자의 하녀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뜻.
아무튼 레브는 엘리트다.
귀족가의 영애가 갖추어야 할 교양 모두가 일반적인 영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뜻이며 황궁의 시녀 출신이라면 모든 이들이 반길 정도로 뛰어난 스펙이다.
그에 칼론과 당장 혼인을 올려도 상관없지만 레브와 칼론은 아직 혼인 생각이 없어 보였고 나는 피식 웃고는 수건을 다시 레브에게 건넸다.
일단 지금은 나의 전속 시녀이니 말이다.
내가 건넨 수건을 레브는 조심스럽게 받아들였고 나는 고개를 돌려 멀뚱히 서 있는 칼론을 바라보았다.
“야.”
“예.”
나의 부름에 고개를 살짝 숙이며 절도있게 대답하는 칼론.
나는 그런 칼론을 보며 입을 열었다.
“위즐리는?”
“모르겠습니다.”
“아는 게 뭐냐.”
“…….”
당당히 모른다고 하는 칼론의 모습에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칼론은 송구하다는 듯 얼굴을 굳혔다.
아유, 재미없는 놈.
-정말 재미없다.-
나의 마음과 같은지 크산느가 파닥거리며 날아와 나의 머리에 앉으며 말했고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로나는?”
“대공비 마마와 함께 티타임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엄마. 엘로나 너무 괴롭히는 거 아니야?”
칼론의 대답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칼론은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대공비 마마께 인사드립니다.”
화들짝.
생각지 못한 칼론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이곳에 왔다고?
소드 마스터 급 암살자가 아닌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뒤를 돌아보니 역시, 우리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저 망할 놈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인상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다시 고개를 돌려 칼론을 노려보았고 칼론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레브, 나가 있어.”
“네. 얼굴에 상처만 없으면 상관없습니다.”
나의 명령에 레브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다음 물러났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은 채 칼론에게 다가갔다.
“그만해라.”
그때,
나는 갑작스럽게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과 함께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내게 기척을 숨긴 채 갑작스럽게 등장한 인물을 본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숙였다.
“건강해 보이시네요.”
“건방진 녀석. 인사를 하러 오지도 않고.”
“저는 황태자입니다. 예를 지켜 주십시오.”
“망할 놈.”
장난스러운 나의 말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입술을 삐죽이는 노인.
황태자인 나의 앞에서 유일하게 이런 행동이 가능한 존재.
바로 대마법사이자 나의 할아버지인 앤트 후작이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나의 뒤로 칼론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할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를 힐끔 보더니 이내 혀를 차기 시작했다.
“쯧쯧. 같은 손자인데 이리도 다를까.”
“그것이 제 매력이지요.”
혀를 차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 나의 모습이 얄미웠는지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지팡이를 내렸다.
지팡이를 내리는 할아버지를 보며 나는 끌어 올렸던 마나를 진정시켰다.
할아버지가 날리는 마법을 그대로 맞으면 죽어버리니 마나를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절대로.
“칼론. 루드비히 놈은 만났느냐?”
“네.”
할아버지의 물음에 칼론은 짧게 대답했고 할아버지는 그런 손자를 보며 살짝 혀를 찼다.
“딱딱한 놈.”
“할부지!”
그때.
저택가의 연무장을 울리는 또랑또랑한 목소리.
나의 동생, 케한이 할아버지를 부르며 쪼르르 달려오자 할아버지는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환한 미소로 케한을 안아 들었다.
“어이구 우리 손주. 할부지 보고 싶었어요?”
“웅! 할부지 보고 싶었어요!”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미소를 지으며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케한.
그런 케한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누구 동생인지 아주 귀여워 죽겠다.
“오구 오구. 할부지도 케한이 보고 싶었어요.”
“아, 적당히 해요.”
어울리지 않게 케한의 앞에서 입술을 모으며 우쭈쭈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노인네가 말이야. 주책이다 주책.
찌릿.
그런 나의 핀잔에 할아버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가볍게 그 눈빛을 피하며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있는 케한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