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화
제40편 종전(1)
“하아…….”
위천이 안내한 집으로 들어선 나는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한숨을 내쉬며 뒤통수를 문질렀다.
“가만히 있어 형.”
어디서 구해왔는지 조금은 큰 얼음덩어리를 주머니에 넣고 나의 뒤통수에 올린 위즐리의 말에 나는 조용히 손을 내렸다.
“형아가 잘못했어.”
“쩝. 미안하다.”
항상 나의 편을 들던 위즐리까지 이렇게 말하니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수많은 병사들과 북부의 최정예, 소드 마스터 두 명과 어린 위즐리까지 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곳에 왔단다.
그들에게 어찌 화를 낼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조용히 실에게 나의 뒤통수를 허락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역시 맞으니 존X 아팠던 것이다.
“그래서?”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은 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묻자 나는 한숨을 살짝 내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겨울의 군주 카자르, 엘리멘탈 소드마스터 실, 나의 호위기사 칼론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나는 한 번 더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삼촌.”
“뭐.”
오랜만에 부르는 삼촌이라는 호칭.
실은 딱히 나무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에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5년 전, 황제 폐하께 삼촌보다 더 큰 공을 세우겠다고 한 이야기. 기억합니까?”
“워낙 미친 소리라서 기억하고 있지.”
나의 물음에 실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실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설인족들을 지배했슴다.”
“…….”
“허 참.”
나의 당당하고 조금은 깜찍한 말에 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카자르는 헛웃음을 지었다.
카자르의 헛웃음도 이해는 간다.
자그마치 10년 동안 설인들과 전쟁을 해온 카자르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15살, 어린 내가 자신이 10년간 이루지 못한 결과를 내었으니 어이가 없을 것이다.
전생에서 카자르가 이뤘던 업적을 내가 뺏은 격이라 괜히 찔렸기에 나는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괴수는?”
“저에게 맡기고 잠들었습니다.”
실의 물음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고 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병사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설인들에게 악감정을 지닌 병사들이 많다. 그들을 어떻게 위로할 것이냐고 물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실은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한 번 더 물었다.
그런 실의 물음에 나는 아무 말 없이 실을 바라보았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건지 궁금했던 것이다.
“대답을 왜 못하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바라보기만 하는 나의 모습에 실이 실망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앞으로 더 쌓일 악감정을 제가 없애는 것인데 무엇을 설명합니까?”
“뭐?”
“그리고 설인들 또한 저희에게 악감정이 아주 많습니다. 설인들도 가만히 있는데 왜 삼촌이 나섭니까?”
“이 개…….”
“워워. 참아.”
나의 물음에 분노한 실이 몸을 일으키려다 자신을 만류하는 카자르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채 다시 앉았다.
그에 안도의 한숨을 한번 내쉰 나는 카자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쟁을 끝낼 수 있다면 나는 만족하네.”
나의 물음에 카자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나는 미소를 지은 채 그런 카자르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쿨하게 넘어가는 카자르가 고마웠던 것이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만 하던 칼론.
녀석이 드디어 입을 열었고 그렇게 내뱉은 말이 나의 걱정이었다.
그런 칼론을 보며 웃음이 나온 나는 피식 웃으며 칼론의 어깨를 한 대 쳤다.
“누가 보면 엄마인 줄 알겠네.”
“…….”
나의 장난에 무표정으로 반응하지 않는 칼론의 모습에 나는 움찔했고 칼론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설인들이 주군의 수하가 된 것입니까?”
“그렇지……?”
갑작스럽게 묻는 칼론의 물음에 내가 어색하게 대답하자 칼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저 녀석 왜 저럽니까?”
말도 없이 나서는 칼론의 모습에 내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실을 바라보며 묻자 실은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너한테 삐졌나 보지.”
“하아…….”
저 인간한테 물어본 내가 바보지.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돌려 위즐리를 바라보았다.
그런 나의 눈빛에 위즐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칼론의 뒤를 따라나섰다.
“뭐냐.”
밖으로 나서자 보이는 칼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는 칼론의 모습에 내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자 칼론은 조용히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저 새X 반항인 건가?
하긴 15살이면 한창 오른손에 잠들어 있는 흑염룡이 깨어날 때가 되긴 되었다.
아무튼 회귀 후 처음 보는 건방진 칼론의 모습에 나는 살짝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늘 나의 명에 군말 없이 따르던 모습이 아닌 날을 세우는 모습에 옛날 생각이 나며 흥미가 생겼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우리 둘의 모습에 설인들은 웅성거리며 다가왔고 병사들 또한 웅성거리며 다가왔다.
그렇게 우리는 설인들과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구경거리가 되었다.
“뭐냐고 물었다.”
내가 조용히 한 번 더 묻자 칼론은 조용히 자세를 잡고는 입을 열었다.
“겨루고 싶습니다.”
“그래.”
칼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칼론은 나를 바라보며 모든 마나를 끌어 올렸다.
히이잉!
그 순간!
나는 칼론의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새하얀 백마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새하얀 몸에 말의 목에서부터 등까지 난 말갈기에서는 불꽃이 일렁거렸고 은색이어야 할 말발굽 또한 불꽃에 휩싸여 있었다.
한마디로 존X 멋있었다.
당당하게 그 백마에 오른 칼론은 나를 내려다보았고 나는 왠지 모르게 꿀리는 듯한 기분에 인상을 찌푸렸다.
“크산느.”
-뭐.-
“너는 못하냐?”
-미친놈.-
나의 물음에 크산느는 코웃음을 치고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편한 자세로 나와 칼론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원수 같은 크산느를 한번 노려본 나는 말 위에 올라서서 당당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칼론을 바라보았다.
“만들었구나.”
실의 제자가 되어도 5년간 정령을 만들지 못했던 칼론.
녀석이 드디어 고대 불의 정령을 태어나게 한 것이었다.
그것도 엄청 멋진 놈으로 말이다.
나의 말에 칼론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주군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녀석입니다.”
히이잉!
칼론의 말에 동의하듯 칼론의 정령이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그 정령을 바라보았다.
-쿠르스다.-
그때, 나의 귀에 들리는 크산느의 목소리에 나는 싱긋 웃으며 말, 아니 칼론의 정령 쿠르스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잘 부탁한단 쿠르스.”
그러고는 인사를 건넸다.
나의 인사에 쿠르스의 두 눈이 크게 뜨는 것이 보였고 나는 싱긋 미소를 지은 다음 고개를 올려 칼론을 바라보았다.
“근데 말이다 칼론.”
“네.”
“왜 네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지?”
나의 물음에 칼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많이 컸구나.”
우웅!
“오오!”
나의 말과 동시에 생성된 겔루 칼립스.
설인들은 겔루 칼립스의 등장에 환호성을 내질렀고 병사들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칼론 힘내라!”
“그래 힘내!”
그러고는 칼론을 응원하고 있었다.
짜식들, 아직 나에게 섭섭한 감정이 해소되지 않았나 보다.
뒤끝 부리듯 칼론을 응원하는 병사들을 보며 피식 웃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칼론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덤벼.”
파앗!
히잉!
나의 도발과 동시에 쿠르스와 함께 나에게 달려드는 칼론.
나는 씨익 웃으며 겔루 칼립스를 들었다.
쿠르스에 탄 채 나의 앞까지 다가온 칼론.
나는 그대로 검을 들어 칼론을 향해 겔루 칼립스를 휘둘렀다.
부웅.
하지만 허공을 베고 말았다.
칼론이 말에서 내려와 높이를 낮춘 것이었다.
대검이다 보니 휘두르는 사이 빈 공간이 생겼고 칼론은 두 눈을 반짝이며 나의 빈 곳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이 자식. 내가 찔리면 어쩌려고.
채앵!
나는 가볍게 대검을 돌려 칼론의 검을 퉁겨내었다.
그런 나의 모습에 두 눈을 크게 뜨는 칼론.
나는 그런 칼론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거 가볍거든.”
일단 겔루 칼립스는 신물이라 아주 가볍다.
거대한 대검에 맞지 않게 일반 장검과 비슷한 무게.
거기에다가 나의 근력은 40이다.
이 정도야 평범한 성인이 목검을 든 무게랄까?
그런 나의 모습에 칼론은 역시 하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이번에는 내가 달려들었다.
우웅!
생김새와 같이 거대한 소리를 내며 휘둘려지는 나의 대검.
카가각.
역시 칼론은 천재다.
나의 검과 녀석의 검이 맞닿을 그 짧은 순간.
칼론은 손목을 꺾어 나의 검을 흘려보냈다.
그러고는 그 힘을 이용해 몸을 돌린 다음 나에게 검을 휘둘렸다.
말은 쉽지만 막상 취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자세.
나는 그런 칼론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은 다음 고개를 숙였다.
나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칼론의 검.
나는 비어있는 칼론의 명치를 향해 검의 손잡이를 찔렀고 칼론은 나의 공격을 그대로 허용하고 말았다.
퍼억.
“크윽.”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치는 칼론.
나는 그런 칼론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까득.
저 새X 봐라?
그런 나의 모습이 짜증 났는지 칼론이 이를 갈았고 나는 살짝 욱한 표정을 지었다.
저 자식 승리욕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나 보다.
화르륵.
그때, 칼론의 검에서 실과 같은 정령의 불꽃이 생성되어 검을 휘감았다.
인첸트.
정령력의 인첸트였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넘실거리는 불꽃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고 칼론은 그런 나에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꽈앙!
나의 오러와 불꽃의 정령력이 부딪히자 거대한 소리를 내었고 구경하던 설인들과 병사들은 이를 악물며 버티면서도 우리의 대련에 집중했다.
강자들의 대결은 보기 힘드니 말이다.
“재미있네.”
나의 검 너머로 보이는 칼론의 얼굴.
진지한 칼론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고 그에 칼론 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뒤로 물러났다.
또다시 대치 상태가 되어버린 나와 칼론.
칼론은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주군의 옆에 설 자격이 되는 것 같습니까?”
저 X신.
바보 같은 칼론의 물음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칼론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짜증 나니까.”
“하지만…… 저는 주군의 호위기사이지만 약합니다.”
“하 진짜 짜증 나게.”
늘 똑같은 말을 하는 칼론의 모습에 나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고는 칼론의 앞으로 걸어갔다.
덥석.
그러고는 칼론의 멱살을 잡았다.
“야 이 X신아. 너는 내가 아무렇게나 검을 들지 않도록 다가오는 적들을 물리치기만 하면 된다. 네가 감당하기 힘든 적과 만나 위험하게 되면 그때는 내가 너를 지킨다. 그것이 내가 가는 군주의 길이고 내가 원하는 황제이다. 바로 내가! 나를 따르는 신하들과 백성들을 지킨다는 뜻이다.”