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화
제53편 루드비히 후작(2)
“좋구나…….”
“도련님…….”
“혼자 있고 싶구나.”
제국에서 가장 넓은 호수 스타폴. 그 주변의 유흥가.
스타폴이 가장 잘 보이는 창가에 앉은 알든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라이튼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멀리서 언제든 지킬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
“아름답군.”
어두운 밤하늘.
호숫가를 밝히는 수많은 불빛과 그 밑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알든은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
그때, 알든의 머릿속에 울리는 죽은 동생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알든은 얼굴을 굳히고는 자신의 손에 쥔 술잔을 들어 그대로 들이켰다.
멈칫.
그러다가 술잔을 멈추었다.
맞은편 테이블.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한 여인이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흘깃.
그리고 그 주변의 남자들이 술을 마시면서 그 여인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런 여인의 모습에 알든은 인상을 찌푸렸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오늘 같은 날은…… 착한 척을 그만두고 싶었던 것이다.
털썩.
그때.
혼자 빠르게 술을 마시던 여인이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채 기절했고 주변 사내들이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하아…….”
그런 여인과 사내들의 모습에 알든은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뚜벅뚜벅.
그러고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내 일행에게 볼일 있나?”
여인에게 다가오던 한 중년인.
알든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 중년인을 보며 말하자 중년인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 여자는 내 일행인데?”
당당하게 말을 하는 중년인.
그에 알든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귀족가의 영애인 이 여인이 그대의 일행이라고?”
“!!!!”
후작가의 인장이 찍힌 반지를 들어 보이며 알든이 말하자 중년인은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송구합니다!”
“귀족 모욕죄로 그대로 죽여버리고 싶지만 참겠다. 꺼져라.”
“감사합니다!”
알든의 말에 사내는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자신들의 일행과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문을 잠시 바라본 알든은 한숨을 내쉬고는 여인의 맞은편에 앉았다.
“여기가 더 잘 보이는군…….”
이전 자리보다 더 스타폴의 경치가 잘 보이는 창문에 알든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알든은 술에 취해 기절한 여인의 앞에서 술잔을 들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비우기를 여러 번.
“으음…….”
“일어났습니까?”
알든은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드는 여인을 보며 친절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알든의 말에 고개를 들어 알든을 바라보는 여인.
“!!!”
그 여인의 모습에 알든은 순간 숨을 멈추었다.
잠이 덜 깬 듯 살짝 풀린 두 눈, 술기운이 가라앉지 않아 아직은 붉은 두 볼. 부스스한 앞머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 알든은 깜짝 놀랐다.
두근두근.
그러고는 오랜만에 빠르게 뛰는 자신의 심장을 느꼈다.
“누구세요……?”
졸음이 섞인 여인의 목소리.
그에 정신을 차린 알든이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굳이 알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나가는 인연인 것을.”
“흐음…… 그래요 그럼.”
알든의 말에 여인은 살짝 고민하더니 이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나도 줘요.”
“훗.”
그런 여인의 모습에 알든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자신의 술병을 들었다.
쪼르르.
그러고는 여인의 술잔에 잔을 따라주었다.
“왜 여인 혼자서 이곳에 나온 것입니까?”
“언니를 위해서요.”
“……?”
생각지 못한 여인의 대답에 알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당신은요?”
“동생 때문에요.”
“……?”
알든의 대답 또한 예상외였을까?
이번에는 여인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알든을 바라보았고 알든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언니를 위해서라…… 좋네요.”
“동생 때문에…… 동생이 당신을 좋아하지 않나요?”
“바보 같은 놈이지요.”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간신들에게 넘어간 멍청이.
자신의 동생을 떠올리며 알든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여인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알든을 바라보았다.
“동생을 많이 사랑하셨군요.”
“하?”
여인의 말에 알든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으며 여인을 바라보았다.
동생을 죽인 자신이 동생을 사랑한다고?
“눈빛이 너무 슬퍼요.”
여인의 말에 알든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쾌하군요.”
“더 마셔요.”
“뭐요?”
자리에서 일어난 알든을 올려다보며 여인이 살짝 미소를 짓자 알든은 인상을 찌푸렸고 여인은 자신의 잔을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언니를 위해서 이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고, 당신은 동생 때문에 이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잖아요. 정반대인 우리 둘. 이름도 모르고 오늘이 지나면 다시 만날 사이가 아닌 우리 둘. 마음 터놓고 오늘 친구로 지내요.”
“…….”
여인의 말에 알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여인은 그런 알든을 올려다보며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친구. 나한테 얘기해봐.”
“……훗. 그러지.”
여인의 말에 알든은 이내 피식 미소를 짓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모두 털어냈다.
알든의 솔직한 말에 여인도 자신의 고민이었던, 이곳에 나오게 된 이유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둘은 서로를 위로하며 공감해주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가듯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만들었다.
* * *
“그날이 마지막으로 만날 날이었습니다.”
“어머…….”
“…….”
루드비히 후작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엘로나와 코피아는 입을 가리며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고 나와 칼론 또한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루드비히 후작을 바라보았다.
여인들은 루드비히 후작과 마들렌의 설레는 만남에, 나와 칼론은 사람 좋은 루드비히 후작의 내면에 있는 동생을 죽일 정도의 과감한 결단력에 놀란 것이다.
-인간이란 정말 재밌는 존재이다.-
루드비히 후작의 이야기에 푹 빠져 눈을 반짝이던 크산느.
그가 살짝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만난 여인을 잊지 못해 결혼을 하지 않고 노총각 소리를 들으신 것입니까?”
“그날, 저와 마들렌은 영혼의 단짝이었습니다. 영혼의 단짝이 존재하는데 어찌 다른 영혼을 맞아들인단 말입니까?”
“어머!”
“너무 멋있으세요!”
나의 질문에 모범 어린 대답을 한 루드비히 후작.
그에 엘로나는 감탄한 표정을 지었고 코피아는 감격하며 흥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남자가 봐도 멋있었다.
스쳐 지나간 인연을 잊지 못해 30살의 나이까지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아간 로맨티시스트.
그런 루드비히 후작을 바라보며 칼론은 묘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나중에 단둘이 이야기를 할 것 같으니 나는 조용히 밥을 먹어야겠다.
* * *
루드비히 후작가의 집무실.
칼론은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존재와 독대를 하고 있었다.
“밥은 입에 맞았느냐?”
“네.”
부드러운 루드비히 후작의 음성에 칼론은 딱딱하게 대답했고 그에 후작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미안하다.”
“아닙니다. 모르지 않으셨습니까.”
“더 열심히 찾았어야 했지…….”
칼론의 대답에 루드비히 후작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물론 마들렌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다.
한데 이렇게 가까이 있었을 줄이야……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충분히 찾지 않았을까?
“괜찮습니다.”
그런 루드비히 후작을 향해 짧게 대답한 칼론은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
그런 칼론의 모습에 루드비히 후작은 다시 미소를 짓고는 칼론과 마찬가지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차를 마시기를 10여 분…….
루드비히 후작은 말 없는 자신의 아들, 칼론을 보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 아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느냐?”
“제국의 외교 총 담당관으로 알고 있습니다.”
후작의 물음에 칼론은 짧게 대답했다.
그런 칼론의 대답에 루드비히 후작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구나. 이 아비가 외교를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루드비히 후작의 물음에 칼론은 멈칫하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외교를 해본 적이 없는 자신이 어찌 그것을 안단 말인가?
정말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바로 상대방을 관찰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눈빛, 말투, 손짓, 억양. 그것을 관찰하면 상대방이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
“…….”
“그리고 나는 너를 관찰했단다.”
“그렇습니까?”
루드비히 후작의 말에 칼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에 후작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너는 나에게 관심이 없구나.”
“!!”
갑작스러운 루드비히 후작의 말.
그에 칼론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루드비히 후작을 바라보았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칼론을 바라보고 있는 루드비히 후작.
칼론은 처음으로 자신의 아버지와 두 눈을 마주쳤다.
“어머니 걱정은 하지 말고, 너는 네가 정한 길로 걸어가거라.”
“…….”
은은한 미소와 굳건한 눈빛.
칼론은 그런 아버지의 눈빛에 흠칫했고 루드비히 후작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너를 방해하는 장애물은 내가 정리해주마.”
“…….”
“대신, 루드비히 후작가의 장남으로서. 부끄러운 행동은 하지 말거라.”
“주군에게 부끄러운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루드비히 후작의 말에 칼론이 짧게 대답하자 루드비히 후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되었지.”
끄덕이며 말한 루드비히 후작은 다시 고개를 바로 하며 제 아들을 바라보았다.
자신과 닮은 이목구비에 붉은 머리 붉은 두 눈.
누가 보아도 자신의 아들이다.
15년간 기대도 하지 않았던, 나의 젊은 시절과 같은 아들.
그에 루드비히 후작은 환한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잘 부탁한다. 아들아.”
* * *
나는 칼론에게 일주일 휴가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내렸다.
친아버지인 루드비히 후작과 친해졌으면 하는 마음과 또 15년간 느끼지 못했던 부정을 느꼈으면 했기에, 싫다고 하는 칼론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제발 녀석도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무튼, 칼론을 내버려두고 나는 부기사단장 레인과 이야기를 하여 목적지를 대공가가 아닌 해밍턴 백작가로 잡았다.
위즐리가 할아버지인 해밍턴 백작에게 아직 인사를 안 드렸기도 했고, 위즐리의 보호자인 해밍턴 백작과 상담할 것이 있어 내가 레인에게 직접 부탁을 한 것이다.
나의 부탁에 레인은 황공하다는 듯 바로 수락했고 그렇게 우리는 해밍턴 백작가로 출발하게 되었다.
아. 물론 눈치 있게 레브는 칼론의 시녀로 놔두고 왔다.
다행히 해밍턴 백작가는 루드비히 후작가에서 말을 타고 하루 정도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였기에 나는 말이 아닌 편한 마차에 올라타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두 눈을 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